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론가 증발한 ‘살인의 추억’
  • 표창원│범죄심리학자 ()
  • 승인 2013.03.19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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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제주 여교사 피살 사건

2009년 2월1일 일요일 새벽 2시, 제주시 소재 어린이집 교사인 이경신씨는 여고 동창들과 저녁에 삼겹살 파티를 한 뒤 제주시 외곽에 있는 애월읍으로 귀가하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택시를 탔다.

이씨는 갑자기 택시기사에게 제주 법원 앞에서 세워달라고 한 뒤 친구들과 작별하고 차에서 내렸다. 자신의 승용차를 세워 둔 주차장 인근이었다. 곧이어 집으로 전화를 건 이씨는 걱정하는 모친에게 ‘너무 늦고 술을 마셨으니 친구들과 찜질방에서 자고 가겠다’고 말한 후 택시를 타고 인근에 있는 남자친구 집으로 갔다.

새벽 3시쯤이었다. 두 사람은 결혼을 약속한 사이로 주변 사람들이 모두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술을 마시고 새벽에 들이닥친 여자친구가 탐탁지 않았던 남자친구는 이씨를 퉁명스럽게 맞았고, 둘은 평소 갈등의 대상이었던 금연 문제로 다툰 뒤 3분 만에 헤어졌다.

3시3분 남자친구의 휴대전화에는 이씨가 가면서 보낸 “네가 나한테 이럴 줄 몰랐다. 실망이다”라는 메시지가 전해졌다. 3시5분 이씨는 평소 자주 이용하던 애월읍 소재 콜택시 회사에 전화해 택시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이용객이 많은 일요일 새벽이라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냥 끊어버렸다.

이로부터 1시간 뒤인 새벽 4시4분 이씨의 휴대전화는 자신의 집과 가까운 애월읍 광령초등학교 기지국에서 전원이 꺼졌다. 그 후 이씨의 행적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제주 유치원 여교사 실종 사건이 발생한 지 5일째인 2009년 2월5일 경찰관들이 실종 여교사 사진이 실린 전단지를 나눠주며 제보를 당부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가족 동의 아래 공개 수사 돌입

2월2일 월요일 단 한 번도 지각이나 결근을 하지 않았던 이경신 교사가 출근하지 않자 어린이집 원장은 그의 휴대전화로 연락해봤지만 전원이 꺼져 있다는 메시지만 흘러나왔다.

그래서 이 교사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집에서는 이씨가 찜질방에서 자고 아침에 일어나 어린이집으로 출근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원장의 전화를 받고는 부랴부랴 친구들과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모두 “새벽에 헤어졌다”는 대답뿐이었다. 이씨 가족은 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과 가족은 이씨를 찾기 위해 제주 시내 곳곳을 수색했다. 저녁 8시20분 이씨의 차량이 원래 주차되어 있던 제주시 이도2동에서 발견됐다. 이경신씨는 자신의 차가 아닌 다른 사람의 차로 이동한 것이 분명했다. 그 외 다른 흔적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과 가족은 심각하게 모든 가능성을 검토해본 뒤 공개수사를 하기로 했다. 평소 가족에게 연락 없이 어디론가 간 적이 없고, 단 한 번도 결근을 해본 적이 없는 이경신씨. 특히 젊은 여성인 그가 새벽 시간에 흔적 없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결코 예사롭지 않은 강력 범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밤새 수배 전단을 만들어 온라인 수배를 마친 경찰은 날이 밝자마자 인쇄를 한 뒤 제주 시내 전역에 배포했다. 지역 방송국과 언론사에도 공개 수배 협조 요청을 했다. 이경신씨는 키 155cm, 몸무게 45kg의 작고 가냘픈 여성이었다.

제주 유치원 여교사 실종 사건과 관련해 경찰관과 전경들이 제주관광대학 인근 농경지와 야산에서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광범위한 수색…드러난 흔적들

경찰은 공개 수배와 함께 가용 인력을 총동원해 수색을 시작했다. 출발점은 이씨의 휴대전화 전원이 끊긴 애월읍 광령초등학교 인근 지역이었다. 전경대 2개 중대와 형사과 전 직원, 119구조대, 제주방어사령부 소속 군인, 주민 등 총 400여 명과 2마리의 구조견이 투입됐다. 밤을 새고 또 하루를 더 수색했다.

꼬박 이틀간의 수색에서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수색 범위를 차량이 주차되어 있던 곳과 남자친구 집 등 이씨가 거쳐간 곳으로 확대했다. 2월5일에는 500만원의 신고 포상금을 내걸고 수배 전단을 10만부 추가로 인쇄해 배포했다.

실종 5일째인 2월6일 오후 3시 애월읍과 반대 방향인 제주시 아라2동 농원 인근 밭에서 일을 하던 60대 농부가 여성의 가방 하나를 발견했다. 그 안에는 이경신씨의 신분증과 휴대전화 그리고 지갑이 들어 있었지만 현금은 없었다.

이씨가 자발적으로 가출했을 가능성을 거의 제로로 만들어 주는 물증이었다. 경찰은 바로 ‘여교사 실종 사건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납치 내지 살인 사건 등 강력 사건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수사 체제로 돌입했다.

수색 인원을 1730명으로 증원하고 장비도 보강한 뒤 대대적인 수색을 실시했다. 이씨의 남자친구를 포함한 지인들과 택시, 인근 거주 전과자, 우범자 등을 대상으로 한 저인망 탐문과 행적 수사의 강도 역시 높아졌다. 2월7일에는 2000명이 동원된 대규모 수색이 이루어졌다.

제주 여교사가 실종 7일째인 2009년 2월8일 애월읍 고내봉 인근 도로변 배수로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 연합뉴스
사망 추정 시간을 둘러싼 혼란

실종된 지 일주일째인 2월8일 가족과 경찰 그리고 제주도민이 가장 우려하면서 결코 일어나지 않길 바랐던 일이 일어났다. 이씨의 시신이 발견된 것이다. 가방이 발견된 곳과 반대 방향, 이씨의 집에서 4km 떨어진 애월읍 고내봉(오름) 기슭에 있는 농로의 U자형 배수로 안에 엎드려 있는 상태였다.

상의와 치마는 입고 있었으나 속옷은 벗겨져 있었다. 눈에 띄는 뚜렷한 외상은 없었다. 시신에 대한 현장 검안 결과 목 부위에서 누른 흔적이 발견되어 일단 목 졸려 숨진 것으로 추정됐다. 시신은 제주의과대학으로 옮겨져 부검이 이뤄졌다.

2월9일 발표된 부검 결과는 엄청난 혼란과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목이 졸려 숨진 경부 압박 질식사라는 사망 원인은 경찰의 검안과 일치했지만, 사망 시간을 실종 당일인 2월1일 새벽으로 추정한 경찰과 달리 시신 발견 직전인 2월7~8일 사이로 추정해 발표했기 때문이었다.

그 근거는 부패가 거의 진행되지 않았고 위 내용물 중 삼겹살은 전혀 나오지 않고 밥과 콩나물이 완전히 소화되지 않은 채 발견돼 사망 2~3시간 전에 식사를 한 흔적이 있다는 것 등이었다. 부검의는 아마 피해자가 일주일가량 감금된 상태였을 것이라는 설명을 추가했다.

2월1일 저녁 실종 신고가 이루어진 이후 경찰의 수사와 인근에 대한 대대적인 수색이 시작됐고 제주 전역에 공개 수배가 실시됐는데, 피해자 이씨는 어딘가에 감금된 채 일주일이나 살아 있었다는 이야기다. 가족과 언론은 당장 ‘그동안 경찰은 뭐했냐? 제대로 수사했으면 살릴 수도 있었던 것이 아니냐’며 비난을 쏟아냈다. 하지만 일주일 동안 감금된 시신치고는 너무 깨끗한 상태였다. 손목에 결박한 흔적도 없고, 타박상이나 찰과상도 전혀 없었다.

속옷을 제외한 옷도 그대로여서 일주일 동안 생활했다고 믿기지 않았다. 과연 경찰과 부검의 중 누구 말이 맞을까. 사망 시점은 유족의 충격과 고통 및 경찰 수사 미진 책임 등 감정적 요소뿐 아니라 용의자의 특성과 범위 및 수색과 수사 방향 등 사건 해결 가능성을 좌우할 수도 있는 중요한 문제다.

국과수 감정 결과 실종 당일 사망

경찰이 현장에서 발견한 증거물과 유류품, 피해자 소지품 등은 모두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으로 보내 정밀 감식을 의뢰했다. 국과수에서는 피해자의 DNA(유전자)와 피해자 시신 바로 옆에서 발견된 담배꽁초에서 범인으로 추정되는 제3자의 DNA를 추출했다. 현장 인근 CCTV 화면을 모두 분석해 사건 당시 통행한 차량들의 종류와 색상 등을 파악했다.

용의자들만 확보되면 DNA와 소유 차량을 확인해 범인을 잡을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이다. 다만 바로 누군지 알 수 있는 지문이 검출되지 않았고, 제주 시내에는 당시에 24시간 모든 상황을 녹화하는 방범용 CCTV가 한 대도 없었기 때문에 과속이나 신호 위반, 불법 주차 등을 한 차량만 촬영되었다는 한계가 있었다.

인근 아파트 등 일부 민간 설치 CCTV는 거리도 멀고 해상도가 떨어져 차량번호 등 핵심 정보는 파악할 수 없었다. 관심이 집중된 국과수의 ‘추정 사망 시간’ 최종 발표는 2월18일에 이루어졌다. 제주의대 부검의가 아닌 경찰의 검안이 맞다는 결론이었다.

겨울 날씨, 야산, 배수로 등의 영향으로 시신에 ‘냉장 효과’가 발생해 부패되지 않았을 수 있고, 음식물의 내용이나 소화 상태 역시 변수가 존재한다는 설명과 함께 결박흔 등 감금 흔적이 전혀 없다는 것 등을 이유로 들었다.

국과수가 무엇보다 결정적인 근거로 제시한 것은 시신의 혈중 알코올 농도가 실종 당일 음주량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수사는 다시 2월1일 새벽에 피해자를 만나 집까지 태워주다가 성폭행을 시도한 끝에 살해하고 시신과 가방 등을 유기한 후 도주한 용의자에 집중됐다.

용의자 그리고 증거 불충분

경찰은 피해자의 시신이 발견된 직후 ‘살인 사건 수사본부’로 재편하고 그동안 용의 선상에 올랐던 사람들과 새롭게 용의 선상에 포함된 대상을 상대로 수사 강도를 높였다. 피해자의 지인, 실종 및 시신과 가방 유기 장소 인근 거주자, 유사 수법 전과자, 택시 등 운송업 종사자의 행적 및 알리바이를 조사하는 등 ‘인적 수사’가 광범위하게 실시됐다.

다른 한편으로는 일대에 설치된 모든 CCTV 녹화 기록, 인근 장소에서 사건 발생 전후 시간대의 통화 사실, 택시 운행 기록, 렌터카 대여 및 운행 기록 등 ‘물적 수사’ 역시 강도 높게 진행됐다.

조사된 택시만 5000대가 넘었고 택시 한 대당 최소 3시간 이상의 조사가 이루어졌으니 전체 수사에 투입된 형사들의 업무량과 강도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콜택시와 일부 회사 택시를 제외하곤 택시에 운행 기록 장치를 달거나 손님 승하차 기록을 남겨둔 경우가 거의 없어 행적 수사가 완벽할 수는 없었다. 기타 화물차나 렌터카, 개인 승용차 역시 기록을 통한 관련성 확인은 불가능하다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공개 수배를 통해 입수된 제보 역시 3건에 불과했고, 확인 결과 사건과 직접 관련되거나 용의자 특정에 도움이 되는 내용은 아니었다. 택시기사를 포함해 용의점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은 모두 구상상피세포를 제공받아 DNA 감식을 했지만 일치하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4월24일 경찰은 사건 초기부터 용의 선상에 올려두고 주변 수사를 하며 면밀히 관찰하던 40대 용의자가 특별한 이유 없이 회사를 그만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경찰은 잠적이나 도주 등을 우려해 그를 긴급 체포한 뒤 집과 차량에 대한 압수수색 및 DNA 검사와 거짓말탐지기 수사를 했다.

그는 회사 택시를 운전하는, 혼자 사는 40대 남성으로 사건 당일인 2월1일 오전 3시 직후 제주시 용담동 휴대전화 기지국에서 통화 기록이 확인됐고, 인근에 설치된 CCTV에 잡힌 용의차량과도 차종과 색상이 유사했다.

그는 사건 당일 행적에 대해 명확하게 밝히지 못했고, 거짓말탐지기 조사에서도 일부 거짓 반응이 나타났다. 하지만 DNA가 피해자 시신 옆에서 발견된 담배꽁초에서 채취된 것과 일치하지 않았고, 차량·집·옷 등에서도 피해자의 DNA 등 관련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경찰은 2009년 5월까지 450여 명에 대한 유전자 감식을 했지만, 현장에서 확보한 유전자와 일치하는 용의자를 찾지 못했다. 이후 2012년 2월까지 1500명에 이르는 용의자 DNA를 확보해 현장에서 발견된 담배꽁초에서 나온 DNA와 대조했지만 일치하는 사람은 없었다.

80만건의 통화 기록을 조사해 해당자를 찾은 뒤 행적과 알리바이 수사를 했고, 사건 이후 제주도 밖 다른 지역으로 거처를 옮겼거나, 퇴사 혹은 전직한 운수업계 종사자 등 용의자로 의심되는 차량 내 모발·컵·장갑 등 300여 점을 국과수에 보내 감정을 의뢰했다. 하지만 피해자의 DNA나 섬유, 사건 현장 토양 재질 등 관련 증거를 발견할 수 없었다.

범인은 도대체 누구일까. 경찰이 조사한 5000여 명 그리고 DNA 검사를 한 1500명의 용의자 중에 포함되지 않은 것일까. 만약 사건 현장의 피해자 시신 옆에서 발견된 담배꽁초가 범인의 것이 아니라 우연하게 유사한 시기에 그 장소에 버려진, 범행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의 것이라면 어떨까.

오늘까지 이 사건의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억울하고 참혹하게 숨진 피해자의 원혼이 내려다보고 있다. 경찰은 수사 의지를 굽히지 말아야 하고, 제주 도민과 현장 인근 주민들은 관심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범인은 결코 맘 편하게 자고 먹고 생활할 수 없다. 무수한 악몽과 엄습하는 불안감에 살과 피가 마르고 있을 것이다. 부디 자수해 가여운 피해자의 한 맺힌 혼을 위로하고 죗값을 치르면서 마음의 평온을 얻기 바란다.


꼼짝 마! 미제 사건 전담반 나간다 


사건 관련자나 단서, 용의 선상을 대상으로 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수사를 진행했으나 피의자로 특정할 만한 유력한 용의자가 부각되지 않고, 새로운 수사 단서가 발견되지 않는 ‘장기 수사 상황’이 되었을 때 ‘미제 사건’으로 분류한다.

미제 사건은 법적인 개념은 아니다. 수사 편의상 지금 당장 활발한 수사를 벌일 대상에서 제외해 별도로 관리하기 위한 분류다. 과거에는 전에 없던 새로운 증거가 갑자기 발견되거나, 목격자나 용의자가 심경의 변화를 느껴 진술을 번복하거나, 자수하는 등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공소시효’가 완료될 때까지 그냥 묵혀뒀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달로 예전에 불가능했던 증거 채취가 새로운 장비나 기술의 적용으로 가능해지기도 하고, 최초 수사를 진행할 때 실수하거나 지나치게 한 방향으로 몰아간 예단의 작용 등을 줄일 수 있게 됐다.

이를 좀 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방법으로 재검토하거나 분석해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많은 나라에서 ‘미제 사건 전담반’을 두고 있다.

특히 미제 사건 수사에서는 최초 수사를 담당했던 수사관의 경험과 지식, 인적 네트워크가 중요하다. 또 새롭고 전문적이며 체계적인 방법으로 사건을 재조명할 미제 사건 수사 전문가의 역할도 필수적이다.

최근 많은 나라 경찰이 미제 사건 전담반을 두고 해당 사건의 담당 형사와 연계·협력하면서 새로운 시각으로 지속적인 수사를 펼쳐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오리건 주 포틀랜드 경찰국의 ‘미제 살인 사건 전담반’에서는 지난 25년 동안 총 300건에 달하는 미제 살인 사건을 해결해 화제가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경북지방경찰청 등을 중심으로 미제 사건 전담반을 시범적으로 설치해 운용하면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고,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제주 여교사 피살 사건, 포천 여중생 피살 사건, 서울 노들길 20대 여성 피살 사건, 화성 여대생 노 아무개양 피살 사건, 경북 경산 초등생 피살 사건 등 주요 미제 사건이 공소시효가 완료되기 전 ‘미제 사건 전담반’의 활약으로 해결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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