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 벗어던진 치명적인 마력
  • 김헌식│문화평론가 ()
  • 승인 2013.06.18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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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시 아이콘이자 ‘멘토’로 여심까지 사로잡는 이효리

“여성은 세대에 따라 학력·재산·성격 등 다양한 기준으로 남성상이 바뀌지만, 남성은 어리나 젊으나 나이가 드나 외모였다.”

이는 몇 년 전 큰 인기를 끌었던 tvN <남녀탐구생활>의 ‘남녀 이상형’ 편에서 내린 결론이다. 10대부터 60대까지 남성과 여성이 생각하는 이성에 대한 이상형의 기준은 알면서도 항상 궁금하다. 그렇다면 동성을 좋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남성이 남성을 좋아하는 것도 그렇지만, 적어도 여성이 여성을 좋아할 요소는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이는 이효리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이효리는 남성에게도 인기가 많지만 여성들에게도 호감을 받는다. 그런 점은 이효리 이후 걸그룹들의 핵심 전략이 되기도 했다. 이른바 양성 공략, 바로 섹슈얼리티 전략이다.

이효리는 남성들에게는 섹시 아이콘이면서, 여성들에게도 인기가 많은데 사실 이상한 일이다. 왜냐하면 대체적으로 남성에게 성적인 면에서 인기가 많은 여성은 질투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영화 <말레나>에서 절세의 미인 말레나는 주위 여성들의 질투 때문에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렀다.

‘미인박명’이라는 동서고금의 금언도 있다. 그러나 이효리는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 어떻게 이처럼 동시에 인기를 얻을 수 있을까. 그는 남성은 외모와 이미지로 휘어잡고, 여성은 다른 요인으로 사로잡았다. 이것이 이효리의 매력 포인트다.

신곡 을 부르는 가수 이효리. ⓒ 연합뉴스
동질감 주는 보통 여자·소셜테이너 면모까지

1998년 핑클 멤버로 데뷔할 당시 이효리는 상큼 발랄한 걸그룹 구성원 이미지가 강했다. 2003년 솔로로 데뷔하면서 섹시한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이후 섹시 퀸, 섹시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면서도 인간적인 면을 결합해 한층 도약한다. 단순히 인간적인 것이 아니라 보통의 여성들과 같은 존재임을 느끼게 했다. 예컨대 위장을 통해 예쁜 척하던 여성 스타들의 이미지를 일거에 날려버렸다. 이는 거꾸로 여성들로 하여금 이효리에게 안도와 동질감을 느끼게 했다. 무대 위나 뮤직비디오에서는 여신이었지만, 다른 매체에서 그는 보통 여성이었다. 어떤 때는 루저녀 같기도 했다. 이러한 점은 질투의 감정을 누그러뜨렸다.

이효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섹시미를 계속 유지했고, 남성들은 계속 이효리의 섹시미에 대해 선호를 표시했다. 더구나 황진이를 좋아했던 사대부들처럼 이효리의 재치와 입담은 남성들을 열광하게 했다. 이런 안정적 토대에서 남성만이 아니라 여성들까지 좋아할 만한 요인을 계속 진화시켜나갔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이효리는 여성이 되고 싶은 모든 것을 구현하려 했다. 1집 <STYLISH>의 <텐 미닛>은 남성을 단 10분 안에 사로잡겠다는 도발적인 내용을 담았다. 이후 <유고 걸> 등의 노래를 통해 알 수 있듯 이효리는 당당함으로 대변되는 여성들의 욕망과 여성들의 입장을 자신의 노래에 줄기차게 반영했다. 이런 흐름은 이번 새 앨범에서 발표한 <배드걸> <미스코리아>에서 정점을 이뤘다. 심지어 <배드걸>의 원래 제목이 ‘싸가지 없는 여자’였다는 점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비록 욕을 먹더라도 남들의 시선보다는 주체적인 삶을 이끌어가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효리는 당당한 면모를 노래뿐만 아니라 방송이나 인터뷰 등에서도 많이 보여줬다. 돌직구 발언들을 통해 다른 이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거나 인기에 영합하지 않는 진정성을 느끼게 해줬다. ‘순수함’과 ‘털털함’이라는 수식어가 이효리에게 줄곧 붙는 이유다. 그러나 순수와 털털함만으로는 장수할 수 없는 분야가 대중문화다. 항상 핫하고 새로운 것을 선보여야 한다.

이효리는 마돈나와 같이 남성 중심 사회에 일갈을 가하면서 스타일 창조와 선도를 통해 트렌드세터의 역할을 해왔다. 언더웨어룩의 히트 사례와 같이 많은 여성이 효리 스타일을 따라 했고, 효리 스타일을 가리켜 사람들은 ‘효리시’라고 불렀다. 그 효리 스타일은 단지 착용하는 옷의 파격성이나 헤어스타일, 화장법 차원이 아니라 행보 자체였다. 사회봉사와 재능 기부에 적극적이었고 환경운동, 동물보호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이는 소셜테이너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 연합뉴스
<미스코리아>로 현실 비판하는 동네 언니

무엇보다 이효리의 <미스코리아>는 여성들이 가진 성공 신화에 대한 선망에 일침을 가하고 있다. 이는 김미경씨의 독설이 여성들에게서 반응을 이끌어냈던 측면을 연상하게 했다. 일부 전문가가 이효리에 대해 그가 이제 섹시 아이콘에서 동네 언니로 등극했다고 평가한 이유다. 이효리는 미스코리아는 여성적 성공의 상징이지만 그것은 신기루에 가까우며 다른 이들의 시선을 끌기 위한 위선적인 행태라고 표현했다. 즉, 이효리가 많은 여자 동생에게 언니로서 멘토링을 하는 모양새다. 이는 고무적이긴 하지만, 그것은 이효리의 가능성이며 한계점을 의미하기도 한다.

<언니의 독설>을 쓴 김미경 아트스피치 원장이 어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여성들의 상처와 그에 대한 힐링 욕구 때문이었다. 지금의 20~30대 여성들은 페미니즘 수혜 세대다.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남자와 동등하다는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졌고, 가정에서나 학교에서 남성이 하는 일은 모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부여받았다.

이 때문에 여초(女超) 현상이나 알파걸 현상이 일어났다. 하지만 막상 사회에 진출했을 때 그들에게는 만만치 않은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꿈을 달성해주기에는 녹록지 않았다. 이른바 유리벽에 부딪혀 상처로 신음하는 여성들이 늘어났고, 그런 그들을 어루만지고 일으킬 멘토들이 필요했다.

그러나 단지 아름답고 부드러운 말이 약이 되는 것은 아닐 터였다. 보통 약은 쓰다. 그 멘토링도 치유제이니 써야 한다. 바로 독설이다. 언니의 독설은 징징 짜지 말고 독하게 마음먹으라는 맥락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 여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스님이나 성공한 남성들이 아니라 여성이면서 상처가 많거나 그것을 딛고 선 이들의 멘토링이다. 그런 멘토링은 단지 상처를 치유하고 원래대로 복원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을 줘야 한다.

이효리는 섹시미와 인간미를 통해 위장과 가공의 신화화 이미지에서 벗어나 대중적 매력을 다양하게 구사해왔다. 실험적인 패션과 기법을 적용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아이돌 그룹이 창궐하는 가운데 퍼스널 브랜딩의 모범적인 사례가 됐다.

이효리는 진정성과 의지를 실체화했다. 본래 멘토링은 실제 행동을 통해 성과를 이룬 사람들이 할 때 설득력과 감응력이 커져 그 힘으로 지지를 얻어낸다. 하지만 이효리의 멘토링은 시작에 불과하다. 많은 여성의 상처를 치유하고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독설이 필요할 것이다. 아직은 개인들의 삶이 주체적이어야 한다는 원론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

주체적인 삶의 추구가 어떤 상처로 돌아오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기대할 수 없다. 나쁜 여자 <배드걸>은 사실 진짜 나쁜 여자가 아니다. 매력적인데 치명적인 여자다. 나쁜 여자는 이제 남자에게만이 아니라 여자에게도 향해야 한다. 여자들에게도 치명적인 언니의 매력이 더 본격화하는 것을 다음 활동에서 보고 싶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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