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냉장고에서 50일 버티는 이유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2.12.04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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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 안전의 핵심은 유통 기한보다 보존 온도

ⓒ 시사저널 전영기
유통 기한이 지난 식품을 먹고 배탈을 경험한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는 유통 기한이 지난 식품이라도 문제가 없는 경우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유통 기한은 미스터리이다.

유통 기한은 어떻게 정하는 것일까? 식품위생법에 따라 제조업체는 원료, 제조 방법, 유통 방법 등을 고려해 실험한 후 유통 기한을 정하고 식품의약품안전청장에게 보고한다. 식품회사는 이같은 실험으로 얻은 유통 기한에 안전계수(0.7)를 적용해 실제보다 짧게 설정한다. 실제 먹을 수 있는 기간보다 30% 짧게 유통 기한을 정한다는 뜻이다. 식약청 관계자는 “실험할 수 없는 영세 업체를 위해 식약청은 일부 품목에 대해 권장 유통 기한을 정해두었다. 빵이라면 5일 이내로 표기하면 된다”라고 설명했다.

유통 기한은 식품을 판매하는 기간이다. 제조업체는 법에 따라 제품을 폐기한다. 소비자는 유통 기한이 지나면 먹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유통 기한이 지난 음식을 버리는 이유이다. 식품공업협회에 따르면 한 해에 판매하는 식품의 1.8%가 유통 기한을 넘겼다는 이유로 폐기된다. 한 해 식품 출하액 34조원 중 6천억원어치에 해당한다. 폐기되는 식품을 포함해 한 해 20조원에 육박하는 음식물 쓰레기가 버려진다. 초·중·고등학교 학생 사교육비와 맞먹는 거액이다.

제품에 따라 유통 기한 지나도 섭취 가능

그럼에도 제조업체가 유통 기한을 짧게 잡는 이유는 심리적 저항이다. 식품 관련 사고가 자주 나기 때문에 소비자는 유통 기한에 특히 민감하다. 그러나 유통 기한과 실제 먹어도 되는 기한에는 큰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11월28일 냉장고에서 개봉하지 않은 우유를 발견했는데, 유통 기한은 11월25일까지로 적혀 있다. 3일이 지났는데 괜찮을까. 답은 ‘괜찮다’이다. 유통 기한 50일 뒤인 1월15일 전에 마시면 큰 이상이 없다는 것이 한국소비자원의 진단이다. 한국소비자원은 우유·냉동 만두·치즈 등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식품 10종류에 대해 유통 기한을 넘겨도 먹는 데에 이상이 없는지 실험했다. 소비자원은 먹을 수 있는 기간의 조건을 두 개로 잡았다. 하나는 곰팡이나 대장균이 검출되기 시작한 시점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인체에 큰 해를 입힐 정도는 아니지만 곰팡이가 검출되면 먹기에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 또 다른 하나는 수분 함량이 본래보다 절반 이하로 떨어지는 시점이다. 그 결과, 냉동 만두는 유통 기한 만료 후 25일까지 괜찮았다. 액상 커피는 30일, 슬라이스 치즈는 70일로 생각보다 길었다. 물론 ‘포장을 뜯지 않고 제품 보관 방법을 지켰을 때’라는 단서가 붙는다.

따라서 유통 기한 만료 시점이 반드시 제품의 변질을 의미한다고 볼 수 없다. 이에 따라 소비자원은 식품의 유통·소비 기한 관련 표기를 다양화하는 방안을 식품의약품안전청에 건의했다. 심성보 한국소비자원 연구원은 “유통 기한을 둘로 구분하자는 것이다. 품질이 유지되는 기한과 먹어도 되는 기한으로 표기하는 방법이다. 미국·유럽에서는 이미 시행하고 있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소비자들이 먹어도 괜찮은 식품을 버리지 않게 된다”라고 말했다.

현재 시중에서 판매하는 식품에는 유통 기한이나 품질 유지 기한이 찍혀 있다. 품질 유지 기한은 부패나 변질의 우려가 적은 12개 품목에 적용하고 있다. 변질이 빠른 식품에는 소비 기한(안전 유지 기한)을 표기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제품을 먹어도 건강에 이상이 없다는 기간이다.

식품의 종류와 특성에 따라 다양하게 표기하면 멀쩡한 식품을 버리는 일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홍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이를 아는 소비자는 흔하지 않다.

세계보건기구, 식중독 예방에 온도 강조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식중독 예방을 위해 식품을 조리할 때 지켜야 할 10가지 원칙’ 중에서 네 가지가 온도에 대한 것이다. 그만큼 온도는 식품 안전과 밀접하다. 이에 따라 일본은 보존 기간의 정도에 따라 소비 기한과 상미 기한으로 분류한다. 소비 기한은 품질이 변하기 쉬워 가공 후 5일 이내에 소비해야 할 도시락·반찬류 등의 식품에 붙인다. 상미 기한은 가공 후 품질 변화 속도가 느린 식품을 대상으로 하며, 저장 조건하에서 제품의 고유 품질이 유지되는 기간을 의미한다.

미국은 제품의 종류에 따라 표시법이 다르다. 이유식에는 소비 기한을, 일부 식육과 가금육 제품에는 포장일을 표기한다. 그 밖에 제품 특성에 따라 영업자가 소비 기한, 판매 기한, 포장 일자, 최상 품질 기한 등을 자율적으로 표시한다.

유럽연합(EU)은 단기간에 부패하는 식품에는 소비 기한, 일반 식품에는 최소 보존일을 표시하도록 했다. 호주에서는 저장성이 7일 미만인 식품은 포장일이나 소비 기한을 표시한다. 저장성이 7일 이상~90일 미만인 식품은 포장일, 소비 기한, 최소 보존일로 표시한다. 저장성이 90일 이상~2년 미만인 식품도 포장일, 사용 기한, 최소 보존일로 표시한다.

앞으로 국내 식품에도 다양한 표기로 소비자에게 실제 소비 기한에 대한 정보를 줄 필요가 있다. 또 식품 위생 관계 당국은 여름철에 유통 기한을 준수하지 않은 업체를 적발하기보다는 식품 판매대의 보관 온도 준수 사항(냉장은 10℃, 냉동은 -18℃ 이하)을 자주 점검해 온도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업체를 가려낼 필요가 있다.

실제로 한국소비자원이 냉장 보관한 식빵과 상온에 보관한 식빵을 언제까지 먹어도 되는지를 실험했다. 냉장 보관한 식빵은 유통 기한을 20일 넘긴 시점까지 먹어도 이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상온에 보관한 식빵은 유통 기한 만료 후 6~12일 만에 곰팡이가 검출되었다. 냉장 온도(0?5℃)를 유지하며 보관하면, 식빵은 유통 기한 만료 후 20일이 경과하는 시점까지 먹어도 무방하다. 크림빵과 케이크는 변질 속도가 빨라 유통 기한을 2일 넘기면서 세균이 검출되었다.

소비자의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 소비자들은 할인점에서 냉장 제품을 살 때 유통 기한을 살핀다. 보통 유통 기한이 오래 남은 제품을 진열대 제일 안쪽에 넣고 판매하므로 진열대 안쪽 물건을 찾느라 애를 쓴다. 그러나 정작 그 냉장 진열대의 온도는 살피지 않는다. 냉기가 진열대 구석까지 가는지가 중요하지만 이를 확인하는 소비자는 거의 없다. 정윤희 소비자원 시험검사국 국장은 “유통 기한을 확인하기 전에, 구입하려는 식품이 표시된 적정 온도에서 판매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습관이 식품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 또 냉장·냉동 식품을 구입한 후에는 집에 가서 바로 냉장고에 넣어야 한다. 이런 식품들을 몇 시간씩 차 트렁크 등에 방치하면 안 된다. 유통 기한 외에도 맛, 냄새, 색 등을 보고 판단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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