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몸서리치는 협박 할 것”
  • 김현일 대기자 ()
  • 승인 2013.03.1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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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용 전 국회의장이 내다본 북핵 위기와 한반도

한반도의 주도권(Hegemony)은 다시 북한의 손으로 넘어가는가. 북한 김영철 정찰총국장은 “누르면 발사하게 돼 있고, 퍼부으면 불바다로 번지게 돼 있다. 임의의 시기에 임의의 대상에 대해 제한 없이 마음먹은 대로 정밀 타격을 가하고 조국 통일 대업을 앞당기겠다”며 “한라산에 공화국기(인공기)를 휘날리겠다”고 강도 높은 대남 도발성 발언을 쏟아냈다. 김영삼 정부 시절이던 지난 1994년 북핵 위기가 절정에 달하면서 한반도는 전쟁 위기감에 휩싸인 적이 있다.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박관용 전 국회의장이다. 6선 국회의원으로 남북 국회회담 대표, 국회통일특위 위원장 등을 지낸 박 전 의장으로부터 안팎의 어려운 상황을 타개할 묘안은 없는지 들어봤다.

 

ⓒ 시사저널 박은숙
국가 원로로서 돌아가는 내외 정세가 답답할 텐데.

이제 (북한은) 수없는 협박을 해올 것이다. 몸서리치는 협박을 견뎌야 한다. ‘제2 조선전쟁’ ‘핵 선제타격’ 운운하는데, 끔찍하다. 핵을 가진 자의 그늘에서 살아야 하는 게 어떤 것이지 상상해보라. 핵을 보유하게 됐으니 마음대로 공갈·협박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따지고 보면 대북 정책의 첫 단추는 노태우 정부의 한반도 비핵화 합의부터 잘못 꿰인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한반도 비핵화는 당시로서는 잘한 것이다. 평화적 이용까지 제한한 일부분을 제외한다면. 사실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북한의 속임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은 큰 잘못이다.

김영삼 정부에 대한 지적도 있다. 한완상 통일원장관 임명에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 북송 문제 등….

북한은 노태우 정부에 대해 이인모를 보내주면 납북 동성호 송환과 남북면회소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할 정도로 이인모에 애착을 보였다. 그래서 김영삼 정부는 남북 관계 개선 차원에서 보내기로 했다. 당시 부산대 병원에 입원 중이던 이인모가 위독했기 때문에 서둘러 보냈다. 그런데 이인모를 북송한 지 불과 3일 후에 북한은 NPT(핵확산방지기구)를 탈퇴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니 ‘민족은 어떤 동맹보다 강하다’에서 ‘핵을 가진 자와 악수 못 한다’로 전환할 수밖에. 문민정부의 대북 정책이 강온으로 갈지자 행보를 한 배경이다. 거기에다 지금은 더욱 심해졌는데, 언론은 일관성이 없느니 어쩌느니 하며 때리고….

1994년 6월 미국이 북한의 영변 핵시설을 공습해 제거하려 하자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극력 반대한 바 있다. 만약 그때 반대하지 않았더라면?

정종욱 외교안보수석이 김 대통령에게 급보를 전했다. “심각한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주한 미국대사가 내일 주한 미국인을 소개(疏開)하는 계획서를 가지고 온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소개는, 즉 전쟁이 난다는 얘기입니다.” 놀란 김 대통령은 미국대사를 호출했다. “한반도에서 전쟁은 절대 안 된다. 미국이 전쟁을 벌이더라도 대한민국 통수권자로서 나는 단 한 명의 군인 동원도 하지 않겠다”며 결연한 반대 의사를 전했다. 김 대통령은 이어 클린턴 미국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뜻을 확실히 밝혔다. 클린턴 대통령은 북한 핵시설 공습을 논의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때 북한의 대응 수준을 물었다고 한다. 레이크 안보보좌관은 ‘북한은 서울 용산기지를 중심으로 포격을 가해올 것이며, 미군 포함 100만명의 희생이 예상된다’는 게리 럭 주한미군사령관의 보고서를 읽었다. 이는 한국과 미국이 추구하는 국익이 얼마든지 다르다는 방증이다. 나중에 윌리엄 페리 당시 국방장관으로부터도 확인했는데, 미국은 이 엄청난 작전을 한국 정부 모르게 추진한 것이다. 어느 대통령이 그렇게 큰 희생을 감내하면서 선제타격을 가하겠나.

그렇다면 지금의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보는가?

이제라도 우리도 핵을 갖자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서둘러 전술핵을 개발하든지 미국의 것을 들여오자고 한다. 하지만 이는 망상이다. 우리가 핵을 가지려면 우선 NPT부터 탈퇴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나오고 재처리 시설을 가져야 하는데 과연 가능하겠나. 국제 사회가 용납하지 않는다. 독자 개발이 안 되면 미국의 전술핵을 들여오자고 하는데, 미국은 소련과의 군축협상에 따라 전술핵을 폐기해왔다. 최소한의 필요를 위한 3백기 정도를 남겨뒀다. 그것을 한반도에 가져온다고? 어림없다.

그렇다고 북한의 위협에 마냥 움츠리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이스라엘은 자국을 위협하는 주변의 핵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이라크·시리아의 원자력 시설을 철저히 부쉈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이란 핵시설 공격이 확전될까 해서 만류하고 있는데, 어쨌든 이스라엘은 이란을 속속들이 꿰고 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것이다. 우리는 안보, 안보 했지만 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 역량을 총집결해야 한다. 외교 역량 강화도 그 일환이다. 중국이 북한과 특수한 관계인 것은 분명하나 중국이 가장 관심을 갖는 ‘완충지대’, 즉 한반도 전체를 완충지대화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준다면 달라질 수 있다. 그 경우 중국은 동북 3성을 발전시키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고.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한다면.

이런 구상을 말하는 이들도 있다. 중국은 북한 식량의 50~70%와 유류의 40~80%를 지원하고 있다. 중국 없이는 북한은 못 버틴다는 얘기다. 북한이 동북아 안정을 계속 깨뜨릴 경우 중국도 입장이 곤란해진다. 그러니 북한의 급변 사태 때 평양에 친중(親中) 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양해한다면…. 물론 ‘영구 분단’이라며 펄쩍 뛰겠지만 우리의 역사를 성찰하면서 냉정하게 대처해야 한다. 우리를 지킬 수 있는 독자적이고 확고한 방안을 정립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박 대통령도) 갑갑하게 됐다. 신뢰를 바탕으로 추진하려던 ‘한반도 프로세스’는 물 건너갔고…. 대통령은 첫 100일이 중요한데 이래저래 (여야) 밀월 기간이라는 시간마저 허비했다. 야당은 아예 대립각을 세우고 있으니 탈이다. 대통령이 고집이 센 것은 사실이지만…. 어쨌거나 대통령이 일하도록 해줘야 하는데 이래서는 안 된다. 밥을 지은 뒤 잘못됐으면 나무라야지, 밥을 짓기도 전에 시비부터 하면 어찌하는가.

여야 모두 정치력이 모자란 것 아닌가?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대통령이 선을 그어놓으니 말을 못 하고, 야당 지도부는 내부의 40~50%인 강경 국회의원에 끌려다니느라 아무것도 못 한다. 게다가 국회는 다수결을 근본적으로 부인하는 선진화법인지 뭔지에 발목이 잡혔다.

국회의 법 처리는 그렇다 하더라도, 상처투성이 국방부장관 후보자를 비롯해 인사에 문제가 많다.

60만 병력을 통솔할 사람은 용맹·강직 등으로 젊은이들의 사표가 돼야 하는데 아쉽다. 박 대통령의 인사 기본은 믿음과 전문성이다. 자신의 경험과 스스로의 엄격함 때문인지 신뢰를 아주 중시한다. 의정 생활을 박 대통령과 오래 하면서 지켜봐왔는데, 그렇게 원칙에 투철하고 근검절약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흐트러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 함께 미국에 갈 때 지켜보니 줄곧 책을 보면서 머리를 의자에 대지 않더라. 대통령은 자기의 아버지와는 시대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일방적으로 끌고 가는 시대는 지났다.

그런 엄격성이 직언 그룹을 없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오래 정치를 하면서 그런 카리스마가 있는 인물을 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참모들이 말하기 어려운 것 같은데, 그래도 해야 한다. 허태열 비서실장에게 몇 가지 팁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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