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핵보유국 인정해라” 미 “버릇없이 굴지 마”
  • 고유환│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
  • 승인 2013.04.24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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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거듭되는 워싱턴과 평양의 줄다리기

확실히 북한의 태도가 달라졌다. 3차 핵실험 이후 이런 징후는 뚜렷하다. 북한은 ‘핵보유국’의 자신감을 과시하려는 듯 공세적으로 “핵 선제타격 권리를 행사하게 될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다. 북한이 ‘노이즈 마케팅’에 주력하는 것은 3차 핵실험의 성공 여부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어려운 조건에서 어떻게든 미국 등 국제 사회로부터 핵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인정받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3차 핵실험 이후 미국과의 핵 대결에도 자신 있다며 허세를 부리고, 불안정하지만 평화를 유지시켜온 정전 질서조차 무력화하는 일련의 조치를 취하며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북한이 정전 질서를 무력화하는 조치들을 취하면서 위기 수위를 높이는 것은 핵보유국으로서의 자신감을 반영한 새판 짜기의 일환으로 보인다. 북한이 정전협정을 백지화하려는 데는 정전 질서의 불안정성을 부각해 북·미 평화협정 체결 등 한반도에서의 공고한 평화 보장 체계 구축을 요구하기 위한 것이다.

4월12일 한국을 방문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북 카드는 중거리 미사일 발사와 4차 핵실험

최근 북한이 펴고 있는 위기 조성 전술은 말로 하는 단계에서 행동 단계로 넘어왔다. 정전협정 백지화와 불가침 합의 파기 이후 한·미 양국이 이를 무시하고 강력한 무력시위로 맞서자 북한은 미국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로 영변 핵시설 재가동을 선언했다. 남한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로는 개성공단 잠정 중단이라는 조치를 취했다. 무력 도발을 할 수 없는 한계 탓에 북한은 미국에 대해 핵 무기고를 늘리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남측에 대해선 남북 관계를 전면 차단하고 한국의 대외 신인도에 영향을 주면서 경제에 충격을 주겠다는 노림수로 보인다.

북한에게 남은 카드로는 중거리 무수단 미사일 시험 발사와 4차 핵실험 등이 있다. 남은 카드를 사용할 경우 군사적 충돌이나 추가 제재가 불가피해질 수도 있다. 북한의 무수단 미사일 발사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각했지만, 4월19일 현재까지는 실제 발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북한이 주장하고 있는 논리에 비춰 보면, 미국과 한국이 군사 공격을 하지 않으면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강력한 한·미 연합 전력을 고려할 때 무력을 동원한 북한의 선제공격은 쉽지 않은 게 엄연한 현실이다. 북한이 대미 전면 대결과 대남 전시 상황을 선포한 상태에서 무수단 미사일을 시험 발사한다는 것은 선제 도발로 규정돼 보복 응징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 재가동이라는 대미 핵카드와 개성공단 잠정 중단이란 대남 카드를 내놓고 한·미를 압박하고 있는 가운데, 곧이어 판을 뒤엎는 새로운 카드를 내민다면 의사 결정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지금까지의 위기 조성 전술로 핵보유국으로서의 능력을 과시하고 국제 사회의 이목을 끄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당분간 정세를 관망하면서 무수단 미사일 발사와 4차 핵실험 카드를 백업 카드로 남겨둘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미 양국은 북한에 대화를 제의했다. 3차 핵실험에 성공한 북한이 연일 계단식으로 위기를 조성하는 발언을 쏟아내자 미국은 북한의 오판을 경계하면서 예방 조치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무력시위에 북한이 강력히 반발하자 대륙 간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를 연기하는 등 국면 전환을 모색했다.

4월12일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한·미 외교장관 회담에서 밝힌 것처럼 미국은 젊은 지도자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실수와 오판을 가장 위험한 것으로 본다. 케리 장관은 북한에 대해 “6자회담이나 양자회담을 통해 미래를 얘기하고 싶다”고 적극적인 대화 의지를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과 케리 장관이 “선택은 김정은에게 달려 있다”고 하면서 진정성 있는 대화에 북한이 호응할 것을 요구함으로써 공은 북한으로 넘어갔다. 한·미의 대북 대화 제의는 북한에게 국면을 전환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하고, 더는 상황을 악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선제 조치로 볼 수 있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4월15일 ‘태양절’을 맞아 군사학교 교직원 체육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 조선중앙통신
잇따른 테러와 사고 후 미국 다시 강경 기류

하지만 북한은 한국과 미국의 대화 제의를 일단 거부하고 나왔다. 북한이 한·미의 대화 제의를 “교활한 술책”이라며 걷어찬 것은 대화의 의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3차 핵실험 이후 평화회담은 할 수 있지만 비핵화회담은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북한은 핵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인정받고 같은 핵보유국끼리 미국과 대등한 자격으로 한반도 정전 질서를 평화 질서로 바꾸는, 판이 큰 협상을 하자며 나서고 있다. 다시 공은 미국으로 넘어갔지만 비핵화 행동이 전제가 돼야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미국의 지금 입장으로 볼 때 북한과 현격한 시각차를 보여주는 것이다. 더구나 ‘4·15 보스턴 테러’와 4월17일 텍사스 비료 공장 폭발 사고 등이 연이어 터지면서 워싱턴 분위기는 급격히 냉각되고 있다.

이는 한반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면 전환을 위한 북한의 움직임도 조심스럽게 감지된다. 사실상 지난 3월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 노선’을 채택한 것을 계기로 북한이 이미 국면 전환을 모색하기 시작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케리 장관이 4월17일 하원 청문회에서 밝힌 것처럼 오바마 2기 행정부는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군사적 위협 이외에 북한에 대해 제대로 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는 반성 아래 미국의 대북 정책을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에서 ‘전략적 비인내(strategic impatience)’로 전환할 것을 시사하고 있다. 케리 장관은 “중국이 없으면 북한은 붕괴할 것”이라며 대북 정책이 성과를 거두려면 중국의 협력과 협조가 필수적임을 강조했다. 북한의 위협에 맞서 동북아 지역에 미사일 방어 체제를 강화한 미국은 중국이 북한 문제 해결에 협력할 경우 미사일 방어 체제를 철수시킬 수 있음을 시사하면서 중국이 북한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요청했다.

미국의 목소리는 다시 강경해졌다. 말이나 약속이 아니라 비핵화를 위한 북한의 구체적이고 의미 있는 행동이 선행돼야 대화와 협상 및 지원을 할 수 있다고 한 것을 볼 때, 북한과 미국의 대화는 당분간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화 의제 설정을 위한 기 싸움은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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