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분 회의에 2,500만원 챙긴 국회
  • 김형준│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
  • 승인 2013.01.14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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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합’ ‘졸속’ 대한민국 국회의 슬픈 자화상

2013년 새해 벽두부터 국회가 국민을 우롱하고 정치 쇄신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잇달아 벌어졌다. 새해 예산안은 ‘쪽지 예산’ ‘밀실·담합 예산’ 논란 속에 사상 처음으로 해를 넘겨 졸속 처리되었다. 1955년 이후 57년 만에 처음이다. 더 심각한 것은 국회 예결위가 2013년도 예산안을 심사하면서 증액한 4조원에 대해 회의를 한 기록조차 없다는 것이다. 예산심의계수조정소위(예결위)는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딱 세 차례만 열어 벼락치기 협상을 벌였고, 예결위 여야 간사는 호텔 객실을 잡아 예산 관련 공무원을 불러다놓고 이른바 쪽지를 바탕으로 예산 증액을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당 대표, 원내대표, 예결위원장과 간사 등 힘 있는 의원들의 ‘지역구 예산 챙기기’가 올해에도 어김없이 되풀이되었다.

더 가관인 것은 졸속·늑장 예산 처리가 끝나자마자 여야 예결위 의원들이 부리나케 외유성 해외 출장에 나섰다는 사실이다. 여야 정치권은 스스로 깎겠다던 국회의원 세비를 그대로 통과시켰다. 의원 연금 축소 약속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논의조차 없이 원래대로 통과시켰다.

1월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바른사회시민회의 주최로 열린 ‘국회 쇄신 촉구 긴급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의원들의 도덕적 해이, 통제 불능 상태

국회의원이 하루만 일하면 단돈 1원도 내지 않고 65세 이후 매월 1백20만원을 평생 받을 수 있다. 일반인이 월 1백20만원의 연금을 받으려면 월 30만원씩 30년을 납입해야 한다.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킨 6·25 전쟁 참전 유공자에게 지급하는 연금은 월 15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이런 사실은 현행 국회의원 연금이 얼마나 큰 특혜인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더군다나 지난 2009년에 의원직에서 제명되거나 금고 이상의 중죄를 지으면 지급 대상에서 뺐던 것을 다시 슬그머니 원래대로 돌려놓았다. 2012년 12월 현재, 전직 국회의원 모임인 헌정회 회원 수는 1천1백41명이다. 이 중 의원연금 지급 대상자는 7백80여 명에 달해 연금 지급 총 지급액은 1백12억2천7백만원이다.

그 밖에 국민의 혈세를 아무 거리낌 없이 마구 써대는 잘못된 국회 예산 운영 실태의 하이라이트는 국회 특위 활동이다. 국회는 지난해 8월에 경직된 남북 관계 해법을 찾기 위해 ‘남북 관계 발전 특위’를 출범시켰다. 다섯 달 동안 단 한 번의 추가 회의 없이 지난해 말 종료되었다. 그러나 운영비 6백만원은 매달 꼬박꼬박 지급되었다. 첫날 20분 회의하고 2천5백여 만원을 챙긴 것이다. 이처럼 19대 국회에서 개설된 7개의 특위에 1억원 이상 지급되었지만, 돈의 사용처는 물론 뚜렷한 결과물을 찾아보기 어렵다. 18대 국회도 사정이 비슷했다. 임기 4년(2008~12년) 동안 28개의 비상설 특위에 집행된 예산은 모두 37억원이고, 회의 1시간에 평균 5백50여 만원을 썼다.

국회의원들의 기득권 내려놓기 차원에서 추진되었던 국회의원 겸직 제한 논의도 진전이 없다. 현행 국회법은 국회의원이 소속 상임위와 관련된 직업 활동만 못 하게 규정하고 있어 보수를 받는 겸직도 가능하다. 현재 94명의 의원이 변호사와 의사, 교수, 업체 대표·사외이사, 각종 협회 이사장직을 겸하고 있다. 18대 국회에서 추진한 ‘의원·변호사 겸직 금지 법안’이 자동 폐기된 바 있어 과연 19대 국회가 국회의원의 겸직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도록 국회법을 개정할지 두고 봐야 한다.

지난해 12월31일 장윤석 예결위원장, 민주당 간사인 최재성 의원, 새누리당 간사인 김학용 의원이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회 개혁 보고서’ 제출해도 철저히 무시

분명 대한민국 국회의원은 화성에서 온 사람처럼 우리와 딴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은 공천 과정이 잘못되어 수준 이하의 의원들이 검증 없이 국회에 들어오고 이들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가 통제 불능에 이를 정도로 만연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왜곡되고 뒤틀린 국회 제도와 구조 그리고 의정 감시 기능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성숙한 의회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있는 미국 의회에서는 의정 활동의 효율성을 높이고 국민의 신뢰를 받기 위한 생산적 불문율(informal rule)이 잘 발달되어 있다. 또한 의원들이 대통령제하에서 의회의 본질적인 기능은 여야 구별 없이 행정부를 견제함으로써 국정 운영의 안정을 가져오는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반면, 한국 국회에서는 의원들의 자긍심도 약하고 공천에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 당 지도부의 지시·복종에 충실한 수직적이고 비생산적인 불문율이 판을 치고 있다. 이런 후진적 불문율이 지배하는 경우에는 의원들의 자율성과 책임성은 사라지고 국민 눈높이에 맞는 의정 활동을 기대하기 어렵다. 더구나 국회의 본질적 기능에 대한 의원들의 이해가 부족하고 국회가 봉사보다는 특권을 누리는 자리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너무나 쉽게 도덕적 해이에 빠지는 것 같다.

더구나, 한국 국회에서는 이런 도덕적 해이를 예방하고 의원들의 비상식적·반도덕적 행동을 강력하게 처벌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 실례로 국회의 윤리특위는 제 식구 감싸기에 바쁘고 의원들이 국회법을 지키지 않아도 집단적으로 이를 무시하는 나쁜 관행이 유지되고 있다. 퇴보를 넘어 저질화로 치닫는 대한민국 국회가 거듭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의원들의 의정 활동을 100%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와 관련된 정보를 국민들이 공유하도록 해야 한다.

가령, 국회법 57조 5항은 소위원회의 공개주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소위 의결로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이 있다. 이런 단서 조항을 없애 예결위 계수조정소위가 100% 투명하게 운영되고, 예산안 증액 심사 속기록 작성이 의무화된다면 쪽지 예산, 밀실 예산은 사라질 것이다. 의원들의 해외 출장 보고서와 예산 집행 내용을 국회 인터넷에 올려 일반 국민들이 열람하도록 해서 정보를 공유한다면 의원들의 외유 논란은 사라질 것이다.

지난 2008년 18대 국회 출범 직후 국회의장 직속 국회운영제도개선 자문위원회가 발족되었다. 2년여 기간에 걸쳐 불합리한 국회 제도와 규칙에 대해 연구해서 보고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국회는 이를 철저하게 외면했고, 여야 정치권은 총선과 대선을 맞아 면피용 정치 쇄신 경쟁에만 돌입했다. 표를 얻기 위해 여야가 제시한 국회 개혁안은 이전 국회 보고서에 고스란히 담겨 있을 정도로 새로운 것이 거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미완의 국회 개혁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과 의지의 문제이다. 의원들이 변하지 않고, 정치 쇄신을 향해 실천하는 양심을 발휘하지 못하면 국회 개혁은 또다시 공염불에 그칠 것이다. 의원들이 처절한 반성 없이 다시금 ‘국회 이기주의’에 빠져 국민을 무시하고 민심과 거꾸로 가는 행보를 할 경우 국민들로부터 철퇴를 맞을 것이다.

현행 국회의원 정수를 대폭적으로 줄이라는 국민의 명령에 직면할 수도 있다. 문제는 국회가 망가지면 행정부의 독주가 시작되고, 행정부의 독선·독단·독주가 시작되면 건강한 정부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한국 정치 비극의 씨앗이 잉태됨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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