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테리아에 로봇 붙여 암 치료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3.01.29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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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부터 진단ㆍ치료까지…국산 로봇 시대 열렸다

공상 과학 영화에 등장하는 로봇. 그 로봇을 활발히 사용하는 곳이 의료계이다. 약 15년 전에 선보인 수술용 로봇은 현재 거의 모든 대형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데 쓰인다. 이런 수술용 로봇뿐만 아니라 다양한 로봇이 의료기관에서 환자를 돕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국산 의료용 로봇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또, 그 크기가 박테리아에 붙여 암을 치료할 정도로 작아졌다.

지난해 10월 말 아랍에미리트에서 서울대병원으로 환자 한 명이 긴급 후송되어 왔다. 47세인 이 아랍 여성은 뇌졸중으로 쓰러져 현지 병원에서 긴급 치료를 받아 생명을 건졌으나 오른쪽 반신 마비 증세가 심했고, 의식이 불분명하고 걸을 수도 없을 만큼 심한 상태로 이 병원에 입원했는데 추가 치료를 받고 의식을 차렸다. 그 다음 문제는 걷는 것이었다. 사람은 오랫동안 걷지 않으면 보행 기능을 잃어버릴 수 있다. 심한 마비 증세로 4~5개월 정도 재활 치료를 받아야 했던 그는 약 3개월 만에 걷게 되었고, 1월 말 퇴원을 앞두고 있다. 재활 치료 기간을 절반 정도 단축할 수 있었던 비결은 보행 로봇(워크봇)에 있다. 그는 지난 1월 초부터 한 달 동안 이 병원의 보행로봇재활센터에서 워크봇을 활용한 걷기 훈련을 받았다. 매일 워크봇의 도움을 받아 25~30분 동안 걸었다.

서울대병원 의료진이 직접 보행 로봇을 시연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착용하고 걸을 수 있는 보행 로봇

워크봇은 사람의 다리처럼 생겼다. 워크봇을 사람의 양다리에 착용하면, 센서가 환자의 생체 신호를 탐지해서 고관절·무릎·발목 등의 인공 관절을 움직여 사람의 두 다리를 움직이게 한다. 바닥은 일반 러닝머신과 같아서 사람이 걷는 속도에 맞춰 움직인다. 처음에는 환자의 다리 힘이 없으므로 워크봇이 다리를 강제로 움직이지만, 한 달 정도 지나면 사람이 로봇을 움직일 정도로 다리 근육에 힘이 생긴다. 오래 걷는 만큼 환자의 심폐 기능과 지구력도 강해진다.

워크봇은 환자의 회복 시간을 단축시켜준다. 통상 걷기가 불편한 환자는 눕거나 앉아서 물리치료사의 도움을 받아 다리 근력을 키운 후에 지팡이나 평행봉을 짚고 걷는 연습을 한다. 그러나 워크봇을 이용하면 다리 근력을 키우고, 걷는 동작을 동시에 할 수 있어서 그만큼 치료 기간을 줄일 수 있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인 뇌졸중 환자가 지팡이를 짚고 걷기까지 약 한 달이 걸린다면, 워크봇을 이용하면 그 기간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 또, 장시간 걷기 훈련이 필요한 환자를 재활치료사가 2시간 이상 부축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도 사람처럼 피로를 느끼지 않는 로봇은 유용하다.

이 로봇은 정부 시범 사업의 하나로 4개 의료기관(서울대병원, 국립재활원, 양산부산대병원, 원주기독병원)에서 활용하고 있다. 사람(물리치료사)보다 치료 효과가 뛰어나다는 점이 객관적으로 증명되면 워크봇의 활용은 활발해질 전망이다. 시범 사업 기간인 현재 워크봇 보행 치료 비용은 1만5천원으로 일반 물리치료비와 같다. 그러나 병원에서 정식 치료 목적으로 사용하게 되면, 건강보험이 적용되기 전까지는 그 비용이 오를 것으로 보인다.

오병모 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워크봇은 뇌졸중, 뇌 손상, 척수 손상에 의한 신경계 마비로 인해 걷기가 불편한 환자가 물리치료사 없이도 걸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다리가 마비된 환자는 5~10분 동안 걷기가 어렵지만, 워크봇의 도움을 받으면 수십 분 동안 훈련할 수 있다. 지금까지 약 2백건을 활용해보니 환자 만족도가 높게 나타났다. 무엇보다 환자 자신이 걸으려는 의지가 강해졌다. 예컨대, 지난주에는 3이라는 힘으로 걸었다면 이번 주에 10이라는 힘으로 걷는 자신의 발달 과정을 모니터를 통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즉, 자신의 걷기 능력이 향상된 것을 느끼고 더욱 열심히 훈련을 받는 것이다. 장점이 아무리 많아도 모든 환자가 로봇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개복 수술을 받은 사람은 배에 압력이 갑자기 높아질 수 있고, 골다공증 등으로 뼈가 약한 사람은 골절 위험이 있으므로 로봇 치료가 적합하지 않다. 따라서 기존 보행 치료 방법을 완전히 대체하기보다는 보완·보조하는 수단으로 워크봇을 활용하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캡슐 내시경 로봇(오른쪽)과 그 로봇이 무선으로 보내온 사람 위장 영상.
24시간 환자 상태 살피는 간호 로봇

노인복지시설인 경주시립노인전문간호센터에는 간호 로봇(M5)이 있다. M5는 한국로봇융합연구원이 지난해 12월 국내 최초로 개발한 노인 간호 로봇이다. 기존에 외국산 간호 로봇이 있었지만 M5는 소형이어서 규모가 작은 요양병원에서 활용도가 높은 편이다. 13개 병실을 돌아다니며 노인들의 상태를 점검하는 것이, 높이 80cm에 원통형으로 생긴 M5의 주 임무이다. 예를 들면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치매 노인들은 기저귀를 차고 있는데, 그 기저귀에 동전 크기만 한 센서가 달려 있다. 사람이 볼일을 보면 센서가 그것을 감지하고 M5는 그 정보를 받아 의료진에게 달려가서 어느 병실 어떤 노인의 기저귀를 갈아주어야 한다고 말로 알린다. 기존에는 사람이 일일이 노인들의 상태를 눈으로 확인하거나 냄새로 파악했으나 로봇의 도움으로 그런 불편이 사라졌다. 기저귀를 바로바로 교체할 수 있으므로 환자도 항상 쾌적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캡슐 내시경 로봇(오른쪽)과 그 로봇이 무선으로 보내온 사람 위장 영상.
아침에 환자들을 깨워주는 모닝콜 기능도 있다. 환자가 치료 등의 이유로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할 때 M5는 병실로 이동해 말이나 음악 등으로 환자를 깨운다. 같은 방법으로 식사나 운동 시간을 알려주기도 한다. 충돌 방지 센서가 달려 있어 사람과 충돌하는 일은 없다. 밤에도 수시로 병실을 돌아다니면서 자체에 내장된 영상 카메라로 환자들의 상태를 파악한다. 이상을 발견하면 의료진에게 달려가 환자의 상태를 전달한다. 물론 영상 카메라는 실시간 병원 모니터로 전송되어 의료진이 볼 수도 있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로봇인 만큼 실내 공기를 살균하고 탈취하기도 한다.

서을해 간호사는 “M5가 복도와 병실을 돌아다니니 노인들이 신기해한다. 말을 걸어보고 로봇을 따라다니기도 한다. 시설 분위기가 한결 활기차게 변했다”라고 전했다. 로봇 간호사를 이용해본 최현택씨(69)는 “이제는 간호사를 대신해 로봇이 돌봐주니 신기하기도 하고, 친근한 모습을 한 친구가 한 명 더 생긴 것 같다”라고 말했다. M5를 개발한 한국로봇융합연구원의 박준하 주임연구원은 “누워 있는 환자를 돌려 눕히거나 환자를 휠체어에 앉히는 기능을 M5에 추가할 예정이다. 최근에는 탑승형 이동 로봇도 개발했다. 휠체어처럼 생겼는데, 환자를 입력된 목적지까지 이동시켜주는 로봇이다”라고 설명했다.

전남대 로봇연구소의 연구원이 박테리아 로봇의 작동을 지켜보고 있다. ⓒ 전남대 로봇연구소 제공
캡슐 내시경 로봇, 모든 소화기관 진단·치료

10여 년 전 국내 최초로 개발해 수출도 하는 의료 로봇은 캡슐형 내시경 로봇이다. 2007년 식약청의 승인을 받으면서 일부 병원에서 사용하던 것이 지금은 상당수의 병원에서 사용하는 대표적인 의료 로봇이 되었다.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캡슐 내시경을 알약처럼 복용하면 식도와 소장 등을 따라 내려가며 10만여 장의 사진을 촬영해 몸속의 이상 여부를 알려준다. 의사는 이 영상을 보고 진단해 최적의 치료 방법을 찾는다. 일반 내시경을 사용할 때 환자가 느끼던 고통이나 불쾌감이 없어서 2000년대 중반 이후 선진국을 중심으로 사용이 늘어나고 있다. 한 번 사용하고 버리는 방식이어서 소독 등 관리 문제가 있는 기존 내시경과 달리 위생적이다.

일반적으로 캡슐 내시경은 소장을 진단할 용도로 사용한다. 소장은 다른 소화기관보다 구불구불해서 일반 내시경으로는 진단하기가 쉽지 않아 캡슐 내시경이 안성맞춤이다. 위나 대장 등은 기존의 내시경으로도 충분히 진단할 수 있다. 캡슐 내시경은 1999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지능형 마이크로시스템 사업단과 연세대 의대 송시영 교수팀 등이 공동으로 개발한 로봇이다. 그 기술은 현재 일반 기업(인트로데믹)으로 이전된 상태이다. 이 회사는 유럽 등 65개국에 캡슐 내시경을 수출하는 등 지난해 8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올해는 1백20억원이 목표이다. 이 회사의 유럽 시장 점유율은 20% 수준이다. 지난해 12월에는 미국 식품의약청(FDA)의 승인을 받은 만큼 미국 시장 점유율도 높일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그 전에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캡슐 내시경은 식도와 위장 등 소화기관의 연동운동에 따라 아래로 내려간다. 사람이 캡슐 내시경을 삼키고 몇 시간이 지나서야 진단 영상을 의사가 받아볼 수 있다. 기존 내시경처럼 의사가 직접 무선으로 로봇을 조종하면서 소화기관의 이곳저곳을 살펴보는 기능은 앞으로 보강해야 할 부분이다.

이런 필요에 따라 전남대 로봇연구소는 최근 환자가 삼킨 지 10~20분 만에 의사가 실시간으로 진단할 수 있는 캡슐 내시경을 개발했다. 실제로 병원에서 사용하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지만, 이 캡슐 내시경은 의사의 판단에 따라 검사를 위해 조직도 떼어낼 수 있고, 염증이 있는 부위에 약물을 투여하는 기능도 가지고 있다.

비싼 검사 비용도 해결해야 할 점이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캡슐 내시경 검사비는 병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일반 내시경 검사비보다 10배가량 비싼 77만원부터 1백40여 만원까지 다양하다.

송시영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국산 캡슐 내시경의 미국 FDA 승인은 선진국이 독점하고 있는 최첨단 진단 기기 분야에 한국이 합류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00년대 초 캡슐 내시경을 최초로 제품화한 이스라엘, 기존 내시경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는 일본 등과 치열한 승부를 펼칠 것이다. 그러나 의사, 과학자, 정부가 연구 첫 단계에서부터 합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현재는 연구, 지원, 활용이 제각각이어서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2009년까지만 해도 국산 캡슐 내시경의 성능이 외국 제품보다 좋았지만 세계 시장으로 뻗어나가지 못한 배경이다”라고 지적했다.

연구원이 뇌 수술 로봇을 이용한 수술 시범을 보이고 있다. ⓒ 세브란스병원 제공
1㎜부터 1천분의 1㎜까지 작아진 로봇

대장 내시경 로봇도 최근 병원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진단과 치료를 하는 기능은 기존 내시경과 다르지 않다. 기존 내시경과 다른 점은 거의 90°로 꺾인 대장을 자유자재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항문에서 출발한 대장 내시경 로봇은 애벌레가 기어가듯이 대장을 통과하면서 사진도 찍고, 용종도 제거한다. 기존 내시경은 대장의 구부러진 부분을 펴다시피 하므로 환자가 통증을 느꼈다.

현재 개발이 완료되어 곧 병원에서 사용할 로봇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눈길을 끄는 로봇은 혈관 치료용 마이크로 로봇이다. 지름 1㎜인 이 로봇은 심근경색 치료용이다. 심장에는 약 2㎜ 굵기의 관상동맥이 있다. 이 혈관에 혈전 등이 생겨 피가 잘 흐르지 않으면 심근경색이 온다. 이 혈관이 갑자기 꽉 막히면 사람 생명이 위태로워진다. 이때 이 로봇을 사람의 허벅지에 있는 정맥에 주사하면 심장까지 이동해서 막힌 관상동맥을 뚫어 생명을 구한다. 이 로봇을 개발한 전남대 로봇연구소는 2010년 세계 최초로 돼지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성공했고, 지난해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우수 연구 성과 12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수술이 까다로운 뇌 수술도 로봇이 담당할 날이 머지않았다. 지름 4㎜짜리 로봇 집게 두 개가 지름 20㎜의 두개골 절개 부위로 들어가 움직이며 뇌종양 제거 등의 수술을 한다. 의사는 조종간으로 로봇 집게를 자유롭게 움직이며 정밀한 수술을 할 수 있다. 기존 수술보다 두개골 절단 부위가 작아서 환자의 회복 시간이 빠르다. 올해 이 로봇의 시제품이 마무리되고 사람에게 적용하는 임상시험에 들어갈 예정이다. 해파리 로봇은 말 그대로 형태와 움직임이 해파리를 닮았다. 약 17㎜ 크기의 이 로봇은 해파리처럼 몸체와 촉수를 가지고 있는 마이크로 로봇이다. 인체 내에 유체로 채워진 공간(척수강, 뇌실, 방광 등)에서 유영 방식으로 이동하면서 진단·치료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의료 로봇은 나날이 작아지는 추세이다. 2001년 지름 24㎜의 대장 내시경 로봇, 2003년 지름 11㎜의 캡슐 내시경 로봇을 개발했다. 그 후 지름 1㎜의 혈관 치료용 마이크로 로봇에 이어 지름 50마이크로미터 크기의 나노 로봇이 개발되었다. 이 나노 로봇의 대표적인 사례가 박테리아 로봇이다. 박종오 전남대 로봇연구소장(기계시스템공학부 교수)은 “의료 로봇의 기초는 수술용 로봇이었다. 사람이 수술할 때보다 환자의 절개 부위를 적게 절개하므로 환자의 회복이 빠른 장점이 있다. 현재는 절개하지 않고 수술하는 방법으로 마이크로로봇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추세는 가속화되어 곧 나노 로봇 시대로 접어들 것이다. 박테리아에 로봇을 붙인, 이른바 박테리아봇이 그 대표 사례이다. 박테리아가 암까지 이동하면 로봇이 약물을 암세포에 투여해서 치료한다. 항암제를 몸 전체에 투여하지 않고 암에 직접 투여함으로써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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