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자’ ‘소통령’ ‘대군’ 줄줄이 철창신세
  • 김현일 대기자 ()
  • 승인 2013.04.24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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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반복되는 대통령 친인척 비리

전두환 대통령의 동생 경환씨. 노태우 대통령의 처조카 박철언 전 장관.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 김대중 대통령의 세 아들 홍일·홍업·홍걸 씨. 노무현 대통령의 형 건평씨. 이명박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의원.

1980년 이후 역대 대통령을 떠올릴 때 빠지지 않는, 대통령과 친인척 관계에 있는 ‘당대’의 인물들이다. 하나같이 그 시대를 풍미했다. 그리고는 ‘그 대통령’의 재임 중, 아니면 퇴임 직후 감옥에 갔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 김옥조 민정비서관이 대통령을 독대했다. 강직하기로 소문난 김 비서관의 손에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6공 황태자’ 박철언 정책보좌관의 비위를 정리한 보고서가 들려 있었다. 본래 민정수석 소임이었으나 부담을 느낀 수석이 작성자가 직접 보고할 것을 당부하는 바람에 김 비서관이 나선 것이다. 바로 다음 날, 박 보좌관이 김 비서관을 자기 방으로 불렀다. 그는 “뭐 이런 것을…” 하며 김 비서관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김 비서관이 전날 대통령에게 올린 박 보좌관 관련 비위 보고서였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진 것이다. 김 비서관은 아연실색했고, 이 소문은 청와대와 정부·여당에 이내 퍼져나갔다. 이후 박철언 보좌관을 시비하는 사람은 없어졌다. 안기부와 검찰·경찰도 침묵했다.

대통령이 친인척 문제와 관련해 ‘잘못 보내는 신호’는 대형 참사로 번지게 마련이다. 사사로운 정에 얽매인 대통령의 무심한 거동이 대세를 그르치는 경우는 숱했다.

2012년 7월 이상득 의원이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친인척 감시해야 할 민정 라인이 유착

김영삼(YS) 대통령 시절, 아들 현철씨의 비위를 직보했다가 청와대를 떠난 박관용 비서실장의 경우도 그렇다. 비서실장이 그러했으니 민정수석인들 달리 수가 없을 것은 당연했다. 경호실과 협의 없이 한밤중에 생선회를 대통령 숙소에 보내 대통령이 설사를 하게 만드는 ‘사건’을 일으키고도 무사했던 홍인길 총무수석마저 현철씨의 전횡에는 침묵했다. 최형우·서석재 전 장관 등 상도동 가신 그룹도 마찬가지였다. 안기부는 현철씨의 동태를 감시하기는커녕 하수인 역할에 충실했다. 당시 민정 요원으로는 후일 안기부 차장이 된 ㅁ행정관 등 의식 있는 엘리트들이 적잖았으나 안팎의 기류가 이들을 움쭉달싹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단군 이래 최대라는 한보그룹에 대한 5조7000억원의 특혜 대출 소동이 아니었다면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자 ‘소통령’인 현철씨가 구속되는 사태는 결코 없었을 것이다.

5공 참사의 시발은 이철희-장영자 사건이었다. 5공 초기 실세였던 허화평 정무수석은 검찰로 하여금 ‘단군 이래 최대의 금융 사기’ 주범 장영자씨를 구속토록 했다. 장씨는 전두환 대통령의 처삼촌인 이규광의 처제였고, 장씨의 남편 이철희는 안기부 차장을 지낸 왕년의 실력자였다. 허 수석은 은행장 2명과 대통령 처삼촌 등 30여 명을 구속하는 등 대통령 주변 정리에는 일단 성공했으나 그 역풍을 피할 수는 없었다. 허 수석과 보조를 같이했던 허삼수 사정수석도 함께 벼락을 맞았다. 혼자 청와대에 남은 육사 1년 후배인 이학봉 민정수석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피라미 낚시’가 고작이었다. 사정기관들도 대통령 친인척의 횡포를 고발하고 저지하기는커녕 줄 대기에 바빴다.

대통령의 동생 경환씨가 회장인 새마을운동중앙회와 대통령의 장인 이규동씨가 회장인 대한노인회 주변에는 ‘파리’가 들끓었다. 게다가 대통령이 퇴임 후의 활동 거점으로 일해재단을 만들기로 하고 대기업들로부터 수십억 원씩을 걷어들이면서 사정이니 친인척 관리니 하는 말 자체가 무색해졌다.

많은 이들은 현직 대통령 아들이 권력형 비리로 구속되는 비극은 YS의 차남 현철씨가 마지막이 되리라 생각했다. 너무나 뜻밖의 엄청난 사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큰 착각이었다. 김대중(DJ) 대통령 집권 당시 셋째 아들 홍걸씨에 이어 둘째 아들 홍업씨가 거액을 받아 챙긴 혐의로 구속됐다. 장남 김홍일 의원마저 위태로운 상황에 몰렸으나 본인의 건강 상태와 ‘어떻게 아들 셋을 모두 구속시키나’라는 동정 여론 덕에 험한 꼴은 면했다. “한국 정치에서 부정을 뿌리 뽑겠다”며 취임한 DJ로서는 더 할 말이 없게 됐다. 신광옥 민정수석이 금융감독원 조사 무마 등의 명목으로 2100만원, 해양수산부 국장 승진 인사 청탁과 함께 5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그러니 DJ 청와대 당시 민정팀의 친인척 관리 등과 관련해 이런저런 말을 굳이 들먹일 필요조차 없을 터이다.

이와 관련해 ㅎ그룹 고위 임원 ㅂ씨는 “고위 공직자의 수뢰액 산정은, 한 가지를 인정하면 나머지는 덮어주는 게 상례”라면서 “어디 신 수석뿐이겠느냐”고 했다. 그는 또  DJ 정부의 한 실력자에게 250억원을 전달했던 당시를 회고하며 “그 당시는 모든 게 자연스러웠고 당연했다”고 토로했다.

현직 대통령 아들 구속 1호. 1997년 5월 YS의 차남 현철씨가 금품 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 시사저널 임준선
이상득, MB 재임 중 구속된 게 되레 다행?

노무현 대통령의 민정팀도 편치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친인척을 둘러싼 갖가지 의혹과 구설로 편한 날이 없었다. 영부인을 겨냥한 검찰의 금품 수수 의혹 수사가 본격화되고 아들과 딸을 향해서도 사정 당국의 칼날이 가까워지는 딱한 상황은 오래전에 예고된 것이었다. 민정수석은 문재인-박정규-전해철-이호철로 이어졌는데 친인척 관리와는 애초부터 거리가 멀었다. 대통령과 각별한 인연을 지닌 이들에게서 감시·제지를 기대하기는 난망이었다. 통상 관리 대상은 대통령 친족 8촌, 처외족 6촌까지인데 노무현 정부 당시는 DJ 때의 700명보다 훨씬 많은 930명을 관리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상자가 많은 것이 관리 소홀의 핑계는 못 된다. 또 친인척 관리 자료도 캐비닛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였다며, 나름대로 충실했음을 강조하지만 이 역시 무의미한 항변이다.

노무현 정부 민정팀의 부실을 불러온 결정적 요인은 대통령의 친형인 건평씨에게 있다. 통상 일주일에 한 번 취합되는 보고서는 ‘대우 사장 연임과 관련해 3000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등등 건평씨 관련 루머(?)로 도배되기 일쑤였다고 한다. 오죽하면 민정수석이 봉하마을 현지에 내려가 조사한 후 “(노건평씨에 대한) 철저한 감시”를 공개 다짐하고, 마을 입구에 경찰을 배치해 출입자를 감시토록 해야 했다. 12명으로 구성된 특별감찰반이 부활된 것도 건평씨 ‘덕’이었다.

이명박 정부에도 민정과 관련된 한심한 사연은 널려 있다. 대통령의 친형이자 여당 실력자인 이상득 의원이 이명박 대통령 현역 시절 금품 수수로 구속됐으니 무슨 말을 더할 것인가. “본인은 뭐라 할지 몰라도 드러난 수수액과 그에 기초한 형량만을 감안하면 (동생 재임 중 미리 구속된 게) 차라리 다행일 수 있다”는 한 여당 관계자의 촌평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친인척 관리 시스템이 어쩌니, 인원과 조직이 어쩌니 하지만 죄다 부질없는 얘기다. 대통령 스스로 공사를 엄격히 구분하고, 사사로운 정에 얽매이지 않는 단호함을 보이지 않는 한 권력형 비리는 여전할 것이다. 친인척 비리 관련자는 무조건 가중 처벌하고 이를 예외 없이, 꾸준히 실행하는 것만이 해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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