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발 슬쩍 물러나 민간에 협상의 끈 쥐어주자
  •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 승인 2013.05.29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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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행 50일 넘기는 개성공단 사태, 해법은 없나

개성공단 파행이 50일째를 넘기고 있지만, 여전히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있다. 4월3일 북한의 일방적인 통행 제한 조치로 촉발된 개성공단 사태는 북한측의 근로자 철수, 남한의 개성공단 인력 전원 철수가 이어지면서 사실상 잠정 폐쇄된 상태다. 그러나 공단 가동 중단이 여름 장마철까지 장기간 이어질 경우 입주 업체의 설비 등이 녹슬며 공단은 완전 폐쇄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

현 시점에서 개성공단 정상화 가능성이 작아지고 있는 것은 북한의 다소 무리한 요구 때문이다. 북한은 우리 정부가 수용하기 어려운 이른바 ‘근본 문제’에 대한 입장 천명을 개성공단 정상화에 대한 사실상의 전제 조건으로 꾸준하게 제시하고 있다.

개성공단 관계자들의 전원 철수 이후 북으로 가는 도로가 차단된 경기도 파주시 통일대교 남단에서 초병이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최룡해의 중국 특사 방문이 돌파구 될 수도

우리 정부는 북한에 대해 진정성 있는 자세로 개성공단 사태 해결을 위한 당국 간 대화에 응할 것을 촉구하고 있으나, 북한은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에게 팩스를 두 차례 보내면서도 정작 정부 당국 간 회담은 회피하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정부 당국 간 회담에 나오기를 주저하고 있는 것일까.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점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가 5월11일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 결과를 혹평하면서 현 정부 임기 내에 남북 대화가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라는 우려를 표시한 대목이다. 이 신문은 박 대통령이 북한의 경제 및 핵무력 건설 병진 노선을 비판한 데 대해 “상대방의 심기를 일부러 건드리는 경직된 대북관이 현 당국자의 본색이라면 그의 임기 중에 북남 대화가 실현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북한이 ‘정전협정의 완전 백지화’를 밝힌 만큼 “대화의 원칙을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북한은 기본적으로 남한 정부의 적대 행위가 계속되고 있고, 이런 상황에서 남북 대화는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즉 지금 남한 정부는 미국과의 공조를 통해 자신들의 우주 개발과 핵무력 강화를 문제 삼으면서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에 동참하고 있고, 한반도에 최신 전쟁 장비들을 끌어들이며 군사 연습을 벌이고 있으며, 최고 존엄을 중상 모독하는 한편, 비핵화를 남북 대화 의제에 포함시키려는 시도 등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행위들이 계속되는 한 남북 대화나 남북 관계 개선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북한은 단언하고 있다.

이런 주장에 근거한다면 북한 당국이 개성공단 정상화 문제만을 논의하기 위해 우리 당국과의 대화에 나설 가능성은 당분간 희박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우리 정부의 입장도 북한 못지않게 단호하다. 개성공단이 정상화되더라도 다시는 이번과 같은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재발 방지 보장을 받아내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은 “한·미 양국은 북한이 조성하는 위기에 대해서는 어떠한 양보나 지원도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밝히고 있다. 북한으로서는 대화 테이블에 나갈 실리적 측면의 동기도 없게 된 것이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남북은 앞으로도 한동안 접점을 찾지 못한 채 공방만 벌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물론 실낱같은 희망은 있다. 북한이 개성공단을 대미·대남 관계 재설정을 위한 카드로 사용한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개성공단 해법 또한 북·미 관계 및 한반도 정세 등과 맞물려 돌아갈 것이라는 전망이 그것이다. 물론 북한이 지난 5월18일부터 20일까지 사흘간 단거리 발사체 6발을 잇따라 발사하는 등 긴장 고조 전략으로 선회하는 움직임까지 나오면서 상황 반전의 가능성은 작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국면 전환과 관련해 현 상황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의 특사인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5월22일 중국을 전격 방문한 사실이다. 그가 중국 수뇌부와 만나 한반도 긴장 완화와 관련해 중요한 조치를 내놓는다면 남북 관계의 긴장 완화에도 기여하면서 개성공단 재개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나아가 북한이 개성공단 근로자를 조건 없이 복귀시키는 조치를 전격적으로 취한다면 개성공단은 기사회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그야말로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다.

유창근 개성공단 정상화 촉구 비상대책위원회 대변인이 5월23일 ‘개성공단 정상화 촉구대회’에서 공단의 발자취를 소개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5·24 대북 제재 조치’ 완화 등 유인책 필요

현재의 공단 잠정 폐쇄 상태가 지속되면 6월부터 입주 기업들의 연쇄 도산이 현실화될 것으로 보인다. 개성공장 설비에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며 대다수의 바이어도 동남아시아 등으로 거래선을 돌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입주 기업은 123곳에 불과하지만 이들과 관련된 국내 협력업체는 6000곳이나 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어 사회적 후폭풍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입주 기업 대표들은 대출 위주의 정부 피해 보상책이 실효성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들은 정부가 내놓는 여러 대책 중 현재 피부에 와 닿는 것은 기업당 최대 10억원을 빌려준다는 것뿐이며, 이마저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실제로 정부가 좀 더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입주 기업들은 갈 곳이 없어 보인다.

지난 10여 년간 온갖 풍파를 견뎌내며 쌓아온 개성공단에서의 신뢰의 탑들은 남북 공존·공영의 역사이고, 분단 극복과 통일의 대장정으로 나아가는 소중한 디딤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북한의 올바른 변화는 교류 협력과 병행하면서 추진해야 가능하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증명되고 있기도 하다. 개성공단 정상화뿐만 아니라 켜켜이 쌓여 있는 남북한 현안들을 풀기 위해서는 진정성 있는 당국 간 대화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은 그래서 제기된다.

따라서 개성공단 중단은 전적으로 북한의 책임이라며 압박만 강화해서는 문제를 풀기 어렵다는 게 대다수의 의견이다. 북한이 대화에 응하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대화 테이블에 나올 수 있는 유인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요구 사항 가운데 과도한 주장은 당장 수용할 수 없을지라도, 개성공단 활성화를 위한 기숙사 문제 해결과 개성공단에 대한 추가 설비 투자 등을 막고 있는 천안함 사건 이후 취해진 5·24 대북 제재 조치의 완화 가능성은 우리가 먼저 내비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로에 대해 깊은 불신감을 갖고 있는 남북한 당국이 만나 한꺼번에 모든 문제를 다 풀 수 없는 만큼 그동안 북한측과 싸우면서 타협점을 모색해온 경험을 많이 갖고 있는 우리측 기업인들에게 일정한 역할을 맡기는 것도 문제를 좀 더 수월하게 푸는 방안이 될 수도 있다. 이들이 북한의 부당한 조치로 입게 된 막대한 피해의 최소화, 완제품 반출, 설비 점검 및 유지·보수 등을 목적으로 협상의 끈을 이어가다 보면 남북한 당국 간 대화의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가 개성공단 입주 기업 대표의 방북 등 민간 부문의 자발적인 문제 해결 노력을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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