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가 재산 갈등에 한솔 ‘어부지리’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2.11.13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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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 차원에서 삼성 계열사 지원 사격 받아 실적 급증

한솔그룹이 운영하는 강원도 원주시 한솔 오크밸리 리조트 내 스키장. ⓒ 연합뉴스
삼성이 한솔과 영보에게 보은 차원에서 선심성 지원에 나섰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삼성이 작심한 듯이 한솔과 영보에게 매출을 밀어주는 모양새이다. 한솔그룹 핵심 계열사인 한솔CSN은 올해 처음으로 매출 4천억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주가 역시 연일 ‘고공비행’을 이어가고 있다. 한솔케미칼과 한솔개발, 한솔테크닉스 등도 삼성 계열사들의 ‘지원 사격’을 받아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재계에서는 올 초 불거진 삼성가 재산 소송에 대한 ‘보은성’ 매출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삼성가의 장남인 이맹희씨(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부친)는 지난 2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상대로 상속 재산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이병철 선대 회장이 물려준 차명 주식 중에서 자신의 몫을 돌려달라는 것이 요지였다. 차녀인 이숙희씨(구자학 아워홈 회장 부인)와 차남 이창희씨의 유족들도 소송에 합류하면서 범(汎)삼성가가 불협화음에 휩싸였다.

가족 분쟁의 진화에 나선 이는 장녀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이었다. 이고문은 “지난 1997년 계열 분리로 상속 문제는 마무리되었다. 삼성가 맏이로 가정의 화합을 생각해 소송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이회장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후 한솔그룹에 대한 삼성 계열사들의 물량 몰아주기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시각이다.

한솔CSN이 있는 서울 을지로2가 파인에비뉴 빌딩(위). ⓒ 시사저널 최준필오른쪽은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 ⓒ 연합뉴스
올해 한솔CSN의 매출 4천억원 육박

한솔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한솔CSN이 우선 눈에 띈다. 이 회사는 지난해 글로벌 경기 침체 여파를 톡톡히 겪었다. 물동량 감소로 매출 하락의 아픔까지 겪었다. 하지만 올해는 삼성 계열사의 집중적인 지원 사격으로 ‘마의 4천억원’ 매출 달성이 기대되고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삼성 계열사의 지원 규모만 5백억원 이상이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한솔CSN의 내부 회계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가장 많은 물량을 지원한 곳은 삼성전자로, 1백50억원을 기록했다. 뒤를 이어 제일모직(1백26억원), 삼성전기(62억원), 삼성토탈(59억원), 삼성전자로지텍(43억원), 삼성SDI(30억원) 순이었다. 지원 규모는 올해 더욱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회사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그동안 거래가 없던 삼성그룹의 계열사들도 올해부터 한솔CSN와 협상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반면 삼성그룹과 각을 세우고 있는 CJ그룹 물류 계열사의 매출은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CJ GLS에 동남아시아 쪽의 물류 사업을 맡겨왔다. 사업 규모만 수천억 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 전체 매출의 20%에 육박하는 규모이다. 하지만 올 초부터 CJ GLS와의 물류 거래를 줄이기 시작했다. 현재는 대부분의 일감이 끊긴 상태이다. 이 줄어든 물량이 삼성에 우호적인 한솔CSN로 넘어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 계열사를 포함한 그룹 관련 매출이 70%를 상회한다. 향후 삼성그룹과의 협력 강화를 통해 삼성전자 등의 해외 부문 물량 증가 가능성이 예상된다”라고 전망했다.

주식시장에서는 이미 한솔그룹 관련주가 삼성가 재산 분쟁의 최대 수혜주로 거론되고 있다. 특히 한솔CSN의 주가는 삼성과 CJ 계열사의 결별 사실이 알려진 지난 9월 이후 급증하면서 1년 만에 1백39.60%(11월8일 기준)나 올랐다. 10월 중순에는 1백76%까지 주가가 상승하기도 했다. 경쟁 회사인 CJ대한통운과 현대글로비스의 주가 상승률은 각각 46.28%와 0.69%에 불과했다. 한솔테크닉스와 한솔케미칼 등 나머지 계열사들도 상황이 비슷하다. 한솔테크닉스는 올 2분기까지 5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생산하는 LCD TV에 한솔테크닉스의 백라이트유닛(BLU)을 사용하면서 적자 탈출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한솔케미칼은 중국 산시 성에 문을 연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반도체 식각액 납품업체로 선정되면서 주가가 41.96%나 상승했다. 같은 업종인 LG화학과 호남석유의 주가가 각각 15.96%와 32.88%가 하락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특히 한솔제지가 89% 지분을 보유한 한솔개발은 지난해 1백43억원대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한솔개발은 현재 골프장 사업과 함께 오크밸리 리조트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 경영이 악화되면서 유동성 우려가 적지 않게 제기되었다. 올 상반기에는 1백1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하지만 최근 삼성 계열사에서 골프와 리조트 회원권을 대거 매입했다는 소문이 증권가에 나돌고 있다. 1대 주주인 한솔제지의 주가 역시 5개월여 만에 37.50%가 상승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인희 고문은 최근 범삼성가 인사들을 오크밸리 골프장에 초대해 희수연을 열 정도로 애착을 가지고 있다. 경영난을 겪고 있는 한솔개발을 우선 지원했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한솔그룹 관계자는 “삼성과의 거래는 철저하게 비즈니스 차원이다. 단가 자체를 최소한으로 깎는 마당에 밀어주기는 말이 안 된다”라고 설명했다.

영보엔지니어링에도 보은성 지원 의혹

범삼성가의 ‘지각 변동’은 다른 곳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이병철 회장의 3녀인 이순희씨도 올 초 재산 소송에서 이건희 회장 쪽을 지지했다. 이순희씨는 현재 삼성전자 협력업체인 영보엔지니어링의 대주주이다. 이씨의 아들 김상용씨가 현재 이 회사의 대표를 맡고 있다. 때문에 영보엔지니어링은 그동안 삼성전자 휴대전화에 딸린 이어폰과 배터리 등을 납품해왔다. 지난해의 경우 2천7백90억원의 매출과 8억4천만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문제는 삼성전자의 매출액 비중이 62%에 달한다는 점이다. 삼성전자의 중국 현지 법인까지 포함하면 매출액의 99%를 삼성전자가 차지하고 있다. 때문에 경제개혁연대는 영보엔지니어링에 대한 부당 지원 의혹을 제기하면서 공정위에 조사를 요청하기도 했다. 경제개혁연대측은 “영보엔지니어링의 매출액 대부분이 삼성전자와의 거래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과의 특수 관계를 고려할 때 부당 지원 의혹을 확인할 필요가 있어 조사를 요청했다”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일단 경제개혁연대의 주장과는 다른 해석을 내렸다. 김성삼 공정위 기업집단과장은 “삼성전자와 거래하는 기업 중에는 영업이익의 100%를 삼성에 의존하는 곳도 적지 않다. 거래 의존도만으로 일감 몰아주기를 판단하는 것은 곤란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소송이 격화될수록 범삼성가의 파열음 역시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삼성가의 역학 구도 역시 뚜렷하게 갈릴 것으로 재계 안팎에서는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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