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명문의 힘, 정계에도 ‘쩌렁쩌렁’
  • 이춘삼│편집위원 ()
  • 승인 2012.10.09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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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신 인맥 지도 | 연세대학교 ①

연세대학교 정문. ⓒ 시사저널 박은숙
연세대학교의 역사는 서양식 병원으로는 최초로 이 땅에 세워진 광혜원(廣惠院)에서 시작된다. 미국 북장로교 소속 의료 선교사 알렌(H. N. Allen)이 고종의 후원을 받아 1885년 4월10일 문을 연 광혜원에서는 환자 치료뿐만 아니라 학생을 뽑아 서양 의술을 가르치기도 했다.

광혜원이 제중원(濟衆院)으로 개칭되고 1899년 최초의 정규 의학교인 제중원의학교가 설립되며, 의학 교육이 자리를 잡아갔다. 1904년에는 미국인 실업가 세브란스 씨의 기부를 받아 근대식 의료 시설인 세브란스병원이 서울역 앞에 세워졌다. 다른 한편에서 미국인 선교사 언더우드 씨가 1915년 설립한 조선기독교대학이 연희전문학교 시절을 거쳐 1946년 종합대학인 연희대학교로 승격해 출범했다. 1957년에 이르러 30여 년간의 숙원이던 연희대학교와 세브란스의 통합이 결실을 보았다. 이로써 본격적인 연세대학교의 시대가 열렸다.

1885년에 설립된 ‘광혜원’이 뿌리

광혜원으로부터 비롯된 세브란스와 조선기독교대학을 모태로 한 연희는 미국 선교사들이 주축이 된, 사실상 하나의 뿌리에서 성장해 마침내 연세로 통합되기에 이르렀다. 이 기간 동안 세브란스는 한국의 근대적 의학 교육과 의료 선교의 발상지로 성장했으며, 연희 또한 신학문의 탐구와 국학 연구의 중심지로서 사학을 대표하는 위치에 올라서게 되었다. 오늘날 ‘연세대학교’ 하면 의과대학을 먼저 떠올리게 되고 연세의료원이 의료계에서 명성을 누리는 데는 연세대의 뿌리인 광혜원을 통해 서양 의학이 처음 국내에 들어온 이래 오랜 세월 축적된 역사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초창기 앞서거니 뒤서거니 태동한 국내 주요 대학의 역사를 개관해보면 이렇다.

고려대의 전신인 보성전문은 1905년 민족자본가인 이용익 선생이 세웠다. 서울대의 통합 개교 연도는 1946년이지만 이준 열사가 1회 졸업생인 법관양성소의 설립 연도인 1895년을 개학(開學) 원년으로 보고 있다.

성균관대는 조선 개국 후 태조 7년(1398년) 현 명륜동캠퍼스 자리에 설치된 성균관의 전통을 계승해 1895년 칙령으로 3년제 경학과(經學科)를 설치한 것이 시초이다.

이화여대는 스크랜튼 여사가 이화학당을 연 1886년, 동국대는 근대적 승려 양성 기관인 명진학교가 문을 연 1906년을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

이렇게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고등교육기관으로서 연세대는 고려대와 더불어 양대 사학의 한 축을 이루며 한국의 정치·경제에서 문화예술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에서 국가의 재목을 길러냈다.

해마다 높아지고 있는 연세대의 위상은 ‘QS 세계 대학 평가’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2008년까지 2백위 바깥에 머물렀던 연세대의 순위는 2009년 1백51위, 2010년 1백42위, 2011년 1백29위, 2012년 1백12위로 점진적 상승을 계속해왔고 이제 100위권 내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2012년 국내 대학의 QS 평가 순위를 보면 서울대 37위, 카이스트 63위, 포스텍 97위, 고려대 1백37위, 성균관대 1백79위 순이다.

연세대 동문은 아니지만 연세대를 소개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용재 백낙준 박사이다.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그는 1927년부터 연희전문 강단에 선 이래 한평생 연세와 인연을 맺고 오늘날 연세대의 초석을 닦았다. 광복 후에는 연희전문학교 교장과 연희대학교 총장으로 재직하며 통합 연세대학교의 탄생을 위해 노심초사했다. 이후 그는 문교부장관, 교련 회장, 연세대 이사장, 초대 참의원 의장 등을 역임했다.

국회 의장단에 오른 정치인 다수

2002년, 95세에 타계한 문창모 박사는 1992년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만든 통일국민당에 참여해 전국구 1번으로 국회의원이 된 뒤에도 청진기를 놓지 않는 등 인술의 한평생을 살았다. 새벽에 환자를 진료한 뒤 상경해 국정감사에 빠지지 않았던 그의 일화는 지금도 전설처럼 남아 있다. 24세에 의사가 된 그는 해주와 평양에서 청진기를 잡았고 광복 후에는 국립마산결핵요양소 소장, 세브란스병원장, 대한결핵협회 초대 이사장을 역임했다. 결핵협회 이사장을 지내는 동안 결핵 퇴치를 위한 크리스마스 실을 발행하고 나환자촌 건설에도 앞장서 의료계 안팎에서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렸다. 원주기독병원장을 마친 문박사는 1964년 원주시 학성동에 개인 병원을 열어 건강이 악화되기까지 43년간 인술을 베풀었다. 개업하고 30여 년간은 연중무휴로 새벽 5시에 병원 문을 연 것으로 유명하다. 밤새 고통에 시달리며 아침이 밝기를 기다리는 환자를 위해서였다.

연세대 동문 정치인 중에는 국회 의장단에 이름을 올린 인물이 많다. 고려대 출신인 임채정 의원이 17대 국회의장에 취임했을 때 고려대 동문들이 “우리 학교에서도 국회의장이 나왔다”라며 기뻐했다는 에피소드가 있었으리만치 이 부문에서 연세대가 강했다.

최순주 제3대 국회 부의장, 이영준 제5대 민의원 부의장에 이어 백낙준 박사가 초대 참의원 의장을 지냈다.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로 이름을 날렸던 이만섭 의원은 14, 16대 의장을 지냈다.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다 1963년 정계에 입문한 그는 국회의원 여덟 번, 국회의장 2차례, 여러 정당의 대표를 지낸 원로 정치인이다. 대구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첫 대통령 선거 당시였던 1963년 침식을 같이하며 전국 유세를 다녔고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의논 상대가 되었지만, 3선 개헌 문제와 관련해서는 박 전 대통령에게 권력 이양을 요구하며 설전을 벌였던 소신 있는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오세응 제15대 국회 부의장은 15대 국회를 마지막으로 여의도를 떠난 7선 의원이었다. 김원기 제17대 국회의장은 6선 의원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스승’이기도 했다. 이만섭·오세응·김원기 전 의원은 연세대 정외과 선후배이다.

제18대 국회 부의장을 지낸 새누리당의 정의화 의원(부산 중구 동구)은 부산대 의대를 나와 연세대에서 석사, 인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의사로서 15대 국회에 처음 들어간 5선의 현역 의원이다. 최근 ‘자녀 결혼식 간소하게 치르기’ 캠페인에 동참하고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에 대해 ‘타살 의혹’을 제기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국회의원, 학부 출신 24명·대학원 출신 35명

19대 국회에 진출한 학부 출신 연세대 동문은 24명이며, 소속 당은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12명씩으로 같다.

학부 기준으로 대학별 19대 의원 숫자는 서울대가 77명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은 고려대(25명), 연세대(24명), 성균관대(22명), 이화여대(11명), 중앙대(9명), 건국대(7명), 전남대(7명), 경희대(6명), 동국대(6명), 한국외대(6명), 한양대(6명)의 순이다.

5선의 남경필 의원(새누리당·수원 병)은 30대 초반에 부친인 고 남평우 의원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화려하게 데뷔한 이래 탄탄한 입지를 굳혀오고 있다. 아직 40대 후반으로 소장파인 그는 그동안 거친 당 대변인,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 당 최고위원 등의 경력과 자기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소신이 맞물려 미래가 주목되는 정치인으로 꼽힌다.

연세대 치과대를 나와 치과의사인 4선의 김영환 의원(민주통합당·안산 상록 을)은 학생운동·노동운동을 하면서 옥고를 치른 경험을 가지고 있다. 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시절 따놓은 전기공사 기사·소방설비 기사 등 자격증이 여러 개 있고,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 15, 16대 총선 때 안산 갑에서 연이어 당선했고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과학기술부장관을 지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열린우리당 참여를 거부하고 옛 민주당에 남았지만 17, 18대 총선에서는 연거푸 낙선했다. 재·보선에서 당선되어 18대 국회에서 지식경제위원장을 지냈다.

3선 의원으로는 김태환(새누리당·구미 을)·노영민(민주통합당·청주 흥덕 을)·변재일(민주통합당·청원)·유정복(새누리당·김포)·조정식(민주통합당·시흥 을)·최경환(새누리당·경산 청도) 의원이 있다.

김현미(민주통합당·고양 일산 서구)·김희정(새누리당·부산 연제)·박상은(새누리당·인천 중구 동구 옹진군)·우상호(민주통합당·서울 서대문 갑)·우원식(민주통합당·서울 노원 을) 의원은 2선이다.

초선인 황주홍 의원(민주통합당·장흥 강진 영암)의 경우 지방선거에서 강진 군수에 세 차례 당선되었던 정치학자 출신으로 10여 년의 정당 활동을 거쳐 건국대 교수로 옮겼다가 자치단체장으로의 변신에 성공한 후 다시 국회의원 배지를 다는 등 다양한 경력을 갖고 있다. 한때는 기초자치단체장 정당 공천 폐지를 주장하며 당적을 버리고 무소속으로 출마해 민주당 텃밭에서 당선의 영예를 안았으나 곧 민주당으로 복귀한 바 있다.

연세대에는 일반대학원을 비롯해 전문대학원, 특수대학원에 걸쳐 여러 형태의 대학원 과정이 개설되어 있다. 본격적인 학위 공부를 하는 코스에서부터 단기 과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19대 현역 의원 가운데 대학원 과정을 이수해 연세대와 인연을 맺은 의원이 35명에 이른다. 그중에는 강길부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새누리당·울산 울주)과 신학용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장(민주통합당·인천 계양 갑), 이주영 의원(새누리당·창원 마산 합포), 장윤석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새누리당·영주), 정몽준 의원(새누리당·서울 동작 을), 정병국 의원(새누리당·여주 양평 가평), 정우택 의원(새누리당·청주 상당), 주호영 의원(새누리당·대구 수성 을), 추미애 의원(민주통합당·서울 광진 을), 한명숙 의원(민주통합당·비례대표), 한선교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장(새누리당·용인 병),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새누리당·인천 연수)의 이름도 보인다.

연세대 행정대학원 고위정책과정을 이수한 백재현 의원(민주통합당·광명 갑)은 세무사 출신으로 1991년 지방선거 부활과 함께 광명시 의원으로 시작해 경기도의원, 민선 2-3기 광명시장을 거친 뒤 18대 국회에 진출했고 19대 국회에 재입성했다. 바닥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국회에 들어갔으며 지금까지 여섯 차례의 선거에서 모두 승리를 거둔 선거의 달인으로 통한다. 전북 고창에서 태어난 백의원은 경기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세무사사무소를 개업하면서 광명에 정착했다.

4·11 총선에서 주목된 스타 정치인들

4·11 총선 때 충남 서산·태안에서 당선된 선진통일당 성완종 의원은 대표적인 자수성가형 토박이 기업인이다. 그는 같은 당 후보들이 줄줄이 고배를 마시는 가운데서 정치 신인으로는 유일하게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되었다. 자수성가 스토리와 지역에서 22년간 펼쳐온 장학 사업 등이 유권자들의 표심을 움직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산 출신인 성의원은 맨손으로 자산 규모 2조원대의 대기업을 일궈냈다. 그의 공식 학력은 초등학교 중퇴이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14세 때 단돈 1백10원을 들고 상경해 신문·약 배달, 화물운송업 등을 하다 1977년 충청 지역에서 건설 사업을 시작했고 2004년 경남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대아그룹 회장에 올랐다.

경기 광명 을에서 민주통합당 이언주 의원이 거둔 성공은 4·11 총선 최대 이변 중 하나로 꼽힌다. 그는 지난 총선에서 당내 최연소 당선자이다. 이의원은 서울대 불문과와 연세대 법무대학원을 졸업한 40세의 여성 변호사이다. 지난 2월 말 민주통합당이 에스오일 법률총괄 상무로 있던 그를 전략 공천할 때만 해도 그의 당선 가능성을 점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상대가 광명에서만 18년 동안 관선·민선 시장 두 번, 국회의원 3선을 한 새누리당 전재희 의원이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에서 10~20%씩 뒤졌으나 개표 결과는 3.9% 차이의 역전이었다. 그에게는, 대학 졸업 직후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해 가족이 야반도주를 했고 어머니가 보험외판원과 가게 종업원을 하며 생활비를 벌어야 했던 쓰라린 기억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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