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강천하’ 구멍 뚫렸다
  • 하재근│문화평론가 ()
  • 승인 2013.07.17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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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석·강호동 출연 프로 인기 시들 시청자는 더 강한 자극 원해

유재석·강호동의 아성은 마치 ‘철갑을 두른 듯’ 공고해 보였다. ‘유강천하’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유재석과 강호동이 예능계의 절대적인 투톱이라는 뜻이다. 한때 두 사람은 각각 네 개의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한 주간의 화제를 양분했다. 예능에선 ‘유라인’과 ‘강라인’이 최고의 인맥으로 떠올랐다.

두 사람의 위상은 단지 예능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지금은 사상 초유의 예능 전성시대다. 예능이 다른 일반 방송 장르들 위에 군림하는 최종 장르가 됐다. 두 사람은 그런 최종 장르를 주도하는 양대 산맥이었으니 한국 대중문화계의 투톱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다. 유재석과 강호동은 연예인조차 동경하는 연예인들의 연예인이 됐다.

절대적인 인기를 누려온 ‘국민 MC’ 유재석(왼쪽.ⓒ KBS 제공)과 강호동이 진행하는프로그램들의 시청률이 크게 하락했다. ⓒ SBS 제공
무엇이 ‘유강천하’를 만들었나

이른바 유빠 군단, 강빠 군단이 형성돼 주말만 되면 인터넷에서 전쟁을 펼쳤다. 유빠와 강빠 사이의 전쟁은 최근 몇 년간 인터넷에서 나타난 대규모 현상 중 가장 오랫동안 지속됐다. 다른 신드롬은 일정 기간 달아올랐다가 이내 시들었지만 유재석·강호동 신드롬은 시들 줄을 몰랐다. 그 엄청난 영향력과 절대적인 인기 때문에 이들은 ‘국민 MC’로 불렸다. 그렇게 공고했던 유강천하가 2013년에, 마침내 무너졌다.

한때 유재석은 재기발랄한 MC들 중 한 명이었을 뿐이다. 강호동 또한 연예인 짝짓기 프로그램 이외엔 MC로서 그렇게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들보다는 신동엽·남희석·김용만처럼 스튜디오에서 안정된 입담을 선보이는 MC들이 더 돋보였다. 번뜩이는 재치로 중무장한 탁재훈도 각광받았다.

예능의 무대가 스튜디오 밖으로 확장되면서 이 구도에 천지개벽이 일어난다. 이른바 리얼버라이어티의 등장이다. 리얼버라이어티는 스튜디오에서 안정된 토크를 하는 것도 아니고, 한 사람이 재치 있는 입담을 뽐낼 만한 여유도 없는 형식이다. 7~8명의 출연자가 나와 일제히 떠들고, 서로 싸우는 혼돈의 무대. 여기는 대본에 의한 약속된 진행이 없고 우연과 돌발이 난무하는 리얼리티의 장이다. 리얼리티는 기존 프로그램에선 느끼기 힘들었던 생생한 재미를 줬다.

유재석이 <무한도전>을 통해 리얼버라이어티의 맹주로 떠올랐다. 그는 여러 명의 출연자들을 조율해 상황을 이끌어가는 데 탁월한 능력을 선보였다. 곧이어 강호동이 <1박2일>로 그 뒤를 이었다. 강호동은 아무리 혼란한 상황이라도 한순간에 정리해버리는 카리스마로 리얼버라이어티 세계의 또 다른 제왕이 됐다.

리얼버라이어티는 엄청난 체력을 요구하는 생고생의 연속이었다. 스튜디오에 앉아서 몇 시간 정도 떠들면 되는 일반 예능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무한도전>과 <1박2일>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입수나 야외 취침, 적나라한 민낯 촬영 등의 강도를 높여갔다. 이렇게 강렬한 자극으로 인해 이후 시청자들은 밋밋한 프로그램을 보기가 힘들어졌다. 리얼버라이어티는 막말, 독설, 폭로 등으로 자극성을 더했다.

리얼버라이어티는 동시에 우애와 인간미를 느끼게 했다. 여러 출연자들이 마치 형제처럼, 가족처럼 서로와 정을 나누는 모습이 시청자에게 위안을 주었다. 유재석과 강호동은 이런 인간미를 느끼게 하는 리더십으로도 명성이 높았다.

세상은 참 공교롭다. 제왕으로 군림했던 ‘유강’이 다른 특급 MC가 아닌 일반인 혹은 그에 준하는 초짜 예능인에게 무너질 줄 누가 알았으랴! 올해 최고의 예능으로 떠오른 건 <아빠! 어디가?>와 <진짜 사나이>인데, 여기에선 여덟 살 정도 되는 아이들과 샘 해밍턴이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리얼버라이어티 전성시대, 유강천하를 가능케 했던 바로 그 이유들이 유강천하를 무너뜨렸다. 바로 리얼리티다. 시청자는 더 강한 리얼리티, 더 생생한 재미를 요구했다. 그러자 이젠 굳이 스타 MC가 필요하지 않게 됐다. <아빠! 어디가?> <진짜 사나이> <정글의 법칙>엔 MC가 아예 없다. 그저 리얼한 상황만 있을 뿐이다.

‘스타’ 없이도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위)와 . ⓒ MBC 제공
신종 리얼버라이어티들의 득세

이 신종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들은 기존의 그것보다 훨씬 강한 생고생으로 중무장했다. <1박2일>처럼 국내 여행을 다니며 한 끼 정도 굶고 하룻밤 텐트에서 취침하는 수준이 아니다. <정글의 법칙>은 오지에서 여러 날을 보내며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진짜 사나이>는 유격훈련까지 시킨다. 직설화법이나 적나라한 민낯 촬영도 점점 도를 더해간다. 기존엔 화를 내는 척하는 상황극이 나왔다면 요즘엔 정말로 화를 내는 장면까지 나온다. 강호동의 <맨발의 친구들>은 나름으로 고생했지만, 최근 리얼 흐름엔 비할 바가 아니어서 연예인 관광이냐는 핀잔까지 들었다.

우애·인간미 등을 통한 위안에서도 요즘 리얼 프로그램이 더 강하다. 출연자들을 극단적인 상황 속에 몰아넣어 더욱 진한 동료애를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아빠! 어디가?>의 경우에는 아이들의 존재 자체가 극단적으로 리얼하고(아이들은 꾸밀 줄을 모르니까), 아이와 아빠의 상호 작용에서 진실한 인간미가 느껴졌다.

결국 대중의 리얼리티 선호가 유강천하를 만들기도 하고, 나중엔 해체까지 시킨 셈이다. 대중은 지금 더욱 강한 리얼리티, 더욱 강한 생고생, 더욱 강한 인간미를 원하고 있다. 이런 트렌드는 찬사를 받는다. 사람들이 원하는 건 ‘강렬함’이다. 강한 감동, 강한 재미, 한마디로 강한 자극을 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극단적인 상황으로 출연자들을 몰아넣고 일반적인 상황에선 드러나지 않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려 한다. 아니면 그냥 존재 자체로 극단적 순수인 아이들을 보거나. 이렇게 극단적인 설정이 주는 자극적인 재미에 익숙해지면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될 것이다.

리얼리티의 전성기는 코미디 몰락의 역사이기도 하다. 유강천하와 코미디 몰락이 함께 왔다. 리얼리티의 생생한 자극에 길들여지면 대본 콩트에 집중하기가 힘들어지게 된다. 이것은 대중문화계의 창작 역량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날 음식만 먹는 곳에서 음식 문화가 발달할 수는 없는 법이다. 돌발 사태가 난무하는 실제 상황이 웬만한 창작 콩트보다 훨씬 재밌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지금처럼 리얼리티 쪽으로만 집중되는 것도 곤란하다. 유강천하마저 무너뜨린 리얼리티 전성시대의 그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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