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전단지’ 쏟아내는 세 갈래 손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2.09.18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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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업소-중간 알선책-인쇄업자 점조직 추적 취재 대포폰·대포통장 사용하며 신분 철저히 위장

새벽녘 서울 시내에 뿌려진 여성 전용 유흥업소들의 전단지. ⓒ 시사저널 유장훈
서울 강남구 강남역과 선릉역 일대는 밤이 되면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불야성을 이룬다. 길거리에서는 일대 장관이 연출된다. 명함 크기의 ‘성매매 전단지’ 수천 장이 도로를 뒤덮는다. 빌딩 사이의 난간, 대리석 의자, 공중전화 부스, 갓길 주차장 등도 예외가 아니다. 승용차 전면 유리창이나 와이퍼, 손잡이 등에도 전단지가 끼워져 있다. 심지어 주택가나 학교 주변에도 전단지가 무차별 살포되고 있다.

전단지를 보면 낯이 뜨거워진다. 젊은 여성이 요염한 포즈를 취하고 있거나 신체의 특정 부분을 강조한 모습이 대부분이다. 반나체의 여성이 등장하는 전단지도 있다. 문구를 보면 ‘여대생 오피스텔 항시 대기’ ‘24시간 영업, 최고의 수질로 모시겠습니다’ ‘강남 최고의 미소녀들과의 1:1 맞춤형 만남’ 등 하나같이 성매매를 유도하는 내용이다. 업소는 달라도 광고 내용은 비슷하다. 야한 차림의 여성이 등장하고, 성매매를 유도하는 문구가 있고, 휴대전화의 번호를 큼지막하게 적어놓았다.

경찰에 입건되고도 버젓이 영업 계속

도대체 누가 이런 것을 배포하는 것일까. 전화번호까지 버젓이 남기면서 영업하는데도 단속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사저널>은 성매매 전단지의 제작에서 유통 그리고 배포까지의 과정을 집중 추적했다. 하나하나 의문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베일에 싸였던 조직의 실체도 드러났다. 이들은 ‘제작-유통-배포’ 등의 점조직 형태로 연결되어 있었다. 크게는 ‘성매매 업주-중간 알선책-인쇄업자’가 몸통을 이루고, 그 하부에는 배포 조직이 있었다. 

먼저 전단지에 등장하는 성매매업소들의 정체를 파악해보았다. 그랬더니 크게 두 곳으로 압축되었다. ‘오피스텔 성매매’나 ‘출장 마사지’가 그것이다. 이른바 ‘신·변종 성매매’ 업소들이다. 이 업소들은 관할 구청에서 정식 허가를 받지 않고 영업하는 불법 업소들이다. 그렇다 보니 영업은 전적으로 ‘전단지 광고’에 의존하고 있다.

실제 광고 전단지에 있는 업소 다섯 곳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한 곳은 전화번호를 바꾼 듯 신호가 가지 않았다. 나머지 네 곳은 신호가 갔고, 그중 한 곳의 업주와 연결이 되었다. 남자였다. 기자가 ‘전단지를 보고 전화했다. 그곳에 찾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고 물었더니 그는 “우리는 저녁에만 영업한다. 저녁 8시 이후에 다시 통화하자”라며 끊었다.

얼마 후 기자가 전화했던 업소 중 한 곳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에는 여자였다. 그는 “우리는 낮에 일 안 한다. 저녁 8시 이후에 통화하자”라고 했다. 기자가 ‘예약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라고 물었더니 그는 “전단지에 있는 휴대전화로 문자를 보내면 연락하겠다”라고 말했다. 재차 ‘원래 낮에는 일 안 하느냐’라고 했더니 기자가 있는 곳의 위치를 묻고는 “(누군가에게) 전화하라고 하겠다”라며 끊었다.

여러 정황을 보면 전단지에 실린 성매매업소의 영업은 직장인들이 퇴근한 저녁 8시 이후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전단지에 있는 휴대전화의 문자메시지를 통해 예약을 받았다. 예약 손님과도 몇 단계의 절차를 거친 후에야 비로소 성매매가 이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다. 서울시 특별사법경찰과(이하 특사경)는 지난 8월 선릉역 일대 ‘성매매 전단 배포 조직’을 수사해 다섯 개 조직의 업주와 전문 배포자 등 12명을 입건했다. 그리고 전단지를 첨부해 보도자료를 냈다. 기자는 이 업소들이 영업을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모두 세 곳에 전화를 했더니 두 곳의 업소에 신호가 갔고, 실제 전화 통화도 이루어졌다. 이들 업소도 “8시 이후부터 영업한다”라고 했다. 문제는 특사경에 단속된 업소들도 여전히 같은 휴대전화를 사용해서 영업을 한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박중규 서울시 특별사법경찰과장은 “우리는 성매매업소를 단속할 권한이 없다. 다만 청소년보호법에 의해 성매매 전단지가 유해하다는 판단을 하고, 전단지 배포에 대한 단속만 했다. 실효성 있는 단속이 되려면 우리 특사경만 움직이면 안 되고, 자치단체, 경찰, 지역 주민 등이 합심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지난 9월10일 서울 강남경찰서 담당 형사가 압수한 성매매 전단지들을 보여주고 있다. ⓒ 연합뉴스
성매매 업주와 인쇄업자 사이에 낀 브로커들

성매매업소를 단속하는 데에는 엄연한 한계가 있다. 특히 전단지에 광고를 내는 성매매업소의 경우 점조직 형태로 영업하기 때문에 업소를 찾아내는 것도 쉽지 않다. 설령 업소를 찾아냈다고 해도 성매매 현장을 확보하지 않으면 처벌이 어렵다. 성매매 여성이 증거를 인멸하고, 남성이 ‘아직 성매매를 하지 못했다’라고 하면 미수 처벌 규정이 없어 처벌하지 못한다.

서울의 한 일선 경찰관은 “전단지에 나와 있는 업소와 손님들은 비밀리에 접선한다. 가령 손님이 전화해서 예약하면 업소에서는 ‘어디로 오라’고 안내한다. 그리고는 다시 전화해서 ‘○○오피스텔 ○○호로 가라’고 한다. 업주를 검거해야 하는데, 현장을 덮쳐도 업주는 나오지 않는다. 성매매 여성은 업주를 보호하기 위해 철저하게 입을 다문다”라며 단속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전단지에 있는 휴대전화는 100% 대포폰이어서 추적이 되지 않는다. 물론 이들이 돈을 주고받는 통장도 ‘대포통장’이다. 단속을 해도 ‘몸통’인 업주를 잡기가 쉽지 않은 이유이다. 배포 조직의 근거지인 오피스텔 주위에 잠복하고 배포자들을 추적해야만 조직의 몸통인 업주를 간신히 검거할 수 있다. 서울시 특사경이 업주를 검거할 수 있었던 것도 오랫동안 추적과 잠복을 병행했기에 가능했다. 이때 적발된 업소의 업주들도 대포폰을 사용하고 있었다. 박중규 과장은 “대포폰 명의자가 누구인지 알아보았더니 국내에 입국하지 않은 중국 현지의 조선족이었다”라며 혀를 찼다.

성매매업소의 업주와 인쇄업자 사이에는 ‘인쇄 브로커’인 중간 알선책이 끼어 있다. 이들은 총 제작 단가의 50% 이상을 가져간다. 명함 형식의 전단지 1장당 단가는 보통 1백50원이다. 1개 업소당 10만장을 인쇄하면 1천5백만원인데, 이때 중간 알선책은 7백50만원을 챙기는 구조이다.

중간 알선책의 광고주들은 서울뿐만 아니라 경기도와 대전 등지까지 넓게 분포되어 있다. 이들은 광고주를 확보하기 위해 인터넷 성인 카페 등에 광고를 게재하거나 성매매업소의 업주들에게 전화나 이메일을 보내 ‘전단지 제작’을 유도한다. 인쇄소 몇 곳을 확보하고는 제작 단가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정해, 그 수익을 챙겨가고 있다.

지난 9월7일 서울 강남경찰서는 성매매 전단지 중간 알선책과 인쇄업자 등 총 여섯 명을 검거했다. 이들은 지난해 9월부터 최근까지 1년간 성매매 전단지를 만들어 수도권과 대전 일대 유흥업소에 공급했다. 경찰은 조직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지난 6개월간 추적했고, 경기 고양시 장항동에 있는 인쇄소에서 이들을 붙잡았다. 경찰은 성매매 전단지 50만장, 제작 원판 16장, 원판 제작 그림 파일 100여 개가 저장된 하드디스크 1대 등을 압수했다.

김종환 강남경찰서 생활안전계장은 “중간 알선책의 동생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형님이 모든 것을 다 했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형에게 전화를 걸어 ‘동생을 잡고 있으니 빨리 오라’고 해, 형이 출석했다. 그런데 그는 경찰에 나오면서 대포폰을 버리는 등 증거를 인멸했다. 아마도 광고주(성매매업소)를 보호하기 위한 행동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중간 알선책인 이 아무개씨는 그동안 수천만 장의 성매매 전단지를 주문받아 공급하는 등 이 분야에서는 알아주는 ‘선수’로 통했다. 성매매 전단지 인쇄는 주로 경기 지역에 거점을 둔 인쇄소에서 맡았다. 경찰이 단속한 인쇄소의 주소지를 보면 경기도 파주나 고양 등이 대다수였다. 이들 인쇄소는 ‘성매매 전단지 전문 인쇄소’가 아닌 일반 인쇄소였다. 다른 인쇄를 하면서 성매매 전단지 인쇄 의뢰가 들어오면 제작했다. 성매매 전단지의 경우 일반 인쇄보다 단가가 네 배 이상 높기 때문에 인쇄소들이 유혹을 쉽게 뿌리치지 못했던 것이다. 단속에 걸려도 죄의식 보다는 밥벌이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청소년들에게도 무방비로 노출돼 위험

성매매 전단지의 인쇄는 철저한 분업으로 이루어진다. 광고 원판을 만드는 인쇄업자가 있고, 필름을 찍는 인쇄업자가 따로 있다. 이렇게 공정마다 다른 인쇄업자가 존재한다. 마지막 단계인 코팅을 해서 전단지가 완성되면 업주에게 전달된다. 이때 전달 수단으로는 택배를 주로 이용한다. 업주와 인쇄업자는 전화와 이메일로만 연락해 서로의 얼굴은 모른다. 관계 당국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돈거래는 무통장 입금으로만 한다.

전단지를 받은 업주들은 마지막 단계인 배포 조직에 넘긴다. 배포 방법은 크게 세 가지이다. 걸어다니면서 뿌리는 ‘도보 배포’, 차량을 이용해 뿌리는 ‘차량 배포’,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뿌리는 ‘오토바이 배포’가 있다. 도보를 이용한 배포는 타깃에 정확하게 뿌릴 수 있고, 차량이나 오토바이 배포는 짧은 시간에 다량으로 뿌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배포 인력은 두 부류이다. 오랫동안 배포를 해본 경험이 있는 전문 배포자이거나 대학생 등 아르바이트로 고용된 사람들이다. 배포자들은 주간조(오전 9시~오후 5시)와 야간조(오후 5~11시)로 나누어서 고용한다. 일당은 1시간당 보통 1만원을 지급했고, 배포자 1인당 하루 평균 수입은 6만~10만원 정도였다. 돈은 배포 관리 중간책들이 지급한다. 

지난 9월 초 부산지방경찰청에서는 성매매 전단지 전문 배포자 김 아무개씨(44)를 붙잡았다. 그는 폭력과 청소년보호법 위반 등 전과 23범이었고, 지난해 11월부터 약 10개월간 모텔 밀집 지역에서 성매매 전단지를 배포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하루 평균 6만원 정도의 일당을 받았다.

부산경찰청 생활안전과 문인오 경감은 “조직원들은 검거될 때를 대비해서 대포폰을 사용하고, 수시로 번호를 바꾸었다. 자기들끼리 ‘이사장’ ‘김부장’으로 호칭을 정해서 불렀다. 하부 조직은 자신들의 밥줄이 끊어질까 봐 절대 ‘윗선’을 불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성매매 전단지의 폐해는 심각하다. 불특정 다수 특히 청소년들에게도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청소년들에게 왜곡된 성문화를 심어줄 수도 있다. 정부는 성매매 전단지를 ‘청소년 유해 매체물’로 지정해 단속하고 있다. 현행 청소년보호법에 따르면 ‘성매매 전단지’를 배포하다가 적발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대학생이나 일반인이 높은 일당만 생각해서 성매매 전단지를 배포하다가는 하루아침에 범죄자로 전락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법을 강화하고 단속한다고 해서 불법 행태를 완전히 근절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서울과 경기도를 비롯한 전국 지방경찰청에서는 해당 지역의 인쇄조합 등에 ‘성매매 전단지 인쇄는 불법’이라는 협조 공문을 보내고 있으나 실효성은 의문이다. 성매매 전단지 인쇄업체가 비회원사일 경우 행정력이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성매매업소를 집중 단속하면 자칫 ‘풍선 효과’도 우려된다. 전문가들은 ‘접대 문화’ 등 우리 사회의 성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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