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연극계를 호령하는 ‘자이니치’ 정의신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3.02.05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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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한국인의 뿌리까지 거슬러 올라가다

재일 극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의 연극 무대에는 국경이 없다. 그가 대본을 쓰고 양정웅이 연출한 <야끼니꾸 드래곤>(2009년)은 한국과 일본의 배우가 함께 출연해서 일본 국립극장과 한국 예술의 전당에 차례로 올랐고, 그해 아사히 연극상 그랑프리, 요미우리 연극상 대상과 한국말로 연기한 배우 고수희가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번에는 <나에게 불의 전차를>이라는 작품의 극본과 연출을 맡아 지난해 말 도쿄와 오사카에서 40회 공연해 전석 매진, 전회 기립 박수라는 호응을 이끌어내고 2월 초까지 한국 공연을 가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전회 매진을 기록한 이 연극은 출연진이 화려하다. 우리에겐 초난강으로 더 잘알려진 쿠사나기 츠요시, 한때 청순미의 대명사였던 히로스에 료코, 우리에게는 <유레루>와 <도쿄 소나타>로 잘알려진 연기파 배우 카가와 테루유키, 한국 배우 차승원과 김응수 등 한 무대에 세우기 힘든 배우들이 정의신이라는 깃발 아래 총출동했다.

ⓒ 시사저널 전영기
한국인 디아스포라 태동기 탐험

전작 <야끼니꾸 드래곤>에서 1960년대 일본 간사이 지방의 조선인 빈민촌을 응시했던 그는, 이번에는 1920년대 한반도로 일본인 배우를 끌고 들어갔다. 일본에서 마이너리티로 취급받는 재일 한국인(자이니치)으로 자라 아직껏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이름도 한국식 발음 ‘종으싱’을 고수하고 있는 그는 한국에 있는 어느 극작가나 연출가보다 더 열심히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이야기한다.

‘한국이라는 조국은 당신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지 않느냐’라고 묻자 그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 몸에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어릴 때 할머니랑 둘이 화장터 옆 동네의 한국인 부락에서 한국인으로 살았다. 내 원점을 점검한다는 뜻에서 이런 작품을 만들고 있다. 아버지도 어릴 때부터 항상 ‘너는 한국인이니까 한국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라고 말했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그를 더 힘들게 하지 않았을까. “처음부터 일본인으로 사는 것을 포기했다. 한국인으로 일본 회사 들어가기가 어려웠다. 대학을 중퇴하고 고민이 많았다. 영화나 연극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운이 좋게 잘 풀렸다. 지금 나에게 일본 사람으로 살아가라고 한다면 그것이 더 힘든 일이 되었다.” 그는 “내가 살았던 곳이 히메지 성의 공원으로 편입되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요즘은 ‘내가 세계문화유산에서 살던 사람이야’라고 자랑한다”라고 덧붙였다.(웃음)

그는 자신의 유년기 경험과 자이니치로서 차별받고 사회 진출을 포기했던 경험을 자신의 작품 곳곳에 녹여 넣고 있다. <야끼니꾸 드래곤>에서 비행장 근처의 공유지에 무허가 집을 짓고 사는 설정은 그의 아버지 얘기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어린 시절 지붕 위로 올라가서 노는 것을 좋아했던 ‘까불이’였다고 말했다. <야끼니꾸 드래곤>과 <나에게 불의 전차를>에서는 지붕 위로 올라가는 소년이 주요 모티브로 활용된다.

한국과 일본 관객을 동시에 사로잡은 비결은?

그의 작품에서는 일본산 문화 콘텐츠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감정을 억누르고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한국산 콘텐츠처럼 슬픔과 기쁨이 앞뒤로 붙어 있고, 소리치고 고함치는 격렬한 표현이 등장한다. “일본에서는 특별한 작가라고 한다. 내가 한국 부락에서 자란 재일교포라는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인지 마이너리티에 대한 관심이 많다.”

이런 식의 연출에 대해 일본 대중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는 “동일본 대지진 이전 일본 연극은 개인을 향해 가는 것이 주류였다. 대지진을 계기로 연대감을 강조하는 분위기이다. 내가 하는 것이 진짜 인간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주니까 거부감이 없어졌다. 내 연극에서 울고 웃는 게 자주 반복되니까 배우나 관객들이 ‘정의신 연극은 감정이 바쁘다’라는 농담도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에서 드라마나 영화, 연극으로 많은 상을 받았고 <나에게 불의 전차를>처럼 유명 배우들이 출연을 자청하고 있다. 인기와 평가가 높기 때문이다. “내 입으로 얘기하기 부끄럽지만 같이하고 싶다는 배우가 참 많다. 내 작품에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진심으로 웃고 울리고 인생이 그렇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니까 일본 관객이 좋아하는 것 같다.”

“운이 좋았다”고 말하지만 한국과 일본, 어디에서도 보듬어주지 않았던 성장기를 거쳐야만 했던 그는 그 경험을 작품을 통해 따뜻하게 녹여냈고, 그의 작품은 한국과 일본의 대중이 서로 호응해주는 것으로 보상받고 있는 듯하다.

이번 프로젝트가 끝나자마자 그는 3월8일부터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블랙 텐트>라는 작품을 한국 배우를 데리고 보름간 무대에 올린다. 4월에는 그의 연출작이 도쿄에서 올라간다. 5월에는 그가 대본을 쓰고 국립극단 단장인 손진책이 연출하는 일본 신국립극단의 <아시아온천>이 도쿄에서 막을 올리고 이어 6월에는 한국 예술의 전당에서 막을 올린다.

한 가지 팁. 많은 사람을 울리고 웃겼던, 그래서 재공연 요구가 빗발쳤던 <야끼니꾸 드래곤>이 2009년, 2011년에 이어 2016년 세 번째 재공연하기로 결정되었다. 당연히 한국 공연도 함께 열린다.   


에서 연기하는 카가와 테루유키(오른쪽). ⓒ 우메다예술극장 제공
정의신은 이번 연극에 출연한 배우 카가와 테루유키에 대해 “그가 젊었을 때 내가 대본을 쓴 영화에 두 번 출연했다. 다른 사람과 다른 배우, 재밌는 사람이라는 인상이 남아 있었다. 언젠가는 연극 작업을 한번 같이해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출연 요청을 했더니 바로 수락했다. 그를 위해 한·일 혼혈인이라는 역을 만들어냈다”라고 밝혔다.

카가와는 정의신의 작품 세계에 대해 “그의 특징은 웃음과 슬픔이 종이 한 장 차이로 등지고 있다. 일본 작품은 대개 두 감정이 따로 떨어져 있다. 그는 모든 훌륭한 연출가가 그렇듯 전혀 정반대에 있는 것을 한곳에 공존시키는 연출가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영화 <유레루>에서 형제간에 같은 여자를 두고 갈등하는 미묘한 감정의 흔들림(유레루)을 디테일하게 표현하는 명연기를 보여주었다. 반면 이번 <나에게 불의 전차를>에서는 ‘설경구처럼’ 감정의 진폭을 겉으로 폭발시키는 역을 해냈다. 이런 경험이 그에게 낯설지 않았을까. “국적을 떠나서 사람들이 느슨한 거짓말을 하면서 살다가 어느 순간 날것 그대로 토해내고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이 있다. 이 연극에서는 그 순간을 다룬다. 나는 느슨한 거짓말 아래 뜨거운 용광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표현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이다. <유레루>에서는 하나의 단순한 감정을 완전 범죄를 위해 드러내지 않으려 복잡하게 표현한 것이고, 이번 연극에서는 그런 감정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한국 배우와 같이 작업하면서 그들의 뜨거운 열정이나 표현이 부러웠다.”

가부키 배우를 아버지로 둔 예인 집안에서 태어난 카가와는, 가부키 배우로 입문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나는 자유롭게 살았다. 아들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가부키 배우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하지 않으면 (가부키 배우의 맥이 끊어지는 것이) 내 책임이 되니까 하게 되었다.” 그는 가업을 이으면서 엄격한 세계를 향해 자의로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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