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와 분노의 사회
  • 현택수 |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
  • 승인 2013.07.02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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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희망을 갖지 못하고 무시당하고 좌절당할 때, 국민은 불행하고 외로움을 느낀다. 이런 감정이 밖으로 표출되면 분노가 되고, 참으면 우울해진다. 이러한 상태라면 전 국민이 심리 치료나 세로토닌 약물 주사를 맞아야 할지 모른다.

 

우리 사회는 분노에 차 있다. 사생활과 개인적 일상생활에 관련된 개인적 분노 이외에도 사회생활과 관련된 사회적 분노가 일상화되어 있다. 갑을(甲乙) 문화에 분노하고, 국정원 댓글에 분노하고, NLL 대화록에 분노하고 있다. 정치 진영과 이념에 따라 쌓인 증오가 폭발해 증오의 정치로 상대를 공격한다. 조세피난처 명단에 분노하고, 재벌그룹 회장의 탈세·횡령에 분노하는 것은 부패한 부자에 대한 보편적 증오심의 표현이다. 미성년자, 장애인 성폭력에 대한 분노도 보편적이다.

공정성의 최후 보루인 법에 대한 분노도 크다. ‘여대생 청부살인 사모님’의 유전무죄 무전유죄 법 집행에 분노하고, 법원의 전관예우에도 분노한다. 논문 표절 교수를 두둔하거나 솜방망이 징계를 하는 대학 사회와 학회에 대한 분노는,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운 감정과 같다. 우리의 사회적 분노는 <도가니> <부러진 화살> <노리개> <분노의 윤리학> 같은 영화로 표출되기도 한다.

사회적 분노는 부자, 지식인, 권력자, 위정자들이 자신들의 편의와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어가는 정의롭지 못한 위선 사회에 대한 것이다. 사회적 분노는 정의롭지 못한 것, 불평등한 것, 비도덕적인 것에 대한 부정적이고 저항적인 감정이다. 보편적 가치와 욕구가 지배층과 기득권자들에 의해 부당하게 저지되고 무시당할 때 분노의 감정은 폭발한다. 그 분노는 종종 공격적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우리의 법과 제도는 사회적 갈등 완화에 효과적인 장치가 되지 못하고 있다. 빈부 차이가 심한 양극화 사회, 소통과 타협이 부족하고 불신하는 사회, 약육강식의 정글 사회에서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정의 실현과 국민 행복감은 요원하다. 꿈과 희망을 갖지 못한 채 무시당하고 좌절할 때, 국민은 불행하고 외로움을 느낀다. 이런 감정이 밖으로 표출되면 분노가 되고 참으면 우울해진다. 이러한 상태라면 전 국민이 심리 치료나 세로토닌 약물 주사를 맞아야 할지 모른다.

현택수 파리 소르본느 대학교 대학원 사회학 박사 전 한국방송개발원 선임 연구원 한국사회문제연구원장고려대 사회학과교수
우리 사회의 기존 소통 방법과 법·제도로는 사회적 분노를 치유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단체 시국선언, 집단 서명운동과 촛불 시위, 1인 릴레이 시위 등 법과 제도에 없는 집단행동이 나타나고 있는 이유다. 프랑스 레스탕스 운동가인 스테판 에셀이 우리 시민에게 방관하지 말고 분노를 행동으로 보여주라고 무덤 속에서 선동이라도 한 것처럼.

우는 아이에게 젖 준다는 속담처럼, 과연 시민이 분노해 집단행동을 하면 그에 따른 대가로 뭔가를 얻을 수 있고, 또 우리 사회가 제대로 변화할까. 그것마저 불확실한 우울한 사회라서 또다시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그러나 이 분노도 일시적이리라. 흔히 우리네 국민성을 냄비 근성이라며 스스로 자조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이 또한 한편으로 보면 얼마나 다행인가. 분노의 감정이 오래 지속되면 전 국민이 화병이 생겨 죽을 수도 있으니, 그저 끓다가 식기만을 바랄 뿐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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