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장씨 일가’ 손 떠날까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3.08.14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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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계열사 서울경제도 ‘새 주인’ 찾을 가능성 커

장재구 한국일보 회장이 결국 구속 기소됐다. 법원은 8월5일 실시된 영장실질심사에서 “주요 범죄 혐의에 관한 소명이 있고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장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검찰은 한국일보 사옥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개인 빚을 갚기 위해 회사에 200억원대 손해를 끼치고, 계열사인 서울경제신문 자금 130억원을 빼돌린 혐의로 장 회장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었다. 장 회장의 배임·횡령 의혹이 본격적인 사법 처리 수순에 접어든 것이다.

장 회장의 혐의가 유죄로 인정되면 한국미디어그룹의 주요 계열사에 대대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핵심 계열사인 한국일보·서울경제신문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장재구 회장이 한국일보 경영권을 상실한 후 서울경제신문의 거취가 주목된다. ⓒ 시사저널 이종현
창업주 가문의 경영권 인수 가능성 작아

한국일보의 경우 이미 8월1일 법원의 ‘재산보전처분’ 결정으로 장 회장의 경영권이 상실됐다. 서울경제신문의 경우 장 회장이 회사 자금 130억원을 횡령했다는 혐의가 사실로 드러나면, 최대 주주인 장 회장의 지분 12만주(지분율 36.9%)를 매각해 회수할 가능성이 크다. 2002년 이래 10여 년간 이어진 ‘장재구 체제’가 사실상 끝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일보와 서울경제신문의 ‘포스트 장재구’는 과연 누구일까. 우선 장씨 일가가 중심이 된 기존 경영진이 그룹의 경영권을 이어갈 수 있을지가 관심을 모은다. 한국일보의 한 고참급 기자는 “이상석 한국일보 부회장이 기존 경영진의 한 인사와 장씨 일가의 한 인물에게 ‘뒷일’을 부탁했다는 말이 있다”고 전했다. 서울경제신문 비상대책위원회는 8월9일 발표한 공보문에서 ‘지난 6일 오전 장 회장의 동생인 장재국 전 한국일보 회장이 서울경제 이사진을 불러 모았다고 한다. 서울경제의 주주도 경영진도 아닌 장재국 전 회장은 이후에도 서울경제 회장실에 앉아 수시로 임원진을 불러 회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창업주 고 장기영 전 회장의 아들인 장재국 전 회장이나 장재민 미주한국일보 회장이 새로운 사주가 될 가능성을 언급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일보 안팎에서는 창립 이후 60여 년간 이어진 ‘장씨 일가’의 그룹 경영이 종지부를 찍었다는 데 더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장재국 전 회장은 과거 회사를 경영난에 빠뜨리고 불법 해외 도박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한 한국일보 관계자는 “장 전 회장은 2001년 불명예 퇴진한 이후에도 140억원 상당의 회사 돈을 아직까지 갚지 않고 있다. 그가 경영하는 한 골프장도 현재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언론사를 인수할 만한 재정적인 여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재민 회장의 경우 미주한국일보의 지분을 매각해 그 돈으로 한국일보나 서울경제 인수를 추진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장 회장 역시 현재 막대한 부채가 있는 언론사들을 떠안을 만한 재정적인 여유가 있을지 의문이라는 반응이 많다.

한국일보와 서울경제신문 등 계열사 구성원들이 장씨 일가를 향해 품은 반감도 상당하다. 이들 회사는 IMF 외환위기 이후 줄곧 재정적 어려움에 시달려왔다. 창업주의 아들들은 약 15년에 달하는 오랜 기간 동안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다. 새로운 경영자가 등장해 분위기를 쇄신해야 한다는 내부 여론이 힘을 얻는 이유다. 서울경제신문 노조 관계자는 “서울경제신문은 엄연히 독립된 하나의 법인이다. 그럼에도 소유 지분도 없는 장재국 전 회장 등이 서울경제 사무실로 나오는 것에 대해 편집국 구성원들의 반감이 상당하다”고 전했다. 장씨 일가가 중심이 된 기존 경영진이 내부 구성원들로부터 얼마나 신망을 잃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단면이다.

과거 외부 투자자에 매각 추진한 적 있어

이 때문에 향후 한국일보와 서울경제신문의 새 경영주는 창업주 가문과 무관한 ‘제3의 인물’일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를 입증하는 구체적 정황이 있다. 2011년 말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한국일보와 서울경제신문은 이미 외부 투자자로의 매각이 차례로 추진된 바 있다. 장본인은 바로 장재구 회장 자신이었다.

지난 2011년 장재구 회장이 개인 빚을 갚기 위해 200억원 상당의 서울 중곡동 신사옥 우선매수청구권을 매각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명백한 배임 행위였다. 장 회장은 한국일보 구성원들의 분노를 ‘경영난 해소’ 약속으로 무마하려 했다. 그 일환으로 서울경제신문과 한국일보 매각을 차례로 추진했다는 것이다.

서울경제신문이 먼저 물망에 올랐다. 2011년 가을 무렵부터 매각이 추진됐다. 당시 3~4명의 투자자가 인수 의사를 보였다. 이 중 국내 한 경제지의 대주주인 최 아무개씨가 내건 조건이 가장 좋았다. 당시 350억원 상당의 부채를 떠안는 조건으로 170억원의 매수액을 제시했다고 한다. 이때 장재구 회장이 200억원 이상을 요구하면서 협상이 결렬됐다. 이로써 서울경제신문의 매각 시도도 무산됐다.

2012년 10월부터는 한국일보 매각이 추진됐다. 3곳에서 인수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그중 모든 부채를 떠안고도 괜찮은 조건을 제시한 투자자와 협상이 상당 부분 진행됐다. 그러다 올 2월에 장재구 회장이 돌연 매각을 거부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60년이라는 긴 역사를 가진 신문을 팔아넘긴 자식으로 남고 싶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고 한다. 하지만 서울경제신문과 한국일보 매각이 장재구 회장에 의해 잇따라 결렬되자, 한국일보 구성원들은 장재구 회장이 애초의 약속을 이행할 의지가 없다고 판단해 4월30일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한국일보 사태가 본격화되기 전에도 이미 한국일보와 서울경제신문 등 핵심 계열사의 매각 시도가 있었던 것이다. 당시 인수 의사를 보인 대상은 장씨 일가가 아닌 외부 투자자들이었다. 한국일보와 서울경제신문의 부채는 각각 700억원, 350억원으로 막대한 수준이다. 한국일보 비대위의 한 관계자는 “2011년 이후 이들 매체에 대한 매각을 시도할 때의 상황을 고려하면, 장재구 회장이 경영권을 잃게 된 후 자금 동원력이 뛰어난 투자자의 손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절망했다.

특히 서울경제신문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계열사들 중 그나마 수익 여건이 낫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장재구 회장이 경영권을 상실한 한국일보와는 달리 여전히 장 회장이 최대 주주로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서울경제 노조 관계자는 “상황에 따라 변수가 많을 것이다. 아직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하기 어렵다. 다만 구성원들은 2000년대 초반 이후 꼬일 대로 꼬인 회사의 자금 흐름 문제를 이번에 제대로 풀자는 데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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