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인 ‘범죄자 아내’의 든든한 후원자
  • 울산ㆍ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3.01.21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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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우수 인권상’ 받은 울산지방검찰청 이순옥 검사

검사와 인권(人權). 검사는 인권의 파수꾼이자, 수호자이다. 하지만 피의자에 대한 강압적인 조사 과정에서는 인권의 침해자로 돌변할 수도 있다. 그만큼 검사는 인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수호해야 하는 아슬아슬한 경계선에 서 있다.

이에 법무부는 인권 수사와 보호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1년에 두 번씩 우수 인권검사 3명과 인권수사관 3명을 선정해 법무부장관 표창을 수여하기로 했다. 그 첫 번째인 ‘제1회 우수 인권검사’ 수상자로 울산지검 이순옥 검사(여·34)와 대구지검 김천지청 왕선주 검사(여·34), 대구지검 김진 검사(여·32) 등 3명을 지난해 12월28일 선정했다. ‘제1회 우수 인권수사관’으로는 창원지검 마산지청 황승민 수사관과 광주지검 이기석 수사관, 창원지검 통영지청 박성길 수사관 등을 뽑았다.

이 가운데 울산지검 이순옥 검사는 수사 과정에서 알게 된 한 미성년자 미혼모의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지난 2011년 포항 지역의 조직폭력배였던 최 아무개씨(21)는 자신의 동거녀인 권 아무개양(19)이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고서 조직을 탈퇴하려 했다. 하지만 조직은 그를 순순히 놓아주지 않았다. 울산으로 도망친 최씨를 쫓아와서 보복 폭행을 가하려 했던 것이다. 이에 최씨가 차량을 급히 몰고 달아나다 뺑소니 사고를 일으켰고, 40대 남성 피해자는 사망하고 말았다. 이 사건을 배당받은 이순옥 검사는 피의자 최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의 딱한 사연을 듣게 되었다. 미성년자인 최씨의 동거녀가 임신했다는 것이다. 지난 1월15일 울산지검에서 기자와 만난 이검사는 “최씨를 처음 조사할 때는 반항기가 가득했고, 말하는 것도 귀찮아했다. ‘빨리 조사를 끝내주세요’라고만 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검사와 여러 차례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최씨는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었다. 이검사는 최씨의 임신한 동거녀인 권양을 돌보아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죄(罪)에는 벌(罰)이 따르는 법. 2011년 11월, 이검사는 최씨를 특가법(도주 차량)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어찌 보면 검사로서의 직무는 일단락 지은 셈이다.

그럼에도 이검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최씨의 ‘아내’인 권양을 만났다. 이검사는 “권양을 처음 만나기 전에는 그녀가 흔히 말하는 ‘날라리’일 줄 알았는데, 아주 순진한 소녀였다. 권양은 최씨가 출소할 때까지 아이를 키우며 살겠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학교를 중퇴한 권양은 어머니가 가출했고, 아버지는 기초생활보호대상자였다. ‘남편’인 최씨의 집안 형편도 넉넉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에 이검사가 발 벗고 나섰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권양에게 출산 장려금 지원 제도 등 사회 복지 제도를 알려주었고, 출산용품도 선물해주었다. 권양은 지난해 5월 무사히 딸아이를 낳았다.

이검사는 사건 처리가 완전히 끝난 현재까지 ‘최씨 부부’의 멘토 역할을 이어오고 있다. 포항 자택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권양과는 꾸준히 전화 연락을 하고 있으며, 교도소에 수감된 최씨와도 편지를 주고받고 있다. 최씨는 구속된 지 얼마 안 된 지난 2011년 12월10일 편지에서 ‘검사님께서 죄 많은 저를 많은 관심으로 대해주셔서 이렇게 감사 글을 적습니다. (제가) 사랑스러운 가족에게 힘들게 하고 실망감을 주었지만, 남들보다 몇 배로 사랑해주고, 열심히 살아 보답하고 싶습니다. 제 앞으로의 계획은 포스코 협력업체에 취직하여 열심히 일하면서 일식 요리사 자격증을 따고 싶습니다’라고 적었다. 지난해 12월27일에는 ‘얼마 전에 ○○이가(권양) 검사님께서 딸아이 동화책과 CD를 보내주셨다 하여 이렇게 감사 인사도 드리고 새해 인사도 드리려고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라는 감사 글을 보내왔다. 이검사가 ‘인권검사’상을 수상한 사실을 알게 된 직후인 12월31일에도 ‘(이검사의 수상 소식이)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세상 사람들이 다 알았으면 좋겠어요. (검사님께서) 바쁘셔서 어렵고 힘드시겠지만, 제가 아내와 딸아이에게 돌아갈 때까지만 계속 멘토가 되어주세요’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최씨는 이날 편지에서 ‘부유하고 올바른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보다 가난하고 무관심한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이 사고를 많이 치잖아요. 그런데 그런 사람도 검사님께서 착하게 살 것이라고 믿어주신다면, 그 믿음에 실망시켜드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착하게 살 거 같아요. 죄를 짓는다고 벌만 주면 더 삐뚤어지고, 죄를 안 짓고 착하게 살 수 있게 인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 생각해요’라고 적기도 했다.

ⓒ 시사저널 전영기
독후감 쓰게 해 소년범 순화시키기도

이검사는 2006년 2월 인천지검에서 처음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인천지검 부천지청에서 근무했고, 2011년 2월 ‘고향’인 울산지검으로 왔다. 그런데 부천지청에 있던 2009년에도 절도 사건을 일으킨 17세 소년범을 ‘순화’시킨 적이 있다. 이검사가 몇 권의 책을 추천해주면서 독후감을 쓰게 하자, 처음에는 반항적이었던 아이가 서서히 변해갔던 것이다. 이검사는 “(그 소년범이) 제 손을 잡고서 ‘달라지겠다’고 결심하고 행동했던 일이었다”라고 회고했다.

울산여고를 나와 중앙대 법대를 처음 갈 때만 해도 이검사의 꿈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방송국 프로듀서(PD)였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KBS의 <인간극장> 프로그램과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학교 4학년 때 사법고시로 진로를 틀었고, 2년 6개월 만에 합격 소식을 들었다. 이검사는 사법연수원 동기인 남편을 만나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고, 주말마다 가족들이 살고 있는 서울로 올라오는 주말 부부이다.

‘여검사’로 산다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야근하고 주말에도 출근하다 보면 아무래도 아내와 엄마의 역할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변호사인 남편이 연수원 시절부터 나를 이해해주며 서포트(후원)해주고 있어 고맙게 생각한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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