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에 10만원 쓰면서 2만원짜리 교재 안 산다”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3.04.03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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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 인터뷰 “성접대 사건은 ‘낮에는 순사, 밤에는 야수’인 사회 이중성 보여줘”

마광수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62)는 3월25일 큰 홍역을 치렀다. 자신이 맡은 강의 수강생들에게 교재를 산 후 영수증을 리포트에 첨부하도록 한 것이 알려지면서 ‘강매 논란’에 휩싸였다. 일부 학생은 “교수가 책 장사를 한다”고 비난했고, 이를 한 언론에서 보도하면서 일파만파 파장을 불러왔다. 주요 포털 사이트에서 ‘마광수 강매 논란’이 상위 검색어에 오를 정도로 폭발적인 관심을 보였다.

기자는 이날 오후 마 교수에게 전화해서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는 다소 흥분한 목소리로 “내 이야기는 전혀 듣지 않고, 언론이 일부 학생의 말을 일방적으로 보도하고 있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기자는 3월26일 오후 2시 서울 용산구 이촌동에 있는 마 교수의 집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서재로 취재진을 안내했다. 여느 대학교수 서재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문학 서적이 벽면에 있는 책장에 빼곡했다. 책장에 꽂히지 못한 책은 두세 권씩 겹쳐져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책장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마 교수의 평소 문학적 취향으로 볼 때 ‘야한 그림’ 한 장 정도는 있을 듯싶었으나, 이런 생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책상 위에는 접시만 한 재떨이가 있었는데, 마음고생이 심했던지 담배꽁초가 수북했다. 그는 인터뷰 도중에도 손에서 담배를 떼지 못했다. 하루에 얼마나 피우는지 물었더니 “세 갑”이라고 답했다. 완전 골초다. 마 교수는 때론 차분하게, 때론 큰 한숨을 내쉬며 생각을 밝혔다.

 

ⓒ 시사저널 최준필
교재 강매 논란의 진실은 무엇인가?

그저께(3월24일) 저녁에 조선일보 기자에게 전화가 왔다. ‘학생들에게 교재를 사게 한 후 영수증을 첨부하라고 했느냐’고 묻고는 나한테 해명 기회도 안 주고 전화를 끊었다. 순간 기분이 나빴다. 그 후 MBC 라디오에서도 전화가 왔는데 비슷한 질문을 했다. 너무 화가 나서 ‘선생이 학생들에게 교재를 사라는 것이 뭐가 잘못인가’라고 고함을 질렀다. (조선일보나 MBC는 전후 사정을 들어보지 않고) 내가 교재를 강매한 것으로 몰아갔다. 몇몇 학생의 주장을 언론이 다수의 생각으로 확대 해석한 것이다.

교재를 팔기 위해 책을 사라고 했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나는 두 개의 교양과목을 강의하고 있는데, 수강생이 600명 정도 된다. 이 중 교재를 산 학생이 50명밖에 안 된다. 내 수업은 교재를 읽어가면서 하는 ‘강독 수업’이다. 매번 ‘자네 읽어봐’ ‘자네 읽어봐’ 하고 학생들을 지목하는데, 그때마다 교재가 없다. 그래서 번번이 내가 읽어야 한다. 지난 학기까지는 참았는데 달라진 게 없었다. 교재 없이 수업을 받는 학생들을 더는 두고 볼 수가 없어서 교재를 산 후 영수증을 붙이라고 했다. 일방적으로 교재를 사라고 한 것도 아니다. 수강계획서에 교재를 사야 한다고 공지한 후 수강 신청을 받았다. 선택과목이기 때문에 이런 내용을 다 알면서 다른 소리를 하고 있다.

책값은 얼마나 되는가?

교재로 사용하는 책과 e북을 합쳐 1만6000원이다. 학생들은 그것도 아까워서 사지 않거나 빌려본다. 전쟁에 나가는 군인이 총을 안 가지고 나가는 것과 같다. (서울) 강남에 가면 커피 한 잔에 만원이다. 데이트 비용으로 10만원 쓴다는 애들이 교재 사는 데 2만원을 안 쓴다. 교재 이외의 다른 책을 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수업하는 데 꼭 필요한 교재를 사라고 했는데, 이런 나를 황당하다고 하는 것은 교육을 포기하라는 것과 같다. 교수가 학생들에게 교재를 사라고 한 것이 정말 잘못한 것인지 묻고 싶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가짜 영수증 붙이는 법’이 떠돌고 있다고 한다.

나도 이번에 그런 것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나는 학생들에게 ‘자유를 줄 테니까 자율적으로 하라’며 출석도 잘 안 부른다. 교양과목인데 교재 살 생각은 안 하고, 나 보는 데서 출석 체크하고 바로 도망간다. 스펙 쌓기라면서 학점에 연연하면서도 성적 정정 기간만 되면 오만 가지 거짓말과 아부를 한다. 0.1점 모자라서 장학금을 못 탄다고 읍소하거나, 심지어 협박하는 일도 있다.

강의실 수업 분위기는 어떤가?

엉망이다. 스마트폰, 엄지족들 때문에. 수업도 안 듣고, 문자 날리고 다른 대학과 똑같다.

이번 논란과 관련해 학교측 반응은 어땠는가?

보직 교수에게 전화가 왔는데 ‘앞으로 조심해달라’고 하더라. ‘내가 잘못한 것이 무엇이냐’고 좀 흥분하면서 따졌다. 공부하는 학생이 교재를 사는 것은 학생의 본분이다. 돈이 없으면 유흥비라도 줄여서 교재를 사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이런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내가 ‘책 장사’를 하는 것처럼 비쳐 억울하다.

앞으로 ‘수업 관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내 강의는 수강생이 많아서 조교 5명이 배당된다. 학생들이 ‘가짜 영수증 붙이는 방법론’을 제시했으니 앞으로는 교재가 있는지 없는지 조교를 동원해 철저하게 조사하겠다. 단, 충분히 교재를 구비할 기회를 준 후에 검사하겠다. 또 다음 학기부터는 수강생도 정원을 초과해서 받지 않겠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학기를 포함해서 3년 반 정도 남았다. <즐거운 사라>로 인해 구속된 전력 때문에 정년 퇴임을 해도 연금을 받지 못한다. 90세 넘은 노모를 내가 모시고 있는데 살길이 막막하다. 간병인 월급만 250만원이 들어간다. 솔직히 요즘 낙이 없다. 책이 잘 팔리는 것도 아니고, 학교에서는 국문과 교수들에게 왕따 신세다. 그러니 줄담배를 피울 수밖에 없다.

내가 항상 말해왔던 것은, 성과 관련해 행위는 엄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즐거운 사라>는 상상을 통한 문학 작품이다. 그것을 잡아간 것이다. 그 당시에는 남자가 여성 편력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는데, 이것 때문에 늙은 뒤 노후 걱정까지 해야 한다.

학교 전공 교수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왕따인가?

그렇다. 나는 국문과에서도 최고참인데도 왕따 신세다. 이것 때문에 정신병원에 입원도 했고, 3년 반이나 학교를 휴직했다. 국문과 교수 반 이상이 내 제자이고, 실세라는 교수도 내가 박사 논문 심사까지 했다. 국문과로 소속은 돼 있지만 전공과목까지 박탈당하고 지금은 교양과목만 준다. (국문과 교수들과) 마주치기도 싫다. 전공을 안 가르치고 대학원에서 수업을 안 하니까 제자를 못 키운다. 옛날 조선식 용어로 말하면 ‘출척(黜陟)’이다. 걔들(나를 왕따시킨 교수들)이 미운 것이 아니라, 무섭다.

‘성 개방’을 꾸준히 주장했다. 지금도 변함없는가?

나는 25년 전부터 ‘쓰레기통을 벗겨야 햇빛이 비친다’고 떠들었다. 성에 대한 담론이 안 이뤄져서 그랬다. 문단에서도 마찬가지인데 한마디로 보신주의다. 겉으로는 성에 대해 결백한 척하면서도 이면에서는 성을 탐닉한다. 즉, 우리나라는 성에 대해 가장 엄한 나라이면서 한편으로는 성을 가장 밝히는 나라다.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성을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사회 지도층 성접대 동영상으로 나라가 시끄러운데 어떻게 보는가?

그동안 내가 말해왔던 ‘사회의 이중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낮에는 순사(일제 강점기에 둔 경찰의 가장 낮은 계급), 밤에는 야수’라는 말이 딱 떨어진다.

마 교수의 이념적인 성향이 궁금하다.

당연히 진보다. 단, 성에 대한 개방을 주장하는 서구적인 진보에 속한다.

향후 집필 계획은?

최근 자전적 에세이인 <나의 이력서>를 펴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내 일생을 담았다. 곧 <상상놀이>라는 단편집도 나온다. 이 책까지 안 팔리면 출판사에서 더는 책을 내주지 못하겠다고 하는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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