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나 홀로 인사’가 민주당 살린다?
  • 양정대│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3.02.19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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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출범 앞둔 ‘청문회 정국’서 여야 본격 힘겨루기 예고

2월13일 오후 6시께. 민주통합당 우원식 원내수석부대표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여당의 파트너인 새누리당 김기현 원내수석부대표였다. 김부대표는 다급한 목소리로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민주당) 논평이 좀 세졌던데, 당내에 부정적인 의견들이 좀 많은 것이냐”라고 물었다. 곧이어 그는 “혹시 누가 타깃인지 좀 알 수 있느냐”라고도 했다. 우부대표는 “아직 자료도 받은 것이 없고 해서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며 즉답을 피했다.

바야흐로 ‘인사청문회 정국’이 시작되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명한 국무총리 후보자와 각 부처 장관 후보자의 면면이 드러나면서 이들에 대한 청문회가 정치권의 최대 현안으로 부상한 것이다. 대선 패배 이후 존재감을 상실한 민주당으로서는 철저한 검증을 통해 야당의 존재 이유를 확인시켜야 할 필요성이 큰 반면, 새누리당은 청문회 정국을 무사히 넘겨 ‘박근혜 정부’가 안정적으로 출범토록 하는 것이 지상 과제이다. 여야 모두 부담이 큰 상황인 셈이다. 양당 원내수석부대표의 전화 통화는 이런 기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청문회 정국의 주도권은 누가 뭐라 해도 야당, 그중에서도 1백27석을 가진 민주당의 몫이다. 후보자들의 도덕성과 자질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국민적 카타르시스를 이끌어낼 수 있고, 이는 야당의 존재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개별 의원들 입장에서도 ‘청문회 스타’로 떠오를 경우 차기 공천은 물론 더 큰 꿈을 꿀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다.

지난 2월8일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가운데)가 삼청동 인수위원회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후 인수위를 나서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민주당은 지금 ‘낙마 대상자’ 선별 중

실제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의 상당수 의원들은 일전을 벼르는 분위기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당 차원에서 철저한 검증을 공언하자마자 법조인 출신 정홍원 총리 후보자로부터 위장 전입을 시인받는 전과를 올렸다. 김병관 국방부장관 후보자를 향해서는 “아들이 8세 때 부동산을 편법 증여해놓고 이를 숨기기 위해 허위로 재산 신고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고, 검찰 재직 시 대표적 ‘공안통’이었던 황교안 법무부장관 후보자에게는 본인의 병역 면제가 정당했는지, 과거 수사 과정에서 편향성을 보이지 않았는지 등에 대한 대대적 공세를 예고했다.

그러나 이러한 강경 기류는 민주당의 자체 판단에 따른 것으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박근혜 당선인의 인선 스타일이 한몫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의 한 원내부대표는 “민주당으로서는 대선 패배 후의 침체된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강공으로 나올 수도 있었겠지만, 새 정부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도 동시에 의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그런데 박당선인이 ‘나 홀로 인사’를 고집하는 바람에 강경 일변도로 나갈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 것이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민주당의 입장은 청문 대상자가 확정될 때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완강해지는 듯한 모습이다.

물론, 아직은 청문회 정국에 임하는 민주당의 목표가 확고하게 정해진 것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의 조각이 아직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박당선인이 육사와 서울대 법대 출신을 중용했던 부친의 영향을 받았다는 뜻을 담아 ‘육법당 인사’라고 비판하지만,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조각 결과를 두고 ‘고소영·강부자 내각’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던 것과 직접 비교할 정도는 아니다.

민주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정홍원 총리 후보자의 경우 결정적인 하자만 없으면 통과시켜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미 한 차례 총리 후보자를 낙마시킨 상황을 감안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이다. 실제로 당내에서는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서는 타깃을 좁혀야 한다”는 의견이 많고, 법사위원들을 중심으로 황교안 법무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비판론이 커지는 분위기이다. 한 원내대표단 관계자는 “당분간은 상징성이 큰 한두 명의 낙마 대상자를 선정하는 내부 작업이 진행될 것이다”라고 전했다.

지난 2월12일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이 국회 당 대표실에서 긴급 비대위 회의를 열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새누리당 “아침에 신문 보기 겁난다”

이에 반해 새누리당은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김용준 전 총리 후보자가 청문회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채 자진 사퇴했던 충격이 그만큼 큰 것이다. 게다가 2월25일 박근혜 정부 출범일에 맞춰 새 내각이 구성되는 것이 물리적으로 힘들어진 상황에서 장관 후보자 중 한두 명이라도 낙마하게 되면 상황이 그만큼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원내대표실 관계자는 “요즘은 아침에 신문 보기가 겁날 정도”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다만 새누리당 내부에서는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오히려 한숨 돌리게 되었다는 분위기도 꽤 있다. 한반도 위기 상황이 고조되면서 여야가 초당적 협력을 다짐한 만큼 민주당이 인사청문회 과정에서도 일정하게 새 정부의 출범을 위해 협력하는 쪽으로 가지 않겠느냐고 기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청문회 정국은 변수가 굉장히 많다는 점에서 어느 때보다 유동성이 크다. 북한 핵실험은 물론이고 정부조직법 개편안 처리, 민주당 전당대회, 4월 재·보선, 국정원의 대선 불법 개입 의혹, 쌍용차 국정조사 실시 여부 등 여야가 정국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일합을 겨뤄야 하는 사안들이 널려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북핵 변수가 커지면 총리나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여러 의혹이 제기되더라도 크게 부각되기 어렵고, 같은 맥락에서 정부조직법 개정안도 여권의 방안대로 처리될 공산이 크다”라고 내다보았다.

반면, 북핵 위기가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까지 확대되지 않을 경우 여야 간 힘겨루기는 시끄러워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 조만간 전당대회 체제에 돌입할 것이라는 점에서 “박근혜 정부의 정상적인 출범을 도와야 한다”는 의견이 공개적으로 대두될 가능성도 극히 희박하다. 같은 맥락에서 이른바 ‘국정원 여직원 사건’이나 쌍용차 국정조사 문제를 두고도 민주당에서는 강경론이 비등해질 것으로 보인다. 전략통으로 불리는 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불쏘시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였던 이동흡 전 헌재소장 후보자가 서둘러 사퇴한 만큼 우리 입장에서는 특별히 부담될 것이 없다”라고 말했다. 청문회 정국을 야성(野性) 회복의 계기로 삼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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