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음료’는 건강하지 않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2.10.30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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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먹을 것, 마실 것을 고르는 사람들의 선택도 점점 까다로워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자주 마시는 음료에 대해서는 대체로 너그럽다. 그런데 그 음료에 비만과 성인병의 주범으로 낙인찍힌 당분이 상당량 들어 있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섭취하는 음료 속의 당분 실태를 짚어보았다.

ⓒ 시사저널 전영기
물자가 부족했던 1960년대에 설탕은 귀한 식품이었다. 최고의 명절 선물이었고, 집이나 회사에서 손님에게 설탕물을 대접할 정도로 인기였다. 50년이 지난 현재 손님에게 설탕물을 내놓는 사람은 없다. 비만과 성인병의 주범으로 낙인찍힌 설탕은 환영받지 못하는 제품이다. 요즘은 손님에게 설탕물 대신 커피를 내놓는다.

커피는 한국인이 당분을 섭취하는 1위 식품이다. 지난 6월 식품의약품안전청이 한국인의 당분 섭취 경로를 조사해보니 커피가 33%로 가장 흔했다. 그 다음은 주스와 같은 음료(21%), 과자나 빵(16%), 콜라와 같은 탄산음료(14%), 유제품(8%) 순이다. 밥(주식)으로 섭취한 당분량이 4% 증가하는 지난 3년 동안 가공식품을 통해 섭취한 당분량은 41%나 늘어났다. 한마디로 현대 한국인은 커피·주스·탄산음료와 같은 가공 음료로 당분을 섭취한다고 볼 수 있다.

물 탄 오렌지 주스가 100% 과즙 음료인 이유

음료는 나트륨, 카페인, 인산염 등을 제외하더라도 당분 때문에 피해야 할 가공식품이다. 많은 사람이 건강을 위해 가공식품을 멀리하고 식습관을 바꾸지만 정작 음료에 대해서는 너그럽다. 실제로 국내 음료 시장 규모는 약 3조5천억원으로 커졌다. 생수 시장(1천6백억원)과 정수기 시장(1조5천억원)을 합친 것보다 크다. 그만큼 현대인은 물보다 음료를 많이 마신다.

식약청이 최근 밝힌 한국인의 하루 당류 섭취량은 32.9g(2008년), 34.2g(2009년), 41.5g(2010년)으로 해마다 늘어났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권장하는 하루 당류 섭취량은 총 섭취 열량의 10% 정도이다. 2천kcal의 열량을 섭취하는 성인 기준 50g에 해당한다. 여기에서 음식이 아닌 가공식품으로 섭취하는 당분량은 절반을 넘지 말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렇다면 하루 25g, 즉 각설탕 여덟 개 정도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보다 몇 배의 당분을 섭취하고 있다.

직장인 김영문씨(36)는 아침에 요구르트(당분 21g)를 먹는다. 회사에 출근한 직후와 점심 후에 커피믹스 두 잔(10.8g), 회의할 때 오렌지 주스 한 잔(20g), 거래처와 상담할 때 비타민음료 1병(11g)을 마신다. 퇴근 후 운동을 하고 갈증 해소를 위해 이온음료 1병(36g)을 마신다. 김씨가 하루에 마신 음료 속 당분 함량은 98.8g이다. 3g짜리 각설탕으로 따지면 32.9개 분량이다.

김씨의 아들(12)은 방과 후에 군것질로 청량음료 1개(25g), 간식으로 바나나 맛 우유 1개(26g)와 오렌지 주스 2잔(40g)을 마신다. 저녁 식사 후에 요구르트 2개(20g)를 마시며 공부한다. 아들이 하루에 음료로 섭취한 당분 함량은 1백11g으로 각설탕 37개에 해당한다.

이 사례에서 보듯이 하루에 각설탕 30개 이상을 직접 먹을 수는 없지만 음료로는 마실 수 있다. 황태영 중원대학교 한방식품공학 조교수는 “교편을 잡기 전에 식품회사에서 근무했었다. 각 음료의 성분에 대해 관심이 많아 대학에 와서도 각종 음료 성분, 특히 당분에 대해 꾸준히 연구했다. 그 결과를 종합하면, 탄산음료는 말할 것도 없고 유산균이 많아 건강에 좋을 것 같은 요구르트, 이온음료, 두유에도 당분이 상당하다. 하루 권장 당분 섭취량은 하루 세 끼 식사만으로도 충분히 섭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생선 조림, 김치, 찌개에는 이미 설탕이 많이 첨가되어 있다. 물 외에 다른 음료를 마시면 당분을 과잉 섭취하는 것이다.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먹일 수 없는 식품이 인공 음료이다”라고 지적했다.
당분은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소이다. 특히 두뇌 활동에 당분은 필수 성분이다. 음식을 먹으면 간은 당분을 분해해서 에너지로 만든다. 이 에너지는 두뇌뿐만 아니라 세포, 근육, 체온 유지에 유용하게 쓰인다. 즉, 몸이 정상 상태를 유지하는 기능(항상성)에 필요한 에너지원이 당분이다. 그런데 항상성 유지에는 당분보다 지방이 우선적인 에너지원이 된다. 지방을 분해해서 얻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그래도 모자라면 당분을 분해해서 에너지원으로 삼는다.

현대인은 지방을 많이 섭취하므로 신체에 필요한 에너지는 충분한 편이다. 오히려 지방이 남아돌아 비만이 골칫거리인데, 음료까지 마시면 당분은 간과 근육에 고스란히 쌓여 비만을 촉진한다. 매일 청량음료 1캔을 마시면 1년에 5kg의 체중이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비만이 만병의 근원이라는 점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상식이다.

이런 사실을 음료회사가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음료에 당분을 넣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렌지 주스의 사례를 살펴보자. 가정에서 오렌지를 눌러서 만든 주스와 시중에서 파는 오렌지 주스는 향과 맛이 다르다. 할인점에서 산 오렌지 주스가 진짜 오렌지 과즙으로 느껴질 정도로 맛과 향이 풍부하다. 오렌지 주스를 만드는 과정을 살펴보면 그 비밀을 알 수 있다.

주원료인 오렌지는 미국과 브라질 등지에서 수입한다. 과일 자체를 수입하는 것이 아니다. 현지에서 수확한 오렌지를 눌러서 과즙을 만든다. 이를 100℃에 가까운 열을 가해 끓이면 수증기가 날아가면서 부피가 7분의 1로 줄어든 농축액이 생긴다. 운송료를 절약할 수 있고, 당분 농노가 높은 상태여서 세균 번식을 막아 운송 기간을 늘릴 수 있다. 걸쭉한 농축액을 국내 음료회사가 수입한 후 물로 희석한다. 물과 농축액을 6 대 1로 섞으므로 사실상 물에 농축액을 조금 타는 정도이다.

오렌지 주스에는 각설탕 7개분의 당분이 들어 있다. ⓒ 시사저널 전영기
설탕보다 더 나쁜 액상과당

여기에 함정이 있다. 외국 현지에서 과즙을 농축액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오렌지의 비타민C는 물론 맛과 향이 거의 사라진다. 즉 한국에서 만든 주스에는 영양분, 맛, 향이 거의 없다. 제조사는 합성 비타민C를 넣고, 맛과 향을 내기 위해 식품 첨가물을 섞는다. 과거에는 설탕을 넣어 맛을 냈지만 당분 위해성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설탕을 넣지 않은 ‘무설탕’ 제품이 나왔고, 요즘에는 ‘100% 과즙’이라는 제품이 인기이다.

또 다른 함정이 있다. 설탕을 넣지 않으면 단맛이 나지 않고 유통 중에 상할 수 있다. 따라서 인공 감미료를 섞는다. ‘무설탕’이나 ‘100% 과즙’이라는 표현이 인공 감미료를 넣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대표적인 인공 감미료가 액상과당(HFCS)이다. 설탕보다 가격이 싸면서 단맛도 강하다. 조금만 넣어도 단맛을 내므로 거의 모든 음료에 들어간다. 최근 이 물질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소식이 번지자, 음료회사는 액상과당을 과당, 옥수수 시럽, 콘 시럽, 요리당으로 이름만 바꿔 표기한다. 오히려 건강에 좋은 천연 물질처럼 보인다. 그러나 액상과당은 설탕보다 몸에 더 해롭다.

설탕은 포도당과 과당이 결합한 이당류이고, 액상과당은 각각 분리된 단당류이다. 음식을 먹으면 간은 영양분을 분리한다. 당분을 분리해서 에너지원으로 삼는다. 이 과정에서 인슐린이 분비되고 호르몬(렙틴)이 나와 포만감을 느낀다. 음식의 당분은 다당류여서 간이 일을 많이 한다. 설탕은 비교적 간단하게 분해된다.

설탕이 건강에 해로운 이유는 체내 흡수가 빨라 혈당을 급격히 올리기 때문인데, 액상과당은 이미 분해된 상태이므로 간의 분해 과정이 생략된 채로 몸에 흡수된다. 인슐린 분비에 교란이 생겨 당뇨병에 걸리기 쉽고, 포만감을 느끼지 못하므로 더 많은 음식을 먹거나 당분을 찾게 된다.

김광준 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간이 다당류를 분해하는 과정에서 인슐린과 같은 호르몬이 분비되어 혈당을 조절한다. 그런데 인공 감미료의 단당류는 분해 과정을 거치지 않으므로 인슐린이 분비되지 않는다. 아무런 조절 기능 없이 혈당만 높아지는 것이다. 이런 당분은 각종 장기에 붙어서 정작 당분이 필요할 때 흡수를 방해하는 구실을 한다. 당분이 당분 흡수를 못 하게 막는 셈이다. 특히 6~18세의 청소년이 음료를 많이 마시면 몸은 혈당이 높아진 상태를 정상으로 기억한다. 당분이 몸에 많은데도 계속 단 음식을 찾게 되는 것이다. 영양분은 없고 혈당만 올린다고 해서 음료의 다당류를 ‘빈껍데기 칼로리’라고 부른다”라고 설명했다. 

요즘 고급형(프리미엄) 오렌지 주스는 비싼 가격에도 잘 팔린다. 비싼 만큼 오렌지 성분과 맛에 가까운 제품이라고 믿는다. 이런 제품에는 ‘냉장 유통’이나 ‘비가열 제품’이라는 표시가 붙어 있다. 외국 현지에서 과즙을 70~80℃의 저온으로 가열해서 만든 농축액을 사용한 제품을 비가열 제품이라고 한다. 조금이라도 본래의 맛과 향을 유지하려는 것이지만, 그 농축액에 물을 섞어 주스를 만드는 방법에는 변함이 없다. 또 100% 비가열 제품인지, 가열해서 만든 농축액을 섞은 것인지를 소비자는 알 수 없다.

당분이 줄었으니 상온에서 유통 기간이 현저히 짧아진다. 그래서 냉장 유통 제품이 나온 것이다. 예컨대 당분 10g을 넣으면 6개월 상온 보관이 가능한데, 6g만 넣으면 1개월로 그 기간이 줄어든다. 당분을 대폭 줄인 만큼 짧아진 유통 기한을 냉장고의 힘으로 연장하려는 제품이 냉장 유통 오렌지 주스이다. 음료 제조회사로서는 냉장차를 운송하고 매장에서 냉장고에 진열해야 하므로 비용이 발생한다. 이런 이유로 냉장 유통 음료나 비가열 제품에는 ‘프리미엄’이라는 문구를 붙여 비싸게 판다.

음료 속 당분 줄이려면 소비자가 변해야

다른 음료는 어떤가? 열량이 전혀 없다는 ‘제로(0) 칼로리’ 음료에는 열량이 실제로 없다. 소비자들은 당분이 없어서 다이어트(체중 관리)에 좋은 음료로 오해한다. 이 음료에도 액상과당이 들어 있다. 조금만 넣어도 설탕보다 2백배에 가까운 단맛을 내므로 열량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당분이 있으므로 많이 마시면 오히려 비만을 부를 수 있다. 미국 텍사스 대학 헬렌 헤저드 교수는 성인 4백74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다이어트 음료를 마신 사람이 탄산음료를 마신 사람보다 허리둘레가 평균 70% 빠르게 늘어났다는 결과를 밝힌 바 있다. 이런 이유로 요즘 다이어트 음료에는 운동을 병행하면 효과가 좋다는 문구가 붙어 있기도 하다. 이 음료를 마시고 살을 뺐다면 운동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식초 음료에는 올리고당을 썼다는 제품이 있다. 제품 뒷면에 있는 영양 성분표를 보면 올리고당뿐만 아니라 액상과당도 있다. 단맛은 액상과당이 내고, 광고는 올리고당으로 하는 것이다. 그래도 식초 성분이 있으니 마시겠다면 제대로 섭취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식초 음료는 보통 1회 섭취량이 100㎖ 안팎이다. 컵에 물과 함께 희석하다 보면 200㎖이고 여기에는 당분이 30~40g(각설탕 10~13개)이 있다. 이를 하루 3잔씩 꾸준히 마시면 식초 효과보다는 당분의 악영향을 더 받을 수 있다. 또, 식후에 마셔야 위벽 손상을 예방할 수 있다.

이쯤 되면 이 세상에 마실 수 있는 음료는 물밖에 없는 것 같다. 또 현실적으로 음료를 마시지 않고 살 수도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안전하게 음료를 즐길 수 있을까?

우선, 최대한 음료를 덜 마셔야 한다. 음료는 물이 아니고, 건강기능식품은 더욱 아니다. 담배나 술과 같은 기호 식품일 뿐이다. 한마디로 입이 좋아서 마시는 것이지 몸에 필요해서 마시는 것은 아니다. 얼마든지 먹지 않을 수 있다. 우리 몸에는 물이면 충분하다. 단 음식이 필요하다면 과일을 통째로 또는 갈아서 먹으면 된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커피를 마시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럴 때에는 설탕이나 시럽을 넣지 않은 블랙커피를 마시는 것이 좋다. 가정에서 음료가 필요하면 평소에 제품을 고를 때 제품 뒷면을 살펴야 한다. 대부분 원산지, 원료, 열량, 유통 기한 정도만 확인하거나 그저 상표를 믿고 구입한다. 조금 관심을 두고 원재료 표를 보면 식품 첨가물 개수를 알 수 있다. 그 수가 적은 제품을 고르면 식품 첨가물이 조금이라도 적게 함유된 제품을 선택할 수 있다. 또 유화제나 산도 조절제 등으로 뭉뚱그려 표시한 제품은 일단 피하는 편이 좋다. 합성 착향료(예를 들면 ‘딸기향’ 같은 식)라고 하면 몇 가지 화학물질로 얼마나 조합했는지 알 수가 없다.

겉면에 붙은 영양 성분 표시부터 살펴라

그 다음으로 영양 성분표를 보아야 한다. 자세히 보면 영양 성분표로 당분 함량을 확인할 수 있다. 되도록 당분 함량이 0%에 가까운 제품을 고른다. 물론 다른 식품 첨가물로 맛을 낸 것이지만 일부 차 음료에는 당분이 거의 없는 제품들이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할 점은 당분 함량이 1회 섭취량으로 표기되어 있다는 점이다. 1잔·캔·팩(65~3백50㎖)을 마실 때 섭취하는 당분의 양이다. 따라서 7백㎖ 음료를 다 마신다면 당분 섭취량은 표기보다 두 배 이상이 되는 셈이다. 또 천연 감미료라는 말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재료가 화학물질이 아니고 천연물질이기는 하지만, 이 물질에 다양한 식품 첨가물을 섞으므로 결국 전체적으로는 인공 감미료가 된다.

당분은 기업의 의지에 따라 없애거나 다른 물질로 대체할 수 있다. 최근 22개 커피전문점과 패스트푸드점 1만2천여 매장에서 ‘당류 섭취 줄이기’ 캠페인을 폈다. 식약청과 공동으로 당분 표시, 홍보물 설치, 당 함유량이 적은 제품 개발 등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가 이어져야 한다. 현재 액상과당은 의무 표시 사항이 아니어서 함유량 표시가 없다. 관계 당국과 기업이 액상과당 함량을 표기할 필요가 있다. 갖가지 어려운 물질 용어가 있는데, 이것도 쉽게 풀어서 소비자의 이해를 도와야 한다. 소비자도 변해야 한다. 당분을 넣지 않은 음료를 요구하면서도 정작 당분이 없는 제품은 맛이 없다며 찾지 않는 이중성을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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