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살짝 열리니 원로 정치인들 “돌겠네”
  • 임수택│편집위원 ()
  • 승인 2013.03.12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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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치권, 온라인 선거운동 허용 후 손익 계산 분주

요즘 일본 자민당 원로 의원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젊은이들의 소유물이라고 여겼던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더는 남의 일이 아닌 발등의 불이 된 탓이다. 집권 여당 자민당과 야당들은 오는 7월 실시되는 참의원 선거부터 인터넷을 활용한 선거운동을 허용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

일본 정치권에는 ‘디지털 디바이드(정보 격차)’ 현상이 심각하다.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 공천이 결정된 59명 중 신인 5명은 홈페이지조차 없고 블로그를 이용해본 적도 없다. 현직 의원 27명은, 홈페이지는 가지고 있지만 업데이트를 하지 않는다. 페이스북·트위터를 사용하는 의원은 더욱 드물다.

그동안 일본에서는 인터넷 선거운동이 금지됐었다. 선거공직법에 의하면, 선거 공시 후 인터넷을 사용한 선거운동을 할 수 없으며 후보자는 선거 기간 중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갱신할 수 없다.

여야는 인터넷 선거운동 방식을 두고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은 후보자와 정당에 한해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야당인 민주당과 모두의당은 “후보와 당은 물론 일반 유권자도 자유롭게 인터넷 선거운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하시모토 도루 일본유신회 대표 겸 오사카 시장과 오자와 이치로 생활당 대표, 사민당 등은 여당 안에 동의하고 있어 결국 자민당 뜻대로 제한된 인터넷 선거운동을 허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원로 의원들은 시기적으로 너무 빠르다며 불만을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개혁에 반대하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비칠까 봐 공개적으로 반발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일단 선거운동법이 바뀌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대책 마련이 시급해졌다. 자민당 홍보대책팀에서는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의원들을 위해 페이스북·트위터·메일 매거진 전문가를 초청해 강좌를 열고 있다. 인터넷 선거운동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대 후보의 중상모략, 괴문서 남발 등에 대한 대책도 준비하고 있다.

2012년 12월4일 아베 총리가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거리 유세를 하고 있다. 거리 유세에 집중했던 일본 정치권이 온라인 선거운동 대책을 마련하느라 부산하다. ⓒ EPA 연합
아베 “우리에게 불리하지만은 않다”

일본 최대 인터넷 쇼핑몰 ‘라쿠텐’의 미키타니 히로시 사장을 중심으로 모인 ‘신경제연맹’은 지난해 중의원 선거 전, 각 정당에 인터넷 선거를 허용해달라는 건의를 했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중의원 선거 직후 미키타니 회장과 만난 아베 신조 총리는 참의원 선거 때부터 인터넷 선거운동 도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스마트폰이 필수인 시대에 정치권만 뒤처지고 있다는 비난이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정치권이 인터넷 선거운동을 적극 검토하게 된 배경에는 젊은이들의 정치 무관심과 낮은 투표율을 어떤 형태로든 바꿔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 12월16일 치러진 중의원 선거 투표율은 59.3%였다. 민주당 정권을 탄생시킨 2009년 투표율(69%)과 비교해 10% 정도 떨어졌다. 표로 환산하면 1천만표에 달한다. 1945년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최저 투표율이다.

보수 정당인 자민당은 인터넷 선거운동이 자신들에게 불리하다는 이유로 도입에 소극적이었다. 그럼에도 아베 총리는 이를 받아들였다. 그는 “결코 불리하지만은 않다”며 당내 원로 그룹을 설득하고 있다. 정치 전문가인 와카마츠 씨는 “아베 총리 자신이 페이스북에서 지지를 받으면서 생긴 자신감의 표현인 것 같다. 그런 지지자는 대부분 인터넷 우익 세력이다”라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민주당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인터넷 선거운동에 대해 엉거주춤한 입장을 취한 것은 ‘인터넷 우익’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인터넷 우익들은 외교 문제에서 강경 노선을 주도하고 있다. 국내 정치에서는 야당인 민주당에 실망감을 표출하며 자민당의 강경 보수 정치인들을 지지한다.

정치 신인 진입 장벽 낮추는 효과 기대

일본에서는 인터넷 선거운동이 진입 장벽을 낮추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유능한 정치 신인의 등장이 어려웠던 이유 중 하나는 일본 정치의 선거 자금이었다. 지난 중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한 30대 초반 정치인의 하소연이다. “최소로 잡아도 선거사무실 임대료 및 중개 수수료 100만 엔(약 1천1백70만원), 여직원 일급 1만5천 엔(약 17만5천5백원), 선거 직전 세대별 홍보물 비용이 1회에 100만 엔(약 1천1백70만원) 정도 든다. 전단지 한 장 돌리는 데 인쇄비·우편 요금 등을 합하면 건당 10엔 정도가 드는데 인터넷에서 열람하게 되면 100만명이 본다고 쳐도 당장 1천만 엔의 효과가 있다.”

정치 자체에 관심이 없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려세우는 효과도 노리고 있다. 일본인 중에는 ‘관료제와 경제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으니 정치가 좀 흔들려도 상관없지 않느냐’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럴수록 정치는 실종되기 마련이다. 아베 총리는 최근의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유권자들을 정치로 끌어들이기 위해 인터넷 선거운동을 검토하고 있다. 인터넷 선거를 해도 자신이 있으며 다소 불리하더라도 선거에 결정적인 영향은 미치지 않으리라는 것이 아베의 생각이다.

중의원 선거에서 대패하며 존재감을 상실한 민주당은 인터넷 선거운동으로 7월 참의원 선거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한다. ‘개혁’이라는 주제를 선점해가고 있는 모두의당 역시 의석수를 늘릴 기회라고 판단하고 있다.

‘완전 허용’과 ‘부분 허용’의 차이는 있지만, 선거운동이 획기적으로 변화하는 것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제는 실시 여부를 넘어 새 제도의 ‘부작용’이 논쟁거리다. 중상모략 혹은 괴문서와 루머 등을 어떻게 처리할지가 핵심이다. 인터넷 선거운동 허용을 주도하고 있는 ‘원보이스(하나의 목소리) 운동’의 하라다 겐스케 씨는 “인터넷 대중화 시대에 인터넷 선거운동을 허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인터넷이 없어도 괴문서 등은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 위험하다고 금지할 것이 아니라 장점을 제대로 파악한 후 토론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쨌든 인터넷 선거운동은 일본 정치판을 흥미롭게 만들고 있다. 기존 매스미디어 생태계도 변화해야 할 판이다. 예컨대 미디어에서는 별로 인기가 없는 오자와 이치로 생활당 대표는 인터넷에서는 ‘기대되는 정치인’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뉴스 가치에서 괴리가 생기고 있는 셈이다. ‘넷심(心)’을 매스미디어가 전달하고 그것이 다시 여론으로 확산되는 순환 사이클이 일본에서도 등장할 개연성이 커졌다. 게다가 ‘인터넷 우익’의 전투력이 참의원 선거에서 어떤 위력을 발휘할지도 관심거리다. ‘온라인 여론은 개혁·진보 진영에 유리하다’는 세계 공통의 선거 법칙이 일본에서는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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