“신인왕보다 우승 반지가 좋아”
  • 박동희│스포츠춘추 기자 ()
  • 승인 2013.09.04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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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8월 징크스 극복 “월드시리즈에서 뛰는 게 중요”

LA 다저스 선발투수 류현진(26)의 상승세가 기대 이상이다. 류현진은 매 경기 인상적인 투구를 펼치며 올 시즌 강력한 메이저리그 신인왕 후보로 부상했다. 미국 야구계는 류현진을 신인왕 후보로 꼽으면서도 ‘지금 성적이라면 신인왕 수상 여부와 관계없이 아시아 출신 좌완투수 가운데 최강의 메이저리거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10승 정도는 하지 않을까 싶었지. 아, 그런데 벌써 12승이야. 평균자책도 그래. 데뷔 시즌이니까 3점대 중반만 해도 성공이라 봤거든. 하지만 지금은 2점대 후반과 3점대 초반 평균자책을 오가고 있다고. 현진이는 한국에서도 괴물이었지만, 미국에서도 괴물이야, 괴물.”

김인식 전 한화 감독은 류현진 이야기가 나오면 금세 얼굴에 꽃이 핀다. 김 전 감독은 2005년 신인지명회의에서 류현진 지명을 강력하게 요청했던 이다. 한술 더 떠 류현진이 한화 유니폼을 입은 2006년엔 “1군 선발투수로 뛰기엔 너무 어리다”는 코치들의 만류에도 “쟤는 한국 야구계를 이끌 기둥 투수가 될 것”이라며 붙박이 선발 기용을 강행했다. 결국 김 전 감독의 선견지명이 통했다. 2006년부터 2012년까지 류현진은 최고의 좌완 선발투수로 한국 프로야구를 지배했다.

누구보다 류현진의 장단점을 잘 파악하는 김 전 감독은 제자의 미국행이 이뤄졌을 때 “10승 정도는 충분히 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그러나 평균자책은 “3점대 중반만 되도 다행”이라며 투구 이닝도 “첫해 무리하지 않고, 150이닝 정도만 던져도 대성공”이라고 전망했다.

메이저리그 시즌이 5개월가량 흘렀다. 김 전 감독은 “내 예상이 지나치게 겸손했다”며 웃었다. 그도 그럴 것이 류현진은 25경기(이하 8월29일 기준)에 선발 등판해 162⅔를 던져 12승5패 평균자책 3.08, 탈삼진 133개를 기록 중이다. 내셔널리그 다승 공동 13위, 평균자책 14위의 놀라운 성적이다.

지난 8월19일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 말린스구장에서 마이애미 말린스를 상대로 역투하는 모습. ⓒ REUTERS
일본 출신 투수들이 보였던 8월 징크스 극복

미국 현지에서 류현진을 더 높게 평가하는 건 그가 ‘8월 징크스’를 훌륭하게 극복했다는 점이다. ‘8월 징크스’는 데뷔 시즌을 치르는 일본인 메이저리거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됐던 불운이었다. 실제로 7월까지 호투를 거듭하다가도 8월부터 무너진 일본인 메이저리거가 수도 없이 많다.

2002년 다저스에서 데뷔했던 좌완 이시이 가즈히사는 7월까지 12승을 거두며 다승왕 후보로 꼽혔다. 그러나 8월 들어 1승2패 평균자책 6.95로 몹시 부진했다. 결국 이시이는 9월에 1승을 보태고서 14승10패 평균자책 4.27로 시즌을 마감했다.

2007년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루키 시즌을 보냈던 마쓰자카 다이스케 역시 그해 7월까지 12승을 거두며 상승세를 탔다. 그러나 8월엔 1승3패 평균자책 4.45로 좋지 않았고, 결국 15승12패 평균자책 4.40으로 시즌을 끝냈다. 노모 히데오 역시 데뷔 첫해 후반기는 좋지 않았다. 1995년 6월에만 6승을 거두며 그해 올스타전 내셔널리그 선발투수로 뽑혔던 노모는 8월 들어 롤러코스터 투구를 선보였다. 2경기 연속 5실점 투구를 기록했고, 시속 150km를 기록했던 속구 최고 구속은 142km로 떨어졌다. 지난 6월 오사카에서 만난 노모는 “지금도 데뷔 시즌 7~ 8월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라며 “이상하게 여름이 되고서 경기가 풀리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지난해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데뷔 시즌을 경험했던 다르빗슈 유도 ‘8월 징크스’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7월까지 13승을 기록하며 평균자책 3점대 중·후반을 기록했던 다르빗슈는 8월에 2승2패 평균자책 5.29로 좋지 않았다.

메이저리그는 한 시즌 162경기인 대장정, 살인적인 시차 이동, 30개 구단 구장이 모두 다르다는 점, 승패가 결정 날 때까지 끝까지 승부하는 경기 스타일, 벤치의 철저한 투구 수 관리 등 색다른 특징이 데뷔 시즌을 치르는 아시아 출신 투수에겐 큰 부담이다. 7월까지 잘 참았던 아시아 투수들이 체력적 한계를 느끼고, 심리적 피로감이 가중되는 게 바로 8월이다.

하지만 류현진은 예외였다. 8월이라고 다를 게 없었다. 7월에 3승, 평균자책 4.50으로 주춤했던 류현진은 8월 들어 5경기에 선발 등판해 3승2패 평균자책 2.84를 기록했다. 월별 성적에서 5월 이후 가장 빼어났다. 투구 내용도 좋아 9이닝당 탈삼진은 7.96개, 9이닝당 볼넷은 0.85개로 뛰어난 제구를 과시했다. 미국에서 류현진을 가리켜 ‘슬럼프가 없는 괴물’이라고 부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국내 언론은 류현진의 신인왕 수상 여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성적만 본다면 류현진은 강력한 후보다. 그러나 정작 수상엔 몇 가지 걸림돌이 있다. 먼저 투표다. 미국도 한국처럼 골든글러브, 시즌 MVP, 신인왕을 기자단 투표로 결정한다. 하지만 한국 같은 ‘인기 투표’와는 거리가 멀다.

실례로 지난해 한국 프로야구 골든글러브 투수 부문 수상자는 장원삼(삼성)이었다. 다승을 제외한 평균자책, 이닝에서 브랜든 나이트(넥센)가 앞섰지만 기자들은 피부색이 같은 장원삼을 선택했다. 미국 같았다면 당연히 나이트가 수상할 일이었다. 투수의 경우 다승보다는 평균자책, 탈삼진 수, 이닝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신인왕 투표에서 투수보다 타자 선호

신인왕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야구기자협회(BBWAA)는 신인왕 선정과 관련해 전통적인 원칙을 가지고 있다. 투수보다 타자를 선호하고, 투수일 경우 앞서 설명한 대로 평균자책 〉 탈삼진 〉 다승 〉 이닝 순으로 배점을 한다.

미국 현지에서 류현진의 팀 동료 야시엘 푸이그를 강력한 신인왕 후보로 꼽는 것도 그가 타자인 까닭이다. 푸이그는 타율 3할4푼6리, 13홈런, 30득점을 기록 중이다. 일부에선 호세 페르난데스(마이애미)의 신인왕 수상을 전망한다. 페르난데스는 10승5패 평균자책 2.30, 탈삼진 165개를 기록 중이다. 다승에서 2승 차로 류현진에게 밀린다. 그러나 평균자책과 탈삼진은 한 수 위다.

무엇보다 류현진이 한국 프로야구에서 7년을 뛰었다는 게 마이너스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 기자단은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에서 6년 이상 뛰었던 선수들을 ‘중고 신인’으로 평가한다. 다시 말해 참신함에서 떨어진다는 얘기다.

중요한 건 류현진에게 신인왕 타이틀은 큰 의미가 없다는 점이다. 정작 주목해야 할 것은 류현진의 포스트시즌 투구 여부다. 역대 아시아인 메이저리거 가운데 데뷔 첫해 포스트시즌 경험을 맛본 선수는 극소수다. 노모, 마쓰자카, 다르빗슈 정도다. 이 가운데 노모는 포스트시즌 데뷔 무대에서 5이닝 7안타(2홈런) 5실점했고, 다르빗슈는 6.2이닝을 던지며 3실점했다. 마쓰자카는 2007년 포스트시즌에서 4경기에 등판해 2승1패를 기록했다. 공교롭게도 세 투수는 팀을 포스트시즌에 올렸다는 이유로 더 높은 평가를 받았고, 마쓰자카는 보스턴이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아시아 메이저리거 가운데 최초로 ‘데뷔 시즌 월드시리즈 멤버’가 됐다.

류현진 역시 “신인왕은 개인적 영광일 뿐, 팀과는 관계가 없다”며 “이미 한국에서 신인왕을 수상했던 만큼 이번엔 우승을 경험하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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