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싶을 땐 단풍이 든다
  • 김형자│과학 칼럼니스트 ()
  • 승인 2013.05.29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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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아드레날린 왕성하게 분비돼 얼굴 붉어져

“내 앞에만 오면 얼굴이 홍당무가 되는 남자. 혹시 날 좋아하는 걸까?”

부끄러울 때, 화를 낼 때, 당황할 때 얼굴이 붉어지는 남자가 있다. 심한 경우, 목 언저리까지 벌겋게 번지기도 한다. 내 앞에서 유독 얼굴이 붉어지는 남자라면 나한테 관심 있다는 표현 중 하나다.

관심 있어 하는 남자나 여자의 시선이 느껴지는 순간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때로는 얼굴이 붉어지는 경험을 한 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이는 자율신경이 자극을 받아 혈관이 팽창하면서 피가 급격히 흘러 생기는 현상이다. 다시 말해 교감신경이 액셀러레이터를 좀 심하게 밟았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이런 현상이 일어날 경우, 반대로 우리는 정신을 가다듬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어나가려고 숨을 크게 내쉬기도 한다. 이때는 부교감신경이 브레이크를 밟았다는 의미다.

ⓒ 일러스트 임성구
볼에 모세혈관 많아 더 붉게 보여

사람이 당황하거나 부끄럼을 느끼면 누구나 얼굴이 붉어진다. 앞서 말한 것처럼 혈관이 확장돼 붉은 피가 많이 흐르기 때문이다. 긴장하거나 흥분했을 때 사람의 피부에 있는 혈관은 자율신경의 조절을 받아 확장돼 피부가 저절로 붉어진다. 이와는 반대로 혈관이 수축되면 피가 적게 흘러 창백해 보인다. 손이나 발이 아닌 얼굴이 주로 붉어지는 이유는, 우리 몸 중에서도 특히 볼에 모세혈관이 더 많이 분포돼 있기 때문이다. 입술이 항상 붉은색을 띠는 이유는 원숭이의 얼굴이나 토끼의 눈이 붉은 것처럼 얇은 피부 아래로 혈관이 비치기 때문이다. 얼굴이 붉어지는 현상도 피부 아래 있는 혈관과 관계있는 것이다.

심장은 중추신경계의 영향을 받는 데에만 만족하지 않고 뇌의 깊은 곳에 신경섬유를 전달한다. 바로 이 신경섬유가 모여 있는 곳에서 뇌의 모든 활동을 조절한다. 그렇다면 사람이 감정적으로 변하고 흥분되어 있다는 것은 어떤 상태를 뜻할까. 이것은 호르몬인 노르아드레날린의 강한 자극을 받아 열기를 높이고 있는 상태다.

노르아드레날린은 ‘분노의 호르몬’이라고 불린다. 성적인 행동을 지배하는 것은 성호르몬이지만, 사람의 감정은 ‘분노의 호르몬’인 노르아드레날린에 좌우된다. 봄과 가을에 이성을 적극 갈구하는 것은 이 무렵 성호르몬이 많이 분비되기 때문이며, 감정을 자극받을 경우 심장 소리가 커지고 흥분되는 것은 노르아드레날린의 분비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즉, 사람의 행동과 감정은 호르몬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정 변화 심한 사춘기에 자주 일어나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누고 싶은 성적 자극을 받았을 때는 노르아드레날린의 분비가 더욱 왕성해져 자신도 모르게 혈압이 올라간다. 성적 자극을 받은 뇌가 노르아드레날린을 분비시키기 때문이다. 그 결과 심장이 쿵쿵 뛰고 자연히 얼굴이 빨개진다. 특히 사랑하는 남녀가 성관계를 맺을 때는 흥분이 고조되면서 혈액이 신체 내부로부터 피부 표면으로 분포되기 시작해 피부는 만져서 느껴질 정도로 뜨거워지고 붉어진다.

이와 같은 현상은 여성에게 두드러진다. 여성의 75%는 등과 가슴 그리고 목 언저리의 피부에 발진처럼 보이는 것이 실제로 나타나며 이는 오르가슴 직후에 사라진다. 남녀 모두 젖꼭지가 일어서지만 여성에게서 더욱 현저하고, 유방의 크기 자체도 영향을 받아 전희 중 본래 크기보다 24% 정도 팽창한다.

혈압이 상승하는 것은 혈액이 근육과 대뇌로 몰리는 현상이다. 이는 흥분하거나 외부에서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것에 대해 인체가 대응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 현상이다. 혈액이 근육으로 몰리는 것은 강력한 근력을 형성하기 위해 산소와 에너지를 전달하는 것이고, 대뇌로 피가 몰리는 이유는 현 상황에 대한 빠른 판단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뇌 생리학적인 면에서 볼 때 얼굴에 홍조를 띠거나 몸에 발진이 나타나는 것은 지극히 생리적인 현상이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뇌가 갖고 있는 기분을 신체가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이기에 좋은 상태라 할 수 있다.

얼굴이 붉어지는 현상은 꼭 성적 자극을 받을 때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감정 변화가 심한 사춘기 청소년들에게도 얼굴이 붉어지는 현상이 종종 나타난다. 정서가 불안한 사춘기 때는 사소한 자극에도 쉽게 감정이 동요된다.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무안당하거나 기분이 상해 얼굴을 붉히는 경우가 잦다.

이때는 대인관계의 예민성이 가장 높은 시기라서 남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부끄러움을 많이 탄다. 흔히 이 시기에는 모든 시선이 자기에게 집중되었다고 확신하고 자신의 결점이 다른 사람에게 보인다고 생각하기 쉽다. 키가 작아도 고민, 커도 고민이다. 뚱뚱해도 고민, 말라도 고민이다. 온갖 관심이 자신에게 쏠려 있어 사소한 결점도 그냥 넘길 수 없다. 그래서 조금만 얼굴이 붉어지고 손이 떨려도 이게 무슨 큰 결점인 양 혼자 깊은 고민에 빠진다. 이런 예는 자율신경계의 균형을 제대로 유지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할 경우에 흔히 볼 수 있다. 성적으로 흥분될 때처럼 감정이 변화해도 자율신경이 자극을 받는다. 하지만 이 또한 지극히 정상이다.

뿐만 아니다. 추운 겨울날 바깥에서 일을 보고 집에 돌아와도 얼굴이 벌게진다. 추운 날씨 탓에 수축된 혈관이 따뜻한 실내에서 갑자기 이완돼 혈액이 몰려들기 때문이다. 술을 마실 때도 얼굴이 붉어진다. 술을 마실 때는 아세트알데히드가 핏속에 녹아 혈관을 타고 피부 밑 모세혈관까지 가서 혈관을 확장시키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성적 자극을 받은 경우든, 술을 마신 경우든 얼굴이 붉어지는 것은 모두 정상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정신을 다시 가다듬고 심호흡을 크게 하면 보통 사람의 경우 혈관이 정상으로 돌아와 얼굴이 평소 색깔로 회복되니 겁낼 것은 없다. 

 

안면홍조? 병일 수도 있다 


“낮술 먹었어요?” “얼굴에 단풍이 들었네.”

요즈음 회사원 김 아무개씨가 종종 듣는 말이다. 날씨가 쌀쌀해지면 더욱 발그레한 홍조를 띠는 볼 때문에 김씨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다. 별말도 아닌 일에 갑자기 얼굴이 붉어진다. 얼굴이 항상 화장해놓은 것처럼 발그레하다. 이것은 안면홍조의 한 증상이다. 안면홍조증이란 보통 사람보다 더 쉽게, 심하게, 오래 얼굴이 빨개지는 증상을 가리킨다.

얼굴이 화끈화끈 열이 나고 붉어지는 증상을 한의학에서는 심장이나 두경부에 열이 정체되어 있을 때 나타나는 증세로 본다. 사소한 감정의 변화나 약간의 온도 차에도 얼굴이 금세 달아오르거나 얼굴에 확 열기가 느껴지는 증상을 말한다.

안면홍조의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가장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중년 여성의 폐경이나, 약물 오·남용을 들 수 있다. 스테로이드가 들어 있는 약물을 오랫동안 발라 피부가 얇아져 피부 밑 혈관이 늘어나는 경우에도 안면홍조증이 발생한다. 이러한 것들이 피부 속에 누적되면 피부에 항상 독소가 쌓여 발그레하게 상기된다.

나를 바라볼 때마다 발그레한 홍조를 띤다고 해서 그 남자가 한결같이 나를 좋아해서 그런다고 오해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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