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울산 항운노조, 해마다 수십억 원 탈세하고 있다"
  • 울산·부산│김지영·김회권 기자 ()
  • 승인 2012.09.25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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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전직 간부, <시사저널>에 ‘양심선언’

울산항의 한 부두에서 대형 화물선들의 하역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지난 9월19일 오전 10시경, 청명한 가을 햇살이 쏟아지는 울산항 제6부두와 제7부두 사이에서는 대형 화물선의 하역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제16호 태풍 산바 때문에 전날까지 마산항으로 긴급 피항했던 선박들이 울산항으로 속속 돌아오면서 다시 활기를 되찾은 분위기였다. 대형 화물선 10여 척에서는 폴리에스터 섬유 원료(PTA)와 합성 비료, 포크레인 등 각종 중장비 등에 대한 울산 항운노동조합(이하 항운노조) 소속 조합원들의 선적 작업이 분주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울산 항운노조가 수십 년 동안 갑근세를 탈루해왔다”라는 증언이 나왔다. <시사저널>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탈세 의혹을 처음으로 제기한 사람은 박민식 민주노총 산하 울산 민주항운지부 지부장이다. 항운노조에서 1997년부터 2011년 8월까지 일하며, 5년 동안 반장을 지냈다. 그는 지난해 8월 울산 민주항운지부를 설립하자마자 항운노조로부터 제명(해고)당했다. 제명 사유는 ‘복수 노조 가입’이었다.

“작업 인원 부풀리기로 비과세 처리”

2011년 항운노조 세입·세출안에 따르면, 울산 항운노조 조합원의 임금은 월평균 5백83만원이었다. 울산은 다른 지역 항운노조에 비해 월급이 많은 편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지부장은 “5백만~6백만원의 월급을 받으면서 세금으로 5만원 정도밖에 내지 않았다. 항운노조가 그동안 관행적으로 탈세를 조장해왔기 때문이다. 제대로 갑근세를 냈다면 1인당 월평균 최소 35만원 이상, 연간으로 따지면 4백만원 정도의 세금을 더 내야 한다. 항운노조 소속 항만 노동자가 8백명 정도 되니까, 연간 30억원 이상을 탈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반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나도 그 잘못(탈세 조장)에 동참했다. 하지만 이렇게 곪은 문제는 언젠가 터질 수밖에 없다. 항운노조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라도 누군가가 나서서 바르게 정리해야 한다”라며 ‘양심선언’을 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작업을 총괄하는 반장들은 반원(조합원)들의 개인 도장을 모두 보관한다. 그 도장으로 일하지 않은 사람들도 일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서 하역회사로 보낸다. 하역회사에서는 항운노조에서 받은 명단대로 세무서에 세금을 신고한다. 박지부장은 자신이 직접 하역회사로 보내는 작업자 명단을 부풀려서 보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반장으로 5년간 일하면서 반원 27명의 도장을 보관해 가짜로 조작된 명단에 그 사람들의 도장을 찍었다. 내가 찍은 명단에 퇴직한 사람이 포함된 적이 있다. 심지어 이미 사망한 조합원의 이름까지 올라간 경우도 있었다. 그것은 항운노조의 꽤 오래된 관행이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 박지부장과 함께 해고당한 조현후 울산 민주항운지부 사무장은 “항운노조는 부자(父子) 교체가 가능하다. 아버지가 일한 자리를 아들이 그대로 세습할 수 있다. 나 역시 그렇게 입사했다. 1999년 아버지께서 퇴직하셨는데, 지금과 같은 탈세 문제에 대해 이미 알고 계셨다. 그만큼 오래된 관행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항운노조가 탈세를 저질러온 까닭은 무엇일까. 항운노조의 조합원은 세법상 일용직 노동자로 분류된다. 일용직 노동자의 경우, 일당 10만원까지는 비과세 혜택을 받는다. 10만원  이상일 경우에는 10만원을 공제한 차액에 대해서만 현재 2.7%의 세금을 부과받는다.

항운노조가 편법을 동원해 탈세하는 수법은 ‘근무 인원의 과다 계상’이다. 한마디로 ‘하역 작업 인원 부풀리기’이다. 예를 들어 한 화물선에서 하역 작업을 하는데, 모두 2백만원의 하역비를 하역회사로부터 받는다고 가정하자. 이 하역 작업에 실제로 10명이 투입되었을 경우, 일당은 개개인에게 20만원씩 돌아간다. 정상적인 세금 계산법이라면 10명의 조합원들이 10만원을 공제한 차액 10만원의 2.7%에 해당하는 2천7백원씩 세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항운노조에서 하역회사에 넘기는 자료에는 10명이 아니라, 20명으로 기록한다. 그럴 경우 일당은 10만원씩 받게 되므로 모두 비과세 대상에 해당한다. 하역회사는 이 자료를 세무서로 넘기고 결국 노조원들은 ‘단 한 푼’의 세금도 납부하지 않게 되는 셈이다. 이런 방식으로 그동안 세금을 탈루해왔다는 것이다.

박지부장은 “작업하지 않은 사람을 포함시켜 작업 인원을 늘려 세금 자체를 적게 내게끔 해왔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하역회사에서 보관하고 있는 작업자 명단은 실제 작업했던 명단이 아니라 임의로 조작해서 만든 가짜 명단이다”라고 말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항운노조 관계자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내부 문건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복수 노조 관련 - 내부 자료용’이라는 제목의 이 문건에는 세금 관련 문제에 대해 ‘현재 건설회사 대부분도 이렇게 인원 과다 계상으로 세금 문제에서 ‘편의’를 발휘하고 있다. 일반 월급쟁이처럼 세금 환급이 된다면, 항운노조에서도 하역회사에게 세법에 딱 맞춰 처리를 해달라고 요청하겠지만, 현실의 상황에서 그렇게 해야 ‘실익’이 없다’라고 적시되어 있다. 한마디로, 항운노조가 ‘편의’와 ‘실익’이라는 명분으로 세금을 덜 내기 위해 현행과 같은 탈세를 조장해왔다는 것이다. 

9월19일 오전 울산광역시 남구 매암동 139-40번지 울산항 일반부두 입구에 위치한 일반부두 항만 근로자 휴게소 전경. 위 작은 사진은 울산시 남구 야음동에 위치한 울산항운노동조합. ⓒ 시사저널 최준필
항운노조측 “객관적인 자료 내놓아라”

항운노조의 한 관계자는 지난 9월20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항운노조의 탈세 의혹’과 관련해 “항운노조는 작업자 명단만 하역회사에 넘긴다. 세금 업무는 하역회사에서 담당하기 때문에 탈세 여부는 알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그렇다면 항운노조에서 명단을 넘길 때 실제로 일하지 않은 조합원들까지 포함시키느냐’라고 묻자, 이 관계자는 “(항운노조에서) 인원 부풀리기를 했다는 객관적인 자료나 데이터를 갖고 있느냐”라고만 계속 반문했다. 이에 기자가 ‘증언자의 구체적인 증언이 나왔다. 그렇다면 그 증언자가 허위 사실을 유포한 것이냐’라고 질문하자 “그 사람이 객관적인 자료나 데이터를 갖고 있느냐”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처럼 항운노조측은 ‘작업 인원 부풀리기’ 수법을 통한 탈세 여부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울산 지역의 한 하역회사 간부는 “항운노조에서 받은 작업자 명단을 하역회사에서 임의로 변경하지는 않는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 하역회사는 노조에서 준 명단대로 세무서에 신고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박지부장은 “항운노조에 노무 공급권을 허가해준 지방노동청이나 세무서에서도 실제로 일한 인원을 관리·감독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노조에서 마음대로 인원을 과다 계상한다. 노조가 반드시 보관해야 하는 공급 근로자 임금 대장과 세무서에 신고하는 갑근세 신고 서류가 전혀 일치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라고 말했다. 항운노조가 보관하고 있는 ‘진짜’ 작업자 명단과 세무 신고된 ‘가짜’ 명단이 일치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다른 지역에서도 관행적으로 탈세 해와

그렇다면 하역회사에서는 왜 항운노조의 탈세 조장에 수수방관하는 것일까. 하역회사의 관계자들은 “정해진 시간 내에 최대한 빨리 화물을 하역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 생명줄을 쥐고 있는 곳이 항운노조이다”라고 말한다. 부산에서 만난 전직 하역회사 관계자는 “선주 입장에서는 시간이 생명이다. 그래서 하역회사는 선주와 약속한 시간 내에 하역 작업을 끝내야 한다. 그 역할을 항운노조가 맡고 있다. 항운노조가 인원을 얼마나 투입하든 하역비와 작업 시간만 지켜주면 된다. 한 명이 일하든, 열 명이 일하든 하역회사가 그런 부분을 신경 쓸 필요는 없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지부장은 “항운노조뿐 아니라 항만의 작업과 관행이 전국적으로 거의 동일하기 때문에 탈세 문제는 전국적인 문제이다”라고 주장했다. 항운노조의 탈세 수법이 울산 지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시사저널>은 실제로 복수의 관계자로부터 다른 항운노조에서도 관행적인 탈세가 진행되고 있다는 증언을 확보했다. 만약 이들의 증언과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 파장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울산 항운노조만 연간 30억원 정도 탈세하고 있다고 추정된다”라는 박지부장의 증언이 맞다면, 전국적으로 수십 년 동안 연간 수백억 원을 탈세해왔다는 계산이 나오기 때문이다.

항운노조는 ‘복수 노조 시대의 무풍지대’인가 

박민식 울산 민주항운지부 지부장과 조현후 사무장, 최규백씨 등 다섯 명은 지난해 8월 울산 항운노조로부터 제명 조치를 당했다. 항운노조는 노조원 자격이 없으면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실직이나 다름없었다. 노조의 제명 사유는 ‘노조 이중 가입’이다. 한국노총 산하의 현 노조 대신 박지부장이 민주노총 산하 울산 민주항운지부를 설립하자마자 생긴 일이다.

이들은 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와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 구제를 신청했다. 하지만 지노위와 중노위에서는 ‘사용자-종속자’ 관계가 아닌 ‘노조-노조원’ 분쟁은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고 판단해 ‘각하 결정’을 내렸다. 항운노조가 채용권과 인사권을 가지고 있지만 ‘사용자’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박지부장 등은 법원으로 이 문제를 가져가 울산 항운노조를 상대로 ‘대의원대회 결의 효력 정지 및 조합원 지위 보전 등 가처분신청’을 냈다. 지난 1월 울산지방법원은 항운노조의 사용자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해고한 제명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 사건은 현재 서울행정법원에 계류 중이다.

복수 노조를 만들어 몸살을 앓고 있는 곳은 울산만이 아니다. 전국 항만에서 복수 노조가 가장 먼저 설립된 곳은 포항이다. 기존 노조인 경북 항운노조에 대항해 지난해 7월19일 포항 항운노조가 설립되었지만, 42명의 새 노조 가입자들은 바로 제명 조치를 당했다.

경북 항운노조는 복수 노조 시대에 대비해 지난해 5월 정기 대의원대회에서 ‘노조에 이중 가입할 경우 자동으로 제명처리한다’라고 규약을 개정했고, 이를 적용했다. 이들은 제명과 상관없이 7월22일 노조 설립 신고증을 제출했고, 대구지방고용노동청 포항지청에 노무 공급권 허가 신청을 냈다. 하지만 한 달 뒤인 8월23일 ‘불허’ 통지를 받았다. 포항 항운노조가 노무공급권을 받지 못하면 조합원들은 모두 실직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지난 7월4일 대구지방법원 행정부는 포항 항운노조가 대구지방고용노동청 포항지청장을 상대로 낸 ‘국내 근로자 공급 사업 신규 허가 신청 불허가 처분 취소 소송’에서 새 노조의 손을 들어주었다. 재판부는 “전국항운노동조합연맹과 하역회사들이 소속된 한국항만물류협회 사이에 체결된 단체협약은 반드시 전국항운노조 소속 단위 노조와 근로자 공급 계약을 체결할 의무가 있다는 취지가 아니다”라는 이유를 밝혔다. 노조 설립 후 1년 만에 포항 항운노조는 닻을 올릴 수 있게 되었지만, 판결의 영향이 포항신항 현장에서 발휘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사업권을 받아도 업체와 단체협약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조합원 1천100여 명 규모인 기존 노조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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