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대장’이 투기 세력에 굴복했다는데…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3.04.24 09:1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지분 매각’ 폭탄선언…국세청, 자금 흐름 주시

“지쳤다. 갖고 있는 기득권을 모두 내려놓겠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이 4월16일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한 말이다. 코스닥 대장주인 셀트리온을 다국적 제약사에 매각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파장은 ‘메가톤급’이었다. 서 회장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셀트리온 주가는 요동쳤다. 기자회견 당일 5% 급등했던 주가는 다음날 13%나 빠졌다. 18일에는 14.60% 빠져 최근 1년간 가장 낮은 주가를 보였다. 공매도 논란 역시 가열됐다. 서 회장은 “지난 2년간 주식 공매도 세력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금융 당국은 팔짱만 끼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기자회견 다음 날에는 소액주주들까지 나서 공매도 세력 적발을 촉구했다. 금융감독원은 뒤늦게 셀트리온의 공매도 관련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원회 역시 개별 종목에 대한 공매도 금지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서 회장은 “주식 매각을 번복할 수도 있다”고 한 발짝 물러섰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이 4월16일 보유 지분 매각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하던 도중 물을 마시고 있다. ⓒ 뉴시스
재계에서는 서 회장의 노림수에 주목하고 있다. 두 달 전만 해도 셀트리온은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고 언론에 발표했다. 올 6월 세계 최초 항체 바이오시밀러인 ‘램시마’의 임상 결과가 유럽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서 회장은 그동안 램시마의 유럽연합(EU) 승인을 자신했다. 자신을 괴롭혔던 각종 루머나 논란 역시 잠잠해질 것으로 기대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극약 처방이라고 할 수 있는 매각 카드를 꺼내들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공매도를 이유로 회사를 판다는 논리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세청 등 사정 당국에서도 서 회장의 행보를 예의 주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모회사와 자회사의 현금 흐름이 매끄럽지 않다”며 “현재 국세청에서 자회사의 거래 과정에서 부정이 없었는지 살펴보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재칠 셀트리온 주주동호회 회장이 4월17일 서정진 회장의 지분 매각과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회사 위한 통 큰 결단’ vs ‘먹튀’ 논란

서 회장은 공매도 세력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그는 지난 2001년 인천 송도에 바이오벤처를 설립했다. 당시 직원은 두 명이 전부였다. 초창기에는 메이저 제약사의 위탁 생산(CMO)으로 꾸려나갔다. 회사가 안정되자 바이오시밀러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관절염 치료제인 ‘레미케이드’와 유방암 치료제인 ‘허셉틴’을 잇달아 내놓았다. 2010년에는 싱가포르 국부 펀드인 테마섹으로부터 2079억원 규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 참여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셀트리온은 설립 8년 만에 시가총액 4조원대의 중견 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셀트리온의 매출과 당기순이익은 3502억원, 1744억원이다. 전년에 비해 25.5%, 3.9% 성장한 수치다. 영업이익이나 당기순이익이 매출의 50%에 육박했다. 그만큼 알차게 장사를 했다는 얘기다. 업종 자체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할 수 있다.

일부 소액주주는 서 회장을 ‘제2의 정주영’으로 부른다. 국내에서 불모지로 인식돼왔던 바이오시밀러 사업의 기틀을 잡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 초기 바이오시밀러가 차세대 수출 산업으로 지정된 데는 셀트리온의 공이 컸다. 셀트리온의 주가는 고공비행을 이어갔다. 지난 5년간 셀트리온의 주가는 1304%나 뛰었다. 이 과정에서 실적 논란이나 주가 거품 공방도 끊이지 않았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는 2011년 “셀트리온이 자회사인 셀트리온지에스티로부터 원재료를 사들이고, 셀트리온헬스케어를 통해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주주들에게 돌아가야 할 이익을 서정진 회장이 착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공매도 세력의 공격도 이때부터 본격화됐다. 서 회장이 밝힌 공매도 규모는 상당했다. 지난 2년여 동안 셀트리온에 대한 공매도는 412일(95.4%)이나 지속됐다. 일 거래량 대비 공매도 체결이 3% 이상인 날이 412일 중 189일(43.8%), 5% 이상인 날이 145일(33.6%)에 달했다. 10% 이상인 날도 62일(14.3%)이나 됐다. 공매도 세력에 대응하기 위해 사용한 돈이 수천억 원에 달한다. 그럼에도 공격은 계속됐고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회사나 주주들을 위해서라도 다국적 기업에게 매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서 회장은 주장한다. 그는 “저와 회사의 노력만으로는 탐욕스러운 투기 세력을 막아내는 데 역부족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회사 주변의 시각은 달랐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공매도 세력에 흔들린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다. 회사 실적이나 주가가 그만큼 부풀려져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롯데하이마트, 영원무역, 현대산업개발, 아모레퍼시픽의 공매도 비중도 현재 15~20%에 달한다. 셀트리온(6.29%)보다 2~3배 높은 수치다. 그럼에도 상당수 회사의 주가가 상승한 점을  이유로 꼽았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도 “공매도가 많다고 해서 회사의 내재 가치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면서 “서 회장이 공매도를 이유로 보유 지분을 매각한다는 논리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서 회장의 파격 선언 이면에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의심한다.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는 “한국에서 벤처가 살아남기 어렵다는 사실을 셀트리온이 다시 한번 증명해 보였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셀트리온을 노리는 큰손이 그동안 적지 않았다고 한다. 국내 재벌 기업들도 그동안 신성장 동력 확보 차원에서 바이오 사업 진출을 서둘렀다. 이들 기업 역시 셀트리온을 흔드는 외부 세력일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서 회장 혼자서 방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서 회장은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주식 매각을 선언했을 것이라고 정 대표는 분석했다. 그는 “셀트리온의 특허 등을 감안해도 적정 시가총액은 2조원을 넘지 않을 것이다. 4조원 규모의 회사를 서 회장 혼자 방어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셀트리온헬스케어 영업적자 확대 부담

한동안 잠잠하던 실적 논란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시사저널>이 셀트리온헬스케어의 감사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적자 폭이 더욱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셀트리온헬스케어는 셀트리온이 개발·생산한 제품을 판매하는 자회사다. 셀트리온은 2011년 사상 최대 실적을 냈지만 셀트리온헬스케어는 매출 316억원, 영업손실 73억원을 기록했다. 2012년 들어 영업적자는 더욱 확대됐다. 매출액은 338억원으로 2011년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영업손실은 전년에 비해 3배 이상인 223억원을 기록했다. 당기순손실 역시 전년 대비 두 배 이상인 246억원으로 나타났다. 재고 자산 증가가 실적 악화의 원인이었다. 창고에 쌓아둔 재고 규모는 2011년 2571억원에서 2012년 2982억원으로 늘어났다. 셀트리온이 셀트리온헬스케어에 재고 자산을 떠넘겨 많은 이익을 냈다는 지적이 나올 법하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최근 2년간 셀트리온헬스케어의 매출 원가는 200억원 안팎이다. 셀트리온이 직접 판매했다고 가정한다면 실제 셀트리온의 매출은 200억원 안팎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또한 서 회장이 회사를 매각하겠다고 밝힌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국세청이 최근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의 거래를 들여다보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셀트리온이 자회사를 통해 합법적인 분식회계를 했다는 소문이 시장에 파다하다”며 “주식 가치를 높이기 위해 자회사인 셀트리온헬스케어에 재고 자산을 떠넘겼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셀트리온측은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재고는 9개월치로 최소한의 물량”이라며 “입찰에 성공하면 그때부터 바로 약품을 납품해줘야 하기 때문에 재고를 쌓아놓은 것”이라고 밝혔다. 서 회장도 최근 “셀트리온헬스케어의 재고 문제는 일반적인 수준”이라고 해명했다.


인천시 연수구 셀트리온 본사. ⓒ 연합뉴스
서정진 회장의 지분 매각 발언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그가 매각 후에 얼마나 손에 쥘지가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서 회장이 회사를 팔면 차익을 얼마나 남길 것이냐는 점이다. 재계 전문 사이트인 재벌닷컴에 따르면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서 회장의 비상장 주식 차익은 1조8269억원에 달한다. 그는 현재 지주회사인 셀트리온홀딩스 주식 97.28%, 셀트리온지에스씨 주식 68.42%, 셀트리온헬스케어 주식 50.31%를 보유하고 있다. 지주회사인 셀트리온홀딩스의 주식 평가액이 1조2250억원으로 가장 높다. 셀트리온지에스씨와 셀트리온헬스케어의 평가액은 5321억원, 698억원이다.

지난해 말 이후 셀트리온 주가는 20% 이상 떨어졌다. 주가 하락 폭을 감안해도 서 회장의 지분 가치는 최소 1조5000억~1조6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는 “서 회장이 지분을 매각하게 되면 비상장 자회사 보유분까지 통째로 넘길 가능성이 크다. 향후 주가에 따라 매각 차익이 판가름 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서 회장이 지분을 팔고 나갈지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도 나온다. 그의 지분 매각 결정은 측근들도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로 전광석화처럼 이뤄졌다. 셀트리온 관계자는 “발표 전날까지도 지분 매각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서 회장이) 마음고생을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서 회장이 공매도 세력과 금융 당국에 일종의 ‘무력시위’를 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서 회장도 최근 지분 매각 번복 가능성을 시사했다. 4월16일까지만 해도 “지분 매각을 번복할 가능성은 제로다”라고 말했다. 기자들의 계속되는 질문에도 ‘불가’ 입장을 되풀이했다. 그런데 불과 이틀 만에 상황이 바뀌었다. 그는 4월18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나와 “지분 매각을 번복할 자격은 없다”면서도 “불법적인 공매도가 확인되고 주주와 국민이 허락할 경우 번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과 금융계의 공매도 문제를 사회적으로 노출시키기 위해 긴급 SOS를 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사태가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서 회장이 전격적으로 지분 매각을 철회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