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년 한국사 버무린 30가지 음식 이야기
  • 조철 기자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2.11.13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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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음식 속에 숨 쉬는 우리 역사 건져내

사람들은 특정 음식을 두고 어머니를 떠올리고 고향을 추억한다. 여행길에서 만났던 음식에서는 갖은 사연이 양념처럼 버무려져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음식을 먹을 때 이야기와 함께 먹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EBS에서 방송해 눈길을 끌었던 <천년의 밥상>이 책으로 엮여졌다. 방송과는 또 다른 입맛을 자극하는 이 책은 반만 년 우리 민족과 함께해온 음식에 얽혀 있는 역사 이야기이다. <천년의 밥상>을 연출했던 오한샘씨는 몇 년 전 가을 취재 여행 중에 국도변 기사식당에서 이 프로그램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식당 주인 할머니를 오랜만에 찾은 한 중년 신사가 밥과 열무김치만을 시켜서는 정성스레 먹었다. 중년 신사는 학창 시절 그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했는데, 품삯을 아끼려 밥을 물에 말아 반찬도 없이 먹곤 했다. 그런 그에게 식당 주인은 학생의 자존심이 상할까 봐 다른 반찬은 놔두고 열무김치 한 접시만 슬며시 건네주었다. 그렇게 밥과 열무김치만으로 끼니를 잇던 학생이 공부를 마치고 직장을 구하러 상경하게 되었다. 식당 주인은 학생이 인사차 오리란 것을 알고 미리 밥과 열무김치가 담긴 상을 차려놓았다. 학생은 정성스레 차려놓은 음식을 달게 먹고 떠났다. 이후 그 학생은 서울에서 자리 잡은 뒤에도 그 식당의 열무김치 맛을 잊지 못해 식당을 종종 찾았던 것이다.

오씨는 그런 이야기를 듣고 다시 열무김치를 맛보았다. 열무김치의 맛이 확 달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오씨는 “그때 머리를 스치듯 지나간 생각이 있었다. ‘음식을 이야기와 함께 차려내면 어떨까? 사람의 체취가 물씬 나는, 우리네 할머니들의 장독 속에 스며든 그 시절의 이야기들은 무엇일까? 당대의 사회·문화적 배경을 알 수 있는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는 미술 작품처럼 우리네 상차림 역시 한 편의 미술 작품 못지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색감과 질감 그리고 예술가의 고귀한 숨결과도 같은 투박한 손맛이 함께 어우러져 나오는 우리네 상차림. 그 상차림을 통해 그 시대의 역사적 상황과 배경을 엿보고, 한 점의 유물이 전달하는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우리 상차림에도 스며들어 있음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 프로그램에 참여한 방송작가 최유진씨와 함께 방방곡곡 천년을 이어온 이야기들을 찾아나섰다. 저자들은 우리 음식 이야기에 깃든 역사와 문화를 이야기함으로써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깊은 관심과 흥미를 유발할 뿐만 아니라 최근 한류 영향으로 ‘참살이 음식’으로 주목받고 있는 한식의 세계화 사업까지 내다보았다. 역사 속 한 시대를 살아갔던 위인들과 왕이 고난과 좌절을 겪었을 때 함께했던 음식, 외침에 맞서는 전쟁 중에 필승을 다짐하며 먹었던 음식, 멀리 낯선 이국땅에서 조국과 고향을 그리며 먹었던 눈물과 한이 배어 있는 음식, 이런 이야기는 그 자체로 우리의 역사이며 삶인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 책에는 많은 음식이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보약처럼 몸에 좋고 꼭 필요한 음식만 골라 만드는 법과 생생한 사진을 더해, 보기만 해도 배부르게 한다. <천년의 밥상>에는 왕이 먹었던 ‘삼합미음’에 ‘맥적’이 올라오고, 허준이 처방해 특별식으로 만들어진 ‘우렁탕’이 입맛을 돋우고, 복날에 먹었다는 ‘연계백숙’이 설설 끓고, 이순신 장군이 멀리 떨어져 계신 어머니를 걱정하며 보냈던 ‘밴댕이 젓갈’이 반찬으로 차려져 있다. 조선 제16대 왕 인조가 피난길에 맛보고 절미(絶味 : 매우 뛰어난 맛)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음식이 ‘인절미(引切米)’였다는 이야기도 귀에 쩍 달라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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