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발적이고 유쾌했지만 그걸로 ‘끝’
  • 강성운│독일 통신원 ()
  • 승인 2013.09.04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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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바람 일으킨 독일 해적당…국민 피로도 높이다 지지율 급락

8월22일 독일 쾰른에서는 세계 최대 규모의 게임 박람회인 ‘게임스컴(gamescom)’이 열렸다. 행사장에는 세계 40개국에서 온 635개 업체가 부스를 차렸고, 6000여 명의 취재진이 북적거렸다. 

이 게이머들의 잔치에 한 정치단체가 부스를 차렸다. 독일 ‘해적당’이었다. 해적당은 게임스컴 기간 동안 박람회장 앞에서 선거전을 펼쳤다. 토요일이던 24일에는 코르넬리아 오토 해적당 총리 후보까지 등장해 직접 전단지를 돌렸다. 전단지는 한 업체가 도입한 정품 게임 온라인 인증 제도가 게이머들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같은 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쾰른에서 불과 30분 거리인 서독의 옛 수도 본을 방문했다. 이날 그의 선거 유세 연설을 듣기 위해 모인 청중은 4000여 명이었다. 모인 사람의 수로만 따지면 ‘틈새시장’을 공략한 해적당의 전략이 적중한 듯했다.

2012년 11월24일 독일 보쿰에서 열린 해적당 전당대회에서 검은 안대를한 대의원이 손을 들어 표결에 참가하고 있다. ⓒ DPA 연합
그러나 총선을 불과 4주 앞둔 8월 말까지 해적당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때 두 자릿수였던 해적당의 지지율은 2~3% 선. 이대로라면 유효 득표율 5%의 벽을 넘어 의회에 입성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창당 7년째를 맞는 해적당은 지금 코너에 몰려 있다. 해적당이 총선에서 다시 링의 중앙으로 들어설 수 있을까.

지난 2년간 해적당은 극적인 성공과 추락을 맛봤다. 8.9%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베를린 지방의회에 진출한 것이 불과 2년 전 일이다. 2011년 당시 독일 사회는 금융 위기와 월가 점령 시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겪으며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성 정당들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제일 먼저 친기업 자유주의 성향의 ‘자유민주당(FDP·자민당)’이 흔들렸다. 전 세계적으로 금융에 대한 규제 요구가 높아졌는데도 줄곧 감세를 주장하면서 반감을 샀다. 2009년 총선에서 14.6%를 기록했던 지지율은 3%대로 추락했다.

2년 전 두 자릿수 지지율로 정치권 진입

3월11일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터지자 메르켈 총리의 에너지 정책은 비난의 대상이 됐다. 직전 해 가을, 원전의 안전성을 주장하며 독일 17개 원자력발전소의 가동 시한 연장을 관철했기 때문이다. 제1야당인 ‘사회민주당(SPD)’의 지지율도 같이 하락했다. 여야 할 것 없이 기성 정당에 위기가 찾아왔다.

변화의 조짐은 자동차 산업의 본거지이자 기민련의 표밭인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서 등장했다. 2011년 3월27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녹색당이 24.2%라는 경이적인 득표율을 올렸다. 사민당과 연합정부를 구성한 녹색당은 빈프리트 크레치만을 주 총리로 만들었는데 녹색당 정치인이 주 총리직에 오른 것은 독일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런 정치 변혁의 바통을 이어받은 것이 해적당이었다. 2011년 9월 베를린 의회를 시작으로 이듬해인 2012년 자를란트,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의회에 차례로 진입했다. 급기야 2012년 4월 주간 여론조사에서는 13%의 지지율을 기록하면서 처음으로 녹색당을 추월했다. 정치권의 판이 ‘보수-진보’에서 ‘기성 정당-신생 정당’으로 재편되는 순간이었다.

당시 해적당의 성공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베른트 슐로머 독일 해적당 대표는 “시민사회의 가치관 변화와 기성 정당의 부진”을 꼽았다. “실효성 없는 대형 건축 프로젝트, 원전 위기, 수도 민영화 논란 등을 겪으면서 자신이 사는 곳의 사회적 환경을 직접 구성하고 싶어 하는 시민들의 열망이 어느 때보다 강해졌다”는 것이었다.

그는 정책적인 주제가 활짝 열려 있었던 것도 인기를 끈 이유라고 꼽았다. 사람들은 해적당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반영할 수 있었는데 2011년 해적당의 핵심 키워드는 ‘해적당은 나를 위해, 내가 뭔가를 이룰 수 있는 정당’이라는 마인드를 심어줄 수 있는 풀뿌리 민주주의(Basisdemokratie)였다.

해적당 의원들에게 직업 정치꾼의 면모는 찾아보기 어렵다. 하룻밤 사이에 정치인이 된 초짜 정치인이 많았다. 슐로머 총재 역시 해적당 이전에는 어떤 정당에도 소속된 적이 없었다. 현직 국방부 공무원인 슐로머는 “해적당에서 월급이나 활동비는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치 활동에서 나오는 금전적 이익을 포기하면 정치를 불신하는 사람들도 관심을 갖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서다.

‘준비가 안 된 정치 신인’이라는 이미지는 한동안 해적당에 호감으로 작용했다. 슐로머보다 먼저 당 총재를 맡았던 제바스티안 네르츠는 기자회견에서 “정당이 꼭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갖고 있어야 하나? 그렇지 않다. 그리스 재정 위기에 대해 뾰족한 해결책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이를 말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이를 인정한다는 점이 우리와 기성 정당의 차이다”라고 말해 기자들을 당황하게 만든 적도 있다. “우리는 프로그램(정책)이 아닌 운영체제를 제공한다”는 마리아 바이스반트 정책총무의 말은 해적당의 상징적인 구호가 됐다.

정치 신인 해적당의 행보는 도발적이고 유쾌했다. ‘정치권 투명성 강화’를 실천하기 위해 당 지도부의 회의 내용을 인터넷과 트위터로 생중계했다. 독일 정당 최초로 온라인 토론 시스템인 리퀴드 피드백(Liquid Feedback)을 추진했고, 위조 방지 협약(ACTA) 반대에 나서 네티즌들의 환호를 받았다. 지적재산권 침해를 빌미로 인터넷 접근을 제한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기성 정당들은 부랴부랴 해적당 배우기에 나섰다. 전무하다시피 했던 인터넷 정책을 만드느라 진땀을 빼는가 하면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한 홍보에 열을 올렸다. 심지어 메르켈 총리는 2012년 9월 인터넷 생방송인 텔레 타운홀(Tele Townhall)을 시작했다. 시민들이 전화로 궁금한 점을 물어보면 총리가 직접 대답하는 형식이었다. 그러나 낡은 정당이라는 낙인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순풍에 돛을 달고 항해하던 해적당의 위기는 내부에서 찾아왔다. 공교롭게도 해적당이 자랑으로 삼은 투명성과 다양성 그리고 반(反)엄숙주의가 덫이 되었다. 당 지도부 내 갈등이 트위터를 통해 실시간 중계됐고 수많은 당원이 여기에 가세하면서 인터넷을 통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재미있는 정치, 기쁨을 주는 정치는 어느 순간 막장 드라마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정치 2.0’을 표방하던 요하네스 포나더 전 사무총장은 잇따른 돌발 행동과 잦은 매체 노출로 해적당의 이미지에 치명상을 입혔다. 그는 해적당 활동으로 수입이 생기자 “사회보장기금을 받지 못하게 되었으니 도와달라”며 후원금을 모집해 당 안팎의 거센 비난을 받았고 올해 5월 사무총장직에서 물러났다.

해적당은 의회에서도 고전했다.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당의 취지는 주요 현안에 대한 대안 부재와 의원의 ‘개인플레이’로 이어졌다. 해적당이라는 이름을 걸고 총기 사용 규제에 찬성하는 그룹과 반대하는 그룹이 제각각 활동을 펼치자 지지자들은 분열했다. 대중에게 해적당은 정치적 정체성이 모호한 정당이 되어갔다.

본에 거주하는 귄터 퇴펠(48). 소프트웨어 개발자라 해적당에 관한 이해도가 높을 것 같은 그도 난감해했다. “나 역시 해적당의 프로필이 뭔지 파악하기 힘들다. 온라인상의 자유, 직접 민주주의 같은 얘기는 들었지만 구체적으로 뭘 말하는지 모르겠다.”

인터넷을 통한 직접 민주주의도 요원한 과제로 남았다. 리퀴드 피드백은 투표를 대신하지 못했다. 온라인 정치 토론방의 기능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마저도 전면 가동 여부를 둘러싸고 1년 가까이 갈등을 거듭하다 지난 5월에서야 합의를 이끌어냈다.

8월8일 베를린 당사에서 해적당 집행부와 9월 총선에 출마하는 해적당 후보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DPA 연합
‘정치 예능주의’의 실망적인 말로

정치적 엄숙주의에 대한 해적당의 비판은 정치를 예능으로 변질시켰다. 지난 3월 베를린 지방의회에서 한 해적당 의원은 “베를린 시는 좀비의 공격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는가”라고 질의했다. 색다른 질의에 언론과 시민들은 냉소를 보냈다. 슐로머 대표는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왜 독일에서는 정치를 항상 끝도 없이 심각하게 해야만 하나. 그런 진지함은 많은 사람을 질리게 한다”며 “좀비 질의는 사람들에게 미소를 짓게 만드는 ‘양념’”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양념’이 정치 쇄신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정치 그 자체가 ‘기쁨’을 나눠주는 게 중요하다. 이 나라 국민들을 정치와 민주주의에 ‘열광’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슐로머의 발언은 상징적이다. 그는 정치를 엔터테인먼트로, 시민을 ‘열혈 시청자’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시청률’에 대해서는, 즉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동안 너무 상승세를 탔다”고 말했다. 지지율 급락을 “지극히 평범한 상승과 추락”의 일환일 뿐이라고 해석했다.

정치가 엔터테인먼트로 탈바꿈하는 동안 정치 쇄신과 풀뿌리민주주의는 철지난 유행어가 되고 말았다. 기대감이 실망으로 바뀌면서 정치에 대한 독일 국민의 피로도도 한층 높아졌다. 변화 제스처를 보이던 기성 정당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또다시 구태를 반복하고 있다. 독일 ‘민주주의 2.0’은 해적당이 연출한 짤막한 해프닝으로 끝날 공산이 커 보인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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