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을 먹고서라도 움직여야 길이 보인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2.10.16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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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 공중분해·8번의 수술에도 넘어지지 않은 정희자 아트선재센터 관장

ⓒ 시사저널 임준선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의 부인 정희자 아트선재센터 관장이 오랜만에 바깥 외출을 했다. 지난 9월26일 몽블랑 문화예술후원자상을 받으며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1999년 대우그룹이 공중분해된 이후 정관장은 거의 미디어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그는 남산 힐튼호텔과 경주 힐튼호텔을 운영하는 대우개발(베스트리드리미티드의 전신)의 회장으로 활발하게 대외 활동을 했다. 미술계와 영화계 등 문화계의 큰손 후원자로도 유명했다. 부산국제영화제에는 1996년 1회 때부터 선재상을 만들어 후원했고, 서울의 아트선재센터와 경주의 아트선재미술관을 통해 콜렉터 겸 후원자로 여러 미술인을 후원하고 국제적인 활동을 지원했다. 이런 미술계 활동은 정관장의 큰딸 김선정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이어받고 있다. <시사저널>은 몽블랑상 수상 당일 현장 취재를 하고 그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행사장에서 만난 정관장은 겉으로 보기에 다리가 약간 불편해 보이는 것만 빼고는 여전했다. 목소리도 자신감이 넘쳤고 사람 한 명 한 명을 차례로 응시했다. 대다수 일반인의 대부분의 관심은 대우가 공중분해된 이후 이 부부가 그 큰일을 어떻게 넘겼을 것인가 일 것이다. 정관장은 “남들은 어떻게 저렇게 7~8번의 수술을 하고도 다니느냐 하고 말한다. 지금 아프다고 누워서 약만 먹고 있으면 삶의 의미가 없지 않나. 해외에 나가서는 내가 지었던 호텔, 장소를 보러 다닌다. 약을 먹으면서까지 젊은 사람들의 삶이 무엇인지, 발전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보고 싶다. 아프더라도 약을 먹고 움직이면 그 자리에서 넘어질망정 다닐 수 있는 게 좋다. 내 딸(김선정)도 일주일에 두세 번 해외 출장을 나가지만, 젊었을 때 너무 몸을 과도하게 쓰지 말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베트남에 호텔 짓던 시절 현지 화가들 후원해 결실

그는 이와 관련한 이메일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건강이 좋지 않아 주로 집에 있다. 방 하나를 화실처럼 꾸며 그림 공부도 하고 책을 읽거나 집 근처를 산책하곤 한다. 최근 딸이 감독한 광주비엔날레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광주에 갔다 왔다. 광주극장 같은 공식 전시장 이외에 전시된 작품도 보고 싶었는데 몸이 여의치 않아 많이 보지 못해 조금 아쉽기는 하다”라며 미술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정관장은 주로 베트남에 머무르고 있는 김회장을 따라 1년에 반 정도는 해외에 나가 있다.

그는 살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을 베트남 하노이에 대우호텔을 짓던 시절이라고 말했다. “1995년 베트남에 나가서 호텔을 지을 때 한마디로 무법지대였다. 흙을 파라고 하면 왜 파냐고 하고, 시간이 지나면 안 하고. 그때는 현지에 그림이라고 불릴 만한 것이 없었다. 내가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현지 화가들을 후원했다. 도구나 물감도 사주고. 그림이 완성되면 호텔에 걸어주고. 이렇게 해서 호텔 손님들을 통해 ‘현대 베트남 미술’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 화가가 4~5년 뒤 홍콩 옥션에 나가서 작품 값이 엄청 올랐다. 그 화가가 좋아하는 것을 보고 많이 기뻤다.

내가 건축을 전공했는데, 대우라는 회사는 중공업이나 자동차가 중심인 회사였다. 하드한 업종을 하면서 소프트한 업종인 호텔업을 하겠느냐고 사람들이 의심했지만 (대우개발을 통해) 소프트한 것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하노이에 호텔을 지으면서 우리가 여기서 서비스업은 어떤 것이고, 소프트와 하드를 결합하면 정말 좋은 회사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그때 교육시킨 직원들이 다른 데도 많이 갔다. 내가 야단을 많이 쳤다고 해서 ‘타이거 정’이라고 하는데, 내가 온다면 다 모여서 꽃다발 들고 기쁘게 맞아주고 맛있는 식당에 데려다준다. 그런 것이 보람이라고 생각한다.”

대우그룹이 예전에 했던 것처럼 영화 분야 지원도 통 크게 나서

미술계에서는 아트선재센터에서 부관장으로 일하던 김선정 교수가 2004년 아트선재센터를 그만둔 것을 두고 모녀의 취향 차이가 컸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정관장은 전통적인 회화나 조각 작품에, 김교수는 미디어아트 등 현대미술에 관심이 깊었기 때문이다. 김교수는 독립 후 ‘사무소’라는 독립기획사를 차려 대림미술관과 아트선재센터와 협업을 하면서 오히려 ‘재벌 딸 미술관장’이라는 딱지를 떼버리고 능력 있는 독립 전시 기획자로 인정받았다. 그가 아트선재센터에서 발굴한 젊은 작가가 지금 한국 현대미술의 간판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정관장은 이에 대해 “딸이 기획한 광주비엔날레를 관람했다. 방대한 작품을 기획하고 전시하느라 크게 고생했다 싶었다. 1년에도 여러 번 해외로 출장을 다니며 세계 미술의 흐름을 읽어 나가는 것이 대견하다. 딸과 나의 미술 취향이 다르기보다는 다른 시대를 살아오면서 시대를 읽어온 방향의 차이라고 말하는 것이 맞다. ‘현대미술’은 동시대 미술이라 말하는데, 내 시대의 동시대 작가와 딸 시대의 동시대 작가는 다르다. 내가 지금은 원로가 된 이우환 작가 등을 젊은 시절에 만나며 교류했던 것처럼, 딸이 동시대 미술의 선두 주자로서 다국적 작가들과 교류를 하고 실험적인 전시를 해내는 것이 내게는 좋은 자극이 된다. 딸은 뚜렷한 주관과 추진력을 갖추고 있다. 미술 분야의 조력자로서 딸을 신뢰한다. 본인이 좋아하는 이 일을 오래 해나가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정관장이 지원하는 예술 분야에서는 영화 쪽도 두드러진다. 대우그룹도 해체 전 DCN(OCN의 전신) 등 케이블채널에서 가장 큰손이었다. 그는 “미술만 도운 것은 아니다. 우리 집안이 특히 영화를 좋아한다. 우리 막내(선용)가 영화 사업을 하고 있지만 영화 제작자는 돈을 벌지 못한다. 호텔에서 나오는 이익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생각에 누구든 도와달라고 하면 크게는 아니어도 기꺼이 도와줬다. 다만 음악 분야는 내가 정말 모르고 자신이 없어서 하지 못했다. 지금도 대우에 대해 일부 사람은 좋게 생각한다. 우리가 학생을 엄청 많이 길러냈다. 우리는 공부를 시키면서 뭐든지 나가서 보라고 했다. 일단은 뭘 봐야 내 것과 남의 것을 융합하고 새로운 것이 생기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몽블랑상 시상식장에서 김선정 교수는 그림자처럼 어머니를 따라 다녔다. 기자간담회에서 정관장에게 대우와 관련한 질문이 쏟아지자 주최측에 ‘이의 제기’도 하고. 딸의 ‘잔소리’가 길어지자 어머니가 딸에게 누가 있건 없건 간에 말로 뭐라고 강하게 ‘구박’을 했다. 딸은 그런 어머니를 어쩔 줄 모르고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집에나 있을 법한 70줄에 들어선 어머니와 쉰을 바라보는 딸의 흔한 풍경. 정관장은 큰딸이 참 든든하겠다 싶었다. 


김우중 회장 2세들의 재산 목록을 보니… 

지난 8월 초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차명 재산으로 판명 난 베스트리드리미티드(현 우양산업개발)가 공매 과정을 거쳐 부산 지역의 수산 기업인 우양수산에 낙찰되었다. 낙찰가는 약 9백23억원. 우양수산은 인수 직후 회사 이름을 우양산업개발로 바꿨다. 

경주 힐튼호텔을 가지고 있는 우양산업개발이 주목받은 이유는 김 전 회장의 부인인 정희자 아트선재센터 관장이 9.58%의 지분을 갖고 있었고 사실상 경영권을 행사했던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특히 경주 힐튼호텔과 경기도 포천의 아도니스골프장, 에이원컨트리클럽을 중심으로 김 전 회장의 2세인 김선협씨가 경영을 했기에 우양산업개발의 매각은 대우그룹의 완전한 몰락으로 비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매각으로 인해 김선협씨를 중심으로 한 골프 레저 그룹의 경영에는 경주 힐튼 매각이라는 것 말고는 외견상 큰 변화가 없다. 우양산업개발이 가지고 있는 아도니스 지분은 18.59%로 영향력이 제한적이다. 또 에이원컨트리클럽은 51% 지분이 아도니스에, 나머지는 우양산업개발이 가지고 있지만 경영 주도권은 아도니스가 확보한 상태이다. 거제에 있는 드비치골프클럽은 아도니스와 에이원의 합작회사이지만 아도니스의 지분이 61%로 절대적이다. 아도니스의 지분은 정희자 관장과 두 아들인 김선협·선용 씨가 지분의 80% 이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도니스의 사장은 김선협씨. 그는 2010년 부산에 거주하는 이경재 이사를 대표이사로 올린 뒤 등기 임원에서 빠졌다.

서울 정독도서관 앞 아트선재센터의 소유권은 재단법인 대우재단이 가지고 있다. 정희자 관장도 “서울 아트선재센터는 문제가 없다”라고 밝혔다. 대우재단은 전 대우 회장 부속실 사장을 지낸 김욱한씨가 이사장을 맡고 있고 김선협 아도니스 사장이 이사로 있다.

김 전 회장의 둘째 아들인 선용씨는 아도니스 쪽 일보다는 영화 사업(벤티지홀딩스)과 국내외 일반 투자업과 부동산 관련 사업(코랄리스인베스트먼트)을 하고 있다. 벤티지홀딩스는 몇 년 전 제작해 흥행에 성공한 <추격자> 이후 주춤한 상태이다. 지난해 아도니스와 에이원컨트리클럽은 흑자, 코랄리스인베스트먼트는 4억2천7백만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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