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창성 사라진 자리, 돈이 끼어들다
  • 정준모│문화비평가·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 승인 2013.07.02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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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비엔날레, 88개국 50여 개 특별전…상업성 두드러져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상이 혼란스럽던 1955년 이탈리아계 미국 작가 마리노 아우리티(Marino Auriti, 1891~1980)는 세상의 모든 지식을 한자리에 모은 상상의 박물관을 만들 계획을 세운다. 136층짜리 건물에 인간이 발견하고 고안해낸, 인간 역사를 지탱해온 모든 지식을 모아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 거대한 계획은 미완으로 끝나고 만다.

약 50년 후인 2009년 광주비엔날레를 통해 연습 게임을 한 마시밀리아노 지오니(Massimiliano Gioni, 1973~)가 베니스비엔날레를 통해 완성을 시도했지만 여전히 미완으로 남고 말았다. 늘 그렇지만 올해 베니스비엔날레는 카스텔로 공원의 26개 국가관에 28개국, 옛 군함 정비창인 아르세날레에 24개국, 베니스 시내에 36개국 등 총 88개국이 참가하고 50개의 전시가 특별전 형태로 열려 최대의 전시로 치러졌다. 여기에 교황청까지 국가로 참여하면서 이목을 집중시켰다. 예술감독이 정한 ‘백과사전식 전당’이라는 주제의 특별전은 역사적인 유물을 비롯해 광물의 표본과 삽화, 개인적인 사진 등은 물론, 미술 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아마추어 작가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절대지식에 대한 탐구를 시도했다.

① 특별전에 출품된 파월 알타메르의 ‘베네치아인 ‘ ② 볼리비아?Sonia Falcone의 ‘Colour field’ (설치) ③ 특별전에 출품된 올리버 크로이와 올리버 에슬러의 작품 ‘피터 프리츠의 387개의 집’ ④ 독일관 아이웨이웨이의 작품 ‘Bang’, 둥근 삼발이 의자 886개를 쌓아 만들었다. ⑤ 네덜란드 작가 마크 맨더스의 작품 ‘Working Table’
체계적 전시에 한계 드러내

그러나 언제나 양이 넘치면 산만해지기 쉬운 법. 다양한 지식의 양태는 보여줬는지 모르지만 도대체 계통이 서 있지 않다. 모아서 늘어놓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것을 체계적으로 전시하고 보여주는 데는 일정한 한계를 드러냈다. 사실 시대를 관통하면서 다양한 예술의 양태가 등장하고 소멸했지만 그들 나름대로 시대적 필연성이 있고 존재의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 들어 미시사·생활사적인 관심이 큐레이팅의 중심에 자리하면서 이번 전시의 독창성은 식상해졌다. 그런 점에서 특별전 중간에 사진작가 신디 셔면(Cindy Sherman)이 조직한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채집한(?) 사진을 비롯한 이미지가 좀 더 주제에 다가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은 잊었다가도 필요하면 다시 꺼내 볼 수 있는 지식 보존 방법을 강구해왔다. 하지만 그 지식이라는 것이 어느 시대나 지역에서 똑같은 효력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프라다 파운데이션에서 열린 미술사에서 획기적인 전시로 기록되는 ‘태도가 형식이 될 때(when attitudes become form)’의 재현은 전시라는 시스템을 통한 기억의 재생이라는 측면에서 흥미로웠다. 1969년 베른 쿤스트할레에서 하랄드 제만(Harald Szeemann, 1933~2005)에 의해 만들어진 이 전시는 과정을 예술로 만들어버린 획기적인 전시였다. 사실 이 전시회를 볼 수 있었다는 것은 행운이었다.

자국 문화 수준과 현대라는 시대성에 충실

다시 눈길을 돌려, 본 전시로 돌아가 보자. 과학 특유의 지식, 예술가의 백일몽과 이를 근거로 한 발명과 혼돈으로 가득한 전시장은 지식의 범람을 보여주었다. 그동안 국가 간 정치적 파워게임이라는 비난을 의식한 듯 독일의 큐레이터 우도 키틀만은 러시아의 큐레이터를 맡아 그간의 침울하고 조금은 어두웠던 러시아관을 유머와 풍자로 꾸미고 다나에란 작품을 출품한 바딤 자하로프(Vadim Zakharov)를 내세웠다. 특히 프랑스와 독일은 우호조약 체결 50주년을 맞아 서로의 국가관을 바꿔 사용했다. 독일관은 자국 작가가 아닌 중국의 아이웨이웨이(Ai Weiwei)와 남아프리카의 산투 모포켕(Santu Mofokeng), 프랑스의 로말드 카마카르(Romuald Karmakar), 인도의 다야니타 싱흐(Dayanita Singh) 등을 자국 작가로 선정해서 경계를 넘어 세계를 지향한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프랑스는 알바니아 출신의 안리 살라(Anri Sala), 미국은 중국계 여성 작가 사라 제(Sarah Sze)를 선정했다. 국가주의를 넘어서려는 탈정치 제스처에도 각국의 전시장은 모두 자국의 문화 수준과 현대라는 시대성에 충실하게 적응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모두가 자신의 존재를 부르짖듯 비디오, 설치 사진 등의 이미지가 범람하는 비엔날레를 걸어나오면서 과연 현대미술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게다가 연이어 열린 바젤 아트페어에서 베니스에 참가한 작가의 작품이 바로 거래되는 모습에서 베니스의 상업화 또는 상업 자본의 베니스비엔날레 점령이라는 걱정이 이어졌다. 물론 베니스에 출품하는 작가의 작품 제작을 위한 자금 마련, 후원 등을 상업 화랑이 전담하면서 생기는 불가피한 현상이다. 그래도 예년에는 대놓고 상업성을 드러내지는 않았던 반면, 올해엔 이런 점이 두드러졌다는 점도 향후 비엔날레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 고민해볼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한국관의 김수자는 한국관 전체를 작품으로 만든다는 발상의 전환도 신선하지만 2006년 마드리드의 유리 궁전(the Crystal Palace)에서 작업했던 ‘호흡: 거울 여인(To Breathe: A Mirror Woman)’의 새로운 버전으로 시끄럽고 번잡스러운 현대미술의 홍수 속에서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위로할 수 있는 치유 또는 힐링의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독창적이었다. 사실 이런 호흡은 큐레이터 김승덕과 작가 김수자의 오랜 기간 협업과 교유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옛 어른들이 궁합이란 것을 보았던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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