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정권 실세 조준하는 CJ 수사
  • 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3.08.07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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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전군표 등 사법 처리…정·관계로 표적 이동

입구가 있으면 출구도 있는 법. 검찰의 비자금 수사도 이 명제를 따른다. 비자금이 어디서 얼마나 조성됐는지 그 입구부터 파헤친다. 그런 다음 비자금이 어디에 쓰였는지 출구를 찾는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성립한다. 출구를 통해 입구를 찾아가는 방식이다. 뇌물 수수 사건을 역추적하는 과정에서 뇌물 제공자의 비자금 저수지가 발견되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CJ그룹 비자금 의혹 수사는 입구에서 출구를 찾아가는 경우다. 이재현 회장이 수천억 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이 불거졌고, 결국 조세 포탈과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돼 7월1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검찰 수사에서 입구는 발견한 셈이다. 그렇다면 다음 수순은 그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 출구를 찾는 것이다.

ⓒ 시사저널 최준필·연합뉴스
검찰 안팎에서는 최근 “검찰이 이재현 회장을 기소하면서 CJ측과 정·관계 로비 리스트를 매개로 양형을 조율했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다시 말해, 검찰이 이 회장의 양형을 줄여주는 대신 정·관계 로비 리스트를 넘겨주도록 하는 협상을 벌였다는 것이다.

이것이 근거 없는 뜬소문이 아니라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이 회장이 기소될 당시만 해도 검찰은 “정·관계 로비 단서는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회장이 기소된 지 일주일 정도 경과한 7월 말부터 국세청 인사들이 줄줄이 사법 처리되고 있다. 그러면서 “검찰이 정·관계 로비 리스트를 확보한 것 아니냐”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검찰의 수사 속도도 빠르다. 검찰은 CJ 비자금 용처, 즉 출구 수사에 본격 돌입했다. 검찰 관계자는 “CJ그룹 수사는 오래전부터 준비해왔다”며 “수사 속도가 빠른 것도 이미 확보한 관련 자료와 진술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검찰과 CJ측의 양형 협상 여부에 대해서는 “그 부분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검찰과 이재현, 양형 놓고 협상 벌였나

검찰이 우선 정조준한 곳은 국세청이다. 검찰과 경찰은 2008~09년 국세청에 세 차례에 걸쳐 CJ그룹 세무조사를 요청했다. 하지만 국세청은 번번이 묵살했다. “국세청이 CJ의 로비에 넘어간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돈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역시 사실이었던 것일까. 검찰은 8월2일 전군표 전 국세청장에 대해 CJ그룹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전 전 청장이 국세청장으로 재직하던 2006년 여름, 이재현 회장에게 거액의 금품을 받은 혐의다. 당시 법인납세국장이던 허병익 전 국세청 차장도 구속됐다. 여기에 송광조 서울지방국세청장은 CJ로부터 골프와 향응 접대를 받은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8월1일 사의를 표명했다.

검찰의 ‘출구’ 수사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분석이다. 검찰은 CJ가 국세청뿐 아니라 경찰 등 권력기관에 전 방위 로비를 벌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회장이 그동안 번번이 수사망을 피해왔다는 점에서 CJ가 검찰을 상대로도 로비를 벌인 것이 아니냐”는 말도 들린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이명박(MB) 정권 실세들의 실명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재계에선 MB 정권에서 ‘잘나간 대기업’ 가운데 한 곳으로 CJ를 꼽는다. 2009년 CJ가 온미디어를 인수하면서 케이블TV 시장의 절대 강자로 떠올랐다. 당시 시장 독과점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았음에도 인수에 성공한 것을 놓고 “CJ의 로비가 통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CJ 내부 사정을 비교적 잘 아는 재계 인사는 기자와 만나 “당시 CJ가 온미디어를 인수하기 위해선 국회에서 법률을 개정해야 했다. 경찰 간부 출신인 CJ 임원이 국회를 드나들며 법률 개정 로비를 벌였다”며 “이 임원이 현재 검찰에 불려가 참고인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이 당시 불거졌던 CJ의 정치권 로비 의혹에 대해 수사를 벌이고 있는 사실이 처음 포착된 것이다.

온미디어 인수 당시 로비를 통해 방송통신위원회의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도 있다. MB의 오랜 측근인 유명 인사가 CJ의 미디어 사업 확장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줬다는 것이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6월25일 오전 서울 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이재현, 고려대 출신 MB 실세와 절친

이런 와중에 이재현 회장이 고려대 학연을 통해 이런저런 로비를 벌인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물론 현재까지 드러난 비위 사실은 없다. 그럼에도 이 회장의 고려대 학맥이 크게 주목받고 있다. 지금까지 이 회장은 고려대 출신인 MB의 친구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뿐 아니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곽승준 전 미래기획위원장 등 MB 정권 실세들과 자주 어울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천 회장과는 각별했다고 한다. 2008년엔 CJ그룹 자회사인 엠넷미디어가 세중나모여행 계열사인 세중디엠에스 주식 38만여 주를 37억원에 매입하기도 했다.

2008년 청부 살인 사건 수사 과정에서 이 회장의 수천억 원대 비자금이 드러났다. 이 회장이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라고 해명하고 1700억원의 세금을 자진 납부하면서 국세청 조사가 마무리됐다. 당시 국세청 안팎에서는 “천 회장이 한상률 국세청장에게 로비를 벌였다”는 소문이 돌았다. 2009년에는 CJ가 천 회장을 통해 세무조사 무마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리면서 흐지부지됐다.

CJ가 2007년 대선 직전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었던 ㄱ씨에게 수억 원의 대선 자금을 건넸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여권의 한 친박계 인사는 “이재현 회장과 고려대 동문인 ㄱ씨는 상당히 가깝다”며 “두 사람은 자주 술자리를 하면서 깊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라고 밝혔다. ㄱ씨는 MB 정부에서 핵심 브레인 역할을 했으며 현재도 왕성한 대외 활동을 벌이고 있다. <시사저널>은 ㄱ씨와 수차례 접촉을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ㄱ씨의 측근은 “(ㄱ씨가) 여름휴가를 간 것으로 안다”고만 전했다.

검찰 수사를 통해 현재까지 정치권, 특히 MB 정권 핵심 실세들의 비리 혐의가 확인된 것은 없다. CJ측 역시 “낭설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검찰 수사를 예단하기엔 아직 이르다. ‘CJ 비자금 수사’의 무게중심이 국세청을 신호탄으로 정·관계 인사들이 연루된 ‘게이트’로 옮겨가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CJ-MB 실세들’의 유착 관계가 드러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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