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 무서워질 잔혹한 살인 이야기
  • 조철 기자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2.12.04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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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족 살인 등 역사 속 인류의 폭력성 파헤쳐

얼마 전 헤어지자는 여자친구를 과도로 무참히 살해한 20대 직장인이 붙잡혔다. 하루가 멀다하고 보도되는 끔찍한 폭행·살인 사건의 가해자 중 상당수는 피해자와 잘 알던 ‘이웃’이었다. 올해 극장가에서도 ‘아는 사람’에게서 성폭행당하거나 죽게 되는 영화로 <이웃 사람> <돈 크라이 마미> 등이 잇달아 개봉되어 현실을 환기시켰다.  

‘2011년 범죄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 해 동안 일어난 아동 성범죄의 45%가 ‘이웃 사람’에 의해 벌어진 것이었다. 강도·살인·폭행의 40% 이상이 아는 사람 간에 벌어졌다고 분석했다. 범죄가 이루어진 장소 역시 외지거나 어두운 곳이 아니라 밝고 익숙한 곳인 데다, 폭행 방법도 모르는 사람에게 가했던 것보다 더 잔인했다고 한다.

역사 교수이자 사회 비평가인 미국의 러셀 자코비 교수는 <친밀한 살인자>를 펴내며 서로 가까웠던 가족·이웃·동료·친구가 적으로 돌변해 폭행과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에 주목했다. 살인 중 75%가 아는 사람 사이에서 벌어진 것이며, 살인의 이유는 대개 아주 사소하다는 것. 그리고 이것은 세계 역사 곳곳에서 발견되는 현상으로 인류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저자는 동족 살인·형제 살인의 역사를 추적해 그 사건들에서 폭력의 진실을 파헤쳤다. 저자는 “폭력은 지인에게서 유래한다는 명제는 폭행을 가하는 대상도, 당하는 대상도 낯선 사람이라는 믿음을 뒤집는다. 정말 그랬다면, 해결책은 당장 나왔을 것이다. 이방인을 이해해보자. 그들과 얘기하자. 접촉하자. 폭력 대책을 세운다면 그것은 더욱더 소통하고, 더욱더 교육하는 방식이 아닐까. 그러나 불행하게도 사람들을 분노하게 하는 사람은 우리네 형제와 이웃이다. 이유는 잘 알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 책은 진화심리학이나 다윈의 이론에서 폭력의 근원이나 인간의 살인 본능을 찾아내는 작업을 떠나 역사 속에 잘 알려진 사건들을 새롭게 분석해 눈길을 끈다. 제1차 세계대전, 미국 남북전쟁, 아일랜드 내전, 스페인 내전 등 유럽과 동아시아 전반의 역사 속을 넘나들며 동족 살해의 사례들을 제시했다. 저자는 “오늘날 주요한 분쟁은 형제간의 싸움이다. 이라크의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 르완다의 투치족과 후투족의 싸움, 발칸 반도의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분쟁, 수단의 북부와 남부 다툼 등 모두 지역 간·종교 간·인종 간 투쟁이다. 서로를 증오하며 죽였던 그들은 쉽게 구별이 안 된다. 함께 일도 했고, 서로 결혼도 했으며 심지어 서로 친족 관계인 경우도 많았다”라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그들이 싸웠던 이유는 달랐기 때문이 아니라 비슷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에 대해 저자는 프로이트의 ‘언캐니(uncanny)’ 개념을 끌어 와 서로 닮은 점이 많은 사람들이 만났을 때 생성되는 ‘기이함’을 설명한다. 사람은 자신과 닮은 사람을 만났을 때 대개 위협을 느낀다는 것이다. 저자는 “여러 시대에서 발생한 폭력이 시사했던 것은, 사상의 자유에 대한 원대한 생각 같은 게 아니라 동포들 간의 작은 차이가 내전의 불을 당겼다는 점이다. 이 작은 차이 때문에 보였던 원한은 골육상잔의 폭력을 부르는 폭탄이었다. (…) 종교, 인종, 민족, 혹은 신념이 똑같은 여자와 남자 또한 매우 비슷하되 족히 다르다. 남자들이 여자를 경멸하는 현상은 거세 공포 때문이다. 여기에도 언캐니의 근원이 존재한다. 남자들은 여자들한테서 자신의 모습이 훼손된 복제 분신을 엿본다. 남자들은 남자답지 않게 될까 봐, 중성화될까 봐 두려워한다”라고 말했다. 반으로 나뉜 남녀가 하나가 되는 일도 힘든데, ‘작은 차이’ 때문에 살벌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라니 두렵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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