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장학회의 ‘액션’, 왜 하필 지금?
  • 원성윤│기자협회보 기자 ()
  • 승인 2012.10.24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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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부산일보 지분 매각 추진한 사실 드러나

10월1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전국언론노조가 정수장학회 등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정수장학회의 MBC와 부산일보 지분 매각이 대선 정국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겨레가 지난 10월12일 보도한 대화록에 따르면, 정수장학회가 소유한 MBC 지분 30%와 부산일보 지분 100% 등 언론사 주식 매각을 비밀리에 추진해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수천억 원에 이르는 이 매각 대금을 활용해 부산·경남 지역 대학생 및 노인층, 난치병 환자 등을 위한 대규모 복지 사업을 벌이겠다는 계획을 10월19일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하기로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날 회동은 MBC의 이진숙 기획홍보본부장과 이상옥 전략기획부장이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찾아가 ‘정수장학회의 MBC 주식 매각 및 발표 방안’을 설명하는 자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시사저널>, ‘최필립의 고액 후원’ 최초 보도

MBC측은 이 자리에서 △내년 상반기 MBC 상장 계획 △정수장학회의 MBC 지분 30% 처분 방식 △정수장학회의 언론사 지분 매각 입장 발표 방안 등을 밝혔다. 최이사장은 “경영권도 행사하지 못하는 MBC 주식은 갖고 있어봐야 소용이 없다. 발표에는, 정수장학회가 (매각 대금으로) 부산·경남 지역 대학생을 대상으로 직접 ‘반값 등록금’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담겨야 한다”라고 주문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왜 대선을 앞둔 이 시점에 정수장학회의 언론사 지분 매각 이야기가 나온 것일까. 그리고 야권은 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이번 사태의 핵심으로 보고 있을까.

정수장학회의 이름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과 육영수 여사의 ‘수’를 따 만들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5·16장학회’는 부산 지역 사업가였던 고 김지태씨로부터 강제 헌납받은 부일장학회를 모태로 한다. 박근혜 후보는 지난 2005년까지 10년 동안 정수장학회의 이사장을 지냈고, 후임인 최이사장은 외무부 소속으로 청와대에 파견되어 있던 1978년부터 1년여 동안 당시 박정희 대통령 곁에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던 박근혜를 담당하는 공보비서관을 지냈다. 최이사장은 “1급 비서관으로 임금님(박 전 대통령을 지칭) 머슴도 하고, 큰 영애님(박후보를 지칭) 비서도 했으니 할 것 다 했다. 이제 대사는 그만두고 제가 계속해서 모실게요”라며 충성 맹세를 한 바 있다.

박후보가 “이사장직을 물러난 뒤 정수장학회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음에도 최이사장과 박후보를 특수 관계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실제 지난 2008년 최이사장은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들을 총동원해서 모두 2천5백만원을 박후보에게 후원금으로 기부한 것으로 <시사저널> 보도(2008년 8월6일자 제981호)를 통해 밝혀지기도 했다. 이후에도 해마다 최이사장은 가족을 동원해 박후보에게 고액을 후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군다나 이번 대화록을 통해 나타난 것처럼, 정수장학회가 유독 부산·경남(PK) 지역에서 대규모 복지 사업을 벌이겠다고 한 것 또한 박후보를 위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PK 지역은 현재 박후보가 야권의 문재인·안철수 후보와 더불어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어, 수도권과 함께 대선 승부의 분수령으로 점쳐지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정수장학회가 언론사 지분을 파는 데는 현실적으로 걸림돌이 많다. 먼저 공익법인인 정수장학회의 재산 처분은 서울시교육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또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와 방송통신위원회의 승인이 필요하다. 특히 1988년 여야 합의로 만들어진 방문진의 MBC 민영화 추진은 국민적 동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현행법상 주식 상장도 어렵다. 현재 40만주가 발행된 MBC 주식으로는 주식시장에 상장하기가 힘들다. 상장 예정 주식 총수가 100만주 이상이 되어야 한다. 이는 방문진이 MBC 정관을 개정해야 가능하다. 대화록에도 주식 매각의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하는 부분이 나온다. “정부와 상의는 했느냐”라는 최이사장의 말에 이진숙 본부장은 “그 정부라는 것은 결국 청와대와 방통위인데 아직까지 상의는 안 했다”라고 말하는 대목이 등장한다.

부산일보 지분 매각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부일장학회 설립자 고 김지태씨 유족이 제기한 ‘부산일보 주식 처분 금지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이같은 현실적 난관을 무릅쓰고 정수장학회가 주식 처분 계획을 발표하는 것을 서두르는 것은 정수장학회와 특수관계인 박후보를 돕기 위한 의도가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이용마 MBC 노조 홍보국장은 “정수장학회가 오는 10월19일 기자회견에서 이 방안을 발표하면 MBC는 이를 받아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통해 민영화 추진 TF(태스크포스)를 띄우는 것이 애초 시나리오였던 것으로 안다”라고 밝혔다.

최필립 이사장에게도 부산일보 지분 매각 계획은 한 방에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회심의 카드였다. 최근까지 그 자신과 정수장학회는 이사장 사퇴와 사회 환원 요구 앞에서 사면초가였기 때문이다. 지분 매각으로 최이사장은 정수장학회 사회 환원 요구를 단번에 충족시킬 수 있었다. 이호진 부산일보 노조위원장은 “부산일보 지분 매각 카드는 사회 환원이라는 생색도 내면서 박후보 대선 가도의 장애물을 치우고, 자신의 자리도 지키는 등 최이사장에게는 최선의 방안이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부산일보와는 달리 MBC는 다시 내분 조짐

그러나 앞으로의 과정은 MBC와 부산일보가 약간 다를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부산일보의 경우, 매각은 최필립-이진숙 회동과 무관하게 추진되어왔다. 법원의 가처분 신청이 내려져 있더라도 부산일보 매입 의사가 있는 기업과 MOU(양해각서)를 체결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최이사장도 부산일보 지분 매각에 상당히 공을 들인 것으로 파악된다. 노조와의 갈등이 본격화된 지난해 11월부터 이미 매각을 거론했다. 올 1월에는 국·실장회의에서도 이번 대화록과 유사한 매각 이야기가 나왔다. 최근까지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을 비롯한 부산·경남 지역 기업인들에게 매입 의사를 타진했던 정황도 드러났다.

MBC에서는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김재철 사장 해임’이 다시 화두로 떠올랐다. 그러나 실제 김사장이 물러나게 될지는 미지수이다. 김사장은 지난 10월16일 방문진 긴급이사회에 출석해 “민영화를 하겠다는 뜻이냐”라는 이사진의 질문에 계속 애매하게 답하다가 “지배 구조 개선은 계속하겠다. 앞으로 투명하게 하겠다”라고 밝혔다. 이에 “지배 구조 개선은 하겠지만 민영화는 아니라는 뜻이냐. 정치권 때문에 돌파구를 마련하고 싶었던 것이냐”라는 질문이 나오자, 민영화 부분에 대한 답변은 없이 “권력과 끈을 끊고 노조에도 휘둘리지 않겠다”라고만 답했다. 대선을 불과 두 달 앞두고 터진 정수장학회의 언론사 매각 사태가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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