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다이어트 한다더니 남 좋은 일만 시켰다
  • 김원식│뉴욕 통신원 ()
  • 승인 2013.06.12 14:2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 경제 활력소라던 글로벌 아웃소싱, 일자리 빼앗는 원흉 지목

미국의 주요 기업들은 인건비가 싼 중국 등 해외로 공장을 이전한 지 오래다. 제품 생산과 판매는 아웃소싱(outsourcing)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세계 최대 IT기업인 애플은 미국 내에 공장이 없다. 아이폰·아이패드 등 주력 제품 부품을 한국·타이완 등에서 구입한 뒤 중국에 있는 현지 공장에서 조립해 판매하고 있다. 애플의 성공 신화는 이런 글로벌 아웃소싱에서 시작했다.

이로 인해 미국 국민은 일자리를 타국에게 뺏겼다는 피해 의식을 갖고 있다. 일부 보수적 인사들은 아웃소싱이 미국 경제의 침체를 불러온 원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실제 지난해 발표된 미국 국립과학재단(NSF)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내 첨단기술 제조업 일자리 수는 2000년 닷컴 버블 붕괴 직전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계속 감소했다. IT 제조 분야 일자리는 2000년 이후 68만7000개가 감소했는데 여기에는 항공·우주·의학 산업 등 첨단 산업이 포함돼 있다.

인도 방갈로에 위치한 한 미국 기업 아웃소싱 회사 사무실. 인도는 북미 기업 아웃소싱으로 어느 때보다 호황을 누리고 있다. ⓒ AP연합
주택담보대출 등 금융까지 아웃소싱

이 글로벌 아웃소싱을 둘러싼 우려는 논쟁거리다. 지난 대선에서 미트 롬니 공화당 후보는 “미국 내에서 일자리가 줄어든 사이에 미국은 오히려 중국에 다양한 분야의 제조업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며 오바마 대통령을 비난했다. 반면 오바마는 “롬니의 일방적인 기업 세금 감면 정책은 일자리를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그 일자리가 미국이 아닌 중국·인도·독일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문제”라고 역공했다. 당시 오바마의 해법은 “단순 제조업은 어쩔 수 없으니 전문적이고 고소득 직업에 대한 투자를 늘려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로 정리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미국의 상황은 오바마의 바람대로 전개되지 않고 있다. 첨단을 달리는 금융업마저도 이제는 아웃소싱 대상이다.

미국 은행들은 요즘 영업이익률을 유지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아웃소싱이다. 일부 은행은 주택담보대출이나 압류 등 전문적인 업무를 인도에 있는 IT 대기업에 역외 아웃소싱을 하고 있다. 아웃소싱 컨설팅업체인 HfS리서치의 추산에 따르면 지난해 인도 아웃소싱 업체들은 주택담보대출 관련 업무로 3억16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2009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증가한 액수다. 미국 정부가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이후 주택 융자 관련 규정을 강화하면서 대출자에 관한 신용조사 업무가 방대해지자 은행들은 새로운 인력을 충당하기보다는 이런 업무를 해외 업체에 외주를 주면서 비용을 절감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미국 은행들의 선물 때문에 인도의 IT기업들은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쓰러져가는 의류 공장들이 밀집했던 뉴델리와 뭄바이 공업지대에는 금융 업무를 처리하는 최신식 인테리어를 갖춘 IT센터들이 자리 잡았다. 뉴델리의 아웃소싱업체인 ‘콰트로 글로벌 서비스’의 라만 로이 대표는 “서구 기업 관계자들의 눈에 익숙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이런 인테리어를 했다”며 “주택담보대출 관련 외주가 내년에 더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담당 직원 수를 지금보다 두 배 많은 2000명 정도까지 충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아웃소싱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특히 금융과 관련된 것이면 더 그렇다. 역외 금융 관련 아웃소싱을 하는 은행들이 늘어나면서 불만이 두 가지로 갈렸다. 하나는 일자리 감소에 따른 불만이고, 다른 하나는 부실한 신용 조사에 대한 우려다.

미국을 벼랑 끝까지 몰았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그리고 금융 위기는 은행의 부실한 조사, 즉 불성실한 업무에서 초래됐다. 부실한 신용 조사가 부실 채권으로 돌아오면서 생긴 일이었다. 신용 조사를 대신하고 있는 아웃소싱업체들이 그런 우려를 잠재울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아이라 라인골드 미국소비자보호연맹(NACA) 사무총장은 “은행들이 내부 직원 관리도 부실하게 했던 과거를 생각해볼 때 인도에 있는 아웃소싱업체들을 잘 관리·감독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아웃소싱 위기, 미 원청업체로 불똥

아웃소싱과 미국 내 고용 관계가 정치적 논쟁으로 확대되자 아웃소싱업체들의 긴장감도 커지고 있다. 인도에서 아웃소싱 매출 1위인 타타 컨설턴시 서비스(TCS)는 지난해 미국 미네아폴리스에 소프트웨어센터를 신설했다. 매출 2위인 인포시스도 지난해 전년 대비 두 배에 가까운 2000명을 미국 현지에서 새로 고용했다. 아웃소싱업체가 오히려 원청 국가의 고민 해결을 위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진 셈이다.

‘을의 반란’도 글로벌 아웃소싱의 위기를 보여준다. 뉴욕타임스는 요즘 애플 신화를 비판하는 데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애플 신화 비판의 중심에는 글로벌 아웃소싱의 폐해가 자리한다. 애플 제품을 생산하는 중국 근로자들이 과중한 노동과 심각한 안전 문제에 노출돼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미국 기업의 ‘혁신’과 ‘성공’ 뒤에 제3세계 노동자들의 희생이 숨어 있다며 노동 인권 착취를 고발하고 있다. 하청업체들의 집단행동, 이른바 ‘을의 반란’ 조짐도 보인다. 애플의 주요 하청업체인 중국 폭스콘이 단가 인상을 위해 집단행동에 나섰고, 제품을 생산하는 하청업체들이 오히려 제품을 볼모로 본격적인 실력 행사에 나설 가능성도 감지되고 있다. 그동안 “아웃소싱 문제는 아웃소싱이 해결해야 한다”고 수수방관했지만 이제는 그 불똥이 미국의 원청업체로 튀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