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한국에서 살길이 없네요”
  • 이규대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3.01.14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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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민씨 죽음에서 본 우리 사회의 자화상

유서는 없었다. 가슴속에 품은 말들을 차마 풀어낼 수 없었던 것이었을까. 지난 1월6일, 전직 프로야구 선수이자 고 최진실씨의 전남편인 조성민씨가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향년 40세이다. 유서가 없는 탓에, 왜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는 영원히 비밀 속에 묻히게 되었다.

다만 그는, 어머니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 ‘저도 한국에서 살길이 없네요’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한국’이라는 공간을 적시한 점이 눈에 띈다. 실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그에게, 과연 한국 사회는 어떤 곳이었을까. 조씨와 그의 가족이 겪었던 비극적인 개인사를 ‘2000년 이후 한국 사회’라는 프리즘을 통해 비춰보았다.

지난 1월8일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고 조성민씨의 발인식이 엄수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 ‘불안한 인생’ 감수해야 하는 운동선수들

조성민씨는 ‘야구 엘리트’였다. 신일고 재학 시절부터 장래성을 인정받은 기대주였다. 이후 고려대,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 등에서 ‘에이스’로 활약했다. 1백94cm의 큰 키에서 내리꽂는 강속구를 무기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그는 끝내 ‘비운의 선수’로 남았다. 1998년, 갑작스런 팔꿈치 부상을 입은 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예전의 기량을 회복하지 못하고, 일본에서의 선수 생활을 접어야만 했다. 2002년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조씨는 사업에 뛰어들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지만 다시 한번 실패를 맛본다. 제2의 인생을 살아보려고 했으나 이것마저도 삐걱거렸다. 그는 다시 야구장으로 돌아갔다. 2005년 김인식 당시 한화 감독의 부름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이후 3년간 저조한 기록을 남기고 선수 생활을 정리했다. 이후 잠시 동안 코치 생활을 했으나, 재계약에 실패한 후에는 사업에 재도전하는 등 계속 표류하는 삶을 살아왔다.

결국 조씨는 불운한 선수 생활을 했다. 은퇴 후에는 삶의 방향을 찾지 못해 흔들렸다. 이렇듯 운동선수들의 삶이 불행해지기 쉽다는 점은 이미 사회 문제로 떠오른 지 오래다. 이에 대해 장덕선 한국체대 체육학과 교수는 학교 운동부 중심의 엘리트 체육 육성에서 원인을 찾았다. 그는 “이들의 열악한 훈련 환경과 학업을 포기한 대가의 성과는 지나친 경쟁과 결과 위주의 구조를 만든다. 학생 선수들의 학업 능력은 저하되고, 이것은 다시 진로 및 직업 선택의 제한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전반적으로 체육인의 삶의 질을 저하시키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운동선수 출신 중에는 은퇴 후 어렵게 사는 이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1년, 한선교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국가대표 은퇴 선수 35.4%가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발표했다. 대한체육회 및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국가대표 은퇴 선수 6천2백32명 가운데 35.4%가 전국 평균 국민건강보험료보다 낮은 금액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대표 은퇴 선수는 체육계 내에서 손꼽히는 엘리트이다. 일반 선수들은 더욱 열악한 상황일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왼쪽부터 최진실 ⓒ 시사저널 사진자료, 조성민 ⓒ 뉴스뱅크 이미지, 최진영 ⓒ 시사저널 이종현
■ 높은 이혼율과 핵가족의 위기

2000년, 조씨는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여배우 최진실씨와 결혼했다. 스포츠 스타와 이른바 ‘톱 탤런트’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여론의 관심은 뜨거웠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불행했다. 폭행 사건이 발생할 정도로 극단적인 갈등을 거듭한 끝에 지난 2005년 파경을 맞았다.

두 사람이 부부로 만났다 헤어졌던 2000년대 초·중반, 한국의 이혼율은 눈에 띄게 급증하고 있었다. 지난 2000년 처음으로 10만 단위를 돌파한 이혼 건수는 매년 폭증하더니 2003년 한 해 16만건으로 정점을 찍었다. 이후 이혼 건수는 점차 줄어드는 추세에 있지만, 조이혼율(1년간 발생한 총 이혼 건수를 당해연도 인구로 나눈 수치를 1천분비로 나타낸 것)은 여전히 2‰대를 유지하고 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에서 최고 수준에 해당한다. 조씨와 최씨 또한 이런 시대 흐름의 한복판에 있었던 셈이다.

한국사회보건연구소에서 2005년 발표한 보고서 ‘한국의 이혼 실태와 이혼 가정 지원 연구’에서는 “우리나라와 같이 가족주의적 가치관이 강한 사회에서는 이혼에 대한 사회적인 낙인이 심해 이혼 가족은 사회적으로 고립되기 쉽다”고 지적했다. 조씨처럼 대중에게 이름이 널리 알려진 유명인의 경우, 이런 고립감이 더욱 심각하게 다가왔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편 앞의 보고서는 “우리나라에서는 이혼 가족이 겪게 되는 경제 문제, 재산 분할 문제, 자녀 양육 문제, 주거 문제 등에 대한 정책 방안이 미흡한 상황이다”라는 진단도 당시 내놓았다. 조씨와 최씨 부부가 그 전형적인 사례였다.

이들은 이혼 이후에도 오랜 갈등을 겪었다. 자녀(1남 1녀)의 친권을 둘러싼 분쟁 때문이었다. 한편 조씨는 2008년 최진실씨가 사망한 후 두 자녀의 유산 관리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려고 해 여론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 조씨는 지난 2009년 한 방송에 출연해 이를 둘러싼 논란에 괴로운 나머지 “몇 번 자살을 생각했다”고 밝힌 바 있다.

■ 자살률 OECD 1위인 ‘병든 사회’

한때 가족의 연을 맺었던 세 인물이 차례로 목숨을 끊었다. 불과 5년여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최진실-최진영-조성민’으로 이어진 죽음에는 공교롭게도 유사한 점이 많다. 사망할 당시 40세 안팎의 나이였다는 점, 사망 장소 및 방법, 심지어는 유서를 남기지 않고 문자메시지로 마지막 인사를 대신했다는 점까지 비슷하다.

김윤기 서울북부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은 “가까운 지인이 자살로 생을 마감할 경우, 주변 사람들 역시 심리적인 여파를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의학적으로 보면, 신경전달물질 세로토닌을 감소시키는 영향이 있다고 한다. “세로토닌이 줄어들면 우울·불안을 느끼거나 충동적으로 행동하기 쉬워진다”라는 것이다. 전처 및 처남의 죽음을 연거푸 경험한 조씨의 경우, 그 심리적 여파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조씨를 비롯한 유명인들의 자살은 ‘자살 공화국’ 한국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우리 사회의 자살률은 매우 높은 수준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최근 8년간 OECD 국가 1위라는 불명예를 고수해왔다. 높은 자살률은 흔히 사회가 병들어 있다는 징후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2010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전체 조사 대상자 중 7.7%가 자살 충동을 느낀다고 답했다. 상당히 높은 수치이다. 그 이유로는 경제적 어려움(38.8%), 가정불화(15.1%), 외로움 및 고독(12.9%) 등이 꼽혔다. 주변의 자살 위험군 인물에 대한 세심한 관심과 배려가 절실한 이유이다. 조씨의 가족 및 친지들은 평소 그가 우울증이나 자살 충동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씨 또한, 분명히 자살 위험군 ‘7.7%’ 중 한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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