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꼿꼿 장수’는 어느 버튼 누를까
  • 김종대│<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
  • 승인 2013.03.19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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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팀 컨트롤타워 김장수 안보실장 내정자의 선택은?

북한이 3차 핵실험을 단행한 지 사흘 후인 2월15일. 김장수 대통령국가안보실장 내정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을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은 해선 안 되는 말이다. 한·미 양국 대통령이 전작권 전환을 합의한 상황에서 연기를 하자는 건 이상한 얘기다”라고 말했다. 이 말이 알려지자 예비역 장군들 모임인 성우회에서는 ‘김장수 영구 제명안’을 회부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성우회 등 보수 세력이 전작권 전환 및 한미연합사령부 해체 연기를 당연시하는 주장에 대해 김 내정자가 정면으로 반박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명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으나 김 내정자는 취임도 하기 전에 원로 예비역 장성들에게 괘씸죄로 찍혔다. 여기에다 김 내정자가 “나는 (북한에 대해) 매파도 비둘기파도 아닌 올빼미파”라며 다소 유연한 대북관을 표명한 데 대해서도 보수 세력은 섭섭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인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과 11월의 남북국방장관회담 참석차 평양을 두 번 방문했던 김장수 당시 국방부장관이 대동강변 송전각에서 2박3일 동안 김일철 인민무력부장과 남북 군사 협력을 위한 7개항 21항의 합의서를 채택한 것은 남북 분단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의 군사 협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 70세 나이에 심장에 이상이 있어 박동기를 차고 다니던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을 우리측이 주최한 만찬에서 폭탄주를 넉 잔이나 들이키게 한 후 이룬 성과였다. “합의가 안 되면 돌아가서 사퇴하겠다”며 버티는 김장수 장관에게 김일철 부장은 “장수 장관, 사퇴하지 마시오. 우리 한번 잘해봅시다”라며 만류했다.

김장수 안보실장 내정자가 인수위 외교국방통일분과 간사 때인 1월24일 육군 5사단 열쇠전망대를 찾아 과학화 경계시설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 인수위사진기자단 제공
성우회에서 ‘김장수 영구 제명안’ 돌기도

당시 장관 회담에서 김장수 장관을 수행했던 국방부 정책기획관 정승조 중장은 현재 합참의장이다. 또, 북측의 김일철 무력부장을 수행했던 김영철은 현재 인민군 대장으로 정찰총국장을 맡고 있다. 특히 김영철은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을 지휘한 북한군의 최고 전략가다. 이들은 2007년 폭탄주를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했던 사이이지만 정승조 합참의장은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징후가 보이면 선제타격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김영철 정찰총국장은 이에 대해 “핵 단추만 누르면 서울이 불바다가 된다”며 노골적으로 남측을 협박하고 있다. 한때 군사 협력을 했던 당사자들이 각기 국가의 강경 세력을 대표하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강경 발언으로 협박하는 지금 상황은 분명 역설적이다. 한편으로는 강경하면서도 또 다른 이면에서는 유연성을 내포한 남북 군사 지도자들의 의식 구조는 연구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자국 강경 보수 여론에 충실하게 부합하면서도 항상 적을 연구하는 그들에게는 2007년의 접촉은 시야를 확대하는, 매우 의미 있는 경험이었을 것이다.

김장수 내정자를 단순한 군 출신 대북 강경파라고 규정하기에는 그의 두 차례 평양 방문 경험을 고려할 때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북한 군사 지도자를 직접 체험한 것이 김 내정자에게 ‘MB식 대북 원칙론’보다는 다소 유연한 대북 접근의 단초를 제공해준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 내정자는 현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국회의원 시절에도 필자를 만난 자리에서 대북 협력 필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예컨대 북한에 대한 인도적 식량 지원이라든지, 군사 대화의 유용성을 강조하는 그의 인식은 한나라당의 일반적 정서와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더 나아가 한나라당이 ‘잃어버린 10년’으로 과거 진보 정권을 폄하하는 데도 그는 찬성하지 않았으며, 전시작전권 전환에 대한 기존의 합의 준수 입장도 예비역의 일반적인 정서와 다른 것이다.

필자가 노무현 정부 당시 군 수뇌부에 있던 남재준 국정원장 후보자, 김병관 국방부장관 후보자, 김장수 안보실장 내정자를 접촉할 때마다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인간적 연민의 정이다. 노무현 정부에 비판적인 이들도, 한 번 자신이 충성했던 주군에 대한 존중과 인간적 연민까지 버리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김장수 내정자의 경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로 내려갔을 때 안부 전화를 하는 중에 울먹이기까지 했고, 노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골프채를 집어던지고 골프장에서 직접 봉하마을로 달려가 맨 처음 문상했던 일화가 있다.

북한은 3월5일 유엔의 대북 제재 등에 반발해 정전협정을 백지화하고 판문점 대표부 활동도 전면 중지하겠다고 위협했다. 이날 저녁 8시 김영철 군 정찰총국장이 군 최고사령부 대변인 성명을 발표하는 모습. ⓒ 조선중앙통신
대북 협력 위한 창조적 대안 찾을 수도

김장수 내정자를 정점으로 한 육사 출신 김병관 후보자, 남재준 후보자, 박흥렬 청와대 경호실장 등 ‘안보 4인방’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고수하겠다는 박근혜 정부에서 북한의 현영철 총참모장,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 김영철 정찰총국장 등을 상대해야 한다. 최근 김정은은 서해의 북한군 부대를 시찰하면서 “육군, 해군, 항공 및 반항공군, 전략로케트군 장병들이 우리식의 전면전을 개시할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다”고 공언했다.

여기서 말한 ‘우리식의 전면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향후 한반도 안보의 핵심 주제다. 북한의 공갈 협박에 허풍이 포함돼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새로운 전쟁 계획의 핵심은 핵으로 협박하면서 단기간에 기선을 제압하는 속전속결 전술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전방에 경보병부대를 강화하고 서해에 공기부양정부대를 배치해 기습적인 침투 능력을 보강하는 것이 그 일환이다. 전방의 대규모 군 이동으로 전쟁 양상이 나타나기보다는, 남한 후방의 핵심부에 북한 특수부대를 얼마나 조기에 침투시킬 수 있느냐가 결정적인 전쟁 승패 요인으로 인식된다는 의미다.

여기서 북한군 수뇌부의 의도에 대한 현 안보팀의 인지심리학적 인식이 문제가 된다. 적어도 김장수 내정자가 평양에 갔던 2007년 이후 지금의 북한은 분명 핵과 미사일 강국으로 바뀌었다. 현재까지 북한은 전방에서 무려 6개 군단을 감축하고 30여 개 사단을 증편하는 대규모 통폐합을 단행하고, 3단계 남침 전략을 2단계로 통합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의 경보병부대는 후방의 제3제대에서 전방의 제1제대로 통합되면서 그 병력이 8만명에서 20만명으로 증가했다. 이는 자체 국방 비용 감소를 위한 합리적 군사력 재편일 수 있으나, 한국 국방부와 합참은 이를 남침을 위한 명확한 공격 징후로 간주하고 있다.

김 내정자는 전쟁 위기를 진정시키면서 북한의 전략적 의도를 관리하는 중책을 수행해야 한다. 아직 정식 임명도 되지 못한 김 내정자가 청와대에서 숙식을 하며 위기관리를 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그 한 구석에는 언젠가 북한과의 새로운 협력이 가능하다는 긍정적 확신과 낙관주의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이 점이 여전히 박근혜 대통령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강조하는 배경이 된다. 아마도 벼랑 끝으로 치닫는 위기가 진정될 즈음 현 안보팀은 북한과의 새로운 관계 형성을 위한 창조적 대안을 고민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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