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 내시경 검사 안 하고 암 잡아낸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3.06.18 13:2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진단 키트로 간편하게 확인…용종 막는 약물 연구 활발

대장암 권위자 박재갑 서울대병원 외과 교수는 2008년 “현재 대장암 발생률은 10% 내외인데 5~10년 이내에 15~20%로 올라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생각보다 일찍 현실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가 2012년 조사한 바로는 대장암 발생률이 15.2%(2010년 남성 기준)로 상승했다. 대장암은 2000년 암 발생 순위 중 4위였고 2005년에 2위로 오르더니 현재까지 위암에 이어 국내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암으로 자리 잡았다. 대장암에 의한 사망자 수도 1996년 인구 10만명당 6.3명에서 2006년 12.8명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외국에서는 이미 20년 전부터 대장암이 위암을 앞질렀다. 국내에서도 대장암은 곧 위암을 제치고 가장 흔한 암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 일러스트 정현철
‘피 한 방울로 암 진단’ 연구 활발

육류와 고열량 음식을 찾는 서구화된 식습관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한마디로 잘 먹어서 생기는 병이다. 과거에는 국내에 대장암 환자가 거의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대장암은 자라는 속도가 느리다는 점이다. 게다가 대장암 대부분은 용종(폴립)이라는 단계를 거친다. 용종은 암은 아니지만 암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큰 혹이다. 대장암의 80~90%는 용종이 원인이다. 처음에는 좁쌀만 하지만 콩이나 밤톨 크기로 커지면서 대장암이 된다. 용종의 크기가 2cm 이상이면 암으로 발달할 확률이 40%를 넘는다.

국내 성인의 20%에서 용종이 발견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특히 50세가 넘으면 10명 중 2~3명에서, 60세 이상은 대다수에서 용종이 발견된다. 따라서 50대 이후에는 5년마다 대장 내시경 검사만 받아도 암을 예방할 수 있다. 한 개 이상의 폴립을 제거한 40~69세 성인 1963명을 10년 동안 관찰해보니 암 의심 환자 17.7명 중 6명에게서만 암이 발병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용종 또는 대장암을 초기에 발견해서 치료하면 생존율이 90% 이상이다.

대장 내시경 검사에서 용종을 발견하면 별도의 수술 없이 내시경으로 용종을 떼어낼 수 있다. 볼록 튀어나온 용종에 올가미를 씌워 밑동을 잘라내는 식으로 제거한다.

용종은 대장암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만큼 그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최근에는 용종의 모양을 보고 암으로 변할지를 예측하는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단단하고 표면이 거칠거나 출혈이 생긴 용종은 암으로 발달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가족력이 있으면 대장 내시경 검사를 일반인보다 자주 받아야 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가족력이 있는 사람은 40대 이후 대장암에 걸릴 확률이 100%에 육박하므로 20~30대부터 꾸준한 검사로 용종을 추적해야 암을 예방할 수 있다. 또 특정 유전자에 이상이 있는 사람은 10~20대부터 대장 내시경 검사를 시작해야 한다.

가장 간단하고 저렴한 대장암 진단은 대변 검사(분변 잠혈 반응 검사)다. 가정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대변 색이 선홍색 또는 검붉은 색이거나 대변에 점액질이 묻어 나오면 대장암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혈변이 나오면 대장암 신호로 여겨야 한다. 대변 검사는 혈변을 검사하는 것이지만 정확도가 절반 이하로 낮은 것이 단점이다. 이 단점을 보완한 진단법이 대장 내시경 검사다. 그러나 금식, 장세척, 검사 과정의 불편함 등이 있어서 대장 내시경 검사를 꺼리는 사람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오래전부터 피 검사로 암을 발견하려는 연구가 국내외적으로 대세를 이루고 있다. 암에 걸린 사람은 혈액 속에 특정 물질이 늘어난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세브란스병원 종양내과 연구팀은 최근 대장암 환자 12명의 암 조직을 떼어 연구한 결과 모두에서 특정 물질을 발견했다. 혈액 속에 이 물질이 많으면 대장암으로 판단할 수 있다. 정확도는 87%로 높은 편이어서 이 연구에 기초한 진단 제품이 향후 2년 이내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오재환 국립암센터 대장암센터장은 “혈액으로 대장암을 발견하는 방법은 초기 단계여서 아직은 정확도를 신뢰하기가 어렵다”면서도 “코끼리의 앞과 뒤, 옆면 사진을 찍으면 전체 모습을 3차원으로 알 수 있듯이, 여러 검사를 동원할수록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런 연구가 현실에 적용된다면 가까운 미래에는 임신 진단 키트처럼 암 진단 키트를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풀어야 할 숙제도 있다. 특정 암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한두 개가 아니다. 유방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밝혀진 유전자만 18개다. 각 암 종류별 유전자를 발견하고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유전자 검사로 대장암을 진단하자는 의견은 10년 전부터 나왔고, 미국 최고 의료기관 중 하나인 메이요 클리닉은 진단 키트까지 만들었다”며 “그러나 기존 진단법보다 월등하지 않아 흐지부지된 사례가 있는 만큼 향후 10년 후에나 상용화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대장암도 바이러스가 원인”

자궁경부암의 대부분은 특정 바이러스(HPV)에 의해 생긴다는 사실을 밝혀낸 공로로 2008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하랄트 추어하우젠 박사(독일 하이델베르크 암연구소)는 5월29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강연에서 “대장암의 원인이 쇠고기 속에 있는 바이러스”라고 밝혔다. 그는 암과 바이러스의 관계를 규명하는 분야에서 세계적인 전문가로 꼽힌다.

10여 년간 지켜본 결과 쇠고기와 같이 붉은 고기를 많이 먹는 나라에서 대장암 발병률이 높은데, 이런 결과는 쇠고기 때문이 아니라 쇠고기 속에 숨어 있는 바이러스 가 원인일 수 있다는 가설을 제시한 것이다. 추어하우젠 박사는 “서구는 물론 특히 한국과 일본처럼 덜 익힌 쇠고기나 육회를 먹는 국가에서 대장암 발생 빈도가 높아지고, 쇠고기를 바싹 익혀 먹는 사우디아라비아나 닭고기와 같이 하얀 고기를 주로 먹는 나라에서는 대장암 발생 빈도가 낮은 편”이라고 밝혔다. 그는 소가 주로 감염되는 특정 바이러스(TT 바이러스)가 인체에 침투하면 대장암을 일으킨다고 보고, 다양한 실험을 진행 중이다. 이 바이러스는 모든 생물에게 있는 흔한 바이러스로 암, 관절염 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추어하우젠 박사의 가설이 사실로 밝혀지면 쇠고기 속에 숨어 있는 TT 바이러스가 열에 강한 만큼 충분히 익혀 먹어야 대장암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미래엔 몸에 칼 대지 않는 치료가 우선”

대장 벽은 크게 네 겹(안쪽부터 점막층, 점막하층, 근육층, 장막층)으로 구성돼 있다. 암세포가 점막층에 있으면 내시경으로 떼어내면 그만이다. 그러나 암세포가 점막하층까지 뿌리를 내린 상태라면 수술을 고려해야 한다. 이런 경우는 암세포가 다른 조직으로 전이됐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즉 이미 진행된 대장암은 수술이 기본 치료법이고, 이는 미래에도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수술 방법 면에서는 환자의 회복을 돕는 방향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복부 절개 부위를 최소로 하고, 대장을 되도록 보존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복부를 크게 절개하고, 암 주변에 혹시 남아 있을 암세포까지 없앤다는 의미에서 대장도 많이 떼어냈다. 그러다 보니 환자의 회복 속도가 느리고 통증도 컸다. 최근에는 복부에 가느다란 수술 기구가 들어가는 구멍 몇 개만 뚫는 수술(복강경 수술)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 수술은 전체 수술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로봇 수술도 활성화하고 있다.

김희철 삼성서울병원 대장암센터장은 “수술은 10년 후에도 표준 치료법일 테지만 그 방법은 많이 변할 것”이라며 “적게 절개하고 암 주변 조직을 적게 떼어내면 수술한 날 저녁이나 다음 날 환자가 퇴원할 수 있다. 앞으로는 점점 무통·무혈 수술로 발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예 몸에 칼을 대지 않는 치료법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암이 자리를 잡은 위치에 따라 항문으로 내시경을 넣어 수술하는 방법도 연구하고 있다. 또 방사선 치료에도 변화가 생긴다. 방사선 치료의 최고점에 있다는 양성자 치료가 떠오르고 있다. 방사선을 암에 조준해서 쏘면 우리 몸을 관통하면서 암뿐만 아니라 정상 세포도 파괴한다. 양성자는 이 단점을 보완해줄 것으로 보인다. 양성자는 정상 조직에 영향을 주지 않고 암세포에 도달했을 때만 효과를 나타내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오재환 국립암센터 대장암센터장은 “직장암은 방사선 요법으로 15%는 없어진다”면서 “향후 수술이 점점 없어지고 방사선 등과 같이 신체를 절개하지 않으면서 암을 제거하는 치료법이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항암 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는 환자를 위해서는 앞으로 맞춤 치료가 보편화된다. 가족 중에 대장암에 걸린 사람이 두 명 이상이거나, 50세 이전에 대장암 진단을 받은 가족이 있거나, 대장암과 자궁내막암이 발생한 가족이 있으면 유전성 대장암을 의심할 정도로 유전은 대장암과 관련이 있다. 유전자 분석이 암 치료의 방향을 바꾸는 시대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어떤 형태의 암이며 그런 암에는 어떤 항암제가 효과적인지 확인한 후 환자를 치료하는 개념이다. 개인에게 맞는 항암제를 찾을 수 있는 셈이다.

가까운 미래의 대장암 예방·진단·치료는 지금보다 훨씬 편리해진다. 암에 걸릴 운명이라고 해도 지금보다 몇 년 후에 걸린다면 더 쉽고 정확하게 치료받을 수 있다. 그때까지는 대장암에 걸리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대장암 예방 방법으로는 신체 활동이 최우선이라는 데 의사들 사이에 이견이 없다. 세계암연구재단과 미국암연구소가 2007년 발표한 연구 보고서도 대장암 예방에 효과적인 방법으로 신체 활동을 꼽았다. 신체 활동이 적으면 장의 연동 운동이 느려진다. 대변이 장을 통과하는 시간이 길어져 대장 세포가 암 유발 물질과 접촉하는 시간이 그만큼 늘어난다. 신체 활동은 장운동을 촉진해 대변이 장에 머무르는 시간을 단축함으로써 대장암 발생 빈도를 낮춘다.

 

과거에는 의사 중심으로 환자를 치료했다. 감기라면 내과, 골절이라면 정형외과를 찾는 식이었다. 또 의사 한 명이 환자 한 명을 담당하므로 의사의 능력과 판단에 따라 치료 결과에 큰 차이를 보였다. 환자로서는 이른바 명의를 찾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이런 치료법이 최근 환자 중심으로 변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대장암센터를 지휘하고 있는 김희철 외과 교수는 대장암 치료에서도 환자를 우선하는 방법이 앞으로 대세를 이룰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래에 환자 중심의 치료가 대세라면 구체적으로 의사는 어떻게 환자를 진료한다는 것인가.

대장암을 치료하는 의사가 앞으로는 정보 분석가 또는 치료 디자이너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미 그렇게 돼가고 있는데, 과거에는 의사 혼자서 환자를 치료하는 개념이었다면 지금은 환자 한 명을 여러 의사가 진단하고 치료한다. 원시적인 형태가 지금의 센터 개념이다. 과거에는 내과·외과·산부인과였던 것이 대장암센터·위암센터 같은 센터로 변하고 있다. 즉 한 병원에 전문가들이 모여 있고, 한 환자를 두고 어떻게 치료할 것인지를 논의한 후 최선의 방법을 찾는 것이다.

또 환자가 병원에 오갈 때까지 의사와 충분히 상담하고 진료받게 된다. 지금처럼 30분 기다려서 5분 진료받는 진료실 분위기는 사라진다.

수술과 항암 또는 방사선 치료의 순서가 바뀐 것 같은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과거 직장암 치료는 수술 후에 항암·방사선 치료를 했다. 지금은 항암이나 방사선 치료를 먼저 한 후에 수술하는 것이 표준이다. 항암이나 방사선 치료를 받은 환자 중 일부는 수술받지 않아도 될 정도로 암이 작아진다. 심지어 완치되는 환자도 있다. 이런 환자에게는 수술이 필요 없다. 반대로 어떤 환자에게서는 암이 재발한다. 앞으로 암이 치료될 환자와 그렇지 않을 환자를 구분해 치료법을 달리하는 시대가 열릴 것이다. 즉 같은 3기 환자라도 어떤 사람은 수술받고, 다른 사람은 항암 치료를 받게 될 것이다.

유전자 분석으로 환자에게 맞는 항암제를 선택하는 시대다. 그러나 그 약이 실제로 효과를 낼지는 모르지 않는가.

물론이다. 그렇다고 환자에게 그 약을 무작정 사용했다가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환자의 유전자를 분석해서 그에 맞는 항암제를 찾기 위해 아바타 쥐를 이용한다. 환자의 대장암 세포를 이식한 실험용 쥐에 특정 항암제를 투여해 효과를 확인한다. 이런 실험을 통해 안전하고 효과적인 항암제를 찾은 다음 환자에게 투여하는 진정한 맞춤 치료가 조금씩 진행되고 있다.

그 항암제가 대장암 치료제로 등록된 것이 아닐 때는 어떻게 하나.

그 점이 행정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예컨대 폐암 치료제는 일부 대장암 치료에 효과가 있다. 그러나 대장암 환자에게 사용하려면 따로 승인을 받아야 하므로 오랜 시간이 걸린다. 환자는 당장 죽어가는데 그 일정이 너무 길다. 유전자 정보를 통해 환자가 그 약에 효과가 있다는 데이터가 있으면 정부가 바로 약 사용을 허가해주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정부가 이를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용종을 제거해 대장암을 예방할 수 있다면, 처음부터 용종이 생기지 않게 할 방법은 없는가.

그런 연구가 국내외에서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 아스피린과 같은 항소염제의 일부가 용종을 줄인다는 연구 결과는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100% 예방할지는 많은 연구 결과가 나와봐야 알 것 같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