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던 섬엔 방사능 공포만 가득
  • 임수택│편집위원 ()
  • 승인 2013.08.21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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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쓰나미 대참사로 고통받는 일본 오오시마 섬

8월10일 일본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방사능 오염수가 바다로 유출되고 있다”고 발표해 주변국을 놀라게 했다. 유입되고 있는 오염수는 하루 300t 정도다. 그동안 원자력규제위원회가 오염수 유출 가능성을 제기했는데 결국 사실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아베 총리는 “아주 시급한 사건으로 정부에서 책임을 지고 해결해야 한다”며 전면에 나서는 모양새를 취했다. 하지만 지난 2년 동안 민간에서 줄기차게 제기한 문제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은 일본 정부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는 높아만 가고 있다.

방사능 오염수 유출 문제가 일본 열도를 달구고 있던 8월9일, 필자는 동일본 대지진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 중 한 곳인 미야기 현 게센누마 시 오오시마 섬으로 향했다. 도쿄 역에서 동북 신칸센을 타고 3시간 정도 지나 도착한 곳은 미야기 현의 이치노세키 역이다. 이곳에서 다시 기차를 타고 북동쪽으로 1시간 정도를 달려야 게센누마 역에 도착할 수 있다. 게센누마 역에서 택시를 타고 5분 정도 가면 게센누마 항구가 보이는데 이는 동일본 대지진 때 쓰나미로 인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던 곳이다. 이곳에서 ‘NPO 녹색 진주 아스나로우’의 사카이 마사루 대표를 만났다.

일본 미야기 현 게센누마 항의 모습. ⓒ 임수택 제공 . 동일본 대지진 당시 엄청난 피해를 입은(작은 사진) 곳이다. ⓒEPA연합
“연쇄적인 쓰나미에 마을 궤멸됐다”

사카이 대표는 게센누마 항구 오른쪽을 가리키며 “저곳은 원래 유류 탱크가 있던 자리다. 그런데 쓰나미가 덮치면서 탱크에 불이 붙어 항구 전체가 불바다가 되었다”며 당시의 소름끼쳤던 상황을 설명했다. 게센누마 항구를 끼고 있는 산속 나무들은 지금도 붉은빛을 띠며 죽어가고 있다. 대지진의 힘은 어마어마했는데 산 자체가 땅으로 꺼지면서 내려앉았고 지금도 산 아랫부분이 물에 잠겨 있는 상태였다. 게센누마 선착장 주변에는 수산물 가공 공장이 있었지만 형태만 남았을 뿐 거의 가동되지 않고 있다.

사카이 대표와 함께 오오시마 섬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게센누마 항에서 불과 25분 거리에 있는 오오시마 섬은 동북 지역 최대의 섬이다. 북부에 우뚝 솟은 해발 235m의 가메야마 산에 오르면 섬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데 그 경치를 두고 한 시인은 ‘녹색 진주’라고 읊을 정도로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오오시마 항 선착장에 도착했지만, 가장 번화해야 할 선착장 주변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것들이 보이지 않았다. 수산물 시장도, 가공 시설도 없고 상가나 여관도 없었다. 사카이 대표는 “2년 전 당한 쓰나미 피해 복구가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항구 앞에 있는 가메야마 산은 오랜 기간 이 지역 사람들이 대피처로 사용했던 곳이다. 오오시마 사람들은 옛날부터 태풍과 쓰나미를 피하기 위해 산 안쪽 지역에 정착해 마을을 형성했다.

하지만 인간의 지혜도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2011년 상상을 초월하는 15m 높이의 쓰나미는 작은 산길 사이로 몰아치며 마을을 공격했다. 이 재앙은 오오시마 항 주변에 사는 사람과 건물을 모두 쓸어가버렸다. 설상가상으로 게센누마 항까지 밀려갔던 쓰나미가 다시 바다로 빠져나오며 그나마 남은 잔해들까지 싹 쓸어갔다. 연쇄적으로 일어난 자연의 공격에 마을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채 사라졌다. 아직도 항구 안쪽 뭍에는 바닷물이 고여 있어 2년 전의 비참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사카이 대표는 “내가 사는 집은 고지대에 위치해 쓰나미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다. 하지만 저지대 거주자들은 여러 명이 죽었다”고 말했다.

오오시마는 미야기 현 동북부에 위치한 면적 9.05㎢의 섬이다. 1092세대, 3000명이 살고 있으며 수산업 양식 및 가공, 관광이 주요 산업이다. 가쓰오, 굴, 멍게가 유명하고 바다가 푸르고 아름다워 관광지로도 이름이 높다. 필자가 방문한 8월9일은 일본에서 여름철 휴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날이었다. 하지만 오오시마에는 외부 피서객의 발걸음이 뚝 끊겼다. 외부에서는 오오시마를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누출 영향권에 포함된 위험 지역으로 분류하고 있다. 쓰나미 피해에다 이제는 방사능 피해까지 입고 있는 셈이다.

오오시마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지점에서 약 300km 떨어져 있다. 거리로만 따지면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이와테·미야기·후쿠시마 등 동북 지역 3개 현을 방사능 오염 영향권으로 간주해 방문을 기피한다. 특히 오오시마 입장에서는 도쿄전력의 오염수 유출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니다. 방사능 오염수가 오오시마 인근 바다로 흘러들어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경제활동 전무…보조금으로 연명

무엇보다 먹거리 생산이 걱정이다. 식탁에 오르는 해산물을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관광객이 몇이나 있을까. 물도 문제다. 오오시마에서 만난 정수 처리 사업자 고이즈미 노리가즈 씨는 “이곳의 수돗물은 안전하다”고 말했지만 이 말을 믿고 마음껏 물을 마시는 사람은 많지 않다. 도쿄에 사는 사람들조차 생수를 사 마시고 있는 판국에 이곳 물에 대한 걱정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외지인들의 기피는 섬사람들의 시름으로 연결된다. 경제활동이 어려워지자 많은 주민이 정부나 단체에서 수령한 보조금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지역사회를 위해 활동하는 사카이 대표 역시 보조금 수령자다. 그는 “토요타 재단에서 제공하는 지원금을 받아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을 사람들의 생존 문제가 심각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카이 대표의 안내로 도착한 여관은 산 중턱에 있었다. 바다가 한눈에 보일 정도로 조망이 좋아 여름 휴양지로 안성맞춤인 곳이다. 여관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7시. 하지만 그 넓은 여관의 투숙객은 필자 혼자였다.

다음 날 사카이 대표를 따라 바닷가로 향했다. 양식장이 보여 사카이 대표에게 물었다. “여기서 나온 수산물이 외부로 판매됩니까?” 그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는 “이곳에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산업 중 하나가 수산물 양식인데 외부에서 도통 구매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오오시마는 수산업이 발달했고 그 때문에 부유한 어촌이었다. 이 지역에는 쓰나미가 400년 단위로 들이닥친 기록이 있다. 하지만 이번처럼 큰 피해를 입은 적은 없었다. 쓰나미 피해는 복구를 하면 된다. 하지만 방사능 유출로 생긴 주변의 우려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오오시마뿐만이 아니다. 방사능 물질이 바다로만 유출된 게 아니기 때문에 주변 축산이나 과수 농가도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일본 제2의 복숭아 산지인 후쿠시마에서는 복숭아 판매량이 급감했고 가격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동북 지역에서 생산되고 있는 쇠고기나 우유는 이미 일본인의 기피 품목 리스트에 올라 있다.

오오시마 사람들은 “방사능 자체에 대한 두려움도 크지만 정부를 믿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매번 안전하다고 강조해온 도쿄전력과 정부의 발표가 오염수의 바다 유출로 뒤집어지면서 불신의 골은 더 깊어만 가고 있다. 믿을 곳이 없다는 두려움은 오오시마를 더욱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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