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부재리 원칙’의 한계와 모순
  • 표창원│범죄심리학자 ()
  • 승인 2013.03.12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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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확정 판결이 내려진 범죄 사건에 대해서는 두 번 다시 심리 혹은 재판을 하지 않는다’는 형사법상의 원칙을 ‘일사부재리’라고 한다.

로마 시민법에서 유래되었으며, 대다수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헌법 제13조와 형사소송법 제326조에 규정돼 있다. 이는 국가가 무죄 판결을 받은 범죄 혐의자에 대해 여러 차례 반복 기소함으로써 그 권리를 침해하고 괴롭히는 행위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도입됐다.

영미법계 국가에서는 ‘이중 위험 금지’라고 부른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륙법계 국가에서는 ‘최종 확정 판결’이 이루어진 후에는 다시 기소할 수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여 검찰도 무죄 판결에 대해 항소나 상고를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영미법계에서는 한 번의 판결이 내려지면 검사는 다시 소를 제기하지 못하기 때문에, 판사의 중대한 법률 혹은 사실관계 오류 등 법에 정한 예외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항소나 상고를 제기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치과의사 모녀 피살 사건, ‘듀스’ 김성재 피살 사건 등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이 내려진 사건에 대해서는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거나 피고인이 스스로 범행을 자백한다 하더라도 다시 기소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범죄 사건의 기소는 ‘두 번의 기회’가 없는 ‘오직 한 번만 할 수 있는’ 행위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한 검사의 권한이 막강한 데다, 법정에서 모든 증거가 공개되고 피의자 및 참고인 신문이 이루어지는 ‘공판 중심주의’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경찰의 수사 결과와 관련자 진술 등 검사가 확보한 모든 증거를 판사에게 공판 전에 제출해 공개하는 ‘증거 개시 제도’를 채택하지 않고 있다. 또 상대적으로 경험이 적어 검사에 비해 열세 위치에 있는 1심 판사들 역시 어차피 ‘항소’나 ‘상고’에 의해 2심, 3심에서 다시 심도 깊게 다루어 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워 대부분 ‘검사의 승리’로 끝난다.

통계를 봐도 우리나라 1심 형사 법원의 유죄 판결율은 2008년 99.71%, 2009년 99.63%, 2010년 99.51%, 2011년 99.37%로 실로 ‘경이적’이다. 이렇게 ‘짜고 치는’ 쉬운 기소와 증거·논리가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소해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뒤, 피고인이 실력 있는 변호사들과 함께 전력을 다해 반격해오는 항소심에서 판결이 뒤집어지는 경우가 많다.

항소심 심리와 판결에서 심각한 법률적 오류가 발견되지 않으면 대법원은 그 결과를 추인해줘야 한다. 이런 경우 ‘증거를 더 모으고 논리를 보강할 테니 재판을 다시 해달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일사부재리’다.

특히 우리 국민이 도심 한복판에서 이유도 없이 외국 범죄자의 칼에 참담하고 억울하게 희생된 ‘이태원 살인 사건’에서 눈앞에 두 명의 범인(실제 칼로 찌르는 행동을 한 자가 누구든)을 두고도 무죄 판결로 이어지게 만든 검찰의 오판과 오류 그리고 무능은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검찰의 오판과 무능을 조장하고 허용하는 검찰에게 모든 사법 권한이 집중된 잘못된 제도다. 한국의 수사 및 기소, 재판 제도의 개선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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