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경마 배후에 ‘조직폭력배’ 있다
  • 정락인 기자·이유심 인턴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3.02.27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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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수익 사업으로 활용하며 ‘돈줄’ 역할

사설 경마의 가장 큰 배후는 조직폭력배(조폭)들이다. 조폭들은 운영 자금 확보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돈이 있는 음지를 찾아다니는 습성이 있다. 기존의 유흥주점 갈취 등에서 사행성 불법 도박 등으로 영역을 넓혔다. 그중 하나가 사설 경마이다. 은밀하게 거액의 돈을 챙길 수 있어 조폭들이 기생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최근 수원지검 강력부는 사설 경마 조직을 추적하다가 조폭의 꼬리를 잡았다. 조직원들의 계좌 추적 등을 하는 과정에서 ‘광주 신양관광파’가 개입한 단서를 포착한 것이다. 이 조직은 광주 충장로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호시탐탐 신규 이권을 노려왔다. 법원에서 ‘범죄 단체’로 확정된 관리 대상 조직이다.

광주 신양관광파 조직원인 김달수씨(가명·39)와 정민태씨(가명·33)는 최근 3년여 동안 사설 경마에 깊이 관여해왔다. 김씨는 정씨에게 사업 자금을 대주는 전주(錢主) 역할을 했고, 정씨는 사설 경마 지역센터를 운영했다. 정씨는 법원에서 범죄 단체 가입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고, 지금도 수사기관의 관리 대상 조폭에 올라 있다.

검찰에 따르면 두 사람이 사설 경마를 시작한 것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같은 해 8월27일 김씨는 정씨 명의의 은행 통장에 5백여 만원을 송금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 10월14일까지 총 1백65회에 걸쳐 13억5천3백여 만원을 보냈다.

김씨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 “정씨에게 돈을 빌려준 것이다”라고 진술했지만 이를 그대로 믿기에는 수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두 사람이 조직폭력 단체의 현역 조직원인 데다가, 김씨는 정씨에게 집중적으로 돈을 댔다. 김씨에게서 나온 거액의 출처도 석연치 않다. 검찰은 김씨를, 정씨에게 돈을 빌려준 것처럼 꾸민 사설 경마 지역센터 자금책으로 보고 있다.

김씨가 송금한 돈은 신양관광파의 사업 자금일 가능성이 크다. 정씨는 이 돈을 가지고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의 ㄷ아파트에서 사설 경마센터를 운영했다. 또 총 4천여 회에 걸쳐 사설 경마 마권 구매자들로부터 1백31억4천5백여 만원을 송금받고 마권을 팔았다.

정씨가 운영한 판돈 규모만 해도 2백68억원에 달한다. 수익금의 상당수는 광주 신양관광파에게 흘러들어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도박 수익 자금이 전액 현금으로 인출되었기 때문에 최종 목적지를 밝혀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김기훈 수원지검 강력부 주임검사는 “(조폭이) 사설 경마센터를 운영한 것은 사실이지만 수익금을 어떻게 썼는지, 어디로 흘러갔는지는 파악할 수가 없다. 현금으로 다 전환해서 자금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막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조폭들은 이런 허점을 십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사설 경마를 오랫동안 수사해온 한 경찰관은 “조폭들을 잡기 어려운 것은 직접 마권을 구매하지 않기 때문이다. 뒤에서 자금을 대거나 뒤를 봐주는 역할을 한다. 돈을 거래한 내역이 있어야 계좌를 추적하는데, 거래 내역이 없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광주 신양관광파 조직원들이 사설 경마 센터로 사용한 아파트 내부(왼쪽 맨 위)와 동료 조폭으로 추정되는 엘리베이터 CCTV 화면 속 인물들.
조직 실체 숨긴 조폭들

광주에 거점을 둔 신양관광파는 오래전부터 신규 이권 사업에 적극 나섰다. 1990년대 초반까지는 유흥업소 금품 갈취, 건설업체 입찰이나 아파트 재건축 폭력 등에 나서다가 점차 고리대금업 등에 손을 댔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성인 PC방 운영 등 사행성 도박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활동 무대를 광주 지역에서 서울 등 수도권으로 넓혔다. 이들의 사업 영역 중에서 사행성 도박은 최대 수익원이다.

2011년에는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진출한 6개 폭력 조직이 연합해 서울 강남 일대에서 사설 도박장을 운영하다 경찰에 적발되었다. 여기에 신양관광파도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이들은 하우스장·롤링(모집책), 꽁지(자금책), 문방 등의 역할을 조직적으로 분담했다. 수사기관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5곳의 도박장을 단기 월세로 임대해 수시로 옮겨가면서 점조직으로 도박장을 운영했다.

이들은 또 수사기관의 자금 추적을 피하기 위해 하부 조직원, 지인이나 도박자 명의로 된 차명 계좌를 이용해 2~3단계의 자금 세탁 과정을 거쳐 도박 자금을 현금화하는 등 치밀하게 도박 자금을 관리했다. 사설 경마에서도 비슷한 수법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신양관광파 조직원들끼리는 서울에 올라오거나 지방으로 갈 경우 서로 숙식을 제공하는 등 끈끈한 유대 관계를 맺고 있다. 검찰이 확보한 CCTV에는 신양관광파의 조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서로 왕래한 모습도 포착되었다. 김기훈 수원지검 강력부 주임검사는 “구체적인 인적사항을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출입구 CCTV 화면에서 하부 조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몇 명 보였다. 어찌되었든 (신양관광파가) 수도권으로 진출한 것은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5월 대전지검 서산지청이 적발한 ‘경마 승부 조작 사건’에는 광주 충장OB파와 제주도의 대표적 조폭인 땅벌파 조직원들이 경마 브로커로 활동하며 전주(錢主) 역할을 했다.

‘단순 사기’ 아닌 ‘조직 범죄’로 다뤄야

조폭들은 여성을 센터장에 앉혀 얼굴마담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이 여성들도 알고 보면 대부분 남편이나 그 가족들이 조폭이나 건달인 경우가 많다. 여성이 직접 운영할 경우 그 뒤에는 뒤를 봐주는 조폭들이 있는 것이다. 조폭들은 이른바 ‘진상 고객’들을 처리해주는 역할을 한다. 조폭들이 사설 경마센터 운영이나 전주로 나서지 않더라도 ‘해결사’ 등으로 개입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09년 한국마사회가 형사정책연구원에 의뢰한 용역 보고서에는 사설 경마의 배후로 ‘조직폭력배가 25.4% 관련이 있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조폭들이 50% 이상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연구 용역을 할 당시보다 4년여가 지난 데다, 사설 경마가 첨단 수법으로 진화되면서 조폭들의 참여가 쉬워졌기 때문이다. 경찰 등 수사기관 수사도 1단계인 현장 수사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배후를 밝히는 데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형사정책연구원은 “사설 경마에 조폭들의 개입이 강화되면서 이들이 진화하는 만큼 사설 경마도 같은 맥락에서 진화하고 있다”고 보았다. 향후에도 조폭들의 사설 경마 시장 개입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그만큼 안전하면서 큰돈을 만질 수 있어서다.

사설 경마에 조폭이 몰리는 이유는 또 있다. 현재 사설 경마는 ‘사기도박’으로 분류되어 있다. 그래서 경찰 수사는 지능범죄수사팀에서 맡고 있다. 조폭들이 개입되어 있지만 조직범죄로 다루지 않아 조직의 실체를 규명하는 데 소극적이다. 만약 수사기관에 적발된다고 해도 수백만 원의 벌금을 내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그렇다 보니 붙잡혀도 ‘벌금을 내면 그만이다’라는 생각이다.

경마업계 관계자는 “사설 경마는 우연을 가장한 사기도박이 아니라 경마 실황을 실시간으로 중계해 베팅한다. 경마장 내에서 은밀하게 행해지는 소규모 도박이 아니라 하우스나 인터넷을 통해 행해지는 대규모 조직적 도박이다. 당연히 조직범죄로 보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즉, 사설 경마를 경찰청 강력팀이나 검찰청 마약·조직범죄수사부에서 수사해서 조직 규모와 조직 자금 등을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만 조폭들의 ‘사설 경마’에 대한 조직적인 개입을 차단할 수 있다고 본다. 지금 이런 상태로 두면 ‘범죄 불감증’에 걸린 조폭들이 너도나도 사설 경마에 뛰어들 가능성이 농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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