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류, 대륙을 뒤흔들다
  • 이형석│헤럴드경제 기자 ()
  • 승인 2013.07.02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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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합작 <이별계약>, 중국 로맨스 영화 최고 기록 세워

탈세와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은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소환을 앞둔 6월16일 서울 상암동 CJ E&M센터에서 중국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 차이푸차오 총국장과 비공식 회동을 가졌다. 이 회장이 CJ그룹 비자금 사태가 터진 이후 대외 유력 인사와 접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은 중국의 TV방송·영화·광고 등 영상과 미디어를 총괄하는 곳이다. 차이푸차오 총국장은 중국 내 문화 산업과 정책을 이끄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거물급 인사다. 이번이 처음인 그의 한국 방문 주목적은 6월16일부터 20일까지 서울 CGV여의도와 부산CGV센텀시티에서 열린 제6회 중국영화제 참석이다. 차이푸차오 총국장은 이 행사에서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장관과 만났고 한중 양국 간 영화공동제작협정문에 가서명했다.

CJ E&M은 이에 맞춰 한중 합작영화로는 중국에서 역대 최고 흥행 성적을 거둔 <이별계약>의 성과를 대대적으로 알리는 한편, 새 영화인 대작 SF액션 <권법>의 양국 공동 제작 계획을 발표했다. 최근 일련의 상황들은 한중 협력이 양국 간 문화 산업에서 얼마나 중요한 현안인지 잘 보여준다.

6월20일 서울 여의도 CGV에서 열린 ‘2013 CJ 중국영화제’ 폐막작 기자회견장에서 강석희 CJ E&M 대표, 오기환 감독, 바이바이허, 펑위옌(왼쪽부터)이 한자리에 섰다. ⓒ CJ E&M 제공
중국 영화 시장, 일본 제치고 세계 2위

한국 영화(K무비)와 한국 대중음악(K팝) 등 한류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중국 시장에 대한 열망을 ‘연료’로 하고 현지화와 공동 제작이라는 전략을 업그레이드된 엔진으로 장착하고, ‘기회의 땅’을 향해 시동을 걸었다. 그 배경은 세계 대중문화 산업의 엘도라도로 떠오른 중국 시장의 가파른 성장세다.

특히 중국 영화 시장이 놀랍다. 2010년 총매출 100억 위안 고지를 넘어섰고, 2011년 131억 위안, 2012년 170억 위안(27억 달러, 3조1000억원)을 기록했다. 매해 전년 대비 30%를 넘는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미국영화협회(MPAA)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영화 시장 매출 규모는 처음으로 일본을 제치고 미국(97억 달러)에 이어 세계 2위를 기록했다. 지난 4월까지 중국 내 극장 매출은 52억 위안을 돌파해 올해 최초로 200억 위안을 넘어설 전망이다. 3년 만에 영화 시장 규모가 두 배로 큰 것이다.

중국 영화 시장의 눈부신 성장은 새로운 시장을 향한 세계 각국 영화계의 열망을 키웠다. 1990년대 말부터 현지법인 설립과 극장 설립 등으로 대륙에 대한 공세를 시작했던 할리우드가 선두에 있다.

지난해 4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와 법무부가 중국 영화계에 대한 거액의 뇌물 공여 혐의로 할리우드의 주요 영화사를 조사한다고 발표한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뿐 아니라 중국 최고 흥행 기록을 가지고 있는 <아바타>의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3D 영상기술 회사 페이스 그룹을 현지 합작 법인으로 설립한 것에서 보듯, 미국 영화 산업의 중국 공세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서구 문화 침투를 우려하는 중국 정부의 우려와 검열로 상징되는 문화적 장벽, 외화 수입 제한 제도(스크린쿼터), 까다로운 투자·합작 규정 등은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할리우드만큼이나 대륙에 눈독을 들여온 한국 영화계는 지리적 이점뿐 아니라 서구와는 다른 문화적 근친성, 몇 년간 계속돼온 한류의 동력을 발판 삼아 중국 진출 및 교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중 합작영화 <이별계약>은 한국 개봉(6월20일)에 앞서 4월12일 중국 극장에서 먼저 걸려 역대 중국 로맨스 영화 중 개봉일 관객 최고 기록을 갱신하며 첫 주말 흥행 순위 1위에 올랐다.

이 영화가 중국에서 벌어들인 1억9190만 위안(약 350억원)의 흥행 수입은 <디 워>의 2960만 위안은 물론이고, 중국 영화 자격으로 개봉한 양국 간 합작영화인 청룽·김희선 주연의 <신화>(9100만 위안), 류더화·안성기 주연의 <묵공>(6700만 위안)을 훌쩍 뛰어넘는 한국 영화 역대 최고 흥행 기록이다.

<이별계약>은 한국 영화사 CJ E&M이 기획·개발했고 <선물> <작업의 정석>의 오기환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중국 배우 바이바이허와 펑위옌이 주연한 로맨스 멜로영화다. 중국에선 최대 국영 배급사인 차이나필름그룹(CFG)이 배급을 맡았고, 총 제작비는 한국과 중국이 절반씩 투자했다.

자본·배우·제작진·기술 전면적 결합

<이별계약>과 함께 한중 영화 교류사에서 올해 또 하나 획을 그을 작품으로 꼽히는 것은 김용화 감독의 3D 영화 <미스터 고>다. 이 영화는 배급 및 마케팅 비용을 뺀 순제작비만 225억원이 투입된 대작으로, 한국의 투자배급사인 쇼박스가 중국의 메이저 영화사인 화이브라더스로부터 500만 달러를 투자받아 한중 공동으로 제작했다. 오는 7월17일 한국에서 개봉하며, 이튿날부터는 중국 스크린 5000개 이상에서 상영된다.

한국 영화는 1998년 <결혼이야기>를 필두로 중국에 수출·개봉되기 시작했고, 2000년대 들어서는 한류 조성 및 한국 영화의 성장과 더불어 중국과의 교류 및 합작이 다양한 방식을 실험하며 몇 단계를 밟아왔다. 그 초보적인 형태는 <무사> <비천무> 같이 한국 영화가 중국에서 촬영하거나 양국의 배우들을 함께 기용하는 방식이었다. 이어 아시아에서 인지도가 높은 한류 스타의 중국 영화 출연이나 한국 감독의 중국 영화 연출로 이어졌다.

한 발짝 더 나아가 장르와 소재가 다양한 한국 영화계의 기획 개발 능력과 중국의 자본 및 프로덕션을 결합하는 방식도 몇 차례 시도됐다. 2009년 소지섭·장쯔이가 출연한 <소피의 연애 매뉴얼>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양국 자본·배우·제작진·기술이 전면적으로 만나는 공동 투자와 제작이 보편화되고 있다.

한국 영화계의 ‘공동 제작’과 방송·가요·공연의 현지화 전략은 중국 진출의 가장 큰 난제인 문화·제도·경제적 장벽을 돌파할 수 있는 대안으로 꼽힌다. 이러한 한국 대중문화 산업의 중국 진출 전략은 양국의 문화적 정체성과 자존심을 살리면서, 할리우드와의 경쟁에서 자국의 문화 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양국 공통의 이익을 만족시킬 수 있는 ‘윈윈 게임’이다.


뮤지컬·공연도 한류 붐 매섭다 


한류의 초반 원동력이 된 방송과 가요에서도 현지화를 기치로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난다. 최근엔 뮤지컬을 비롯한 공연계의 한류도 주목할 만하다. 일찌감치 ‘한류의 미래는 현지화’라는 지론을 펼쳐온 이수만 회장의 SM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 5월 중국 현지법인인 SM베이징을 설립했다.

중국계 멤버를 발탁해 ‘슈퍼주니어’와 f(x)에 합류시킨 SM은 새로운 12인조 한중 혼성 그룹 ‘엑소’의 활동에 힘을 쏟고 있다. 롯데그룹은 중국에서의 브랜드 마케팅 일환으로 현지에서 멤버를 발탁해 한국인과 구성한 5인조 걸그룹 ‘롯데걸스’를 지난 2011년 창단했다.

CJ E&M은 공연 사업 분야에서 중국 현지 회사들과 야저우렌창문화발전유한공사라는 조인트 벤처를 설립해 뮤지컬 제작에 뛰어들었다. 그 첫 작품이 국내에서 흥행에 성공한 뮤지컬 <김종욱 찾기>의 중국 라이선스 공연 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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