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퀴리 부인을 꿈꾸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3.01.15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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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민 서울대병원 내과 전문의 동양인 첫 미국 심장학회 ‘최우수 젊은 연구자상’ 수상

이사민 서울대병원 내과 전문의(33)는 두 차례 노벨상을 받은 퀴리 부인(마리 퀴리)과 닮았다. 노벨상을 목표로 연구하는 자세나, 의사인 남편과 서로 도와 연구하는 모습이 그렇다. 언젠가는 한국에서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하는 사람이 나올 텐데, 이씨는 그 후보감 가운데 한 명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는 지난해 11월 초순 미국심장학회로부터 상을 받았다. 심장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가 있는 이 단체는 매년 전 세계 연구논문 1만여 편을 심사해서 상을 주는데, 지난해 ‘최우수 젊은 연구자상’이 이씨에게 돌아간 것이다. 동양인으로는 처음이다. 이씨는 젊은 연구자로서 당뇨병을 일으키는 물질을 막는 방법을 세계 최초로 밝혀냈다. 이 연구 결과는 당뇨병뿐만 아니라 비만, 심혈관질환을 치료하는 약을 개발할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씨가 일반 의사에 머무를 사람이라면 이와 같은 기초 연구를 할 이유가 없다. 환자 치료법에 대한 연구를 하기에도 벅차다. 현대 의술에는 과학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의학과 과학이 점점 밀접해지면서 미래에는 용어의 경계 자체마저 허물어질지 모를 일이다. 미래 생명과학의 진로는 의학과 과학을 얼마나 잘 버무리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처럼 의사와 과학자가 서로 소 닭 보듯 해서는 어림없는 일이다. 의학과 과학을 모두 전공한 이씨는 의사 출신 생명과학자가 되려고 한다. 이 꿈을 품어온 지는 오래되었다.

ⓒ 시사저널 전영기
“의사 출신 생명과학자 모습 보일 터”

초등학교 시절에는 수학 한 문제를 풀기 위해 반나절을 씨름했다. 답을 구하고 못 구하고는 상관없이 문제를 푸는 과정 자체가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국제수학경시대회에서 입상까지 할 정도로 실력이 남달랐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이 여는 방학 캠프에 꾸준히 참가해 물리학자, 수학자 등을 만나면서 과학에 흥미를 느꼈다. 서울과학고등학교에 진학한 즈음은 사회적으로 생명과학의 중요성이 강조되던 시기였다.

“생명과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인체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생명과학을 공부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선배들의 조언을 듣고 서울대 의대에 진학해서 의사가 되었다. 하지만 석사와 박사 학위는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에서 받았다.”

퀴리 부인이 20대 중반에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한 것처럼 이씨도 의학과 과학을 공부한 셈이다. 말이 쉬워서 의학과 과학이지, 한 분야만 공부하는 것조차 녹록지 않다. 퀴리 부인이 대학에 입학했을 때 남학생은 9천명이었지만, 여학생은 2백명에 불과했다. 심장을 치료하는 의사 중에 이씨와 같은 여성은 거의 없다.

 이씨처럼 의사 출신 과학자가 되려는 사람이 있지만, 의대 공부를 하다가 지쳐 과학자의 꿈을 포기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융합과학기술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은 의사 출신을 보기 힘든 이유이다. 또, 외국에서 생명과학을 공부한 후 한국에서 직장을 구할 수 없어 외국에서 연구하는 한국 과학자들도 있다.

퀴리 부인은 1903년 여성으로는 최초로 노벨상을 받았다. 이것을 본보기로 삼아 수많은 여성이 노벨상에 도전했고, 성과를 거두었다. 그의 딸과 사위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이처럼 이씨의 행보는 후배들에게 나침반이 될 것이다. 답을 구하는 것과 무관하게 수학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꼈던 것처럼, 앞으로 그가 내놓을 연구 결과로 노벨상을 받을지 모르지만, 그는  연구 자체에 흥미를 느낀다. 그는 이 흥미가 후배들에게도 이어지기를 바란다.

 “국내 생명과학자에 대한 지원과 대우가 외국보다 좋다고 할 수 없다. 과학자도 직업인이어서 현실을 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래서 기초과학을 연구하려는 선배들이 하나 둘 의사로 남으려고 할 때 나도 흔들렸다. 의사로 환자를 진료하는 편이 개인적으로 속이 편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과학자의 꿈을 꾸는 젊은 연구자이므로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그 가능성을 후배들에게도 보여주고 싶다.”

“기초과학에 대한 관심과 지원 필요”

그는 의대에서 만난 선배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색시이다. 서울대병원 교수로 일하는 남편도 낮에는 환자를 진료하고 밤에는 줄기세포 연구에 매달린다. 그 부인에 그 남편이다. 퀴리 부인도 남편과 함께 연구했듯이 이씨도 남편과 서로 격려하며 도움을 주고받는다. 기자는 두 차례의 인터뷰를 통해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들보다 잘난 것도 없어서 인터뷰를 고사할까 망설였지만 생명과학에 대한 중요성을 알리고 싶었다고 한다. 겸손한 자세를 보이면서도 유독 연구에 대한 말을 할 때 이씨의 눈이 빛났다.

“연구가 재미있다.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현상을 발견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이씨가 앞으로 괄목할 만한 연구 결과를 내놓으면, 외국에서 그에게 좋은 연구 환경과 경제적 지원을 약속하며 손길을 뻗쳐올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있는 서울대 의대 연구실은 외국과 비교해 손색이 없을 정도로 수준이 높다. 연구할 수 있는 토양은 갖추어져 있는 셈이다. 굳이 외국에서 연구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또 연구 성과가 국가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면 좋겠다. 그렇다고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기가 막힌 아이디어는 한 천재의 머리에서 갑자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과 토론하는 가운데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다. 나도 외국 학회에서 세계적인 석학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도움이나 힌트를 얻는다. 그런데 한국에는 그런 분위기가 미흡하다. 그렇다고 내가 천재라는 말은 아니다.”(웃음)

퀴리 부인은 폴란드 출신이다. 당시 폴란드에서는 여자가 대학에서 공부할 수 없어 퀴리 부인은 프랑스에서 유학했고, 결혼해서 국적을 바꾸었다. 프랑스인으로서 노벨상을 받은 것이다. 당장 돈이 되는 응용과학을 지원하면서도 기초과학은 등한시하는 국내 과학 연구 환경이 수많은 한국판 퀴리 부인을 내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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