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한 방울로 췌장암 진단한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3.08.27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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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안에 현실화 1기 완치율 50%에서 70%로

10년 이내에 혈액 검사로 췌장암을 진단하는 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서울대병원을 포함한 여러 병원과 민간 연구소가 공동으로 췌장암 조기 진단법에 대해 연구 중이다. 현재 췌장암 1기(종양 크기 2cm 이하)의 완치율은 50%를 넘지 못한다. 만일 이 연구가 결실을 맺으면 1cm 이하 크기의 췌장암을 발견할 수 있어 완치율을 70%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한 전문가는 “췌장암 세포가 있는지 없는지 알려주는 암 표지자를 혈액에서 찾는 연구가 진행 중”이라며 “췌장암이 막 생긴 시점, 그러니까 1기 췌장암보다 앞선 ‘슈퍼 1기’에 췌장암을 진단하는 시대가 온다”고 밝혔다.

 

췌장암에 잘 걸리는 사람(고위험군)은 어떤 진료를 받아야 할지에 대한 지침도 5년 이내에 마련된다. 국내 연구진은 오랜 연구 끝에 췌장암에 걸린 사람들의 특징을 찾아냈고, 이들에게 필요한 검사와 치료 방법을 곧 공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췌장암 진료 지침은 세계 최초로 국제 의학계에 발표를 앞두고 있다. 일반인과 고위험군 모두에 대한 조기 진단 방법이 가시권에 들어온 셈이다.

 

 

ⓒ 시사저널 전영기

미국 암센터에 등록된, 현재 진행 중인 췌장암 연구는 400여 개다. 이 중 절반은 치료 분야다. 그만큼 췌장암 치료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다. 특히 수술보다 항암제로 췌장암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많다. 김용태 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방사선 치료를 받고 호전되는 사람보다 악화되는 환자가 많다. 수술 치료도 효과가 미미하다”며 “그래서 치료 분야에서는 세계적으로 항암제에 희망을 걸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항암제는 췌장암에 잘 듣지 않는다. 처음에는 효과가 나타나는 듯싶다가도 곧 유전자 변이가 일어나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현재의 항암제는 치료 목적보다 생명을 몇 주일 연장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유전자 변이를 찾아내려는 연구가 활발하다. 췌장암에서만 생기는 유전자 변이를 찾아서 그것에 맞는 항암제를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특정 환자의 췌장암에 맞춘 표적 치료제를 개발하려는 노력은 국내에서도 진행 중이다. 박상재 국립암센터 간담췌외과 전문의는 “A라는 항암제에 어떤 환자는 효과를 보이고, 다른 환자는 그렇지 않다”며 “환자의 유전자 변이를 발견해 그 환자에게 맞는 항암제를 찾거나 개발해서 사용하려는 연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췌장(노란색 부위)은 복부 중앙, 위장 뒤편에 가려진 20cm 길이의 장기다. ⓒ 일러스트 정현철

암 가운데 진료가 가장 고약한 암


 

지난 수십 년 동안 다른 암은 조기 진단법이 개발되면서 생존율이 크게 높아졌지만, 췌장암만큼은 예외다. 한 가지 검사로는 딱 부러지게 췌장암을 확진할 방법이 없다. 온갖 검사를 동원해 췌장암을 발견해도 치료 방법조차 마땅치 않다. 우연히 암을 발견해도 이미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진행된 상태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췌장암을 발견한 환자 중 수술받을 수 있는 사람은 10명 중 1~2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수술 환자의 80~90%는 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된 상태다. 수술로도 완치를 기대할 수 없다는 얘기다. 암 중에서 가장 고약한 췌장암의 완치율은 수십 년째 10%를 넘지 못하는 상태다. 이 수치는 모든 암 가운데 가장 낮다.

 

스티브 잡스(애플 창업자), 루치아노 파바로티(성악가), 패트릭 스웨이지(배우) 등 유명인이 이 암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그때마다 세간에서는 “돈으로도 췌장암은 고칠 수 없나 보다”라는 말이 돌았다. 그 말이 맞다. 소화효소와 혈당 조절 호르몬(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에 생긴 암은 증상·진단·치료 중 어느 하나도 명확한 것이 없다. 주요 증상이라야 복통, 체중 감소, 식욕 부진, 황달 등이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 일쑤다. 김용태 교수는 “다른 암과 달리 췌장암은 초기부터 빨리 진행되고 간·림프절·복강 등 다른 장기로 전이되는 특징을 보인다”며 “증상이 심해서 병원에 찾아올 정도면 암이 많이 진행된 상태여서 치료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환자는 병원에서 초음파 검사를 받는다. 그런데 췌장은 위장 등 다른 장기 뒤편에 가려져 있고, 환자가 뚱뚱하면 지방 때문에 더 보이지 않아 진단이 어렵다. 그래서 CT(전산화 단층 촬영) 검사가 췌장암의 기본 진단법으로 돼 있다. 췌장암의 95%를 발견할 수 있지만 방사선을 사용한다는 결정적 흠이 있다. 가슴 엑스선 촬영 검사보다 100배 가까운 방사선을 받아야 한다. 드문 경우긴 하지만 암을 조기에 발견하려다 암이 생길 수도 있다. CT 결과가 애매할 때는 내시경 초음파 검사나 조직 검사를 받는다.

이렇게 다양한 검사를 해야 췌장암을 발견할 수 있으므로 증상이 없는 사람이 단지 췌장암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해 CT 검사, 내시경 초음파 검사 등을 받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전문의들은 말한다.

 

최근에는 췌장암에 잘 걸릴 것 같은 사람만이라도 골라내려는 연구가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들에게 정기적으로 췌장암 검사를 받도록 해서 조기에 암을 발견하려는 것이다. 그렇지만 췌장암에 걸릴 사람을 구분하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 췌장암이다, 아니다를 가늠할 수 있는 표지자나 유전자 변이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때 췌장암 환자의 70~80%에서 특정 표지자(CA19-9) 수치가 올라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췌장암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그러나 위암·대장암 등 다른 암에 걸려도 이 수치가 올라간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심지어 이 수치가 올라가도 암이라고 단정하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됐다. 이후 이 표지자 검사만으로 췌장암을 판단하지는 않는다. 진단보다 췌장암 치료의 효과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검사로 자리 잡았다. 이종균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우리 병원에 온 환자를 대상으로 확인해보니 그 수치가 올라간 환자 가운데 2%에서만 암이 발견됐다. 즉 98%는 암이 아니었다”며 “약을 복용했거나 때로는 아무런 이유 없이 이 수치가 상승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갑작스런 당뇨라면 췌장암 검사 받아야”


 

이호근씨(63)는 지난해 상복부에 통증을 느꼈고, 이 복통은 수개월간 이어졌다. 단순한 소화불량으로 여기던 차에 눈이 노랗게 변하는 황달이 생긴 후 병원을 찾았다. 그는 결국 췌장암 판정을 받았고 최근 세상을 떠났다. 국내 췌장암 환자는 매년 5000명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암에 비해 발병률이 높지 않지만 사망률은 높다. 췌장암 판정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고인이 됐다는 소식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그렇지만 현재 진단과 치료에 대한 연구가 가시권에 들어온 만큼 췌장암에 걸릴 위험 요인을 피하면서 건강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안타깝게도 의학계는 췌장암 예방법을 찾지 못했다. 췌장암을 일으키는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심이 가는 위험 요인은 있다. 위험 요인을 피하는 것이 현재 췌장암에 대한 예방법이다. 우선, 췌장암 환자를 조사해보니 흡연자가 많았다.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췌장암뿐만 아니라 모든 암 발병률을 3분의 1 정도 낮출 수 있다.

 

만성 췌장염도 암으로 발전할 수 있다. 췌장염은 과음에 의한 것인 만큼 술을 줄여야 한다. 만일 가족 중에 췌장암 환자가 있으면 자신도 그 암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 이런 사람은 정기적으로 췌장암 검사를 받는 게 좋다.

 

당뇨와 췌장암의 관계는 비교적 밀접하다. 당뇨에 걸리지 않도록 젊을 때부터 운동 등으로 체중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금연·절주·운동만으로도 암에 걸릴 확률을 절반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

 

췌장암은 당뇨와 관련성이 깊다. 당뇨를 오래 앓

은 사람은 정상인보다 췌장암에 걸릴 확률이 2배 높다. 건강한 사람이 췌장암에 걸릴 확률이 1만분의 1이라면 만성 당뇨 환자는 5000분의 1로 올라간다. 그런데 최근 새로운 결과가 나와 눈길을 끈다. 췌장암에 걸리면 당뇨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종균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췌장암으로 인해 당뇨가 생기기도 하는데, 당뇨 환자의 1~2%에서 췌장암이 발견됐다”며 “50세 이상에서 췌장암 가족력이 없는데도 갑자기 당뇨가 생겼다면 췌장암 검사를 받을 것을 권한다”고 강조했다. 

 

다음 호에는 관절 류머티즘 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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