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중국에 못 넘긴다
  •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 승인 2013.04.24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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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 폐쇄’ 위기 치닫는 남북관계 보루의 운명

개성공단은 이대로 문을 닫고 마는 것일까. 북한 당국의 근로자 철수 조치로 개성공단 가동이 중단된 지 4월19일 현재로 17일째다. 시간이 속절없이 흐르면서 개성공단의 영구 폐쇄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는 듯하다.

개성공단은 남북·북미 당국 간 정치적 불신과 대립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북한은 4월18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 담화를 통해 “개성공업지구 문제만을 떼어놓고 오그랑수(겉과 속이 다른 말로 남을 속여 넘기려는 수법)를 쓰려고 하지만 공업지구 사태로 말하면 현 북남 관계 정세의 집중적 반영”이라며 개성공단 문제만을 분리해서 처리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북한측 주장과 요구들에 근거한다면, 개성공단 사업이 재개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남한측의 대북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고, 북한 지도부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부분에 대해 남측이 최소한의 유감 표시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 단계에서 우리 정부가 이를 다 들어주기는 어려워 보인다.

북한이 개성공단 입주 기업 대표단 방문을 불허한 4월17일 남북출입사무소에서 대표단이 귀환 차량을 맞이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개성공단 현금 수입, 연 1억 달러

개성공단은 2002년 남북한이 합의한 3단계 일정대로 개발됐다면 양측이 모두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또 수십만 명의 남북한 근로자가 함께 근무하게 됨에 따라 웬만한 정치·군사적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평화산업단지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북한이 초기에 개성공단 개발업자인 현대아산과 협의할 때는 이런 점을 기대하면서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낮은 토지 임대 가격과 임금에 합의해준 것이다. 하지만 개성공단은 당초 개발 스케줄대로 되지 않고 남북 관계의 부침에 따라 지지부진하게 진행됐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발사 실험, 천안함 침몰, 연평도 포격 사건과 남한의 비핵화와의 연계 정책, 퍼주기 여론 등 온갖 외풍으로 개성공단 사업은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북한측의 실망과 분노는 그들의 각종 성명, 언론 보도 등을 통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얼마 전 중앙특구지도개발총국이 발표한 비망록의 내용은 가장 압축적으로 북한측의 생각을 담고 있다. ‘군사적으로 가장 예민한 요충 지역을 통째로 내주었고, 토지 임대값 토지 사용료, 각종 세금은 거의 공짜나 다름없이 남한측에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근로자들의 로임은 초보적인 생활비도 되지 않는다.’

북한 지도부가 이번 기회에 평소 애물단지처럼 느껴졌던 개성공단 가동을 영구적으로 중단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마지막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북한의 최대 외화벌이 수단이라는 점을 들어 완전 폐쇄보다는 중국에 넘기는 시나리오를 갖고 있다는 얘기도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런 시나리오들은 실현 가능성이 상당히 떨어져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우선 북한이 개성공단을 완전 폐쇄하는 데 따른 손실은 상당하다. 북한 당국이 근로자 임금을 비롯해 개성공단에서 벌어들이는 현금 수입은 연 1억 달러에 이른다. 2012년 북한이 상품을 수출해서 벌어들인 총금액이 30억 달러다. 북한 경제 운영에서 개성공단 현금 수입이 절대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결코 가볍게 볼 금액도 아니다. 현재 평양을 기준으로 환율은 1달러에 북한 돈 8760원이다. 보통 북한의 노동자 월급이 2012년 기준으로 2000~3000원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달러의 가치나 유용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북한은 당장 그동안 남한측 기업이 담당해온 개성공단 근로자 5만3000여 명과 가족 등 20여 만명의 급여와 생계를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북한과 중국 간 경제 협력의 상징인 중국 단둥 시 ‘황금평’. 신압록강 다리가 한창 건설 중이다. ⓒ 시사저널 박은숙
공단 내 중국 기업 유치 가능성은 ‘제로’

개성 근로자들 가운데 일부를 중국에 파견시킬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하지만 이는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다. 중국 공장들이 북한 근로자를 무한정으로 수용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닌 데다, 이미 평양 위쪽의 북·중 국경 지역 주민들도 줄서서 중국 취업을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개성 근로자들에게 우선권을 주기도 곤란한 상황이다. 중국 당국은 북한 인력을 고용하려는 기업에 대해 고용 허가 심사를 대폭 강화하고 있다. 중국 영세 기업들의 무분별한 북한 노동자 불법 고용으로 인한 문제점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개성공단은 남북 경협의 확대·발전을 포함해 북한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외국 자본 유치를 위해서도 없어서는 안 될 사업이다. 개성공단이 정상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남북 경협 프로젝트가 가동돼 남한 기업인들의 투자가 이뤄지기는 상상하기 어렵다. 중국 외에 다른 외국 기업들도 북한과의 경제 협력은 상당 기간 유보할 것이 분명하다. 더군다나 북한과의 비즈니스에는 유엔 등 국제 사회의 각종 제재가 부과되기 때문에 ‘고위험·고수익’을 겨냥한 극소수의 기업을 빼고는 북한에 투자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궁지에 몰린 북한으로서는 중국과의 경제 협력에 올인하려 할지도 모른다. 북한 스스로 인정하듯 무역이나 경협의 다변화를 꾀하지 못하고 특정 국가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교역이나 경협은 북한측에 늘 불리하고 열악한 조건으로 이뤄지면서 수익률이 크게 떨어질 것이다. 북한에 투자하는 중국 기업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강도 높은 투자 보장 장치를 북한 당국에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으로서는 이중·삼중의 부담을 안고 중국과 경협을 추진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개성공단이 아예 중국 기업에 넘어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한다. 금강산 관광 사업처럼 개성공단의 경우도 북한이 설비 등 자산 몰수 과정을 거쳐 개성공단에 중국 기업을 유치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하지만 이럴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사실 북한은 금강산 관광 사업에 중국 기업들을 유치하려 시도했으나 실적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즈니스에서 투자 보장 문제 등 법적 안정성을 가장 중시하는 중국 기업들이 굳이 나중에 법적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큰 개성공단에 진출할 이유는 없다. 더군다나 남한측 주재원들이 모두 철수할 경우 10만kw에 이르는 전력 공급 등 인프라 관리·운영이 중단돼 공장 가동이 어려워진다.

결국 북한은 개성공단 가동 중단이 가져올 심각한 안팎의 후유증을 감수하면서 대남·대미 관계 재정립을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개성공단의 운명은 북한의 이런 전례 없는 벼랑 끝 초강수에 대응하는 박근혜정부의 전략과 역량에 상당 부분 달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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