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인맥 두터운 미술계 ‘비밀 루트’
  • 김진령·김지영·조현주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3.03.18 16:5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송원은 누구인가

최근 거액의 법인세 탈루 혐의로 검찰의 수사망에 오른 서미갤러리에 또다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서미갤러리는 대기업의 비자금과 관련된 각종 ‘그림 커넥션’에 단골로 등장했다. 서미갤러리는 어떤 화랑이기에 잡음이 끊이지 않는 것일까.

서미갤러리는 이화여대 체육교육과 출신인 홍송원(60) 대표가 1989년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처음 문을 열었다. 홍 대표는 2000년 서미갤러리를 서울 종로구 가회동으로 옮겼고, 2004년에는 청담동에 분점 서미 앤(&) 투스 갤러리를 개장했다. 그동안 서미갤러리는 홍 대표가, 서미앤투스는 그의 차남 박필재씨가 운영해왔다. 서미갤러리는 오리온그룹 비자금 사건에 연루된 의혹으로 진통을 앓고 난 뒤 지난해 잠시 문을 닫기도 했다.

특히 홍 대표는 2005년 8월 당시 29세였던 장남 박원재씨에게 서울 가회동에 있는 자신의 땅(129의 1번지)에 건물을 신축해 그곳에 ‘원앤제이(One & J) 갤러리’를 개설해줬다. 국세청에 따르면 홍 대표는 서미갤러리와 서미앤투스를 이용해 원앤제이의 그림을 시세보다 비싸게 구입해줬다. 한마디로 홍 대표가 장남에게 변칙 증여했다고 국세청은 의심하고 있다.

서미갤러리의 공시된 2011년 12월31일 현재 재무제표에 따르면 홍 대표는 서미갤러리의 지분 25%(7500주), 장남 박원재씨는 15%(4500주), 차남 필재씨는 10%(3000주)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상업 화랑인 서미갤러리는 재벌가나 부유층을 상대로 거액의 미술품을 공급하면서 폐쇄적으로 운영돼왔다. 서미와 재벌가의 연결 고리가 단단할 수 있었던 데는 재벌가와 인척 관계라는 점도 한몫했던 것으로 보인다.

2008년 2월1일 서울 가회동 서미갤러리에서 열린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에 대해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가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미술계, “작품 보는 안목 뛰어나다” 평가

홍 대표의 부친은 중견 기업을 경영했었고, 시아버지는 중견 제분회사를 운영했다. 홍 대표의 동생인 홍정원 서미앤투스 이사의 남편은 구자철 한성 회장이다. 한성은 LS그룹에 속한 회사로 구 회장은 구태회 명예회장의 4남이다. 구태회 명예회장은 LG그룹 창업주의 동생이다. 유난히 자손이 많은 LG그룹은 3대에 걸쳐 재벌가를 이루며 거의 모든 한국 재벌가와 통혼을 하고 있는 재계 인맥의 허브다.

홍정원 이사의 남편 회사인 한성은 서미앤투스에 10%의 지분 참여를 하고 있다. 서미앤투스는 홍송원씨가 지분 22%를 가진 대주주이고 대상그룹의 임상민씨가 14%의 지분을 갖고 있다. 임상민씨의 언니인 임세령씨는 오리온과 서미가 관여한 청담동 마크힐스에 입주 계약을 하기도 했다. 인맥으로나 사업적으로나 홍 대표는 재벌가와 단단히 결합해 있는 셈이다.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던 서미갤러리가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2008년 삼성그룹 비자금 사건에 연루되면서부터다. 이후 서미갤러리는 각종 ‘그림 커넥션’에 등장하면서 그 실체를 조금씩 드러냈다. 서미는 2008년 삼성특검 당시 감정가 716만 달러(86억원)에 이르는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대표작 <행복한 눈물>의 유통 경로로 지목된 바 있다. 홍 대표는 이 그림을 거래하는 과정에서 삼성측에 자금을 세탁해줬다는 의혹을 샀다. 하지만 2002년 그림 구입 당시의 금융 전표 보관 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리됐다.

2010년 오리온그룹의 횡령·배임 사건에 연루돼 직접 처벌받기도 했다. 홍 대표는 조경민 전 오리온그룹 사장이 비자금 세탁용으로 사들인 루돌프 스팅겔의 <무제> 등 그림 3점을 자기 소유인 것처럼 속여 대부업체에 담보로 맡기고 업체로부터 총 308억원의 대출을 받은 혐의를 받았다. 홍 대표는 이런 혐의로 당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2011년에는 오리온그룹이 서울 청담동에 고급 빌라를 짓는 과정에서 40억원가량의 비자금을 조성한 사건에도 서미갤러리의 이름이 올랐다. 서미갤러리는 오리온그룹이 서울 강남구 청담동 물류 부지를 고급 빌라 ‘마크힐스’로 개발하는 과정에서 조성한 것으로 의심되는 비자금 40억6000만원을 입금받아 미술품 거래 형식으로 세탁해줬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뿐 아니다. 홍 대표는 2011년 6월 홍라희 삼성미술관장을 상대로 “2009년 8월 중순부터 2010년 2월 사이 구입한 미술 작품 14점에 대한 대금 781억8000만원 중 250억원만 지급했다”며 “남은 대금 531억원 중 50억원을 우선적으로 내놓으라”고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가 2011년 11월 돌연 취하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서미갤러리는 재차 삼성가의 비자금 조성에 관여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작품 14점의 수입 당시 관세청에 신고한 가격과 실제 판매가가 280억원 정도 차이 난다는 점이 새롭게 드러났다.

지난해에는 부실 저축은행 비리 사건에도 연루돼 구설에 올랐다. 홍 대표는 지난해 저축은행 비리와 관련한 검찰 수사에서도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과 임석 솔로몬 저축은행 회장 간 불법 교차 대출에 관여한 의혹을 받아 검찰의 소환 조사를 받았다.

서미갤러리는 고위 공무원이 청탁을 위한 선물을 구입하는 장소로 ‘애용’되기도 했다. 지난 2011년 불거진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인사 로비 사건에서도 서미갤러리가 등장했다. 한 전 청장이 인사 청탁을 목적으로 전군표 전 국세청장에게 전달했다는 최욱경 화백의 그림 <학동마을>은 2007년 5월 서미갤러리에서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랑협회, 지난해 무기한 권리 정지 조치

대기업 비자금 사건이 터질 때마다 서미갤러리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홍 대표의 두터운 재계 인맥이 큰 몫을 차지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홍 대표는 리움미술관에 외국 유명 화가의 작품을 조달하며 이건희 삼성 회장의 부인 홍라희씨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또한 자신이 이화여대 출신이라는 점을 활용해 재계 안방마님들과도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물론 작품을 보는 홍 대표의 안목이 뛰어나 서미갤러리가 유명해졌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는 애초 전통 옹기 컬렉터로 일을 시작했다가 1980년대 뉴욕 화랑가에서 활동하며 화랑주로서의 역량을 키웠다. 1990년대 미국과 유럽의 추상미술과 팝아트를 국내 화랑가에 소개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한국 대중에게는 생소했던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게르하르트 리히터, 빌럼 데 쿠닝 등의 작품도 홍 대표를 통해 국내로 들어왔다.

홍 대표는 유망 작품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들여오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세계적인 작가가 아직 뜨지 않았을 때부터 주목해 미리 작품을 확보해뒀다가 한국에 소개해왔다. 작품을 매입할 때는 국외의 검증된 갤러리에서 구매할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경매회사인 소더비나 크리스티를 통해 경매에 적극 참여하는 등 수완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하지만 잦은 구설에 휘말리는 홍 대표에 대한 미술업계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한국화랑협회는 지난해 7월 협회와 회원의 이미지를 실추하고 회원의 품위 유지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서미갤러리에 대해 무기한 권리 정지 조치를 내렸다. 앞서 서미갤러리는 1996년 한국화랑협회와 판화 공동전을 열 당시 서명 없는 피카소의 복제 판화 작품을 언론에 원본으로 소개해 협회에서 제명됐다가 2006년 준회원으로 재가입된 바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