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 돌려쓰기
  • 김재태 편집위원 ()
  • 승인 2013.08.27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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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은 날씨가 참 독합니다. 폭우에 폭염까지 폭(暴)이라는 접두어 없이 그냥 지나는 날이 거의 없습니다. 한낮의 땡볕은 어찌어찌 견딘다 해도 잠자리까지 괴롭히는 열대야는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그런 날이 무려 20일 넘게 이어졌습니다. 시인 랭보의 <지옥에서 보낸 한철>이란 시 제목이 자꾸 떠오릅니다.

힘든 것은 더위를 참아내는 것뿐만이 아닙니다. 전기와도 끝없는 줄다리기를 해야 합니다. 지하철을 타도, 관공서를 가도 냉방이 예전만 못합니다. 아예 에어컨을 끄고 부채질로 겨우 땀을 식히는 공무원들의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합니다. 그들은 또 무슨 죄입니까. 시민들은 아우성입니다. “사고는 누가 내고 왜 우리가 이 고통을 겪어야 하나”라는 불평이 여기저기서 터집니다. 납품 비리에 휩싸여 가동을 멈춘 원자력발전소의 300만kW 공백이 시민들의 여름을 지옥으로 몰아넣은 탓입니다. 모든 고난의 앞자리에는 국민들이 있습니다. 높은 분들이 사고를 쳐도 그 뒷감당은 국민이 해야 합니다. 지난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에 동참해 아끼던 패물을 꺼냈던 국민들이 지금은 ‘전기 모으기’ 전선에 불려나왔습니다. 아파트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소등을 하고 선풍기 스위치를 잠급니다. 산업체는 생산 라인을 멈춰 정부의 전기 아끼기에 보조를 맞춥니다. 그런 마당에 며칠 전에는 원전 한빛6호기가 또다시 돌발 정지로 가동을 멈췄다는 섬뜩한 소식까지 들려왔습니다. 그야말로 악전고투입니다.

바로 이런 고난의 뒤에 우리 사회의 추악한 비리 사슬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위 탓에 가뜩이나 잔뜩 부풀어 오른 불쾌감이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불쾌한 시선은 그 모든 악덕의 근원에 자리 잡은 ‘원전 마피아’에게 저절로 옮겨갑니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마피아란 오래전 미국에서 온갖 범죄 행위를 일삼으며 시민들을 공포 속으로 몰아간 잔혹 무도한 갱단을 일컫습니다. 그런 만큼 원전을 고리 삼아 갖가지 비행을 저질러 국민들을 고통 속에 몰아넣은 이들이 ‘마피아’로 불리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마피아를 상징하는 특성을 두 가지로 간추리면 ‘의리’ ‘탐욕’을 들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자기들끼리 배불리기’입니다. 우리 국민들에게 시원한 여름을 뺏어간 원전 마피아들의 비리도 결국은 ‘특권 돌려쓰기’에서 나왔습니다. 거기에 지난 정권의 권력 실세들까지 달려들어 검은 빨대를 꽂은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어 국민의 분노는 더 커져갑니다.

어느 시대건 탐관오리가 날뛰면 나라의 돈이 새고, 기강이 새고, 결국 국격이 새기 마련입니다. 조선 시대 명재상 맹사성은 빗물

이 뚝뚝 떨어지는 누추한 집에서 살았습니다. 누가 한 나라의 재상이 어찌 이리 초라한 집에 사느냐고 따져 물으면 “그런 말 마시오. 이런 집조차 갖지 못한 백성이 얼마나 많은지 아시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국민의 생활과 밀접한 공공 부문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맹사성의 모습까진 바라지도 않습니다. 능력이 없어도 좋으니 그저 직분에 넘치는 욕심은 갖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전력난은 여름이 끝난다고 끝이 아닙니다. 통계에 따르면 전력 수급은 해마다 겨울이 더 어렵습니다. 국민 생활과 밀접한 곳에서 또 뭐가 새고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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