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분 0.1%에 웃고 운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3.08.27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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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 향한 형제들 경쟁 치열

최근 재벌가의 트렌드는 ‘장남 승계’ 또는 ‘장남 올인’ 상속 방식이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재벌가에서 ‘대권 장남 이양’이 깨진 지는 오래다. 삼성 이건희 회장은 3남인데도 대권을 물려받았고,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서경배 회장은 창업주의 차남이다. 하이트진로그룹 박문덕 회장은 창업주의 차남인데 경영권을 물려받아 만년 2위 맥주회사를 주류업계 최강자로 만들었다.

<시사저널>이 조사한 주식 부호 순위에서도 재벌가 형제간에 대권을 향한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사례가 제법 눈에 띈다. 7, 8위에 이름을 올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신동주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 형제, 17위와 37위를 차지한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과 정교선 현대백화점 부회장 형제, 20위에 오른 김남정 동원엔터프라이즈 부사장과 39위의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 형제, 27위의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과 36위의 조현식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사장 형제, 49위인 효성그룹 조현준 사장과 60위인 조현상 부사장 형제가 그렇다.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왼쪽)ⓒ 뉴스뱅크 이미지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 시사저널 임준선
신동주-동빈 형제의 미묘한 기류

이들 형제 경영인의 공통점은 부친이 생존해 있고 어느 정도 분할 상속이 이뤄졌지만 누가 대권을 잡을지는 확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들이 대주주로 있는 회사의 경영 성적이나 주가에 따라 형제간에 미묘한 경쟁 기류가 흐르기도 한다. 대표적인 곳이 롯데그룹이다. 롯데의 창업자인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은 일본에 롯데제과를 만들어 성공한 뒤 그 돈을 들여와 한국에 롯데제과와 롯데쇼핑 등 ‘롯데왕국’을 건설했다. 91세인 신 총괄회장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일본롯데 경영을 신동주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에게, 한국롯데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맡기고 있다. 하지만 명시적으로 어떤 식으로 후계 구도가 이뤄질지 못 박은 적은 없다. 그래서 최근 롯데의 지분 구조 변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롯데는 호텔롯데와 롯데제과가 투톱 노릇을 하고 있다. 초기에 신격호 총괄회장이 개인 투자자 자격으로 세운 롯데제과와 일본롯데 법인이 투자한 호텔롯데가 한국롯데의 물주 역할을 했다. 때문에 한국 롯데그룹의 지분 구조를 살펴보면 순환 출자의 중심에 이 두 회사가 자리 잡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호텔롯데의 지분 100%를 일본롯데가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누가 얼마를 갖고 있는지, 신동주-동빈 형제의 지분이 어떤 식으로 나뉘어 있는지는 베일에 가려 있다. ‘일본롯데=신동주, 한국롯데=신동빈’이라는 공식도 일본롯데홀딩스의 지분 구조에 따라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흥미로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8월 초 신동주 부회장이 10억원을 들여 롯데제과 지분을 사들였다. 이로 인해 지분율이 3.48%에서 3.52%로 올라갔다. 신동빈 회장이 지난 6월 100억여 원을 들여 롯데제과 지분을 4.88%에서 5.34%로 늘린 뒤 이뤄진 일이다.

오는 10월1일 호텔롯데가 롯데제주리조트와 롯데부여리조트를 흡수 합병한다. 이로 인해 호텔롯데의 주주로 한국롯데 계열사들이 대거 등장할 참이다. 일본롯데가 호텔롯데를 지배하고 있지만 미미한 수준이나마 한국롯데 계열사 지분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증권가에서는 이런 일련의 사건과 관련해 롯데의 후계 구도 최종본이 아직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신 총괄회장은 한국 롯데제과 출범 이후 직계 자손만 남기고 사업을 함께 벌였던 형제들을 차례로 한국롯데 경영에서 손을 떼게 할 정도로 가족 간의 사업 영역 정리에 엄격했다. 그는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이나 신유미씨 등 딸에게는 상징적인 의미의 계열사 지분을 허락할 뿐 두 아들에게 상속 지분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미 일본보다 덩치가 커진 한국롯데의 상속이 분할 상속인지 아닌지 오리무중이다.

한국롯데의 세 번째 기둥인 롯데쇼핑의 경우 신동빈 회장의 지분이 신동주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 지분보다 0.01% 많다. 호텔롯데의 지분 구조 변화와 한국 롯데제과의 지분을 계속 늘리고 있는 신동주-동빈 형제의 행보에서 미묘한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후계 구도가 대략 정해져 있지만 창업주가 경영 일선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 두 형제간 경영 실적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동원그룹 후계 구도도 롯데와 닮아 있다.

동원그룹 창업주 김재철 회장은 한국투자증권 등 금융 사업은 장남인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에게, 동원산업 등 식품 사업군은 김남정 동원엔터프라이즈 부사장에게 물려줬다. 김남구 부회장은 2005년 한국투자증권을 인수하면서 동원증권을 한국투자금융지주로 확장시켰다. 하지만 동생인 김남정 부사장이 이끄는 동원산업과의 주가 경쟁에서는 완패하고 있다.

한국투자금융지주의 주가가 지난 5년 동안 3만~5만원 구간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지만, 동원엔터프라이즈의 자회사인 동원산업은 2008년 5만원대에서 출발해 올 상반기에는 40만원대를 넘는 등 주가가 꾸준히 오르고 있다. 덕분에 형보다 동생의 보유 주식 평가액이 더 많아졌다. 두 형제가 맡고 있는 계열사의 성적이 둘이 가진 부의 크기를 좌우한 것이다. 시중에선 두 사람의 경영 성적으로 후계 구도가 다시 짜이는 게 아니냐는 관전평이 나올 정도다.

후계 구도 흔들어버린 아버지

효성그룹의 경우 조석래 회장의 세 아들이 비슷하게 계열사 지분을 나눠 갖고 경영에 공동 참여했다가 지난 2월 조 회장의 둘째 아들인 조현문 부사장이 급작스레 임원직을 사임하고 계열사 지분을 모두 처분하겠다고 발표해 화제를 모았다. 그 이유는 베일에 가려 있다. 다만 그가 ㈜효성 지분 240만주(6.84%)를 매각한 뒤 조현준 사장과 조현상 부사장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400억여 원을 들여 2.17%를 매입했지만 아직도 조현문 부사장 사임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조현문 부사장의 퇴진이 돌발적이었다는 뜻이다. 때문에 재계에서는 효성의 후계 구도 결정 과정에서 외부에 공개하지 못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조양래 한국타이어그룹 회장의 아들인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과 조현식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사장도 능력 경쟁을 벌이고 있다. 조현범 사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위로 유명하다. 지난 몇 년 동안 조현범 사장은 형인 조현식 사장보다 지분 경쟁에서 앞서갔다. 한국타이어그룹의 지주회사인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의 지분을 조현범 사장이 7.1%, 조현식 사장이 5.8% 갖고 있었다. 재계는 지난 7월 실시된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의 유상증자가 완료되면 효성그룹 후계 구도의 최종판이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올해 77세인 조양래 회장이 유상증자에 공격적으로 참여해 16%였던 지분을 23.6%까지 끌어올려 장남과 차남의 지분을 19.3%로 똑같이 만들어버린 것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MB 효과의 끝’이라는 농담(?)이 나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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