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 64% 완치” 믿을 수 있나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3.03.12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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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밝힌 암 생존율은 착시 효과 갑상선·전립선암 빼면 50% 이하

‘암=죽음’이라는 등식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누구나 암에 걸리면 ‘죽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살 수 있다면 그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하는 의문을 품는다. 정부가 해답을 내놓았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말 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이 64.1%라고 발표했다. 암 환자 10명 가운데 6명은 살 수 있다는 말이다. 암 치료에는 재발과 전이라는 특성 탓에 완치라는 말 대신 ‘5년 생존율’이라는 표현을 쓴다. 암 치료를 받은 사람이 5년 동안 재발이나 전이 없이 살면 완치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정부는 생존율이 53.7%(2001~05년)에서 64.1%(2006~10년)로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미국(65.4%), 캐나다(62%)와 비슷한 수준까지 암 생존율을 끌어올린 것은 국가가 암 정복을 위해 노력한 결과라고 덧붙였다.

ⓒ 시사저널 사진팀 자료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정부는 암 사망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생존율이 올랐다면 암 사망자가 줄어야 맞다. 통계청 자료를 살펴보니 암으로 사망한 사람은 오히려 늘어났다. 암 사망자는 2001년 인구 10만명당 1백22.9명에서 2010년 1백42.6명으로 증가했다. 2010년 국내 총 사망자 수는 약 25만5천명이고 이 중 암으로 사망한 사람은 약 7만2천명으로 28.2%가량이다. 암으로 사망하는 비율도 1983년 11.3%에서 높아진 것이다.

암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많아졌는데, 암에 걸려도 살 가능성이 커졌다는 정부 발표는 뭔가. 정부가 발표한 암 생존율은 생존율이 높은 암과 낮은 암의 평균치다. 때문에 생존율이 높은 암이 많이 발생하면 전체 암 평균 생존율은 높아진다.

생존율이 가장 높은 암은 갑상선암으로 99.2%에 달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흥미로운 연구 보고서가 일본에서 나왔다. 아직 증세가 나타나지 않은 갑상선암 환자를 바로 수술하지 않은 채 10년 동안 관찰했더니 이들 중 15.9%에서만 암의 크기가 커져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했다. 또, 수술을 받은 사람 중 갑상선암 전이 등으로 사망한 사례는 한 명도 없었다.

이 암이 국내에서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가장 많이 발생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0년 20만명의 암 환자가 생겼고, 그중 갑상선암에 걸린 사람이 3만6천명이다. 10년 전인 2001년(약 4천명)에 비해 10배가량 증가했다. 이는 세계적으로 봐도 눈에 띄는 증가세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국내에서 갑상선암에 걸리는 사람은 인구 10만명당 35.4명으로 세계 1위다. 일본(3.1명), 중국(1.4명), 북한(2.6명), 우크라이나(1.6명)의 10배가 넘는다.

초음파 검진 권유로 갑상선암 증가

유독 한국에서 갑상선암이 급증한 까닭은 무엇일까. 일각에서는 방사능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방사능이 유출된 지역에서 갑상선암 환자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 현장 부근의 갑상선암 환자는 인구 10만명당 12명에 불과해 이런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그 배경은 엉뚱하게도 조기 검진에 있다. 물론 암 조기 검진은 필요하다. 위암과 대장암이 대표적이다. 내시경 장비 대중화로 위암과 대장암을 조기에 진단한 덕에 치료 성적이 좋아졌다. 그러나 증세가 없어서 모르고 살았던 갑상선암은 굳이 찾아낼 필요가 없다는 것이 의료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교수의 설명이다. “병원이 경쟁적으로 환자에게 초음파검사를 권하고 있다. 다른 질환으로 병원에 갔다가 초음파검사를 받고 갑상선암을 발견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국내 갑상선암 발생이 급격히 증가했다.”

허대석 교수는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지난해 공개한 자료를 예로 들었다. “초음파 검진에 따른 갑상선암 진단율이 1~2%밖에 안 되는 점을 계산하면 지난 10년간 초음파 검진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알 수 있다. 초음파검사가 암으로 인한 사망률을 낮춘다는 근거 자료는 없다. 이런 이유로 세계 어느 나라도 갑상선암 검진을 권고하지 않는다.”

그는 다른 이유로 사망한 시신을 부검해보면 갑상선암이 발견되는 사례가 종종 있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굳이 갑상선암을 발견하려고 애를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갑상선암은 손으로 만져질 때 병원에 와서 진단하고 치료해도 늦지 않다”며 “국내 갑상선암 환자가 연간 3만명으로 늘어난 것은 조기 검진 때문”이라고 밝혔다.

진단과 치료 건수는 병원의 수익과 직결되는 만큼 요즘 병원들은 경쟁적으로 갑상선암 검진을 권유하고 있다. 직장인 강 아무개씨(35·여)는 “다른 병으로 동네 의원을 찾았는데 갑상선암 조기 진단을 위해 초음파 검진을 받으라고 했다. 별다른 증상은 없었지만 암이라는 말에 무서워서 검사를 받았다. 그러나 아무런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불필요한 진료를 한다는 점을 의료계도 알고 있다. 그러나 고칠 생각은 없어 보인다. 이어지는 허 교수의 얘기다. “의사도 갑상선암과 전립선암을 조기에 진단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렇지만 문제를 제기하는 의사는 거의 없다. 병원 운영 차원에서 갑상선암과 전립선암 진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립선암도 생존율이 90% 이상이다. 그런데도 병원이 불필요한 조기검진을 통해 잘 생활하던 사람을 하루아침에 암환자로 만들어 버린다. 그런 사람이 연 1만명이다. 갑상선암과 전립선암 환자를 모두 합해 약 4만명이다. 학회 차원에서 자정 노력을 하지 않으면 전립선암도 갑상선암처럼 과잉 진료 논란에 빠질 것이다.”

정부는 1995년 암 정복을 선언하고 1차 10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는 2006년 1차 계획 성과를 설명하면서 당시 암 생존율 45.9%를 2010년 6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장담했다. 그리고 지난해 64.1%라는 암 생존율을 발표했다.

허 교수에 따르면 정부가 발표한 암 생존율에는 착시 효과가 있다. 갑상선암과 전립선암이 자연적으로 증가한 것이 아니라 과잉 진료로 과거에 발견하지 못했던 암을 찾아낸 것이라는 설명이다. 보건복지부도 이를 인정하고 최근 급격히 증가한 갑상선암을 제외하면 생존율이 57.9%라고 밝혔다. 여기에 전립선암까지 빼면 실제 자연적으로 증가한 암의 생존율은 50%를 밑돈다.

암 중에서 생존율이 가장 낮은 암은 췌장암으로, 8%에 불과하다. 지난 1990년대 생존율(9.4%)보다 낮아졌다. 폐암은 남녀 모두에서 사망률 1위다.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 점수를 올려야 의미가 있듯이 생존율이 낮은 암 치료 기술을 발전시켜 전체 암 생존율을 올려야 가치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암 치료 기술 개발 등의 예산을 늘려야 한다.

암 치료 기술 개발보다 검진 사업에 집중

정부는 지난 10년 동안 암 정복을 위해 수조 원을 투입했다. 그런데 대부분 암 치료 기술 개발 분야가 아니라 검진 사업에 사용했다. 예컨대 암 조기검진 대상자를 2005년 2백20만명에서 2006년 3백만명으로 확대하고, 암 치료비 지원을 1만6천명에서 2만8천명으로 늘렸다.

2000년 초에는 암 치료비에서 환자 부담금이 20%였지만 2005년 10%, 최근 다시 5%로 낮아졌다. 항암제가 1천만원이라면 환자는 50만원만 부담하고 나머지는 국가가 충당한다. 이 돈은 국민의 세금이다. 건강보험의 부담금 1조5천억원이 지난 6~7년 사이 4조원으로 급증했다.

암을 조기에 검사하려면 첨단 의료 장비가 필요하다. 이는 다국적 의료 장비 기업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졌다. 암 연구·개발에 사용할 돈을 비싼 외국산 검진 장비 구입에 사용한 것이다. 보건산업진흥원이 국내 100개 병원의 의료기기를 살펴보았더니 국산 장비를 사용하는 곳은 12.4%에 불과했다. 외국 제품만 사용하는 병원은 62.4%에 달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암을 조기에 발견하려는 일반인, 암을 잘 진단한다는 평가를 받고 싶어 하는 병원, 고가 장비를 한국에 팔려는 다국적 기업이 서로 맞물려 있다. 고가 의료 장비를 갖추지 않으면 환자가 찾지 않는다. 또 오래전부터 GE·지멘스·필립스 등 다국적 의료 장비 업체가 한국 시장에서 활발히 마케팅 활동을 했다. 국산 의료 장비와 성능 면에서 큰 차이는 없지만 브랜드 인지도 때문에 외국산을 선호하는 병원이 많다”라고 털어놨다.

요즘 웬만한 병원에는 CT·MRI·PET라는 고가의 진단 장비가 있고, 일반인도 이 명칭에 익숙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의료정보자원 자료를 보면 전국 병원에 있는 단층촬영장치(CT)는 1천8백64대, 자기공명영상장치(MRI)는 1천1백85대, 양전자 단층촬영장치(PET)는 1백95대다.

2009년을 기준으로 인구 100만명당 CT의 수는 37.13대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22.81대의 1백62.8%에 달한다. MRI는 18.96대로 OECD 평균인 12.16대의 1백55.9% 수준이다. PET 역시 2.81대로 OECD 평균인 1.60대의 1백75.5%에 이른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간한 건강보험 통계연보 등에 따르면 CT·MRI·PET 진단에 들어가는 보험 부담은 2008년 1조8백억원에서 2009년 1조2천5백억원으로 증가하는 등 매년 늘고 있다.

게다가 중복 촬영으로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을 줬다. 2010년 국정감사에서 동일한 환자가 다른 병원에서 1개월 이내에 중복 촬영한 건수는 CT 1만35건, MRI 1천50건이다.

고가의 의료 장비로 수술로봇이 빠지지 않는다. 한 대에 30억~40억원에 달하는 수술로봇은 전국에 36대가 있다. 유지 비용은 연 2억원이 넘는다. 이 비용을 충당하려면 병원당 연 1백50~2백건의 로봇 수술을 해야 한다. 로봇 수술 비용 5백만~1천2백만원은 일반 수술보다 2~6배가 비싸 환자에게도 큰 부담이다.

고가의 항암제값 지원에도 세금이 쓰였다. 한 제약회사 관계자는 “우리 회사도 항암제를 개발해 시장에 내놓았다. 기존 다국적 기업 제품보다 효능이 좋으면서 가격은 절반 정도다. 그럼에도 소비자는 기존에 사용하던 약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 의사도 의료사고 우려 때문에 기존에 쓰던 항암제를 고수한다”고 말했다.

1972년 닉슨 미국 대통령은 10년 안에 암을 정복하겠다고 선언했다. 암 관리법을 만들어 대대적인 투자를 했다. 생존율이 높은 전립선암 조기 진단에 거액을 투입하면서 이 암에 걸린 환자가 늘어났고, 전체 암 생존율은 다소 높아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전체 암 사망률은 떨어지지 않아 닉슨의 암 정복 정책은 실패한 것으로 결론 났다. 국내 암 환자 100만명 시대를 맞아 이 교훈을 곱씹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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