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윤혜원을 죽였나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3.04.17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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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무기징역-무죄’ 낙지 살인 사건 10대 의혹 집중 추적

2010년 4월19일 인천의 한 모텔에서 윤혜원씨(당시 22세)가 낙지를 먹다 사망했다. 경찰은 단순 질식사로 보고 내사 종결했지만 4개월 후 윤씨가 생명보험에 가입했고, 그 수혜자가 남자친구였던 김두칠(가명·32)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가족들의 요청으로 재수사가 이뤄졌다.

검찰은 김씨를 살인 혐의로 재판에 회부하면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잔혹한 범죄”라며 사형을 구형했다. 1심 재판부는 살인죄를 인정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김씨가 법(法)망을 빠져나가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김씨는 무죄를 주장하며 항소했고, 4월5일 열린 항소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시신을 부검하지 않고 화장한 뒤여서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김씨는 ‘사형 구형-무기징역-무죄’에서 보여지듯 지옥과 천당을 오갔다.

그런데 이 사건은 항소심 재판부의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시사저널>은 검찰의 공소장, 1심 판결문, 항소심 판결문 등을 토대로 사건 현장과 피해자 유족, 주변 인물 등을 탐문해 낙지 살인 사건의 ‘10대 의혹’을 집중 추적했다.

피의자 김두칠이 낙지를 샀던 ㄷ횟집에서 주인이 똑같은 크기의 낙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왼쪽 아래 작은 사진은 피해자 고 윤혜원씨. ⓒ 고 윤혜원씨 유족 제공
① 모텔에 왜 통낙지 4마리를 사갔나?

2010년 4월18일 오후 김두칠과 윤혜원은 인천 영종도에서 데이트를 한 후 함께 영화를 봤다. 같은 날 오후 11시20분쯤 김두칠은 인천 남구 주안동에 있는 ㅈ모텔에 차를 주차한 후 객실을 예약했다. 두 사람은 모텔 근처에 있는 ㅇ주점에서 술을 마셨다. 그때 피의자 김씨는 애인 윤씨에게 “지는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게임을 하자”고 제안했다. 윤씨의 평소 주량은 소주 반 병인데 이날 ㅇ주점에서 3병을 마셨다.

ㅇ주점에서 나온 두 사람은 모텔에 들어가기 전 맞은편에 있는 ㄷ횟집에 들렀다. 검찰 공소장을 보면 ‘김두칠이 윤혜원을 만취하도록 유도하고, 이후 모텔로 돌아가 산낙지를 안주 삼아 술을 더 마시자고 유인했다’고 되어 있다.

김두칠과 윤혜원은 ㄷ횟집에 들어갔다. 횟집 주인이 두 마리에 2만원이라고 하자 김씨는 “3만원어치를 주되 두 마리는 썰어서 달라”고 했다. 여기에 횟집 주인이 1마리를 덤으로 줘 낙지는 4마리가 됐다. 김씨는 “두 마리는 썰어서 포장 용기에 넣고, 두 마리는 산 채로 비닐봉지에 넣어 해수를 담아달라”고 주문했다. 이때 피해자 윤씨는 술에 취해 카운터에 기대어 서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김두칠은 왜 술안주로 산낙지를 사면서 세발낙지가 아닌 연포탕이나 해물탕에 들어가는 통낙지를 샀을까. 그것도 4마리 중 2마리는 자르지도 않았다. 건장한 성인도 통낙지는 잘라서 먹기에 부담스러운 크기다.

2010년 4월 낙지 살인 사건이 일어난 인천의 ㅈ모텔과 ㄷ횟집, 피해자 윤씨가 처음 입원했던 인천 사랑병원. ⓒ 시사저널 이종현
② 모텔에서 병원까지 48초 거리였다

횟집에서 산낙지를 산 김두칠은 인근에 있는 편의점에서 소주 1병과 맥주 1병을 구입했다. 두 사람은 ㅈ모텔 702호실로 들어간 후 술을 마셨다. 이때가 19일 오전 3시쯤이다. 4시20분쯤 윤씨의 호흡과 맥박이 정지되자 김두칠은 객실 내 전화로 프론트에 있던 종업원 장 아무개씨에게 “여자친구가 낙지를 먹다가 숨을 쉬지 않는다”며 119에 신고해줄 것을 요청했다. 종업원 장씨는 4시24분쯤 119에 신고했다. 이때 피의자 김씨가 프론트에 내려왔고, 두 사람은 함께 객실로 올라갔다.

여기서 김두칠의 행동이 이상하다. 애인 윤씨가 숨을 못 쉬고 기절해 있는 급박한 상황인데도 휴대전화를 이용해 119에 구조 요청을 하지 않았다. 김씨는 프론트에 전화해 119에 신고해달라고 했고, 또 7층에서 1층 프론트까지 오르락내리락했다. 이로 인해 1초가 다급한 순간에 14분이나 지체됐고, 윤씨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기자는 4월10일 오후 사건이 일어난 ㅈ모텔과 ㄷ횟집을 찾아갔다. 그 사이 횟집은 감자탕집으로 바뀌었고, 모텔도 상호를 바꾼 상태였다. 모텔과 횟집이 있던 감자탕집 사이의 거리는 직선으로 10m 정도였다.

윤씨가 처음 실려 갔던 사랑병원은 말 그대로 모텔 코앞에 있었다. 기자가 직접 거리를 재보니 모텔 입구에서 사랑병원 입구까지는 보통 걸음으로 48초가 걸렸다. 김두칠은 173cm 정도의 키에 통통한 편이었다. 피해자 윤씨는 키 157cm, 몸무게 50kg가량이었다.

김씨가 처음부터 윤씨를 안거나 업고 사랑병원으로 뛰었다면 아무리 길게 잡아도 2분이면 충분했다. 그런데도 김씨는 프론트에 전화해 119에 신고해달라고 요청했고, 7층에서 1층까지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면서 시간을 지체했다.

그리고 모텔 종업원이 “근처에 사랑병원이 있으니 그곳으로 피해자를 옮기자”고 한 후에야 애인 윤씨를 업고 나왔으며, 모텔과 병원 중간에서 119 대원들을 만났다. 피의자 김씨와 애인 윤씨는 평소 병원이 있던 골목에서 자주 데이트를 했다. 때문에 김씨는 모텔 근처에 병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렇게 시간을 지체한 후 윤씨가 사랑병원 응급실에 실려 간 시간은 4시34분쯤이었다. 이때는 이미 회생 불능이었다. 주치의는 윤씨의 뇌 반 이상이 이미 쓸 수 없는 상태였고, 질식 시간이 15분 정도는 지난 것 같다는 소견을 냈다. 윤씨가 살 수 있는 확률도 2%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검찰과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모텔 종업원인) 장○○에게 119 신고를 부탁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피해자의 호흡과 맥박이 정지할 때까지 시간을 끄는 동시에 목격자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의심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라고 봤다. 윤씨 아버지는 “사랑병원에 갔을 때는 뇌 자체가 손상돼서 뇌 전문 병동이 있는 곳으로 옮겨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가천길병원으로 옮긴 것이다”라고 말했다. 윤씨는 결국 사고가 난 지 16일 만인 5월5일 오후 9시쯤 무산소성 뇌병증 등으로 사망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김두칠이 애인 윤씨가 질식한 것을 발견하고 신속하게 구호 조치를 취한 것으로 봤다. 이로 인해 윤씨가 15일 동안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모순이 생긴다. 만약 피의자 김두칠이 애인 윤씨가 호흡 곤란을 일으켜 기절했을 때 휴대전화를 이용해 119에 신고했거나, 윤씨를 안거나 업고 바로 병원으로 뛰었다면 살았을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③ 피해자는 치아질환에 낙지를 싫어했다

피해자 윤혜원씨는 ‘치아우식증’을 앓고 있었다. 아버지 윤성호씨는 “우리 애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울산에 내려왔는데 치아를 보니 성한 것이 없었다. 어린 것이 돈 들어갈 게 걱정돼서 아무 말도 않고 끙끙 앓고 있었던 것이다. 치과에 가서 견적을 내보니 6000만원이 나왔다”고 말했다. 혜원씨는 죽기 전까지 치아 치료를 받지 못했다. 아버지 윤씨는 치아보험을 들기 위해 20세 때 찍은 사진이라며 딸의 치아 사진을 공개했다.

실제 윤씨의 치아 사진을 보면 앞니 네 개 정도만 정상이고, 나머지는 거의 다 마모된 상태였다. 윤씨는 또 낙지를 좋아하지 않았고 잘 먹지도 못했다. 어쩌다 고기를 먹어도 성인이 먹는 크기의 3분의 1 정도 되는 크기로 잘라 먹었고, 질긴 음식은 반사적으로 피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김씨는 왜 애인 윤씨가 좋아하지 않는 산낙지, 그것도 통낙지를 샀는지 의문이다.

④ 윤씨 살해범은 낙지인가, 김씨인가?

피의자인 김두칠은 “윤혜원이 산낙지를 먹다가 질식사한 것이지, 살해한 사실이 없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과 1심 재판부는 김씨가 다른 방법으로 살해한 후 낙지에 의한 질식사로 거짓말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ㅈ모텔 종업원 장씨는 경찰에서 “프론트에 내려온 김두칠과 함께 객실에 올라가 보니 여자는 출입구 쪽에서 의식을 잃고 있었고, 평온한 표정으로 잠을 자듯 하늘을 향해 반듯이 누워 있었다”고 진술했다.

사건 현장인 객실에는 피해자 윤씨로부터 2m 정도 떨어진 안쪽에 술잔과 잘려진 낙지가 들어 있는 1회용 용기, 통낙지 한 마리가 담긴 검은 비닐봉지, 작은 수건이 있었다. 또 피해자 근처에는 큰 수건과 통낙지 한 마리가 떨어져 있었는데, 술자리는 전혀 흐트러지지 않은 상태였다.

검찰과 1심 재판부는 윤씨를 죽인 원인이 낙지가 아니라고 봤다. 윤씨가 산낙지를 먹다 질식에 이를 정도로 호흡 곤란을 느꼈다면 고통으로 괴로워하며 강하게 몸부림쳤을 것이고, 피해자가 누워 있던 곳이 술자리와 상당히 떨어진 출입구 쪽인 점도 설명하기 어렵다고 했다.

또 피의자 김씨가 여러 번 말을 바꾼 것도 불리하게 작용했다. 그는 모텔 종업원 장씨가 보는 앞에서 자신이 윤씨의 입안에 있는 산낙지를 빼냈다거나, 병원 의료진이 윤씨의 입안에서 산낙지를 빼낸 것을 봤다는 주장을 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윤혜원이 먹은 산낙지에 관한 진술에도 일관성이 없다. 김두칠은 주변 인물들에게 처음에는 “윤혜원이 통낙지를 먹다가 질식사했다”고 했다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통낙지에서 잘라낸 낙지 다리를 먹다가 질식사했다”고 말을 바꿨다. 사람에 따라 말이 달라지는 등 일관성이 없었다. 따라서 검찰과 1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만취해 저항할 수 없는 상태가 되자 불상의 방법으로 피해자의 코와 입을 막아 피해자로 하여금 숨을 쉬지 못하게 한 후 질식케 해 뇌사 상태에 빠뜨리게 하는 방법으로 피해자를 살해했다. 코와 입을 막은 흔적 등이 남지 않은 것은 현장에서 발견된 부드러운 타월 등과 같은 것으로 코와 입을 막았기 때문으로 보인다”는 결론을 내렸다.

항소심 재판부는 달랐다. “질식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지면 얼굴 표정이 펴지기 때문에 편하게 누워 있는 것처럼 보이며, 술자리 바깥쪽에 앉아 있었다면 질식해 몸부림을 쳤더라도 술자리가 흐트러지지 않을 수 있고, 당시 피의자 김씨가 극도로 당황해 낙지를 꺼낸 정황에 대한 진술이 바뀔 수 있다”고 봤다. 또 “현장에서 발견된 낙지 머리가 4.3~4.8cm로 입에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이고, 피해자 윤씨가 동생에게 낙지를 먹으러 가자고 제안한 적이 있는 데다 현장에 윤씨의 젓가락이 놓여 있어 윤씨도 낙지를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피해자 윤씨의 사망 원인에 대해서는 법의학자들의 진술도 엇갈리고 있다. 윤씨의 어머니는 “지원(피해자 동생)이에게 낙지를 먹으러 가자고 한 것은 지원이가 낙지를 좋아해서 한 것이다. 동생에게 낙지집에 가자고 했다고 낙지를 좋아한다고 보는 것은 억지다”라고 말했다.

현장에 젓가락이 놓여 있던 것을 두고 윤씨가 낙지를 먹었다고 해석하는 것에도 무리가 있어 보인다. 김씨가 젓가락을 놓았을 수도 있고, 또 낙지를 먹지 않았더라도 젓가락의 포장을 뜯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어서다.

⑤ 애인 윤씨 명의로 2억원 생명보험 들었나?

피의자 김두칠은 애인 윤혜원으로 하여금 생명보험에 들게 한 후 수익자를 자신의 이름으로 변경해 보험금을 타서 썼다. 이로 인해 ‘보험금을 노린 계획 살인’이라는 의심을 샀다. 검찰과 1심 재판부도 여기에 무게를 뒀다.

김두칠에 의해 피해자 윤씨가 동부화재보험에 가입한 것은 2010년 3월25일이다. 보험 모집 일을 하던 고모 김 아무개씨를 통해 보험대리점 직원 박 아무개씨를 소개받아 보험 계약을 체결했다. 피의자 김씨는 3월 말쯤 고모 김씨에게 보험 수익자를 기존의 ‘법정상속인’에서 자신으로 변경해줄 것을 요청했다.

4월 초순 애인 윤씨를 속여 수익자를 자신으로 변경하고, 윤씨에게 서명·날인하도록 했다. 이후 김두칠은 위조한 애인 윤씨 명의의 계약 변경 신청서를 보험대리점 직원 박씨에게 건네줬다. 피의자 김씨는 사건 이틀 후인 2010년 4월21일 신한은행에 자신 명의의 계좌를 개설하고, 29일 그 계좌에서 2회 보험금 13만원을 송금하는 방식으로 납부했다.

이에 대해 검찰과 1심 재판부는 “피고인(김두칠)은 권리 의무에 관한 윤혜원 명의의 보험 계약 변경 신청서를 위조하고 이를 행사한 것”으로 봤다. 김두칠은 또 애인 윤씨 가족이 보험금과 관련해 묻자 “보험료를 내지 않아 실효됐다”거나 “5000만원짜리 보험을 들어놓았는데 수익자를 피해자의 동생 윤지원으로 변경하겠다”는 등의 거짓말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고는 보험금을 지급받은 후 이를 애인 윤씨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연락을 끊었다.

검찰과 1심 재판부는 22세의 젊은 나이인 피해자 윤씨가 치아질환 외에는 특별한 병이 없는데도 자신의 형편에 부담이 큰 월 13만원의 보험료를 납부하면서까지 사망 보장이 큰 보험을 들 이유가 없다고 봤다. 기자가 알아보니 윤씨는 하루 3~4시간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월 50만원 정도를 벌었다. 또 울산에 있는 아버지가 매월 10만~15만원을 생활비로 보내줬다. 이를 기준으로 보면 윤씨의 한 달 수입은 많아야 65만원이다. 월수입의 20%를 보험료로 내야 하는데 상당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상해나 사망을 위한 것은 1만4200원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암 등 질병 보장 금액인 점과 이 사건 이전에 피해자가 사고로 사망할 경우 피고인이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는지 여부, 수령할 경우 그 금액이 얼마인지 등에 관해 확실히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춰 피고인과 피해자가 피해자에게 암 등의 질병이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 보험에 가입했다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봤다.

⑥ 김두칠은 보험금을 어디에 썼나?

피의자 김두칠은 애인 윤혜원이 사망한 후인 2010년 5월13일 보험금을 청구해 7월23일 자신 명의의 신한은행 계좌로 2억51만원을 송금받았다. 보험금을 받기 전에 김씨는 또 다른 연인 김윤선(가명)과 김명순(가명) 등으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채무 변제를 독촉받았고 상당히 궁핍했다. 김두칠은 또 채무 독촉을 받자 ‘돈이 나올 곳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검찰과 1심 재판부는 이런 상황도 김씨가 살인을 계획한 이유로 보았다.

보험금을 수령한 후 김씨는 채무를 변제하고 전세금을 지급하는 한편, 연인 관계이던 김윤선·김명순에게 별다른 이유 없이 돈을 주거나 친형에게 승용차를 사주기도 했다. 검찰은 피의자 김씨가 짧은 시간 내에 대부분의 보험금을 소비했다고 밝혔다.

김두칠은 또 보험금을 탄 후 약혼녀라는 김명순 그리고 그 가족들과 괌으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5개월쯤 후에는 승용차도 SM5로 바꿨다.

윤씨 가족은 기자에게 충격적인 말을 전했다. 피해자 윤씨 어머니는 “우리 애가 죽은 후 카카오톡에 있는 김두칠의 사진을 보고 울화통이 터졌다. 글쎄 침대 시트로 보이는 곳에 보험금으로 받은 수표를 놓고 사진을 찍어서 올려놓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윤씨 어머니를 통해 입수한 김두칠의 전화번호로 돼 있는 카카오톡 이미지에서는 보험금으로 추정되는 100만원권 수표와 10만원권 수표를 침대 시트 위에 펴놓고 촬영해서 올려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애인의 죽음을 슬퍼하기보다는 보험금으로 받은 돈을 촬영해서 자랑 삼아 올려놓는 여유를 보인 것이다.

⑦겉과 속이 달랐던 피의자 김두칠

김두칠과 피해자 윤혜원은 일곱 살 차이다. 윤혜원은 김두칠을 사랑했지만, 그의 행동은 위선적이었다. 피해자 윤혜원과 사귀면서 동시에 두 명의 여자와 만난 것이 그렇다.

김두칠은 사고가 있던 날 윤혜원이 중환자실에 입원하자 의료진에게 눈물을 흘리면서 “혜원이를 꼭 살려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피해자 윤씨 가족에게는 “혜원이가 잘못될 일은 절대 없다. 국내에서 치료가 힘들면 외국에라도 데려가서 꼭 고치겠다”고 했다. 또 윤씨의 아버지에게는 “혜원이가 잘못되면 영혼결혼식을 하고 싶다”는 말도 했다. 윤씨 가족은 사경을 헤매고 있는 딸 앞에서 울부짖고 오열하는 김씨의 모습을 보고 그를 불쌍히 여겼다.

그게 진심이었을까. 김두칠은 애인 윤씨가 병원에 입원해 회복되지 못한 채 사경을 헤매고 있는 동안에 또 다른 애인 김명순과 만나면서 그 가족들과 함께 삼성산으로 등산을 갔다. 보험금을 수령한 후에는 윤씨 가족과 연락을 끊었고, 김명순 등과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피해자 가족들 앞에서 보여준 모습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보인 것이다.

⑧ 사망 4개월 만에 재수사 요청한 이유

피해자 윤혜원씨는 2010년 5월5일 오후 9시쯤 사망했다. 당시 윤씨 가족은 사망 이유에 대해 별다른 의심을 품지 않았다. 경찰 역시 당초 이 사건을 낙지를 먹다 기도가 막혀 숨진 단순 변사 사건으로 보고 내사 종결했다. 이런 이유로 부검도 실시하지 않았다. 윤씨의 장례는 인천 적십자병원에서 치렀고, 5월7일 시신을 화장해서 유해는 인천 앞바다에 뿌렸다. 윤씨의 위패는 울산의 한 사찰에 봉안했다.

그렇게 윤씨의 죽음은 묻혀갔다. 그러다 49제를 앞둔 2010년 6월 중순쯤 아버지 윤성호씨에게 보험증권이 배송됐다. 거기에는 보험금이 2억원으로 나와 있었고, 보험금 수령자가 다름 아닌 김두칠이란 것을 알게 됐다.

윤씨가 사고를 당한 이틀 뒤 김두칠은 자기 이름으로 통장을 개설했고 보험금도 수납했다. 그때는 윤씨가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였다.

그때부터 피해자 윤씨 부모는 딸의 죽음에 얽힌 의혹들을 풀기 위해 증거들을 모으고 피의자 김씨와 딸의 사고 전후 행적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윤씨가 사망한 지 4개월 만인 2010년 9월 그동안 모은 증거들을 가지고 경찰에 재수사를 요청했다.

⑨ 거짓말탐지기 조사 거부한 이유는?

피의자 김두칠은 경찰과 검찰 수사 과정에서 거짓말탐지기와 최면수사를 거부했다. 기계를 믿지 못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지난해 12월24일 항소심 두 번째 공판이 열렸다. 이때 성기문 부장판사(서울고법 형사4부)는 김두칠에게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요청했으나 김씨는 또다시 거부했다. 재판장인 성 판사가 “그동안 재판에서 거짓말이 진실로 나온 적은 있지만, 진실이 거짓말로 나온 적은 없었다. 여자친구를 살해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억울해하는데 그것이 진실이라면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재차 요구했지만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김씨에 대한 거짓말탐지기 조사는 한 번도 이뤄지지 못했다.

⑩ 수사 검사·항소심 부장판사 모두 교체

지난해 10월11일 인천지법 형사12부(박이규 부장판사)는 피의자 김두칠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김씨는 이에 불복해 곧바로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은 서울고법 형사4부에 배당됐다. 최초 항소심 공판은 성기문 부장판사가 맡았다. 하지만 2월 법원 정기 인사 때 성기문 판사가 다른 곳으로 발령 나면서 문용선 부장판사로 변경됐다. 또 이 사건을 담당했던 인천지검 박영빈 검사도 같은 달 검찰 인사를 통해 감사원으로 파견됐다. 이로써 수사 검사와 항소심 판사가 모두 교체됐다.

문용선 부장판사로 교체된 후 첫 공판은 3월11일에 있었으나 피의자측 설명을 듣는 정도로 끝났다고 한다. 14일 후인 3월25일 2차 공판이 열렸는데, 이틀 후에 피해자 윤씨 어머니는 서울고등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그는 “판사님이 우리 애 이름도 두 차례나 헷갈리는 등 사건을 잘 모르시는 것 같아서 편지지 6장 분량에 직접 손 글씨로 써서 탄원서를 냈다”고 말했다. 4월5일 항소심 선고에서 법원은 피의자 김두칠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이에 항소함으로써 결국 낙지 사건에 대한 최종 결론은 대법원에서 날 예정이다. 


불우한 환경 속 간호사 꿈꿨던 윤혜원 

고 윤혜원씨는 1988년 6월 인천에서 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아버지 윤성호씨(50)는 남동공단에서 작은 사업체를 운영했다. 단란하던 가정은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산산이 부서졌다. 자금난을 견디지 못한 아버지 윤씨의 사업체는 부도가 났고, 혜원씨 가족에게도 불운이 찾아들었다.

아버지 윤씨는 인천에서 생계거리를 찾았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02년에 울산에 새로운 직장을 구해 부부가 함께 내려갔다. 당시 중학생과 초등학생이던 혜원씨 자매는 인천의 외할머니 집에 맡겨졌다. 자매는 부모와 약 3년을 떨어져서 지냈다. 혜원씨는 중학교를 졸업한 후 울산으로 내려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때 동생 지원씨도 함께 내려갔다.

고교를 졸업한 후에는 가정 형편 탓에 대학에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울산에 있는 대형 마트에서 경리로 7~8개월간 일했다. 안정된 직장이 아니어서 늘 미래가 불안했다. 울산에서 직장을 구하자니 마땅치가 않았다. 그래서 2009년 자매는 다시 인천 외할머니 집으로 올라왔다. 혜원씨는 간호사가 되고 싶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낮에는 간호학원에 다녔고, 밤에는 편의점에서 3~4시간 정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피해자 윤혜원에게 김두칠을 소개한 사람은 친한 친구였다. 윤씨 가족에 따르면 혜원씨 친구가 먼저 김두칠의 형을 사귀고 있었다. 친구가 데이트할 때 혜원씨도 몇 번 따라 나갔다. 그때 김두칠의 형이 “내 동생이 있는데 한번 만나보지 않을래”라며 동생을 소개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연인이 됐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혜원씨 친구는 김두칠의 형과 얼마 후 헤어졌다. 그 이유에 대해 윤씨 어머니는 “돈 문제 때문에 자기를 신용불량자로 만들어 헤어졌다고 한다. 법원에도 증인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혜원씨와 김두칠은 사고가 나기 전까지 약 1년 2개월간 교제했다. 김씨가 또 다른 여자 두 명과 교제하는 줄도 모르고 그를 믿었다. 그 사이 헤어졌다 만났다를 반복했지만 김두칠의 “잘해주겠다”는 말을 믿고 다시 만났다가 결국 유명을 달리했다.

 

 



피의자 김두칠과 피해자 윤혜원이 함께 찍은 스티커 사진. ⓒ 고 윤혜원씨 유족 제공
낙지 살인 사건 피의자인 김두칠은 누구일까. 기자가 김씨의 이력을 추적해보니 전과가 화려했다. 그는 특수강도 등의 혐의로 경찰서를 들락거렸는데 전과 9범이다.

21세 때인 2002년에 절도·강도상해·특수강도 등을 저질렀고, 같은 해 7월9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징역 3년6월을 선고받았다. 낙지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 약 2년 전인 2008년 10월1일에는 수원지방법원에서 강도 예비·사기죄로 징역 6월을 선고받고, 같은 해 10월20일까지 수원구치소에서 복역했다.

김씨는 2010년 1월부터 채무 불이행자(신용불량자)로 신용정보사에 등재됐다. 그 후 일정한 직업과 소득 없이 가끔 유리창을 닦는 생활을 하면서 지냈다. 김씨는 피해자 윤혜원과 사귀면서 두 명의 여성을 동시에 만났다.

그의 첫 번째 애인은 2008년 3월에 만난 김윤선씨(가명·28)다. 김두칠은 애인 김씨에게 돈을 빌려 썼다. 2009년 3월쯤 애인 김씨에게 보험 약관대출로 100만원을 대출받게 한 후 이 돈을 빌렸고, 같은 해 여름에는 김씨의 국민은행 대출금 500만원을 다시 빌렸다.

같은 시기에 싼타페 승용차를 구입하기 위해 애인 김씨 명의로 솔로몬저축은행에서 1000만원을 대출받은 후 이 돈을 빌려 썼다. 그러니까 김두칠은 애인 김윤선에게 총 1600만원을 빌려 차량 구입 대금과 생활비 등으로 사용한 셈이다.

두 번째로 만난 애인이 바로 윤혜원이다. 두 사람은 2009년 2월에 만나 사귀었다. 물론 김두칠은 먼저 만난 김윤선과도 계속 연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2010년 2월 말에는 김명순(가명·27)을 새로 사귀기 시작했다. 김두칠은 김명순에게도 김윤선과 같은 방식으로 돈을 빌려 썼다. 2010년 3월23일 애인 김씨 명의로 솔로몬저축은행에서 490만원을 대출받게 한 후 빌렸고, 두 사람은 이틀 뒤 2박3일간 제주 여행을 다녀왔다.

같은 해 4월1일에는 김씨 명의로 솔로몬저축은행에서 700만원을 대출받은 후 이를 썼다. 세 번째 애인 김명순에게는 도합 1190만원을 빌려 썼다. 또 당구장 주인인 정 아무개씨에게 500만원을 빌리는 등 일정한 직업 없이 생활하면서 애인과 주위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 생활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김두칠은 애인 윤혜원의 사망 보험금을 수령한 후에도 절도 행각을 벌였다. 지난 항소심 재판에서 그는 애인 살해와 무관한 절도 혐의로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았다. 사건 내막은 이렇다. 2011년 7월8일 김두칠은 자신 소유의 벤츠 E320 승용차를 맹 아무개씨에게 1100만원에 양도했다.

얼마 후 김두칠은 이 벤츠 승용차를 훔쳐 차량 시가 1550만원, 승용차 안에 있던 현금 20만원과 지갑과 가방 등을 절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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