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가는 길에 방해꾼 돼선 안 돼”
  • 이승욱 기자 (gun74@sisapress.com)
  • 승인 2013.03.27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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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노 대리인 낙인’ 거부한 김부겸 전 민주당 최고위원

그의 발언은 거침없고 냉철했다. 김부겸 전 민주당 최고위원은 3월20일 오후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민주당이 겪고 있는 위기 상황과 원인을 예리하게 파고들어 가감 없이 짚어냈다. 그는 “지금 국민은 민주당을 향해 어떤 반응도 하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다”면서 “아무도 민주당을 믿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서울 노원병 재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전 교수와 관련해서는 “안 전 교수가 가는 길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며 “지난 대선에서 큰 빚을 진 민주당은 적어도 안 전 교수가 가는 길에 방해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오는 5월4일 민주당 전당대회에 ‘친노’의 지원을 받으며 출마할 것이라는 얘기가 많았으나 결국 포기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다.

대선이 끝난 후 한 달 동안은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설 연휴가 끝날 무렵 전해철 민주당 의원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전 의원이 (당권에 도전할) 의향이 없냐고 하기에 “웃기지 마라. 그럴 때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그 후 나를 두고 ‘친노 대리인’이라는 둥 이런저런 소리가 다 들리더라. 핵심은 나 스스로가 지금의 민주당이 처한 위기를 풀어나갈 솔루션을 갖고 있느냐는 것이다. 또, 야권 전체를 재편할 수 있는 그림을 갖고 있느냐는 것이다. 자문을 해보니 부족하더라. 대선 패배에 대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전 의원을 만나기 전에는 당권 도전 고민을 안 했나?

안 했다. 대선 이후 1월까지는 나도 ‘멘붕(멘탈 붕괴)’에 빠져 있었다.

앞서 말했듯 ‘친노의 대리인’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비노’ 쪽에서 나를 ‘친노의 대리인’ ‘친노의 데릴사위’라고까지 했다. 일종의 낙인찍기다. ‘친노냐, 비노냐’라는 계파 구도는 일종의 (전당대회를 겨냥한) 선거 전략 차원의 프레임일지 몰라도 당을 위한 프레임은 아니다. 그런 식으로 하다 보면 (당권 경쟁에서) 진 쪽이 승복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친노 대리인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전당대회에 나오면 선거 기간 동안 야권 재편이나 안철수 신당과의 관계 등에 대한 논쟁을 할 수 없게 된다. 전당대회는 야권의 틀을 바꿀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런데 내가 (친노 대리인이라는) 멍에를 쓰면 그런 기회를 못 가진다. 그게 당권 도전을 포기한 이유 중 하나다.

민주당이 위기라는 지적에는 동의하는가?

지금 민주당 위기의 본질은, 아무도 민주당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일 아픈 것은 민주당이 무엇을 해도 (국민들의) 반응이 없다는 점이다. 이는 큰 인물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무서운 이야기다. 정치인들이 국민을 팔아서 먹고살아왔는데, 이대로 가면 버림받는다는 것이다. 차기 지도부는 민주당이 어떻게 해야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또, 좋든 싫든 민주당과 새누리당이라는 두 강자만 있던 판에서 안철수라는 그룹이 등장했다. (안철수 그룹과는) 경쟁도 해야 하지만 야권이라는 견지에서 협력자가 돼야 한다. 새 지도부의 정치적인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당권 경쟁 과정에서 계파 갈등이 다시 불거질 수 있지 않나?

내가 출마를 포기한 만큼 이제는 비주류 쪽에서 “친노가 대리인을 내세워 당권에 도전한다”는 낙인을 함부로 못 찍을 것이다. 계파 간 짝짓기를 통해 선거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친노와 비노의 싸움으로 시비를 걸기는 어렵게 된 것이다.

계파 갈등을 민주당의 병폐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다.

민주당이 그동안 따뜻한 기득권에 안주한 측면이 강하다는 게 더 큰 문제다. 도전자로서 강한 의욕도, 정치 집단이 가져야 할, 국민에게 믿음과 신뢰를 주는 행동도 안 보인다. 민주당은 근본적으로 정치를 왜 하는지라는 질문을 다시 던져야 한다. 내가 만난 일부 사람들은 “민주당이 ‘정치 자영업자들의 연합’이냐”고 비난하더라. 너무 서글픈 일이다.

민주당의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민주당의 정신은 ‘김대중·노무현 정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은 민주당 내에 그런 정신이 없다. 그분들은 선거를 허겁지겁 급조해 치르지는 않았다. 평상시 자신의 가치에 대한 진지한 대안을 만들고, 국민의 지지를 받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민주당은 정치 이념으로 보면 리버럴(자유주의)하다. 그런데 리버럴한 어젠다도 감당하지 못하면서 (급진적인) 사회민주적 어젠다까지 덥석 물고 있다. 마치 민주당이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하는 것은 정직하지 않다.

안 전 교수의 노원병 출마가 정치권을 소용돌이치게 하고 있다. “민주당은 노원병에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안철수 그룹이나 지지층이 여권 세력은 아니지 않나. 결국 민주당과 안철수 그룹은 당분간 경쟁하더라도 언젠가는 힘을 합쳐야 할 세력이다. 그러면 안철수 세력이 적어도 무대 위에 올라와서 성장할 수 있을 때까지 막아서는 안 된다. 안 전 교수가 훌륭한 대통령감인지, 준비를 잘했는지는 안 전 교수가 노력해야 하는 문제다. 하지만 민주당은 안 전 교수에게 큰 빚을 졌다. 안 전 교수가 후보 단일화에 응했고, 결국 단일화를 했으니까. 민주당이 그런 정도의 배려도 못한다는 건, 민주당을 자신의 기득권만 챙기는 집단으로 비치게 할 수도 있다.

최근에 안 전 교수를 만난 적은 없나?

없다. 내가 그 사람을 우호적으로 생각하는 것하고, 내가 어떤 정치적인 행보를 할지는 분명히 구분돼야 한다.

안 전 교수의 정치 복귀 시점을 두고 부정적인 의견이 많다.

안 전 교수가 무슨 영광의 길로 들어간 게 아니다. 본인이 자갈밭을 걷고 시험대에 오르겠다고 하는데, 그걸 두고 남들이 비난할 수 있나. 안 전 교수에게도 노원병 선거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민주당은 안 전 교수를 너무 터부시하는 것 같다.

(웃음) 안 전 교수는 항상 우리한테 긴장감을 주는 존재다. 앞으로 분란을 줄 여지도 있지만, 민주당이 안 전 교수를 터부시한다고 해서 ‘안철수 현상’이 없어지는 게 아니다. 담담히 연대의 대상으로 받아주면 된다. 10월 보궐선거까지 연대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년 지방선거까지 야권이 뿔뿔이 흩어져서 치러야 하나. 야권이 분열된 상황에서 이길 수 있는 선거는 없다. 야권이 분열되면 민주당이든 안 전 교수든 용서를 받을 수 없고, 존재 의미도 없다. 서로 싸우기만 하는 사람들을 국민이 좋아할 리가 없다.

민주당과 안 전 교수와의 관계가 잘 풀릴 수 있을까?

다행히 4월 재보선과 5월 전당대회가 같이 간다. 민주당은 당권 경쟁 과정에서 안 전 교수 문제를 공론화하지 않을 수 없다. 안 전 교수로서도 막상 노원병 출마를 하면 어느 표를 갖고 이길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데, 결국 민주당 지지층을 안을 수밖에 없다. 유시민 전 장관이 ‘정치의 비루함’이라고 표현했다. 정치 지도자가 되려면 현실의 비루함을 감당해야 한다. 꽃가마 타고 왔다가 꽃가마를 타고 다시 돌아가는 그런 지도자가 어디 있나. 안 전 교수도 훌륭한 지도자가 되려면 우리만큼은 아니지만 현실 정치의 간난신고를 겪게 될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안 전 교수가 기존 정치인과는 다르다는 믿음을 보여줘야 새로운 정치 지도자가 될 것이다. 안 전 교수는 아직 비용을 덜 지불한 것 아닌가. 민주당도 안 전 교수가 가는 길에 방해꾼이 돼서는 안 된다.

안 전 교수와 민주당 사이에서 직접 가교 역할을 할 의향은 있나?

혹시 내가 그런 역할을 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안철수 세력의 등장이 야권을 더 건강하고 풍부하게 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민주당만으로 돌파하지 못하는 정치적인 한계를 새 참여자가 해줄 수 있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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