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는 못 속이나 봐요”
  • 안성찬│골프 전문기자 ()
  • 승인 2013.07.23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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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GA 2승 박희영, ‘스포츠 DNA’ 집안 출신

박세리(36·KDB산은금융그룹)와 박인비(25·KB금융그룹)에 이은 또 다른 박(Park), 박희영(26·하나금융그룹).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박희영이 인기를 끌고 있다. 2011년 11월 LPGA 투어 시즌 마지막 대회인 CME그룹 타이틀홀더스에서 95전96기로 첫 승을 이끌어냈던 그가 20개월 만에 매뉴라이프 파이낸셜 클래식(총 상금 130만 달러)에서 정상에 올랐다. 앤젤라 스탠퍼드(미국)와의 연장전 세 번째 홀에서 버디를 챙겨 극적으로 우승했다.

박희영은 7월15일(한국 시각) 캐나다 온타리오 주 워털루의 그레이사일로 골프 코스(파71, 6330야드)에서 벌어진 대회 최종일 경기에서 전날에 이어 보기 없이 버디만 6개를 낚아 합계 26언더파 258타(65-67-61-65)를 쳤다. 72홀 최저타 타이 기록이다. 우승 상금 19만5000달러를 보태 총 상금 47만7793달러로 이 부문 랭킹 13위에 올라 있다.

ⓒ AP연합
할아버지는 기계체조, 아버지는 체조선수 출신

박희영은 우승 직후 인터뷰에서 “강아지를 살 것 같다”고 말했다. LPGA 투어 첫 승을 한 후에는 “집을 사겠다”고 했다. 박희영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클럽을 잡았다. 한영외고에 재학 중이던 2003년부터 2년간 국가대표를 지냈다. 2004년 국내 투어 하이트컵에서 우승한 뒤 2005년 프로로 전향하고 3승을 따내 신인왕을 차지했다. 2007년, 드디어 그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퀄리파잉스쿨에서 3위를 차지하고 LPGA 투어에 진출했다.

국내에서 누리던 정상의 꿈은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최나연(26·SK텔레콤)·신지애(25·미래에셋) 등 국내 무대에서 우승을 다투던 동료이자 경쟁자들이 LPGA 투어에서 연착륙에 성공한 반면 박희영은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LPGA 투어 마지막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자신감을 가졌다. 지난해 우승 없이도 톱10에 다섯 차례 들면서 총 상금 42만7717달러를 챙겨 상금 랭킹 34위에 올랐다.

박희영은 “사실 이번 우승은 순전히 아버지 덕이 크다. 주니어시절 골프에 대한 조언을 많이 해 주셨는데 특히 파5홀에 대한 전략이다. 내 골프는 공격적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더하다. 파5홀에서는 무조건 2온(티샷과 세컨드 샷 등으로 2번 만에 그린에 볼을 올리는 것)을 요구하셨다”고 말했다. 박희영의 이런 강박관념은 때로 파5홀에서 혼란을 겪기도 했지만 이번 대회처럼 잘 풀리기도 했다. 물론 장타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만. 어쩌면 파5홀 2온 때무ㄴ에 장타를 치게 됐는지도 모른다.

박희영 집안은 전형적인 ‘스포츠 DNA’ 가족이다. 기계체조(링)선수 출신으로 서울대 체육과 교수를 거쳐 동아대 학장, 대학원장을 지낸 할아버지 박길준씨(85)는 한양CC 클럽챔피언을 지낸 ‘아마 고수’였다. 박희영에게 골프를 권유한 아버지 박형섭 대림대 사회체육학과 교수(52)는 부친과 동문인 서울대 출신으로 테니스선수를 지냈고, 어머니 한경숙씨(52)의 운동신경도 남다르다.

박희영이 골프를 한 것은 아버지의 강요(?)였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11살 때던 겨울. 경기도 성남의 남서울골프연습장에 데리고 가서 “골프선수를 해” 그게 전부였다. 똑딱이 볼을 치다가 3주 후에 전지훈련을 갔다. 그런데 그곳에는 9홀을 돌았다. 골프 코스 외에 수영장도 있었고, 바비큐도 먹고 노는 것이 즐거웠다. 이것이 골프와 인연을 맺은 것이다. 훈련을 갖다 와서 ‘골프 계속할 거야?’라는 아버지의 물음에 ‘골프를 하면 재미난 것들이 많을 것 같아’서 골프를 하겠다고 했다.

중2 때 클럽을 잡은 동생 박주영(23·호반건설)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선수로 기대주다. 특히 언니의 영향 탓인지 올 시즌 우리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 출전 선수를 대상으로 진행한 캘러웨이 장타대회에서 페어웨이 우드로 무려 274.5야드를 날려 장타왕에 올랐다. 박주영의 장타는 그가 멀리뛰기 선수로 활약하면서 몸에 체득한 순발력이 큰 작용을 한 것으로 보인다. 장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순간 이동’이 뛰어나다는 얘기다.

박희영 선수 가족사진. ⓒ JNA 정진직 포토 제공
할아버지에게 기본 스윙 배워

할아버지에게 기본 스윙을 배운 박희영은 가족들이 모일 때면 자연스럽게 골프 이야기를 자주 나눈다. 특히 박희영의 첫 승 때 동생의 조언이 컸다고 한다. 타이틀 홀더스 2라운드가 끝나고 나서 박주영은 박희영에게 “언니는 골프 치면서 무슨 생각해?”라는 질문을 던졌다. 박희영은 “나는 루틴을 생각하고, 지키려고 하거나 타깃을 놓치지 않으려고 신경을 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주영은 “그 말은 정답이 아니야. 어떻게든 볼을 홀에 넣으면 되는 거 아냐?”라고 반문하며 “복잡하게 딴생각 말고 홀에 넣는다는 생각만 해”라고 조언했다. 이것은 박희영의 머리를 단순하게 만들었고 그는 결국 4년 만에 그리던 LPGA의 우승컵을 안았다.

박희영은 바이올린과 재즈 피아노를 잘 연주한다. 이것은 스윙할 때 리듬감을 잘 살려준다. 그림 실력도 수준급이다. 성격은 아버지를 빼다 박았다. 사람 좋아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깊다. “아직 우승이 없는 주영이에게도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주문하며 동생에 대한 끈끈한 애정을 보이는 박희영. 그의 다음 목표는 메이저 대회 우승이다.

‘골프의 전설’ 아널드 파머(84·미국)가 이번 대회에서 우승한 박희영에게 격려 편지를 보낸 것도 이례적이다. 현지 시각으로 15일에 작성된 이 메시지에서 아널드 파머는 “우승을 축하한다. 세 홀 연장이라는 고생 끝에 우승을 차지했다. 계속해서 좋은 플레이를 해주길 바란다”라고 축하를 건넸다. 그가 상업적인 이해관계 없이 개별 선수의 우승 소식에 직접적인 관심을 표하고 격려를 보낸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 JNA 정진직 포토 제공
‘평균 드라이버 비거리 265야드, 마음 놓고 치면 300야드까지.’ 박희영의 스윙은 깔끔하다. 그러면서도 장타를 친다. 볼을 스윙으로만 치는 정통 스타일이다. 이번 매뉴라이프 파이낸셜 대회 최종일 연장전에서도 파5인 18홀에서 우드만 2번 쳐서 투 온(Tow on)을 하고 우승했다.

169cm, 58kg의 ‘8등신’ 박희영은 탄탄한 하체 근력과 견고한 스윙에서 장타를 낸다. 박희영은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스윙 동작이 자연스럽게 아름다움을 나타내며 거리를 압도한다.

박희영은 국내 상위 랭커 5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스윙이 좋은 선수’로 꼽힌 바 있다. 그의 스윙에 대해 “자세가 견고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어드레스가 안정적이고 기본이 잘돼 있다”고 평가했다.

설정덕 박사(중앙대 스포츠과학부 교수)는 “박희영은 스윙 밸런스가 뛰어나다. 임팩트 때 힘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완벽에 가까운 스윙”이라고 말했다.

어드레스 그의 어드레스는 ‘스틸 로봇’처럼 강인한 느낌을 준다. 그립은 샷의 정확성을 위해 스퀘어 그립에 가깝지만 장타를 위한 스트롱 그립을 하고 있다. ‘Y자’형의 어드레스를 취한다. 오른쪽 어깨는 조금 낮추고 있다. 스탠스는 좀 더 강력한 코일링을 위해 어깨보다 보폭이 약간 넓다. 다운스윙 동작에서 히프 이동을 쉽게 하기 위해 왼쪽 발끝을 약간 바깥쪽으로 오픈시켰다. 머리는 볼 뒤쪽에 놓여 있다. 양팔은 어깨와 삼각형을 이룬다. 볼은 중앙보다 왼발 쪽에 더 가깝게 놓고 어드레스한다.

테이크백 클럽헤드는 최대한 낮게 지면을 따라간다. 클럽과 동시에 어깨 회전이 일어난다. 이때 발에 무게중심을 두고 스탠스는 전혀 변화가 없다. 왼팔은 마치 대나무처럼 경직될 정도로 길고 곧게 뻗어주고 있다.

백스윙 허리 높이에서 코킹이 이루어진다. 이때 왼발 무릎을 미세할 정도로 살짝 구부린다. 체중은 대부분 오른쪽으로 이동해 있다. 무릎을 견고하게 유지하는 것이 돋보인다.

톱스윙 근력과 유연성이 돋보인다. 강력한 파워 축적의 원천인 어깨는 120도, 히프는 30도 회전하며 이상적인 톱스윙을 보이고 있다. 타이거 우즈가 전성기 때 이처럼 완벽한 톱스윙을 보여줬다. 상체의 코일링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왼쪽 무릎은 오른쪽으로 구부리고 오른쪽 다리는 단단하고 곧게 지탱하며 몸의 균형을 잘 잡아주고 있다. 샤프트는 지면과 평행이 되기 전에 멈춘다.

다운스윙 오른쪽 팔이 옆구리에 붙어서 내려온다. 이때 왼쪽 다리는 벽을 만들고 오른쪽 발은 목표 방향으로 약간 밀어주듯 움직이고 있다. 다운스윙을 시작할 때 이미 대다수 프로가 왼쪽 무릎을 목표 방향으로 틀어주는 것과 달리 여전히 일직선을 유지하고 있다. 오히려 몸을 오른쪽으로 더 기울이며 다운스윙을 유지한다. 이는 나름대로 스윙 균형을 유지하면서 최대한 스피드를 이끌어내 거리를 내기 위한 동작이다. 코킹은 헤드가 지면에 거의 닿기 직전까지 유지한다.

임팩트 머리는 어드레스 자세 때보다 더 오른쪽으로 이동돼 있고 몸은 자세를 낮추고 있다. 여전히 왼쪽 다리는 일직선을 유지하며 밸런스를 잡아주고 있다. 특히 스윙 축이 어드레스부터 여전히 흔들리지 않고 견고한 것이 특징이다.

폴로스루 폴로스루가 일품이다. 머리는 뒤에 남겨져 있다. 오른발 뒤꿈치가 자연스럽게 들리면서 발 앞쪽에 체중이 실려 목표 방향으로 향한다. 두 팔은 삼각형을 유지하면서 쭉 뻗어준다. 왼쪽 히프는 목표 방향으로 턴을 하고 있으며 왼팔과 오른팔은 정확히 로테이션되고 있다. 이것이 파워를 내고 거리를 더 나게 해준다.

피니시 왼쪽이 완벽하게 벽을 만들어주고 있다. 클럽헤드가 지면을 향하다가 양팔이 왼쪽으로 돌면서 목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샤프트가 지면과 약간 평행을 이루는 데서 파워를 끝까지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피니시가 장타를 내는 것과 직접적인 상관은 없지만 피니시가 좋으면 방향성과 거리를 더 낸다는 교과서적인 스윙을 보여주고 있다. 오른발과 왼발은 직각을 이루면서 빈틈없는 피니시를 보여주고 있다. 피니시가 이루어졌는데도 두 손은 그립을 견고하게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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